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58화 (58/200)

제58화

손짓. 발짓. 눈빛. 표정. 하다못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까지.

그 모든 것은 제로가 ‘당황했다’라는 것을 알려 줬지만, 그 모습은 마치 ‘인위적인 연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홀리몰리가 머리를 털었다.

지형도, 상황도. 모두가 자신들에게 유리했다.

탁 트인 초원이라면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하는 제로에게 애먹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던전 내부.

자신들에게 덤비는 언데드의 숫자는 끽해 봐야 10마리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이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은 대체….’

홀리몰리가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제로 또한 홀리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거냐?”

말을 마친 제로가 손을 내리그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신성 길드원들에게 돌진하라는 행동이었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들은 망설임 없이 신성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급 망자들은 소용없었다.

움직인 것은 중급 이상인 망자의 광전사와 망자의 장군. 망자의 궁병 등이었다.

망자의 광전사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신성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휘용으로 제작되었지만, 그 전투력은 정예병 이상인 망자의 장군들이 해골마에 올라타 돌격했다.

그 뒤를 이어 망자의 궁병들이 뼈로 이루어진 화살들을 쏘아 댔다.

“제1진, 방어 마법!”

스킬 발동, 홀리 베리어.

스킬 발동, 홀리 베리어.

스킬 발동, 홀리 베리어.

스킬 발….

홀리몰리의 외침과 동시에 신성 길드원들 앞으로 수십 겹의 홀리 베리어가 둘러쳐졌다.

망자의 궁병들이 쏘아 대는 화살. 망자의 광전사가 휘두르는 대검. 망자의 장군이 휘두르는 장검 등등.

수십 겹의 홀리 베리어는 망자들이 행하는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제2진, 공격.”

스킬 발동, 홀리 에로우.

스킬 발동, 홀리 썬더.

스킬 발동, 홀리 파이어.

스킬 발….

다시 한번 떨어진 홀리몰리의 명령에 사제들이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온갖 종류의 공격 마법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홀리 베리어를 두드리고 있던 망자들에게 떨어졌다.

콰가강-!

나름의 강함을 자랑하던 중급 이상의 망자들이 한 번의 폭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외차원의 창고에는 수없이 많은 망자가 잠들어 있지만, 제로는 그것들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성 길드는 아직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가장 뒤에 서 있는 수 명의 성기사들은 물론. 그들 중 가장 강력하다 할 수 있는 홀리몰리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끌었어.”

제로가 씨익 웃으며 말하기 무섭게, 제로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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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데스 솔저.

제로의 등 뒤로 또 한 번 공간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은 외차원의 창고와 마찬가지로 깊은 심연을 품고 있었으며, 그러한 심연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죽음의 병사들이었다.

제로가 부릴 수 있는 망자들 중, 최상위의 강함을 자랑하는 데스 솔저.

그것들의 강함은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부릴 수 있는 데스 나이트에 필적했다.

“죽여.”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습을 드러낸 열 구의 데스 솔저들이 각자 무기를 뽑아 쥐며 움직였다.

신성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드는 데스 솔저들의 전신에선 짙은 죽음이 물씬 풍겨져 나왔다.

“방…!”

콰가가각!

크아아악!

으악!

끄아악!

달려드는 데스 솔저에 홀리몰리가 다시 한번 방어 명령을 내렸으나, 한발 늦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데스 솔저들은 제각기 쥐고 있는 무기들로 사제들을 학살했다.

데스 솔저의 무기가 한 번,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수 명의 사제들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거야?”

으득-!

비꼬는 듯한 제로의 말에 홀리몰리가 이를 갈았다.

“성기사들은 앞으로. 죽음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신의 적을 처단한다.”

스릉.

더이상 사제들로는 역부족이다.

그것을 깨달은 홀리몰리가 검을 뽑아 쥐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홀리몰리의 뒤로,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성기사들 또한 움직였다.

스킬 발동, 홀리 크로스.

콰가강-!

홀리몰리의 검이 휘둘러지며,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십자가 형태의 참격이 튀어나왔다.

데스 솔저들은, 자신들을 향해 쏘아지는 십자가 형태의 참격에 무기를 들어 올리며 방어했다.

하지만….

“흠.”

거대한 폭발과 함께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걷히며, 제로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홀리몰리의 공격에 세 구의 데스 솔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저들의 강함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얻기 위해 싸웠던 쉐도우 또한 그러했지만.

눈앞의 홀리몰리 또한 일개 유저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강함을 지녔다.

지금까지 ‘괴물’이라 불리기에 적합한 강함을 가진 적들을 상대해 왔기에, 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유저들의 강함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제로는 상대의 강함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스킬 발동, 명계의 폭풍.

스킬 발동, 명계의 불꽃.

스킬 발동, 명계의 갑옷.

스킬 발동, 명….

제로로부터 시작된 온갖 버프 마법이 살아남은 일곱 구의 데스 솔저에게 깃들었다.

“끝이 아니야.”

제로가 사용한 다종다양한 버프 마법들은 데스 솔저들의 강함을 최대 2배 이상 증폭시켰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저들로는 홀리몰리를 비롯한, 사제들의 지원을 받는 성기사들을 처리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상대할 만하게 만들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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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커스 필드.

후웅.

보랏빛 기류를 품은 미풍이 제로를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홀리몰리를 비롯한 성기사들. 그리고 사제들은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보랏빛 바람에 의아한 표정을 내비쳤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처음 보는 마법에 한껏 긴장감을 끌어 올렸으나, 스쳐 지나간 보랏빛 바람은 아무런 영향도 입히지 않았다.

“잔재주를 부리…!”

마법이 실패했다.

혹은 보랏빛 바람은 페인트에 불과했다.

홀리몰리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제로가 사용한 마법, 커스 필드는 홀리몰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힘을 선보였다.

“이 무슨…!”

홀리몰리는 눈앞에 떠오르고 사라지는 수십 개의 알림창에 표정을 굳혔다.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은 자신들이 수십 개의 다종다양한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알려 줬다.

“허, 저주라고?”

한 성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저주 테크를 탄 흑마법사의 저주조차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기사 자체가 저주에 대해 극한에 가까운 내성을 지녔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지금의 자신들은 사제들의 버프까지 받았는데….

그럼에도 저주에 걸렸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사제들은 당장 저주를 정화해라.”

“그, 그것이 정화가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사제의 당황한 대답에 홀리몰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3차 전직을 끝낸 사제조차 정화할 수 없는 저주라니?

한편 제로는 커스 필드에 당황하는 홀리몰리와 신성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너희들을 위한 특제 저주야.”

까딱.

말을 마친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와 동시에 살아남은 일곱 구의 데스 솔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은 제로의 버프에 의해 한층 강해진 상태로, 신성 길드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칫!”

홀리몰리와 성기사들은 달려드는 데스 솔저들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움직였다.

블라인드 저주에 의해 시야가 제한되었다.

사일런스 저주에 의해 목소리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역병 저주에 의해 체력이 깎여 나간다.

둔화 저주에 의해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 따위가 제한되었다.

그 외의 다종다양한 저주에 의해 각종 페널티를 받았다.

그나마 그들의 직업이 성기사였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만일 다른 직업군이었다면, 수십의 저주가 중첩되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까앙-!

“큭!”

데스 솔저가 휘두른 검을 받아 낸 홀리몰리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각종 저주도 저주였지만, 제로의 버프를 받은 데스 솔저의 강함은 상정 외였다.

그나마 홀리몰리였기에 막아 낼 수 있었지, 다른 성기사들은 사제들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피하지 못해 몸 곳곳에 데스 솔저들에 의한 상처가 새겨졌다.

“으아아아-!”

스킬 발동, 그랜드 크로스!

홀리몰리가 발악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것은 그랜드 크로스. 홀리 크로스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스킬이었다.

둘 모두 십자가 형태의 참격을 쏘아 대는 것은 동일했으나, 그 크기와 데미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콰아앙-!

거대한 그랜드 크로스와 충돌한 데스 솔저 두 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온갖 저주가 걸렸음에도 저 정도 데미지.

확실히 홀리몰리의 강함은 랭커급에 필적했다.

하지만….

“꽤 힘들어 보이네.”

제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홀리몰리 또한 한계에 가까워졌다.

힘을 쥐어 짜내 그랜드 크로스로 두 구의 데스 솔저를 지워 버린 것은 대단했지만, 그 대가로 대부분의 힘을 탕진해 버렸다.

지금의 홀리몰리는 검을 지팡이 삼아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에 반해 제로가 소환한 데스 솔저는 아직 다섯 구나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외차원의 창고에는 수천, 수만의 망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커스 필드도 아직 작동하고 있다.

누가 봐도 신성 길드의 패배가 확실한 상황이었다.

“이만 포기해.”

“포기할 성싶으냐!”

제로의 말에 홀리몰리가 버럭 외쳤다.

그의 입에선 연신 거친 숨이 토해졌지만, 제로를 향하는 두 눈동자에는 꺼지지 않는 투지가 이글거렸다.

힘이 다한 홀리몰리였음에도 제로를 향한 적의와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네놈을 죽이기 전까지!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성난 외침을 토해 낸 홀리몰리가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 홀리몰리에 호오~ 하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을 터임에도, 오직 자신을 죽이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걸음을 옮기다니.

확실히 ‘사냥개’라는 이명이 잘 어울리는 집념과 투지였다.

하지만….

“에휴, 너도 참 중증이다.”

스킬 발동, 데스 개틀링.

퍼버버버벅-!

천천히 나아가는 홀리몰리를 향해 제로가 마법을 사용했다.

수백 발의 데스 에로우가 마치 개틀링 건을 난사하듯 쏟아졌다.

홀리몰리는 수십 발의 데스 에로우에 꿰뚫려 죽었으며. 나머지 신성 길드원들 또한 제로의 데스 개틀링을 피하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제로는 죽어 버린 신성 길드원들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선 신성 길드부터 정리해야겠네.”

* * *

“우왓!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신성 길드와의 전투가 끝난 지 1시간.

무사히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취하고 나타난 스타툰이 당황하며 말했다.

스타툰의 눈에 보이는 던전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절대 함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패이고, 무너지고, 박살 난 그 모습은 마치….

‘격렬한 전투를 벌인 흔적이야.’

스타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제로가 입을 열었다.

“전직은?”

“했죠. 더 이상 대도 예이안의 후예가 아니에요.”

“그럼?”

제로의 반문에 스타툰이 씨익, 자신만만한 웃음을 내비쳤다.

“다크 로드. 좀 중2병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전 대륙의 어둠의 정점에 군림하는 다크 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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