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1,200만 골드 나왔습니다!
-1,400만 골드!
-오! 이번엔 2,000만 골드 나왔습니다!
이번 블랙마켓의 경매에 출품된 마지막 상품,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
그것의 가격이 천정부지 치솟아 올랐다.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노리는 경쟁의 시작은 일반 유저들이었다.
그들의 경쟁으로 흔적의 가격이 500만 골드를 넘어섰을 때, 경매는 본격적으로 가열되었다.
일반 유저들의 뒤를 이어 경매에 참여한 것은 하나의 길드를 맡고 있는 길드 마스터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유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력을 선보이며 어떻게든 예이안의 흔적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증거가 바로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의 경매가였다.
이미 그것은 2,000만 골드를 넘어, 3,000만 골드. 아니, 이제는 4,000만 골드에 육박했다.
한 아이템에 4,000만 골드. 현실 돈으로 4,000만 원 가까이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로스트 월드는 이미 현실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제2의 현실이라 봐도 무방한 세계였다.
4,000만 원을 투자해 예이안의 흔적을 차지하고, 그것을 통해 랭커가 된다면 4,000만 골드 아니, 4,000만 원이 대수인가.
수십억 단위의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 로스트 월드의 랭커다.
그렇게 각 길드 마스터들이 예이안의 흔적을 구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을 때, ‘진짜’라 불릴 수 있는 vvip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그것은 제로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저게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으로 전직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지만 대단하네. 하지만….”
제로는 뒷말을 집어삼켰다.
저들 중 아니, vvip들을 포함해 이 경매에 참가한 모든 유저 중 하나가 저것을 가진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론 저것을 통해 전직할 수 있는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후예는 상당히 뛰어난 직업이다.
어쩌면 랭킹 100위권 이내도 노려볼 수 있으리라.
허나 그것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후예란 직업은 스타툰이 전직한 대도 예이안의 후예와 맞물리지 않으면 그 위력을 100% 끌어 올리지 못한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과 함께 경매를 지켜보고 있을 때.
진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 7천 만 골드! 7천 만 골드 나왔습니다!
제로를 제외한 두 명의 vvip들. 개중 한 명이 예이안의 흔적의 가격을 단숨에 올려 버렸다.
5,000만 골드 언저리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한 길드 마스터는 갑작스러운 vvip의 난입에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한 명의 vvip가 나서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vvip들이 움직였다.
개중에는 당연하게도 제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 명의 vvip들이 경매에 개입하자, 예이안의 흔적은 어느새 2억 골드까지 올라가 버렸다.
“허, 난 포기하련다.”
제로는 2억 골드를 넘어 3억 골드가 되었을 때, 경매에서 발을 빼냈다.
지금 제로가 사용할 수 있는 골드의 한계점은 3억 골드였다.
돈은 많았지만, 지금까지 성장해 오면서 구한 아이템들. 그리고 현찰을 골드화해 모은 돈은 3억 골드밖에 없었다.
“뭐, 굳이 경매가 아니더라도 구할 수 있으니.”
그러한 중얼거림과 함께 제로가 발을 빼자, 나머지 한 명 또한 발을 빼 버렸다.
그 또한 제로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두 명의 vvip들이 발을 빼자, 자동적으로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은 가장 먼저 경매에 발을 들인 vvip에게 총 3억 5천만 골드에 낙찰되었다.
* * *
“안녕?”
경매가 끝나고 블랙마켓을 빠져나온 제로는 한 유저 앞에 멈춰 섰다.
제로의 인사를 받은 유저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뭐 하자는 거지?”
“뭐 하긴. 그냥 인사하는 건데?”
“칫.”
장난기 가득한 제로의 대답에 혀를 찬 유저가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스킬까지 사용해 이동 속도를 끌어 올린 그는 건물과 건물의 벽과 천장을 타며 제로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유저는 바로 제로와 함께 경매에 참가했던 vvip중 한 명이었으며, 그는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낙찰받은 유저였다.
다만….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어떻게 vvip가 된 거야?”
플라이 마법을 통해 그의 뒤를 쫓던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도망치는 유저의 레벨은 끽해 봐야 280이 될까 말까 하다. 어쩌면 현실에서 재벌 2세나 3세쯤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압도적인 재력을 바탕으로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낙찰받은 것이 아닐까.
도망치는 유저는 저절로 그러한 생각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만….
“진짜는 저놈인데.”
제로가 슬쩍, 구석진 골목의 그림자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도망치는 어쌔신 유저의 뒤를 쫓는 것은 비단 제로뿐만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vvip중 한 명이었던 유저 또한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한편 도망치던 유저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어 버렸다.
그는 차라리 블랙마켓으로 도망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제로나 나머지 한 명이 건들기 애매했을 것이다.
블랙마켓은 도둑 길드 소유였고, 블랙마켓 내부에서 pk를 한다는 것은 곧 도둑 길드를 적으로 돌린다는 뜻이었으니.
하지만….
“이런 젠장!”
제로가 날린 데스 애로우에 왼쪽 다리가 뚫려 버린 유저가 버럭 외쳤다.
그는 도망에 집중해 주변의 상황을 보지 못했다.
현재 그가 있는 장소는 넓은 공터로, 주변에는 그 누구 하나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냥 얌전히 포기하지그래?”
절뚝이면서도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유저의 뒤에 내려선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제안에 유저가 으득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야! 이건 내가 내 돈 주고 산 물…!”
촤악-!
제로를 향해 성난 외침을 토해 내던 유저의 목이 떨어졌다.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어쌔신 한 명이 휘두른 단검에 목을 베여 버린 것이다.
그렇게 죽어 버린 유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몇몇 아이템과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떨어졌다.
“동작 그만. 어디서 밑장 빼기야?”
제로는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향해 손을 내뻗는 어쌔신을 향해 말했다.
그런 제로의 말에 어쌔신 유저의 눈동자가 제로를 향했다.
초록빛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두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그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을 정도로 죽어 있었다.
특히나 그의 전신은 그림자처럼 불안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제로는 그런 특징을 통해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너, 기억났다. 쉐도우 마스터 쉐도우였지?”
쉐도우 마스터, 쉐도우.
전체 랭킹 68위에 어쌔신 랭킹 2위의 유저.
직업은 당연하게도 어쌔신이었지만, 쉐도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종족이 쉐도우 워커였다.
쉐도우 워커.
전신이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는 종족으로, 평범한 물리 공격은 모조리 무시해 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그러한 종족은 어쌔신 직업에 막대한 보정이 붙어 있었다.
“이건 내 거다.”
“지랄.”
스킬 발동, 명계의 사슬.
쉐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로가 스킬을 발동했다.
제로의 발밑에서 명계의 냉기로 이루어진 사슬이 튀어나와 쉐도우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소용없다.”
명계의 사슬은 쉐도우를 허망하게 통과하며 사라졌다.
어떻게 한 것일까? 제로가 알고 있는 쉐도우 워커라는 종족은 물리 공격만 무시한다.
즉, 막대한 사마력과 함께 명계의 냉기를 품고 있는 사슬은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명계의 사슬이 통하지 않았다는 건….
“너, 평범한 어쌔신이 아니네.”
상대는 세간에 알려진 어쌔신이 아닌, 쉐도우 워커라는 종족에 걸맞는 히든 클래스로 전직했으리라.
그러한 제로의 말이 정답이라는 듯 쉐도우는 그저 침묵하며 움직였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단검이 쥐어졌으며, 쉐도우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칫.”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스칵.
더미 블링크로 몸을 빼내기 무섭게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쉐도우의 단검에 제로 더미의 목이 베어졌다.
“까다롭네.”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어쌔신 계열 직업군은 까다로웠다.
개중에서도 쉐도우는 특히나 더더욱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타고 돌아다니며,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그것의 공격을 마법사 계열 유저가 피한다는 것은 제로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너, 기억났다. 학살자 제로였던가?”
한편, 쉐도우는 하늘 위에 떠 있는 제로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한 손에 그로테스크한 책을 쥐고, 끝자락이 칼날과도 같은 어둠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알았으면 그냥 꺼지지?”
“어쌔신도 아닌 네가 왜 흔적에 욕심을 부리는 거지?”
“쓸데가 있거든.”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초에 둘 모두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먼저 선공을 취한 것은 제로였다.
“지금 죽으면 랭킹 꽤 떨어지겠네?”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더미 블링크를 통해 쉐도우의 뒤에 나타난 제로를 중심으로 죽음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쉐도우는 제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터져 나오는 죽음의 파동에 혀를 차며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네놈이야말로 악명 수치를 생각하면 위험하지 않나?”
스킬 발동, 포이즌 대거.
스킬 발동, 데들리 어택.
그림자를 통해 움직인 쉐도우는 역으로 제로의 등 뒤를 점했다.
그는 맹독이 깃든 단검을 제로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크리티컬 데미지를 극대화하는 데들리 어택에 정통으로 베인다면 마법사 계열 유저인 제로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겼다.’
단검은 제로의 목까지 정확하게 0.5cm를 남겨 뒀다.
그에 쉐도우는 승리를 확신했다.
학살자 제로.
확실히 그는 강하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네크로맨서 계열의 히든 클래스. 이처럼 1:1의 개인전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만 봐도 자신의 공격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각-!
날카로운 절삭음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지며 쉐도우의 단검이 제로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목이 베인 제로의 머리통은 허공을 가로지르다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털썩.
머리가 떨어진 제로의 육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바닥을 나뒹구는 몸뚱어리는 베여 버린 목을 시작으로 초록빛으로 물들어 갔다.
쉐도우가 사용한 두 가지 스킬 중 하나, 포이즌 대거에 의한 중독 현상이었다.
“흔적은 내가 가져가지.”
쉐도우가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렇게 흔적에 다가간 쉐도우가 손을 뻗어 흔적을 회수하려는 순간….
“뭐 하냐?”
오싹-!
등 뒤로 제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쉐도우의 무감각한 눈동자에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어떻게? 어떻게 목이 베이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도….
‘이 공포감은 무엇이냐.’
꿀꺽-! 마른침을 삼킨 쉐도우가 뒤를 돌아봤다.
그런 쉐도우의 눈에 내비친 것은….
“확실히 어쌔신이라 그런지 재빠르네.”
전신이 검은 뼈로 이루어진 리치. 그것의 모습을 한 제로가 서 있었다.
농밀하면서도 압도적인 죽음을 전신에 두른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