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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44화 (44/200)

제44화

[던전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에 입장하셨습니다.]

“여기도 최초 입장이 아니네.”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던전,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

이곳에 암흑의 조각이 잠들어 있었다.

어째서 마신 알루타의 신성이 깃든 암흑의 조각이 암흑신교가 아닌, 검은 마탑에 있는지는 제로 또한 모른다.

그저 예상해 보기로는 서로 간의 동맹을 위해 암흑신교가 암흑의 조각을 검은 마탑에게 넘겼… 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그래도 암흑의 조각은 신성의 조각보다 구하기 편해서 다행이지.”

제로가 터덜터덜, 비밀 창고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신성의 조각은 천상의 탑을 돌파해야 했다.

암흑의 조각 또한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라는 이름의 던전을 돌파해야 하는 것은 똑같았지만, 이 던전은 다소 단출했다.

비밀 창고라는 이름에 걸맞게 던전의 내부는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창고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은 암흑의 조각 단 하나뿐이었다.

“문제는 창고지기인데….”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

그 이름도 단순한 창고지기였다.

그것은 비밀 창고 유일의 몬스터이자 보스 몬스터이며. 암흑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배치해 둔 만큼 상당한 강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제로가 채 몇 걸음을 걸어 들어갔을까.

돌연 천장에 박혀 있는 라이트 스톤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강해지는 순간, 창고의 정 중앙에 널브러져 있던 ‘인간’이 몸을 일으켰다.

“네놈도 암흑의 조각을 가져가기 위해 찾아온 것이냐.”

‘암흑의 조각은 가져가지 못했나 보네.’

제로는 창고지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무색의 성자 베이글이라 하더라도 검은 마탑에서 배치한 창고지기를 뚫지 못했다.

즉, 적어도 던전 입장에 필요한 두 아이템 중 하나인 암흑의 조각은 자신이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없어. 베이글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

타임 어택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펼쳐 들었다.

문답 무용.

최대한 빠르게 창고지기를 사냥하고 암흑의 조각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베이글과 딜을 한다.

그뿐이었다.

창고지기는 아무 말 없이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리며, 적의를 내뿜는 제로에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 네크로맨서였던 것이냐. 잿빛 마탑에서 암흑의 조각을 원할 줄은 몰랐-!”

콰가강-!

말을 하던 창고지기가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뼈의 창이 창고지기의 발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바닥에 틀어박혔다.

“예의를 모르는 놈이로군.”

스릉.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한 창고지기가 허리춤의 검을 뽑아 쥐었다.

창고지기의 직업은 유저로 따지자면 기사와 흑마법사의 특징을 가진 다크 나이트였다.

기사 특유의 방어력과 흑마법사 특유의 화력을 동시에 지닌 직업으로, 유저들 사이에서도 나름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하이브리드 류의 직업이 그러하듯 다크 나이트 또한 다소 어중간한 직업이기도 했다.

방어력은 순수 기사보다 약하고, 화력 또한 순수 흑마법사보다 약하다.

다만, 그것도 동격의 상대에게나 그러한 것. 서로 간의 레벨 차가 극심할 때는 그러한 단점은 단점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된다.

즉, 지금의 제로와 창고지기처럼 말이다.

“어차피 순순히 넘길 생각도 없었잖아?”

“그러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 누구도 암흑의 조각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자 나의 존재 의의이도다.”

화륵-!

창고지기가 쥔 검의 칼날에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크 나이트 특유의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오러 블레이드, 통칭 다크 블레이드였다.

다만, 저것은 온전한 다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의 적정 레벨은 380. 레벨을 생각해 본다면 창고지기는 마스터 레벨이 되지 못했기에, 온전한 다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저것은 그저 아티펙트와 특수 스킬을 조합해 만들어 낸 ‘가짜’ 다크 블레이드였다.

다만, 그럼에도 그 파괴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누가 뭐래도 창고지기는 무색의 성자 베이글이 도망치게 만든 강적이었으니.

“네놈은 날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과거 빛의 번견과 암흑의 노예들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던 그 이방인보다 더 버틸 수 있겠느냐.”

빛의 변견과 암흑의 노예들의 힘을 동시에 사용한 이방인.

그것은 아마도 무색의 성자 베이글을 칭하는 것이리라.

제로는 창고지기의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적어도 내가 베이글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스킬 발동, 망자의 군단.

콰르르-!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서 스킬 망자의 군단을 통해 몸을 일으킨 망자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죽여 버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의 군단이 창고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머리 위로는 망자의 궁병들이 쏘아 대는 화살이 쏟아지고, 대지에는 각종 무기를 뽑아 쥔 병사와 정예병. 광전사들 따위가 달려든다.

창고지기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들에 크핫!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따위 시체들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암흑의 파동!”

콰가강-!

창고지기가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암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그것이 망자의 군단을 덮치자, 군단을 이루고 있던 망자의 1/3이 순식간에 휩쓸려 사라졌다.

“네크로맨서의 진짜 무서움이 뭔지 알아? 그건 끝없는 물량이거든.”

제로는 일격에 군단의 1/3이 날아갔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니,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마력은 드넓은 바다와도 같이 넘쳐났으며, 외차원의 창고 안에는 본인조차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체들이 잠들어 있다.

소멸해 버린 망자는, 넘쳐나는 사마력으로 일으킨 새로운 망자들이 대신했으며. 제로는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워 영창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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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입에서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흘러나오자 창고지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창고지기는 영창이 시작됨에 따라 제로를 중심으로 날뛰기 시작하는 죽음을 느낀 것이다.

“놈! 소용없다! 네크로맨서의 공격 따…!”

“날 평범한 네크로맨서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영창을 끝낸 제로가 씨익 웃으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스킬 발동, 망자의 역린.

끼아아아악-!

제로로부터 시작된 귀곡성이 비밀 창고 내부를 가득 메웠다.

동시에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수십, 수백의 망령들이 허공에 뭉치며, 수백의 창을 만들어 냈다.

“쏟아져.”

콰르르-!

제로가 손을 내리긋자, 망령이 뭉쳐 만들어진 수백의 창이 일시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거센 폭우와도 같이 쏟아져 내리는 망령의 창, 망자의 역린.

다만 평범한 폭우와 다르게 쏟아지는 망자의 역린은 오롯이 창고지기에게만 집중되었다.

“크윽-!”

창고지기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망자의 역린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거대한 방패를 꺼내 들었다.

“날 우습게 보지 마라! 암흑의 성벽!”

창고지기의 방패 위로 거대한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크 나이트 최강의 방어 기술, 암흑의 성벽.

그것은 단어 그대로 흑마력을 이용해 견고한 성벽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었다.

암흑의 성벽은 다크 나이트 최강의 방어 기술에 걸맞게, 시전자의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최대 1,000%까지 증폭시킨다.

다만, 돌려 말하자면….

‘시전자의 방어력에서 1,000%가 추가되었을 뿐이지.’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는 코웃음을 쳤다.

순수 기사보다 떨어지는, 어중간한 방어력을 가진 다크 나이트의 방어력을 증폭시켜 봤자 망자의 역린을 막을 순 없다.

아니, 레벨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면 막을 수 있겠지만, 그러하면 창고지기 또한 극심한 데미지를 받게 된다.

그러한 제로의 생각을 증명하듯.

쏟아진 망자의 역린에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창고지기의 모습은 처참했다.

방패는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박살 나 있었으며.

창고지기의 몸을 덮고 있던 로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로브 아래에 숨겨져 있던 갑옷들 또한 상당 부분이 망가졌다.

“크으-! 놈!”

창고지기가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일갈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제로가 상대해 왔던 적들이 ‘오버 스펙’이었기에 제로의 강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였을 뿐이다.

현 제로의 강함은 레벨로 추산한다면 최소 400레벨이 넘었다.

천상의 탑에서는 상성이 좋아 그랬다지만, 다크 나이트인 창고지기는 무슨 수를 써도 제로를 막을 수 없었다.

“확실히 레벨이 깡패긴 해. 안 그래?”

“놈-! 하찮은 시체꾼 따위-!”

“네네, ■■■ ■ ■■ ■■ ■ ■ ■.”

스킬 발동, 망자의 격노.

우웅-!

망자의 격노가 발동하며 네크로노미콘에 막대한 죽음이 깃들었다.

그것은 곧 거대한 대검의 형상으로 바뀌었으며, 제로는 대검 망자의 격노가 된 네크로노미콘을 훙훙 휘둘렀다.

“마지막은 자신 있는 검으로 끝내 줄게.”

“이놈-! 날 우습게 보지 말거라! 암흑의 파동!”

“데스 임팩트.”

쩌엉-!

허공에 두 검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충격을 흩뿌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창고지기와 제로는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다크 블레이드가 감도는 창고지기의 검이 휘둘러지자 허공에 검은 선이 그어지고.

이에 대항하듯 죽음이 깃든 제로의 망자의 격노가 함께 휘둘러지자 허공에 잿빛의 선 또한 그어졌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수십 합의 검격을 나누었을 때.

싸움의 결과가 정해졌다.

“허억-! 허억-!”

창고지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다 망가진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서 있을 뿐이다. 사실상 모든 체력과 흑마력을 소모했다.

그 증거로 그의 검에 이글거리던 다크 블레이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제로의 상태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아니, 도리어 망자의 격노에 깃든 죽음은 더욱 흉흉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암흑의 조각이 진짜 진짜 필요하거든. 그러니 이만 죽어.”

“그럴 순 없…!”

스각.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창고지기의 목이 베였다.

몸통에서 떨어진 창고지기의 머리는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다 사라졌으며.

머리를 잃은 몸뚱어리는 털썩 쓰러졌다.

제로는 죽어 버린 창고지기의 시체를 뒤로 한 채 암흑의 조각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게 암흑의 조각.”

암흑의 조각은 맥동하는 심장 형태의 보석이었다.

아니, 맥동하는 심장 그 자체였다.

제로는 손에 쥐어진 암흑의 조각이 두근거리며 맥동하는 것을 느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어. 마무리는 베이글과의 거래뿐인가.”

역천의 의복을 구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남은 것은 베이글과의 거래를 통해, 역천의 의복을 손에 넣는 것.

전쟁을 생각하면 최대한 미래의 랭커들이 강해지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된다.

하지만 역천의 의복은 제로조차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급 아이템인걸.”

노말. 매직. 레어. 에픽. 유니크. 레전더리. 신화. 초월.

특수 등급인 성장과 고대를 제외한다면, 위에서 두 번째 등급의 아이템이다.

거기에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역천의 의복은 특수 아이템을 사용함에 따라 초월 등급까지 올라간다.

즉, 제로로서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제로가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던전을 나가는 순간이었다.

“너 이 새끼! 누구…!”

빛무리에 감싸이며 던전을 빠져나가기 직전, 제로는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성난 외침을 들었다.

그 외침을 듣는 순간 제로가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타이밍도 참. 이 순간에 베이글이 올 줄 누가 알았겠냐.’

그러한 생각을 품은 순간 제로는 검은 마탑의 비밀 창고에서 빠져나와 범죄도시 루파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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