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52화 (52/200)

제52화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스킬 발동, 망자의 대군단.

척. 척. 척.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저갱과도 같은 외차원의 창고에선 온갖 종류의 망자들로 이루어진 대군단이 오와 열을 맞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가라.”

제로가 손을 까딱이며 명령을 내리자, 망자의 대군단이 학살의 진천사를 향해 돌진했다.

하나, 하나가 250레벨을 넘긴 망자들의 돌진은 잿빛의 탁류를 만들었으며, 그러한 잿빛의 탁류는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수며 넘실거렸다.

“어리석구나!”

화르륵-!

망자의 돌진에 학살의 진천사가 다시 한번 성염의 파도를 사용했다.

학살의 진천사를 중심으로 넘실거리는 성염의 파도는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 망자들을 뒤덮었다.

허나 망자들은 성스러운 불꽃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우직하게 나아갔다.

그 모습은 자신의 목숨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광전사의 그것과도 같은 느낌을 풍겼다.

“내 직업이 뭔지 알아? 죽음의 대리자야.”

“그게 무슨 소리냐!”

제로의 뜬금없는 말에 학살의 진천사가 버럭 외쳤다.

“별거 아니야. 그냥 내 주 전공은 네크로맨시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거든.”

학살의 진천사의 분노어린 외침에도 제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말이야. 저주에도 능하거든.”

스킬 발동, 저주의 사안.

번쩍-!

제로의 등 뒤로 보랏빛 안광을 번뜩이는 거대한 눈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주의 사안.

온갖 종류의 저주를 품은 눈동자를 소환해, 그러한 눈동자가 응시하는 존재에게 품고 있는 저주를 부여하는 마법 중 하나이다.

저주의 사안이 부여할 수 있는 저주는 상대의 시각을 빼앗는 블라인드나 청각을 빼앗는 사일런스 따위의 하급 저주부터, 저주 테크를 탄 흑마법사들.

개중에서도 마스터 레벨을 넘긴 흑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레벨의 저주까지.

저주의 숫자만 해도 물경 20가지를 넘긴다.

허나 학살의 진천사는 타락했다 한들 천사.

저주의 사안이 발하는 수십 가지 저주의 대부분은 자체적인 내성으로 무효화했다.

그나마 걸린 저주 또한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상관없어.’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행할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저주의 사안은 애피타이저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제로는 ‘고작’ 저주의 사안 따위로 학살의 진천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놈! 하찮은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화르륵-!

콰가가강!

선홍의 십자가가 휘둘러질 때마다 성스러운 불꽃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것은 사방으로 떨어져 역천의 궁 이곳저곳을 파괴했으며, 나아가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망자들을 쓸어버렸다.

“시체는 많아.”

제로는 한 번의 공격으로 수백의 망자들이 소멸을 당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체는 많다.

그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외차원의 창고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고, 그러한 시체들은 망자로 되살아나 줄어든 숫자를 메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런 망자들로 학살의 진천사를 죽이기는 힘들지.’

제로가 발동한 스킬, 망자의 대군단은 양학용 스킬이다.

그 방대한 숫자를 앞세운다면 나름의 고레벨 유저나 몬스터 또한 사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을 아득히 뛰어넘은, 무색의 성자 베이글이나 학살의 진천사와 같은 존재들에겐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해. 더 강한 망자를 소환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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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망자의 거신병단.

쿵! 쿵! 쿵!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끝나고, 외차원의 창고에서 거대한 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단 셋.

숫자만 본다면 ‘병단’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모습을 드러낸 것의 강함을 생각해 본다면 병단이 아닌 군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망자의 거신병단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망자의 거병이었다.

아니, 강해진 제로에게 맞춰 한 단계 진화를 거친 망자의 거신병이 된 망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아아아아-!

모습을 드러낸 세 구의 망자의 거신병은 입을 쩍! 벌리며 데스 하울링을 토해 냈다.

세 구의 거신병이 토해 낸 데스 하울링은 학살의 진천사를 향해 돌진하는 망자의 대군단에게 막대한 버프 효과를 발휘했다.

다만, 제아무리 망자의 거신병이 토해 낸 데스 하울링이라 하더라도 학살의 진천사의 정신을 뒤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관없어.”

제로가 중얼거렸다.

딱히 데스 하울링으로 학살의 진천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한 중얼거림과 함께 제로는 망자의 거신병을 향해 각종 버프들을 욱여넣었다.

망자의 거신병의 육체에 죽음의 불꽃과 명계의 삭풍이 감돌자. 갑옷처럼 전신을 뒤덮은 뼈는 더욱 단단해지고 비대해졌다.

망자의 거신병의 두 눈동자는 저주의 사안으로 대체되었으며, 양손에는 도끼와 철퇴, 창과 검 따위의 마기가 쥐어졌다.

제로로부터 온갖 버프를 받은 망자의 거신병은 망자의 대군단으로 만든 망령들과 같이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망자의 거신병의 돌진에 처음으로 학살의 진천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과연! 네놈이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마! 하지만! 아무리 강대한 언데드를 가져온들 날 죽일 순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마!”

화르륵-!

학살의 진천사의 육체를 이루는 불꽃이 한층 사납게 날뛰었다.

그러한 불꽃은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다 못해 진짜로 폭발해 버렸다.

폭발해 사방으로 퍼져 나간 불꽃은 마치 메테오처럼 망자들을 향해 떨어졌다.

쾅! 쾅!

콰가가강!

떨어지는 불꽃 하나에 수백의 망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자의 거신병 또한 성스러운 불꽃과 충돌하며 주춤거렸다.

제로는 수백 구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망자의 거신병마저 압도하는 무력을 선보이는 학살의 진천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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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발동,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

쿠아아아아악-!

또 다른 스킬이 발동하며, 외차원의 창고에서 괴물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울부짖음을 토해 낸 것은 곧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내 나타난 것은 드래곤 나이트였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본 드래곤 나이트였다.

뼈로 이루어진 본 드래곤은 10m는 될 법한 거대한 몸체를 자랑했으며.

그러한 본 드래곤 위에 올라타 있는 기사의 손에는 죽음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마창을 쥐고 있었다.

“저… 건…!”

본 드래곤 나이트의 등장에 처음으로 학살의 진천사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제아무리 학살의 진천사라 한들, 본 드래곤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죽음마저 각오해야 할 강적이었다.

물론….

‘저것이 진짜 본 드래곤이라면 말이지.’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소환한 본 드래곤 나이트는 더미였다.

본 드래곤을 이루는 것은 수백 구의 와이번의 뼈를 조합해 만들었을 뿐이며,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기사의 레벨 또한 고작 350을 살짝 웃돌았다.

다만, 그럼에도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가 가진 강함은 압도적!

현존하는 100위권 랭커들이 파티를 짜 레이드를 뛰어도 사냥할 수 없는 강함을 지녔다.

그러한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에….

스킬 발동, 명계의 폭풍.

스킬 발동, 망자의 분노.

스킬 발동, 명계….

제로는 망자의 거신병과 마찬가지로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에게 온갖 버프를 부여했다.

제로의 버프를 받은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의 강함은 마스터 레벨을 훌쩍 웃도는 강함을 가지게 되었다.

비틀.

강대한 망자를 소환하고, 온갖 버프 마법들을 사용해서일까.

제로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사마력을 사용해 비틀거렸다.

제아무리 대해와도 같은 사마력을 보유한 제로라 하더라도 지금의 것들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안 돼.’

억지로 몸을 추스른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학살의 진천사를 사냥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역천의 의복을 얻기 위해선 다소의 무리는 어쩔 수 없어.’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망자의 대군단. 망자의 거신병 세 구. 마지막으로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가 학살의 진천사와 충돌했다.

망자의 대군단은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워 학살의 진천사의 힘을 착실히 갉아먹었다.

망자의 거신병은 그 거체와 무식한 맷집을 앞세워 탱커의 역할을 고수했으며.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는 본 드래곤과 나이트, 두 가지로 나뉘어 학살의 진천사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으아아아아-! 하찮은 언데드 따위가 감히!”

콰가강!

위기의식을 느낀 것일까.

학살의 진천사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내며 선홍의 십자가를 휘둘렀다.

선홍의 십자가는 한 번,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대량의 성스러운 불꽃을 만들어 냈다.

만일 학살의 진천사의 상대가 망자의 대군단과 거신병. 그리고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뿐이었다면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곳에는 모든 망자의 주인. 죽음의 계약자로서, 진.죽음의 대리자가 된 제로가 있었다.

“끝이 보인다!”

공허한 눈구멍에서 귀화를 피어 올리는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파라락-!

수십 장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다 멈춘 네크로노미콘에서 음울한 잿빛이 흘러나오고….

스킬 발동, 망자의 역린.

스킬 발동, 데스 캐논.

스킬 발동, 본 프리즌.

스킬 발….

각종 마법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한 방울의 사마력을 쥐어 짜내며 쏟아지는 마법은 때론 망자들에게 다시 한번 버프를 부여했으며.

때론 학살의 진천사의 공격을 막아 내고, 되려 진천사의 육체에 크나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을까.

망자의 대군단 대부분이 소멸당하고. 망자의 거신병 세 구 중 두 구가 파괴되고, 한 구마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며.

더미 본 드래곤 나이트의 파손율이 70% 가까이 되었을 때….

“이럴 순… 없… 다….”

“나는 그분의 선… 봉장일 터.”

“어찌하여…, 어찌하여 한낮 언데드 따… 위에게….”

털썩.

힘을 다한 학살의 진천사가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이미 성염화를 유지할 최소한의 힘마저 떨어졌는지 전신에서 탁한 금색의 피를 흘렸다.

다만, 제로 또한 멀쩡하지는 못했다.

억지로 사마력을 쥐어 짜내며 마법을 사용한 부작용으로 전신의 뼈에 크고 작은 금이 그어졌다.

그럼에도 승자가 제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말했지. 마지막 승리자는 내가 될 거라고.”

“하, 하하…. 하하하하.”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제로에 학살의 진천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죄… 송합니다. 명을 이… 행하… 지 못했습니다.”

한참 웃음을 터트리던 학살의 진천사는 ‘누군가’에게 사죄의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전신이 금빛의 가루가 되어 날아가 시체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진 학살의 진천사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 신부복, 역천의 의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제로는 말없이 역천의 의복을 주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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