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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42화 (42/200)

제42화

[오… 딘이시여…!]

[저의 주인이시여…!]

[명을 이행… 하지 못… 해 죄송합니다….]

서 있을 기력조차 없다는 듯,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점차 사라져만 갔다.

그의 가슴팍에는 기다란 사신의 단죄에 당한, 기다란 상흔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상처에선 연신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제로는 오딘을 향해 들리지도 않는 사죄의 말을 전하는 투천사를 지나쳐 걸어 나갔다.

더이상 제로를 막아설 존재는 없다.

이제는 단순히 신성의 조각을 챙겨 천상의 탑을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염의 성검이 드랍되지 않은 게 좀 아쉽네.”

성염의 성검.

천상의 탑의 보스 몬스터인 3쌍의 투천사의 드랍템 중 하나로, 유니크 등급의 장검이었다.

등급이 유니크인 만큼 각종 옵션들이 뛰어났으며, 개중에서 특히나 눈여겨볼 것은 천상의 성염이라는 특수 스킬이었다.

천상의 성염은 신성과 화속성이 섞인 복합 속성의 불꽃을 만들어 내며, 특히나 언데드에 강력함을 선보였다.

아니 애초에 아직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투천사가 드랍하는 아이템인 만큼 그 값어치는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사신의 단죄 스킬의 특성상 드랍되지 않은 듯 보였다.

“사신의 단죄는 다 좋은데 아이템을 먹을 수 없단 말이지.”

스킬의 설명란에도 떡 하니 적혀 있던 것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제로는 아쉽다는 듯 입맛만 다실 뿐. 딱히 억울해하거나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지금의 제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신성의 조각이었다.

신성의 조각은 최상층에 숨겨진 비밀의 방에 존재한다.

제로는 신성의 조각을 회수하기 위해 트리거를 발동시켰다.

다만….

‘불안한데.’

신성의 조각은 역천의 의복이 잠들어 있는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아이템이다.

몇몇 아이템들은 게임상에서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역천의 의복 또한 그러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즉, 그 말은 역천의 의복을 구하기 위한 아이템 중 하나인 신성의 조각 또한….

“이럴 거 같더라.”

제로는 비밀의 방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성의 조각은 마법진 위에 존재했어야 하지만, 제로의 눈에 신성의 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내뿜는 새하얀 빛만이 들어 올 뿐이었다.

“최초 입장 보상이 없을 때 예상은 했지만…, 베이글이 포기하거나 못 찾았기를 바랐는데.”

한참 동안 텅 비어 버린 마법진을 바라보던 제로가 몸을 돌렸다.

“암흑의 조각이라도 회수해야 해.”

제로는 천상의 탑 외부로 나가는 게이트에 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암흑의 조각.

신성의 조각에 주신 오딘의 신력이 깃들어 있다면, 암흑의 조각에는 마신 알루타의 신력이 깃들어 있다.

다만, 암흑의 조각을 구하기 위해선 신성의 조각을 구한 것에 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암흑의 조각이 잠들어 있는 장소는….

* * *

“설마 여길 내 발로 오게 될 줄이야.”

제로는 눈앞의 도시에 세워진 거대한 성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눈에 봐도 단단해 보이는 성벽이었지만, 그런 성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병들의 수준은 상당히 낮았다.

아니, 그것들은 경비병이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단단한 성벽과 쓰레기 경비병들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름은 루파.

흔히 유저들 사이에서는 범죄 도시라 불리며, 오직 ‘악명’을 쌓아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특이한 도시였다.

그렇기에 루파는 로스트 월드의 제작사 측에서 나름 머더러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었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

제로가 성문 앞으로 걸어가자 쓰레기 경비병들이 창을 내세우며 막아섰다.

그래도 나름 경비병은 경비병이라고. 그들의 두 눈에는 약간의 경계가 서려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로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 들어가십쇼.”

경비병이 눈을 내리깔고, 제로를 향해 내뻗었던 창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범죄도시 루파에선 악명 수치가 모든 것을 결정해 준다.

그렇기에 악명 수치가 측정 불가인 제로는 경비병이 막아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npc들에게나 통용되는 것.

의태의 반지로 덧씌워진 아바타의 새빨간 눈동자는, 범죄도시 루파에 있는 다른 유저들에게 있어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루파 또한 나름의 길드들이 세력을 만들어 놨기에, 제로 같은 유저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분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벌써 날파리들이 꼬였네.’

제로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마 제로가 사신의 옷자락에 달린 후드를 통해 얼굴을 가렸기에 다행이었다.

적어도 무차별적으로 습격을 받지는 않을 테니깐.

만일 제로가 얼굴을 그대로 노출했다면 수많은 유저의 환대 아닌 환대를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제로가 해 온 행동들 탓에, 로스트 월드 내에서 머더러 유저들의 평판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특히나 신성 길드를 선두로, 수많은 길드와 유저들이 머더러 척살을 내걸고 있는 만큼.

제로는 pk를 업으로 삼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불편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후딱 암흑의 조각만 구하고 나가자.’

달라붙은 날파리들을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제로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루파라는 도시 자체와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상당히 귀찮아 진단 말이지.’

하나의 도시와의 전면전을 귀찮다고 말한다.

그것을 과연 제로가 아닌 다른 유저가 말할 수 있을까?

오직 제로이기에 가능한. 그리고 루파가 범죄 도시라는 다소 특이한 성향의 도시이기에 가능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제로는 뒤통수가 뚫어져라 바라보는 날파리들을 데리고 도시의 중앙.

칠흑과도 같은 검은 무언가로 만들어진 하늘을 뚫을 기세로 세워져 있는 검은 마탑을 향해 걸어갔다.

‘딱히 다른 도시들과 다른 점은 없는 거 같은데.’

범죄도시 루파에 대한 평범한 유저들의 인식은 말 그대로 ‘범죄 소굴’ 그 자체였다.

하지만, 루파는 ‘악명을 쌓은 유저’만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도시들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게임의 특성상 길은 잘 관리되어 있었으며, 대로변을 중심으로 각종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군데군데 노점상도 보이는 이곳을 과연 누가 범죄 도시 루파라고 생각할까?

다만, 그런 루파임에도 당연히 범죄 도시라는 이름값을 하기는 했다.

툭-!

“죄송합니다.”

한 유저가 제로의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제로는 대충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떠나려는 유저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내놔.”

“칫-!”

제로의 한마디에 유저가 혀를 차며 달려 나갔다.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가속한 유저는 건물의 벽을 타고 올라가, 옥상과 옥상을 뛰어넘으며 도망쳤다.

‘젠장.’

제로는 다급히 유저의 뒤를 쫓으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범죄도시 루파 내에서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다.

아니, 나름의 값어치가 나가는 아이템. 흔히 네크로노미콘이나 죽음의 옷자락 같은 아이템은 귀속템이었기에 ‘도둑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제로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하필 의태의 반지를 도둑맞을 줄이야.’

제로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유저가 가져간 아이템은 의태의 반지였다.

제로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템이다.

의태의 반지가 없다면 제로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극히 한정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제로는 다급히 도망치는 유저의 뒤를 쫓았다.

주변에 있던 유저나 NPC들은 그것이 일상인 양,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훔쳐 간 아이템만 순순히 돌려준…, 하 미치겠네.”

제로는 플라잉 마법으로 도둑을 뒤쫓으며 외쳤다.

허나 도둑 유저는 제로의 배려 아닌 배려를 개무시하며 그저 도망쳤다.

때론 건물의 옥상과 옥상을 뛰어넘으며 도망치고.

때론 미로와도 같은 뒷골목을 누비며 도망쳤다.

때론 어딘가에 자리 잡은 개구멍을 통해 제로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소용없어.”

허나 도둑 유저는 제로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했다.

‘도둑맞는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 긴장을 풀고 있었지만. 제로 또한 의태의 반지에 몇몇 마법을 각인시켜 놓았다.

그 덕분에 처음 의태의 반지를 도둑맞았을 때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디 소속인지 모르겠지만 길드째로 날아가기 싫으면 순순히 내놔라.”

“지랄하고 있네.”

다시 한번 이어진 제로의 경고에 도둑 유저가 중지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제로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벌써부터 의태의 반지의 효과가 사라지려 한다.

사신의 옷자락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이 이상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제로를 몬스터로 착각한 유저들이 벌떼처럼 달려올 것이다.

“난 경고했다.”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자, 그것의 책장이 펼쳐지며 페이지가 넘어갔다.

파라랏-!

펼쳐진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수십 장 넘어가며….

“망자의 사슬.”

멈춰진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에 마법진이 떠오르며, 그것에서부터 튀어나온 잿빛의 사슬이 도둑 유저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븅신.”

도둑 유저는 망자의 사슬이 자신을 노림에도 당황하지 않으며 검은 구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내던져진 검은 구체는 바닥과 부딪히기 무섭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연막을 만들었으며.

망자의 사슬은 그런 연막 속에 몸을 숨긴 도둑을 붙잡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늘에서 도둑을 추적하던 제로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멈췄다.

“하-.”

제로가 짙은 연막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놓쳤다.

놓쳐 버렸다.

의태의 반지에 새겨진 마법의 효과도 지워진 것인지, 도둑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무언가의 스킬인 것일까? 어쩌면 상대가 히든 클래스일수도 있었다.

평범한 도둑 클래스의 유저라면 놓칠래야 놓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소속인지는 확인했어.”

제로는 상대가 연막 속에 사라지기 직전,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발견했다.

얼핏 보였던 문신의 형태는….

“분명 검은 전갈이었지?”

검은 전갈 형태의 문신은 다소 흔해 다양한 길드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도시 루파에 있을 만한 길드라면 하나로 한정 지을 수 있었다.

“니들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씨익 웃어 보인 제로는 검은 연기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편, 제로에게서 의태의 반지를 훔쳐 내고. 그것도 모자라 일시적이지만 도망에 성공한 유저는 루파 뒷골목에 위치한 주점, 검은 전갈의 꼬리에 나타났다.

주점 검은 전갈의 꼬리.

루파에 자리 잡은 길드 중 하나인 검은 의적단의 아지트로, 도둑 유저는 검은 의적단에 속한 유저였다.

“나름 레벨 좀 높아 보이던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는 손에 쥐어진 의태의 반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로의 마법적 처리 덕분에 의태의 반지는 ‘총명의 반지’라는 이름의 레어 아이템으로 둔갑했다.

그렇기에 도둑 유저가 보기에 의태의 반지 아니, 총명의 반지는 제로 급의 유저가 미친 듯이 쫓아올 정도의 값어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돌연 등 뒤에서 한 유저가 튀어나왔다.

“여, 스타툰. 뭐 좀 건졌냐?”

도둑 유저, 스타툰의 뒤에 나타난 유저는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길드 검은 의적단의 마스터이자 전체 랭킹 1,000위권에 들어가는 랭커이기도 했다.

“아, 형. 혹…!”

스타툰이라 불린 유저가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전갈의 꼬리의 문이 폭발하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난폭한 외형의 검은 로브를 걸친 침입자.

그의 손에는 그로테스크한 외형을 지닌 책이 쥐어져 있다.

그러한 침입자를 본 검은 의적단의 길드 마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학살자… 제로? 저놈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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