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50화 (50/200)

제50화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며, 망자의 뼛조각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역천의 궁과 제로의 망자들이 전투를 시작한 지 벌써 10분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분 동안 역천의 궁의 몬스터들은 그 숫자가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제로의 망자들이 부서졌다.

그것을 숫자로 환산해 본다면 못해도 최소 3만의 망자들이 부서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로의 표정에는 변화 따윈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줄어든 망자는 보충하면 그만.”

스킬 발동, 망자의 축제.

크륵!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죽음이 전장에 널린 시체에 깃들었다.

그에 망자에 의해 죽어 버린 역천의 궁의 몬스터들의 시체가 그 몸을 일으켰다.

시체가 넘쳐 나는 전쟁이야말로 네크로맨서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다.

본래 가지고 있는 시체 외에도, 전쟁에서 죽어 나가는 시체를 이용한다는 것은 크나큰 이점으로 다가온다.

사마력만 충분하다면 끝없이 부하들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쓸어버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의 축제로 몸을 일으킨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그것들은 한때 동료였던 역천의 궁의 몬스터들의 목을 물어뜯고, 그 심장을 파먹었다.

제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영창에 들어갔다.

‘한 방에 쓸어버린다.’

■■ ■■ ■.

■■■ ■.

■■■■ ■■ ■■.

■■■■■■■.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이어질수록 제로를 중심으로 강맹한 죽음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얼마간 영창이 이어졌을까.

족히 1분 가까이 지나서야 영창은 그 끝을 보였다.

“■■■ ■ ■ ■■ ■ ■ ■■■.”

스킬 발동, 데스 로어.

크아아아아-!

스킬이 발동하며, 제로의 입이 쩍 벌어졌다.

찢어져라 크게 벌려진 제로의 입에선 괴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데스 로어.

네크로노미콘의 성장도가 80%를 돌파했을 때 해금된 스킬이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포효를 터트리는 그것의 효과는 단순하다.

살아 움직이는 생자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심. 그것을 극대화시켜 ‘상태 이상 공포’에 빠져들게 하는 것뿐이다.

얼핏 보면 레전더리급 아이템에 달려 있는 스킬이라고 생각할 수 없겠지만, 그것의 효과는 달랐다.

생물은 극한의 공포심을 느끼면 스스로의 생체 기능을 포기하게 만든다.

즉,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데스 로어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심을 극대화시켜, 생물 스스로가 생체 기능을 정지시키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그 증거로….

털썩. 털썩.

데스 로어가 퍼져 나가자 역천의 궁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공포에 먹힌 육체의 심장은 펌프질을 정지했으며. 그 뇌는 스스로가 죽음을 받아들였다.

제로는 데스 로어에 휩싸여 죽어 버린 몬스터들을 망자의 축제로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지켜만 볼 생각이냐?”

흠.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역천의 궁 내부를 낮은 울림이 가득 메웠다.

소리의 근원지는 역천의 궁 끝.

그곳에는 하나의 왕좌가 놓여져 있으며, 그 왕좌에는 다섯 쌍의 검붉은 날개를 지닌 천사가 앉아 있었다.

그 천사야말로 역천의 궁의 진정한 주인.

역천의 대공 루시퍼를 따르는 천족 중 한 명이자, 학살의 진천사라 불리우는 몬스터였다.

천족과 마족은 날개의 숫자에 따라 그 강함이 나누어진다.

다섯 쌍의 날개를 지녔다는 것은, 그 레벨이 최소 500 이상이라는 뜻이 된다.

“네크로노미콘. 설마 그 흉물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학살의 진천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날개와 마찬가지로 검붉은 그의 두 눈동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좀 바쁘거든? 그러니.”

‘바로 시작 하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로의 손에 쥐어진 네크로노미콘이 펼쳐졌다.

파라라라랏-!

수십, 수백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어가다 멈추고. 제로는 망설임 없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킬 발동, 망자의 폭격.

콰가가강-!

허공에 죽음이 뭉쳐 들며 수백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제로가 손을 까딱이자, 망설임 없이 학살의 진천사에게 쏟아졌다.

하나, 하나의 창이 학살의 진천사와 충돌할 때마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의 위력은 현 유저들 사이에서 최강의 몬스터라 불리우는 것 중 하나인 그레이트 데빌 오우거마저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력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수백의 창이 일으킨 폭발에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걷히고, 그 속에서 걸어 나온 학살의 진천사에겐 상처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역천의 궁의 보스 몬스터라지만. 그리고 아무리 5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지만 단 1의 데미지조차 없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로는 어째서 학살의 진천사가 상처 하나 없는지, 단 1의 데미지조차 받은 기색이 없는지 한눈에 알아봤다.

“그걸 왜 니가 입고 있냐?”

학살의 진천사를 바라보며 제로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학살의 진천사는 몸에 칠흑의 신부복을 걸치고 있다.

그 칠흑의 신부복이야말로 제로가 원하는 아이템, 역천의 의복이다.

본래 역천의 궁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어야 할 역천의 의복을,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장비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것은 나의 주인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 그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든, 하찮은 언데드 따위가 무슨 상관이지?”

“하.”

학살의 진천사의 말에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천의 의복이 아니었다면 방금 시전한 망자의 폭격으로 죽일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것도 미래가 개변된 결과인 것일까. 아니면 본래 처음부터 학살의 진천사가 역천의 의복을 장비하고 있는 것일까.

뭐, 그것이 어찌 되었든….

“네가 나한테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아.”

“오만하구나, 언데드여.”

제로의 말에 학살의 진천사가 비릿한 웃음을 내비쳤다.

학살의 진천사는 루시퍼가 아직 천족일 당시 일어났던 천마 대전 내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천족 중 한 명이다.

그가 죽인 마족의 숫자만 해도 천 단위가 넘어갔으며, 그렇기에 천계 내에서 학살의 칭호가 붙었던 존재다.

그런 그는 루시퍼를 따라 타천의 길에 접어들어 힘이 격하되고. 육체도 없이 중간계에 강림해 또 한번 힘이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학살의 진천사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타락과 신성이 뒤섞여, 복합 속성 중 하나인 타락한 신성이라 하더라도 신성은 신성.

언데드를 상대로는 상극의 힘이나 다름없으니, 어쩌면 그의 자신감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날 너무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학살의 진천사를 향해 똑같이 비릿한 웃음을 내비친 제로가 손을 까딱였다.

그에 제로의 앞에 도열한 수천의 망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망자들은 잿빛의 해일이 되어 학살의 진천사를 덮쳤으며. 그 사이에는 너프되었다고 해도 어보미네이션. 데스 솔저. 망자의 거병 따위의 상위 망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것들의 공격은 제아무리 학살의 진천사라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

“무슨?”

제로가 당혹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허한 눈구멍에 피어오른 검은 귀화마저 그 당혹감을 드러내듯 불안하게 일렁였다.

학살의 진천사.

그것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의 대군에 피식 웃더니, 허공에서 하나의 무언가를 꺼내 휘둘렀다.

학살의 진천사가 꺼내 든 것은 거대한 십자가. 마치 피를 뒤집어쓴 듯 선홍빛으로 물든 그것이 한 번 휘둘러지자 수천의 망자들 중 절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역천의 의복을 장비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고작해야 5쌍의 날개를 지닌 천족의 힘이 아니었다.

“너… 뭐냐?”

“나의 이름은 루루. 학살의 진천사 루루. 위대하고 위대하신 역천의 대공, 루시퍼 님의 군단 중 일각을 담당하는 자. 그런 내가 하찮은 망자들 따위에 고전할 거라 생각했느냐.”

쿠웅-!

말을 하는 학살의 진천사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흘러넘쳤다.

타락했다 하더라도 천족은 천족이라는 것일까.

그가 내뿜는 신성력은 현재의 베이글이 내뿜었던 신성력보다 더욱 순수했으며, 더욱 강력했다.

“하, 미치겠네.”

나름 편히 가 보겠다는데, 왜 이렇게 상황이 꼬이는 것일까.

제로는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로가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망자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 냈다.

스킬 발동, 망자의 폭거.

콰드득-!

망자가 만든 길을 걸어 나가며 제로가 스킬을 발동했다.

제로를 중심으로 흘러나온 죽음이 네크로노미콘에 빨려들듯 흡수되며, 네크로노미콘은 곧 거대한 대검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마치 폭력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 흉흉한 외형의 대검.

그것은 제로가 즐겨 사용하던 스킬 중 하나인 망자의 격노의 진화 판이었다.

“그래, 망자들로는 널 죽일 수 없다는 걸 인정할게. 근데 그게 뭐?”

콰득-!

힘을 주자, 제로가 딛고 있던 바닥에 금이 그어졌다.

“내가 직접 널 죽이면 그만이야.”

쾅-!

발밑으로 사마력이 폭발했다.

제로는 그 폭발을 이용해 가속하며 학살의 진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성기사 전용 스킬, 홀리 부스트를 제로가 본인의 방식대로 어레인지 한, 이를테면 데스 부스터였다.

“하! 어리석구나, 언데드여! 네놈 따위가 날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쩌엉-!

헛웃음을 터트린 학살의 진천사가 거대한 선홍의 십자가를 휘둘렀다.

그에 응수하듯 제로 또한 망자의 폭거를 휘둘렀으며. 그 둘이 충돌하는 순간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카각-! 카가각!

학살의 진천사의 십자가와 제로의 망자의 폭거가 대치하며 불똥이 튀었다.

제로는 망자의 폭거 너머로 보이는 학살의 진천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제로. 학살자 제로이자 죽음의 계약자. 고작 닭둘기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냐?”

“다, 닭둘… 뭐? 죽음이 두려워 거짓된 생명을 갈구하는 언데드 따위가 건방지구나!”

닭둘기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것일까?

아니, 닭둘기의 뜻은 몰라도, 그 단어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학살의 진천사 또한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학살의 진천사는 성난 외침과 함께, 막대한 신성력을 뿜어냈다.

* * *

인터넷에 존재하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와씨 형들 이거 뭐야?] 라는 이름의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작성자는 새벽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어떤 남자가 괴물과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괴물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고양이가 아니었으며. 그런 괴물과 싸우는 남자는 무척이나 빼빼 말랐지만 인간답지 않은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허나 등장한 허상괴는 한 마리뿐이 아니었다.

강한이 처리한 것 외에도 대한민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그 사실은 각종 sns나 커뮤니티 등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렇게 등장한 허상괴들을 처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상 현실 게임 로스트 월드 속에서 랭커로 활약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수많은 사람이 올리는 게시글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허상괴에 관한 화제마저 어느 순간부터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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