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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56화 (56/200)

제56화

“저…, 형님?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시작의 도시 중앙대로를 걸어가던 스타툰이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타툰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런 스타툰의 옆에는 제로가 걷고 있었다.

“맞으니깐 좀 조용히 해라.”

제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말에도 스타툰은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시작의 도시가 선 성향과 악 성향. 심지어 머더러마저 들어갈 수 있는 도시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돌아다니는 머더러나 악 성향 유저가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만일 다른 유저에게 정체를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시작의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습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탑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자니, 시작의 도시는 ‘입장과 퇴장’만 자유로울 뿐,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악명 수치에 따라 페널티가 따라 붇는다.

“그나저나 저희는 어딜 가는 겁니까?”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잖아.”

“그렇긴 한데….”

제로의 대답에 스타툰이 우물쭈물 뒷말을 집어삼켰다.

제로는 말 그대로 ‘흔적을 찾으러 간다’라고만 했지, 그 흔적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속으로 생각한 스타툰이 돌연 고개를 털었다.

애초에 이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이제 와서 발을 뺐다간 역으로 제로에게 무한 pk를 당할 것이다.

그렇게 스타툰이 불안과 걱정 따위가 그대로 드러난 얼굴로 제로의 뒤를 따라 어느 정도 움직였을까.

수많은 유저로 북적거리는 시작의 도시답지 않게, 주변에 있는 유저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스타툰의 표정 또한 빠르게 굳어졌다.

“저, 형님?”

“또 뭐.”

“여기…, 황궁 아닙니까?”

스타툰이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황궁.

말 그대로 제국의 황제가 살아가는 장소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 미터를 넘어가는 거대한 성문 앞에는 네 명의 경비병이 눈을 부라리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 외에도 호화로운 황궁을 둘러싼 성벽 위에는 다수의 병사가 돌아다녔다.

시작의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제일 수도다.

말 그대로 로스트 월드 속 유일 제국인 제국의 수도였다.

스타툰은 황성을 앞에 두고 제로를 바라봤다.

그런 스타툰의 두 눈에는 ‘아니죠?’라는 물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맞는데?”

“으아아아아! 이건 아니죠!”

제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확답에 스타툰이 버럭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그래도 황궁이라니! 황제가 기거하는 성이라니!

당장 문 앞이나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레벨만 300이 넘는다.

그뿐일까? 황궁 내에는 온갖 괴물 같은 NPC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위험한 NPC는 셋으로 한 명은 황제 직속의 기사단, 황룡기사단의 단장이요 한 명은 제국 제일의 마법사라 불리는 푸른 마탑의 탑주요.

마지막으로 황제 본인이었다.

이 셋은 말 그대로 괴물로 공식적인 레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저들은 그들이 최소 800레벨 이상이 될 거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장소에 들어가겠다니!

그것도 악명 수치가 높은 자신들이!

“농… 담이죠?”

“아닌데?”

스타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제로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타툰은 ‘이제라도 도망칠까?’라는 마음을 품으며 힘없이 제로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아무리 나라도 그 괴물들은 무리니깐.”

이걸 걱정이라고 하는 걸까?

스타툰은 무심히 말하는 제로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한편, 그렇게 스타툰과 함꼐 도착한 장소는 황궁의 북쪽이었다.

황궁… 아니, 정확히는 황궁을 둘러싼 성벽의 북쪽에는 자그마한 숲이 존재한다.

이렇다 할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 작은 숲에는 경비를 서는 경비병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다수의 유저는 이러한 숲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것은 스타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눈앞에 나타난 숲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이 바로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잠들어 있는 장소야.”

대도이자 어쌔신 마스터라 불리었던 예이안.

흔적에 적혀 있는 정보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하나의 의뢰를 받았다.

그 의뢰는 대륙 유일 제국의 황제를 암살해 달라는 의뢰였다.

처음 의뢰를 받았던 예이안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드래곤 레어조차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던 대도이자 어쌔신이었기에, 아무리 제국의 황제라 한들 고작해야 인간 하나 죽이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제국의 황궁은 예이안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황궁 곳곳에 걸려 있는 마법과 저주는 드래곤 레어 그 이상이었다.

그 내부에는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황제는 항시 네 곳으로 분류된 침실 중 한 곳에서 랜덤으로 잠을 청했다.

나머지 세 장소마저 황제의 더미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더더욱이 진짜 황제가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예이안 또한 대도로서. 그리고 어쌔신 마스터로서 온갖 경험을 겪어 온 인간.

그는 다소 힘들었을지 몰라도 진짜 황제를 찾아냈으며, 한밤중에 암살하기 위해 황궁 내부로 스며들었다.

“그럼 황제 암살에는 성공했겠네요?”

제로의 말을 듣고 있던 스타툰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로는 그런 스타툰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예이안은 한 가지 실수를 범했어.”

“실수요?”

“그걸 실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이안이 범한 실수. 그것은.”

“그것은…?”

꿀꺽-!

스타툰이 마른침을 삼켰다.

“황제의 강함을 경시한 것. 그것이 생전 예이안이 범한 최초이자 최대의 실수였지.”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지금 시대의 황제조차 800레벨이 넘어가는 괴물인데, 예이안이 활동했던 시대의 황제는 지금의 황제보다 더욱 괴물이었다.

만렙이라 불리는 1,000레벨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당시 황제의 레벨은 최소 950을 넘겼을 것이다.

그뿐이랴? 그때의 황제는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단련한, 이른바 마검사였다.

예이안은 그러한 황제의 강함을 경시했고, 몰랐기에 반격을 당해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 예이안이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자신의 후예를 위해 몸을 숨긴 장소가 바로 이 숲이었다.

“그럼 가 볼까?”

“네? 어, 어디를…?”

숲의 중앙에 도착한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해야 100평 남짓한 작은 숲이었지만, 이 숲에는 이렇다 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제로는 그런 스타툰의 의문에 피식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흔적을 꺼내 쥐었다.

“어디긴.”

화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로의 손에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은 곧 제로의 손에 쥐어진 흔적에 옮겨붙었다.

검은 불꽃에 타오른 흔적은 곧 한 줌의 잿더미로 화했으며, 그러한 재가 떨어진 바닥에선….

콰르르-!

약간의 진동과 함께 땅이 갈라졌다.

그렇게 갈라진 땅 너머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직하러 가야지.”

제로는 어둠뿐인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말했다.

* * *

제로와 스타툰이 계단의 끝에 도착해 한 발 내딛는 순간이었다.

[숨겨진 던전,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은신처를 발견하였습니다.]

[최초 발견으로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최초 발견으로 일주일간 던전에서 획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50% 증가합니다.]

[최초 발견으로 일주일간 아이템 획득 확률이 50% 증가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겠습니까?]

“기록하지 않는다.”

제로는 은신처에 관한 정보를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은 전직을 위한 던전으로 1회성 던전에 불과했다.

그것은 한 번 클리어 하면 가치가 사라지는 던전에 관한 정보를 등록해, 괜히 유저들이 헛걸음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로 나름의 배려였다.

‘허상계를 상대하기 위해선 유저들이 강해져야 해. 이딴 정보에 혹해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지.’

제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스타툰의 표정이 한껏 풀어졌다.

스타툰으로선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숨겨진 던전이었으며. 그 이상으로 머더러가 쌓기 어렵다는 명성을 500이나 얻었으니 입이 귀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로는 그런 스타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긴장 늦추지 마.”

“네? 그게 무…!”

콰직!

제로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발 내딛는 스타툰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거대한 칼날이 튀어나와 스타툰을 스쳐 지나갔다.

스타툰은 자신의 앞에 떨어진 거대한 칼날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던전 이름 못 봤냐? 여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은신처야. 당연히 함정 또한 존재하지.”

“그, 그렇군요.”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의 예이안이 왜 어쌔신 마스터이자 대도라 불릴 수 있었을까? 물론 그의 강함이 뛰어나서인 것도 있지만, 대륙 곳곳을 전전하며 익힌 트레저 헌터의 기술 따위들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마지막 은신처로 선택한 이 던전 또한, 예이안이 만든 각종 기괴하면서도 위험한 함정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나라고 널 언제나 살려줄 수 있는 건 아니야.”

제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표정은 평소와는 달리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제로 또한 이 던전은 처음 와 본다.

어디에, 어떤 함정이 숨어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것이 예이안이 만든 함정이라면, 어쩌면 제로 본인조차 위험할지도 몰랐다.

언제나 여유만만이던 제로가 긴장했다.

그 사실에 스타툰이 다시 한번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가자.”

* * *

“아직도 못 찾으셨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시작의 도시 서쪽.

온갖 길드들의 길드 하우스가 늘어선 그곳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순백의 건물.

그것은 수백, 수천의 길드가 범람하는 로스트 월드 속에서도 10강이라 불리는, 가장 강력한 길드 중 하나인 신성 길드의 길드 하우스였다.

그런 길드 하우스 최상층에 자리 잡은 마스터 룸에서 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찾아내세요.”

“아, 알겠습니다!”

신성의 말에 앞에 있던 유저가 후다닥 방을 나갔다.

유저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신성은 표정을 풀며 ‘후-’ 깊은숨을 토해 냈다.

“그냥 내버려 두라니깐.”

“아, 누나.”

신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그 뒤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형적인 궁수의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루나.

다만 그녀의 등에 메여져 있는 활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 그 크기만 해도 여인과 필적할 정도였으며, 그런 활로 쏘는 화살은 발리스타를 연상케 했다.

그러한 특징을 지닌 루나의 이명은 일격필살이었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거야?”

“그는…. 제로는 힘없고 약하며 선량한 유저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어요.”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이건 게임이야.”

“그래도!”

루나의 말에 신성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허나 곧 신성은 힘없는 표정으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루나는 그런 신성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곳은 게임 속 세상이야. 너무…, 현실과 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누나.”

신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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