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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57화 (57/200)

제57화

“양 벽에서 화살.”

파바박-!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쪽 벽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쏘아졌다.

스타툰은 오른손에 쥔 단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쳐 냈다.

제로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와도 같은 강함을 지녔을 뿐이지만, 스타툰 또한 대도 예이안의 후예라는 직업을 가지고 당당히 루파에서 활동하던 악명 유저 중 한 명이다.

고작 수십 발의 화살 정도로는 스타툰을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발밑에서 파이어 타워.”

화르륵-!

“큭-!”

다급히 몸을 빼냈으나 한 템포 늦었다.

스타툰은 발밑에서 솟구친 화염의 기둥, 파이어 타워에 스치며 신음을 내뱉었다.

고작 스쳤을 뿐임에도 30%의 체력이 증발했다.

직격으로 맞았다면 즉사를 피하지 못할 위력이었다.

“파이어 타워는 4서클 마법 아니었어? 뭔 놈의 딜이 이따구야!”

“이곳에 있는 모든 마법이 강화되어 있어. 네 상식으로 판단하지 마. 여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이 만든 최악의 던전이야.”

“알고 있어요!”

제로의 충고에 스타툰이 외쳤다.

허나 자신만만하게 외친 것과는 달리, 스타툰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고작해야 던전 초입이다.

30m 정도 움직였을 뿐임에도 벌써부터 이 정도 위력의 함정들이라니.

던전 내부에 어떤 흉악한 함정들이 숨어 있을지, 스타툰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함정은 없어 보이네. 이동하자.”

그렇게 말한 제로는 스타툰을 스쳐 지나가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타툰은 담담히 걸어 나가는 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내비쳤다.

이건 마치 자신을 함정 파훼용 고기 방패로 사용하는 듯한 행동이지 않은가.

‘자기는 뒤에만 있었으면서 잘난 척하기…!’

속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스타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본 장소. 한때 제로가 서서 자신에게 충고하던 장소에는….

“미친.”

바닥에서 솟아난 걸로 보이는 수십 자루의 창이 창대가 꺾여 망가져 있다.

입구에서 굴러온 듯한 거대한 철구는 이리저리 찌그러져 구석에 처박혔다.

그 외에도 다종다양한 함정들이 망가진 상태로 스타툰의 눈에 들어왔다.

‘괴물이네.’

스타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두 개의 함정을 피할 동안, 이 정도로 많은 함정을 막아 내다니.

스타툰은 그제야 새삼 제로의 강함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 * *

스킬 발동, 본 실드.

카가각-!

양쪽의 벽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제로는 뼈의 벽을 만들며 함정을 막았다.

“던전이 꽤 넓군요.”

스타툰은 랭커조차 막아 내지 못할 것만 같은 속도로 튀어나오는 칼날을 너무나도 손쉽게 막아 내는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던전에 들어온 지 벌써 1시간 가까이 지났다.

몬스터를 상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길을 걸었을 뿐인데.

아무리 다종다양한 함정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지만, 1시간이면 진즉에 끝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던전이 넓다는 건가.’

스타툰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제로가 멈췄다.

“무슨 일 있으십-!”

파바박-!

의아해하던 스타툰이 다급히 몸을 뒤로 빼냈다.

그와 동시에 스타툰이 서 있던 자리에 세 발의 화살이 꽂혔다.

바닥에 꽂힌 화살들의 화살촉에는 검은 액체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독-! 아니, 그보다 언제? 어디서?’

스타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함정이란 본디 ‘스위치’를 눌러야지만 작동한다. 무언가를 밟거나, 무언가를 누르거나. 혹은 무언가를 끊어 버린다든가.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스위치’도 작동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제로 또한 마찬가지.

그렇다면 저 독으로 예상되는 액체가 발라진 화살은 어디에서. 어떻게 쏘아졌단 말인가?

“까다롭네.”

제로는 스타툰이 서 있던 자리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이안, 이 양반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NPC일까?

설마….

‘마나의 실을 이용해 함정을 만들 줄이야.’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타툰은 모르겠지만, 그는 함정의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이 함정의 스위치는 벽에 쳐져 있는 마나의 실이었다.

마스터 레벨의 유저조차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그리고 무척이나 가느다란 마나의 실을 건드리는 순간 세 개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마법도 수준급이다, 이거…. 아니, 초입의 파이어 타워를 생각하면 이제 와서 놀랄 건 아니지.’

제로가 슬쩍 천장을 바라봤다.

그에 따라 스타툰 또한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제로의 눈에는 보이지만, 스타툰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구멍이 존재했다.

그것은 공간의 틈.

예이안은 공간의 틈에 화살을 준비하고, 미세한 마나의 실을 스위치로 함정을 만든 것이다.

가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함정.

이것이 예이안이 평범한 도둑이자 어쌔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였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얻을 가치가 있지. 이 정도라면 놈들에게도 충분히 통한다.’

제로가 씨익 웃었다.

이 정도의 함정을 만들 정도라면, 스타툰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취했을 때가 기대되었다.

물론 이 정도 수준에 오르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망자들을 이용해 움직이자.”

“망자…, 언데드 말입니까? 형님.”

제로는 스타툰의 질문을 무시하며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쩌억-!

제로의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심연을 품은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척. 척. 척.

외차원의 창고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다수의 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망자의 숫자는 총 일곱으로, 하나하나가 방어에 특화된 망자의 방패병이었다.

“망자의 방패병. 앞으로 달려가.”

어차피 이 던전의 길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망자들을 돌진시켜 모든 함정이 발동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의 방패병들이 움직였다.

그것들은 이 열 종대로 서서, 방패를 들어 올리고. 곧 망설임 없이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콰가강-!

퍼버벅!

콰앙!

카가가강!

망자의 방패병이 달려 나가자 다양한 함정들이 발동되었다.

어떤 함정은 초입의 함정과 마찬가지로 불꽃의 기둥이 치솟았다. 허나 그것은 초입의 파이어 타워가 아닌 인페르노 타워. 6서클의 마법이었다.

그 외에도 천장에서 쏟아지는 화살들.

발밑이 사라지는 함정.

양 벽이 그그긍-! 움직이며 조여오는 함정.

다수의 독침이 쏘아지는 함정 등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함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로는 함정에 망자의 방패병들이 소멸할 때마다, 외차원의 창고에서 새로운 망자를 꺼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진작에 이러지 그랬습니까.”

스타툰은 망자를 이용하자, 편히 갈 수 있다는 것에 불평을 내뱉었다.

그에 제로가 쯧! 하며 혀를 찼다.

“앞으로 네가 다룰 힘이야. 이 함정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등등에 대해 잘 외워 둬.”

“예입.”

제로의 충고에 스타툰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툰 또한 지금까지 다양한 함정들을 겪어 오면서, 자신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까지 취하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그에 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한편, 망자들을 이용해 얼마나 나아갔을까.

함정 파훼에 물경 수백의 망자들을 소모하고 나서야 제로와 스타툰은 던전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던전의 끝에는 하나의 자그마한 철문이 자리 잡았다.

이곳저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철문 앞에 도착하자, 제로는 스타툰을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는 말없이 물러났다.

“여기부터는 네 차례야.”

“그게 무….”

“이 문은 대도 예이안의 후예라는 직업을 가진 유저만 들어갈 수 있어.”

확인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저 문은 대도의 후예인 예이안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제로의 말에 예이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끄덕.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 스타툰이 철문에 손을 올리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쌔신 마스터로서의 예이안의 것을 물려받기 위한 공간으로 이동했으리라.

“그럼 난….”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나오지?”

그러한 제로의 말에 반응하듯, 길목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에서 다수의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유저들은 하나같이 성기사와 사제 따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슴팍에는 새하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신성이냐.”

제로는 십자가를 확인하기 무섭게 귀찮게 됐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시작의 도시에 들어오면 신성의 눈에 노출될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하지만….

‘너무 빠른데. 어디서 들킨 거지.’

설마하니 이 던전 안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은신처라는 이름을 가진 던전의 입구는 상시 개방형인 듯 보였다.

‘이래서 기억에 없는 던전은 싫단 말이지.’

과거에 한 번 경험했다면 미리 알고 대비라도 했을 텐데.

제로가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신성 길드원들의 무리가 갈라지며 한 유저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다, 신의 적.”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은 신성 길드의 사냥개, 홀리몰리였다.

“하필 네놈이냐.”

제로는 홀리몰리의 등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풍기는 기세나 흘러나오는 신성력만 보더라도 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더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만 못 본 척 넘어가는 건… 힘들겠지?”

“당연하다. 신의 적은 멸할 뿐.”

스릉.

제로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한 홀리몰리가 검을 뽑아 쥐었다.

홀리몰리가 쥔 검의 검신에 새하얀 신성력의 칼날이 덧씌워졌다.

‘흠.’

제로는 홀리몰리를 시작으로 전투태세에 돌입한 신성 길드원들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좁은 통로에선 다수의 망자를 부리는 자신이 불리했다.

아무리 많게 잡아도 통로의 넓이를 생각해 보자면, 고작 네 마리의 망자들밖에 공격을 하지 못한다.

그뿐이랴.

‘망자의 거신병 같은 대형 망자도 사용할 수 없겠네.’

자칫 잘못해 던전이라도 붕괴해 버리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그에 제로가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생각하고 있을 때.

제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홀리몰리를 비롯한 신성 길드원들이 달려들었다.

“신의 단죄를 받아라!”

스킬 발동, 홀리 크로스.

스킬 발동, 망자의 벽.

콰가강-!

홀리몰리의 검에서 십자가 형태의 검기가 쏘아졌다.

제로는 그것을 망자의 벽을 만드는 것으로 막아 냈다.

망자의 벽은 단 한 번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으며, 무너지는 벽 사이로 신성 길드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스킬 발동, 홀리 에로우.

스킬 발동, 홀리 스피어.

스킬 발동, 홀리 레인.

스킬 발….

사제들의 공격 마법이 쏟아지고, 성기사들의 검이 내리꽂힌다.

가장 선두에는 홀리몰리가 달려들고 있었는데, 그는 동료의 공격에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 미치겠네.”

제로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저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제로 또한 망자들을 꺼내 보였지만….

‘저것들로는 힘들어.’

제로의 앞을 가로막는 망자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덩치가 작은 상위 망자들을 소환하자니 홀리몰리는 영창을 할 틈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려나.’

누가 봐도 제로에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제로 또한 당혹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홀리몰리를 비롯한 신성 길드원들을 바라보는 제로에게서 나타난 당혹감은 무언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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