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암시장은 무엇일까?]
작성자-로월정보통
추천: 9999+ 비추천: 2341
안녕 형들! 오랜만에 돌아온 로월정보통이야!
오늘 들고 온 정보는 바로 암시장이야!
암시장! 다른 게임에서도 종종 보인 시스템으로 게임 좀 해 봤다 하는 형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로월의 암시장은 조금 달라. 다른 게임들처럼 저주받은 아이템이나 고등급의 독 같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건 비슷하지만, 로월의 암시장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야.
범죄 도시라 불리는 루파도 나름의 규칙과 법이 존재하지만, 암시장은 그러한 규칙이 일절 존재하지 않아.
그렇기에 암시장에서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 있으면 제값을 지불해 구매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훔치거나 강탈하는 것 또한 가능해. 다만 암시장은 도둑 길드가 관리하고 있어 만약 훔치다 들킨다면 그 뒷감당은 형들이 알아서 해야겠지만 말이야.
그 대신, 암시장에선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들도 많이 있어! 강함이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 형들은 한 번쯤 들려봐도 괜찮을 거 같아.
암시장으로 가는 길은….
* * *
“암시장도 오랜만이네.”
범죄 도시 루파의 지하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암시장.
말 그대로 불법적인 물건들을 사고팔고 하는 장소로, 운이 좋다면 희귀한 아이템들을 구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만, 무언가의 룰이나 규칙 따윈 존재하지 않았기에 몇몇 유저들은 물건을 구매한 유저의 뒤통수를 쳐 pk를 하고 강탈해 가는 상황 또한 종종 벌어졌다.
그러한 암시장에 제로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에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있다라.”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
새로이 영입한 대도 예이안의 후예라는 직업을 가진 스타툰에게 자신이 구해 주겠다 말했던 아이템이었다.
스타툰이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가지고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스타툰은 말 그대로 도둑과 어쌔신으로서의 정점을 찍게 된다.
마스터 레벨을 넘긴다면 스타툰은 말 그대로 제국의 황제 목까지 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허상계와의 전쟁에서도 매우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기에 제로는 본인이 직접 암시장을 찾았다.
“그나저나 여전히 북적거리네.”
암시장은 암시장이라 불리지만 평소의 알고 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유저가 돌아다니고, 암시장에 자리를 잡은 상인들은 그런 유저들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한다.
그 모습만 본다면 이곳은 암시장이 아닌, 어떤 도시의 상점가로 착각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이 개새끼가! 죽고 싶냐?”
“뭐 이 새끼야!”
암시장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때론 상인과 구매자. 혹은 유저 대 유저가 벌이는 싸움은 암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암시장에는 싸움을 제재할 경비대도 존재하지 않았고, pk를 한다 해도 악명 하나 오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각종 싸움과 다툼은 어찌 보면 암시장에서 일상이라 불리기에 한없이 적합했다.
제로는 그런 유저들 간의 싸움을 무시하며 걸어 나갔다.
제로의 목적지는 암시장 중앙에 자리 잡은 블랙마켓이다.
블랙마켓에는 게임 시간으로 한 달에 한번, 경매가 이루어지며, 그런 경매에는 종종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들이 매물로 나올 때가 있었다.
제로는 그러한 블랙마켓에서의 경매에서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출품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다만….
“나만 건진 게 아닌가 보네.”
제로는 블랙마켓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보이는 어쌔신들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쌔신 유저들이 암시장의 독을 애용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숫자는 비정상적이다.
그렇기에 제로는 어쌔신 유저들 사이에서 이번 블랙마켓에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나온다는 정보가 풀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쌔신이란 직업을 가진 유저라면 한 번쯤 들어 보는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대한 전설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누구나 탐낼 만한 물건이었다.
“누가 가지든 피바람이 불겠네.”
블랙마켓 입구에 도착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물론 그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사람이 자신이 될 수 있었지만.
* * *
블랙마켓은 상당히 커다랬다.
5층까지 올라간 건물은 한 층, 한 층이 최소 300평은 되어 보였다.
지하까지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크기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한 블랙마켓에 들어가자, 제로의 곁으로 한 명의 직원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학살자 제로 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직원에 제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악명이 측정 불가인 것을 떠나,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행각을 생각해 본다면 블랙마켓.
아니, 그것을 관리하는 도둑 길드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블랙마켓 또한 도둑 길드의 중요한 자금원 중 하나였으니.
“쟈리 있지?”
“vvip석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저 단순히 ‘자리 있지’라는 말에도 직원은 그 속뜻을 알아들었다.
그렇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는 블랙마켓 지하에 자리 잡은 경매장의 vvip석이었다.
블랙마켓의 경매장에 존재하는 vvip석은 총 열 곳으로, 하나하나가 따로 분리된 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앞면의 통유리는 경매장 내부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었으며, 그러한 통유리는 밖에서 내부를 엿볼 수 없게 마법적 처리가 가미되었다.
제로는 슬쩍 기감을 끌어 올려봤다. 열 개의 vvip석 중 자신을 제외하면 두 개밖에 채워지지 않았다.
아마 두 개의 자리 또한 100위권 이내의 랭커급 어쌔신 유저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하긴, 애초에 이번 경매장 최고 매물은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니, 관심을 가지는 것들도 어쌔신 뿐이겠지.”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인 제로는 털썩, 마련된 소파에 몸을 뉘었다.
소파는 현실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푹신했으며, 소파에 앉은 각도는 경매장을 내려다보기에 최적으로 맞춰졌다.
그렇게 제로가 소파에 앉아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돌연 똑똑! 하는 노크와 함께 vvip석까지 안내해 준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직원이 손짓하자, 양손에 술과 음식을 든 메이드들이 들어와 세팅했다.
그렇게 제로의 앞에는 순식간에 각종 술병과 음식들이 나열되었다.
술만 하더라도 한 병, 한 병의 가격이 최소 수백만 골드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블랙마켓에서 vvip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10분 뒤 경매가 시작됩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말을 마친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직원의 말은 사실인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경매장 내부에 속속들이 유저들이 자리를 잡았다.
개중 대다수가 어쌔신 유저였는데, 그들 모두가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을 목표로 경매에 참여했다.
그래 봤자….
“예이안의 흔적은 나. 아니면 저 둘 중 하나가 가지게 되겠지만 말…! 쿨럭쿨럭-!”
술을 홀짝이며 중얼거리던 제로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맞다, 나 술 못 마셨지.”
제로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눈앞의 술병들을 훑어봤다.
과거에도 제로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했다.
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게지며 만취하는 특성은 허상계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로스트 월드의 힘을 각성했을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제로가 눈앞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술들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때, 10분이 지난 것인지 무대 위로 진행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행자는 슬픈 표정의 피에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의 과장된 몸짓과 재치 있는 말재주에 경매장 내부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럼 오늘의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시작해라!
흔적은 내 거야!
지랄하고 있네!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의 말에 경매장 내부가 술렁거렸다.
시작된 경매에 출품된 물건들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경매 초입에 나오는 아이템들의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는 걸 생각해 봐도, 지금 나오는 물건들만으로도 블랙마켓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대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는 마검.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hp를 풀로 채워 주는 엘릭서 한 방울.
장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급 이하의 독을 모조리 무시할 수 있는 목걸이 등등까지.
개중에는 히든 클래스에 관한 정보나, 숨겨진 던전에 관한 정보 등등까지 존재했다.
제로는 어쌔신 마스터 예이안의 흔적이 나오기 전까지 재미 삼아 지켜보고 있는데, 한 아이템에 두 눈을 빛냈다.
-이번 상품은 다소 특이합니다!
진행자의 멘트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 아이템은 하나의 보석이었다.
다이아몬드로 보이는 보석의 내부에는 보랏빛 기류가 일렁이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러한 보석을 담고 있는 케이스에 각종 봉인술이나 저주를 억제하기 위한 축복 따위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설마 저게 나올 줄이야.”
제로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중얼거렸다.
이번 상품으로 나온 물건은 매우 유명했다. 아니, 정확히는 ‘미래에’ 유명해질 물건이었다.
정식 명칭은 백의 저주를 품은 다이아몬드.
허나 미래에 유저들 사이에선 저주 왕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저 보석이었다.
말 그대로 백 개의 저주를 품고 있는 저것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유자에게 다종다양한 저주를 선사한다.
그것은 인벤토리에 넣어놨다 해도 소용이 없다.
다만, 제로같이 언데드 종족이라면 별로 신경 쓸 거리는 아니었다.
“가져야겠지.”
제로가 손을 뻗어 하나의 판을 쥐었다.
판 위에 가격을 적으면 vvip룸 앞에 달려 있는 판에 금액이 나오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의 저주를 품은 보석.
제로는 저것으로 망자를 만들 생각이었다.
더욱 정확히는….
“저걸로 리치를 만들면 저주 특화가 되겠지?”
리치.
생전 강대한 힘을 품었던 마법사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하나의 보석에 불어넣어 탄생시킨 언데드다.
평범한 리치의 최소 레벨은 400이었으며, 리치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아크 리치의 레벨은 800을 훨씬 웃돈다고 알려져 있었다.
제로는 그러한 리치를 백의 저주를 품은 보석을 통해 만들 생각이었다.
제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백의 저주를 품은 보석의 값은 천장을 모른다는 듯 미친 듯이 치솟았다.
입찰에 참여한 유저들의 숫자는 총 여섯. 개중 4명이 흑마법사이고, 나머지 한 명이 마법사. 한 명이 어쌔신 유저였다.
-300만 골드! 300만 골드 나왔습니다! 상위 입찰자 더 없습니까?
“300만 골드라.”
300만 골드.
현실의 돈과 로스트 월드 속 골드가 1:1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300만 골드는 현실의 300만 원에 해당한다.
고작 보석 하나 구매하기에는 턱없이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게 백의 저주를 품은 보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중얼거린 제로는 망설임 없이 판 위에 가격을 입력했다.
제로가 제시한 가격은….
-4, 400만 골드! 400만 골드 나왔습니다!
300만 골드에서 단숨에 100만 골드가 껑충 뛰어올랐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흑마법사 유저는 갑작스러운 400만 골드에 으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400만 골드를 제시한 제로는 vvip석 유저.
vvip석 유저와 재력으로 이루어진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제로는 가볍게 백의 저주를 품은 보석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