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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41화 (41/200)

제41화

“베이글 이 새낀 얼마나 괴물인 거야?”

제로가 발밑을 나뒹구는 잔해들을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잔해들은 ‘신성의 문지기’라는 이름을 가진 골렘이었으며. 천상의 탑의 11층에 자리 잡은 부 보스 몬스터였다.

신성의 문지기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한 방 한 방의 묵직한 파괴력과 단단한 몸뚱어리는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신성의 문지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데스 솔저 4구와 망자의 거병 3구를 잃어버릴 줄은 몰랐단 말이지.”

제로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는 군데군데 망가진 데스 솔저가 7구 서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로 군단 전부를 갈아 넣어 소환한 망자의 거병의 파편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특히나 이번 망자의 거병에는 8층 이상부터 등장했던 몬스터들의 시체까지 끌어다 쓴 만큼, 상당한 강함을 자랑했었다.

“보스전에선 내가 직접 나서야겠는데.”

아직 데스 솔저가 7구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부 보스에서부터 이렇게 막히면 보스전에서는 제로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는 망설임 없이 12층. 천상의 탑의 최상층으로 몸을 움직였다.

제로가 막 12층에 발을 들이는 순간….

[천상의 탑의 보스 몬스터.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우웅-!

눈앞에 보스 몬스터,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가 나타난다는 알림창과 함께 대기가 떨렸다.

제로가 딛고 있는 바닥에는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새겨졌으며. 그 마법진의 중심부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홍염의 날개를 3쌍이나 지닌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고한다, 침입자여.]

[이곳은 위대하신 아버지의 힘이 깃든 성지.]

[침입자여, 지금 당장 그 몸을 돌려 성지를 빠져나간다면.]

[그 목숨만큼은 보전할 수 있게 해 주도록 하겠다.]

우웅-!

투천사가 입을 열 때마다 대기가 웅웅 떨렸다.

제로는 그런 투천사를 바라보며 손을 까딱였다.

“죽여.”

문답 무용.

제로로부터 명령이 떨어지자, 등 뒤에 시립해 있던 일곱 구의 데스 솔저들이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며 튀어 오른 데스 솔저들은 검은 바람과 같이 움직여 순식간에 투천사의 곁에 도착했다.

[거짓된 신의 사자에게.]

[진실된 죽음의 축복을.]

콰가강-!

검, 창, 도끼, 단검, 채찍.

데스 솔저의 손에 쥐어진 다종다양한 무기들이 투천사를 향해 휘둘러졌다.

[어리석은 침입자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을.]

[지옥에서 후회하거라.]

우우우웅-!

콰가가강!

투천사의 몸을 감싸고 있던 3쌍의 홍염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 반동으로 사방에 광풍이 휘몰아쳤으며, 무기를 휘둘렀던 일곱 구의 데스 솔저 모두가 튕겨져 나갔다.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힌 데스 솔저들.

허나 그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데스 솔저들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언제 움직인 것일까?

투천사가 자세를 바로잡는 데스 솔저들의 앞에 순식간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투천사의 손에 쥐어진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꽃.

주신 오딘의 신력이 깃든 순백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그것이 데스 솔저들을 훑고 지나가자, 여섯 구의 데스 솔저 모두가 불타오르며 사라졌다.

단 일격.

단 일격에 340레벨이 넘는 데스 솔저들이 허망하게 소멸해 버렸다.

“미쳤네.”

제로는 예상 이상의 투천사의 강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투천사의 강함이 이랬던가?

모르겠다.

그때는 적어도 최상위 랭커들과 함께 레이드 형식으로 잡았기에 제대로 된 강함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이기는 건 나야.”

우웅-!

제로의 외침에 호응하듯 오른손에 쥐어진 네크로노미콘이 미친 듯이 떨렸다.

여섯 구의 데스 솔저를 순삭한 투천사는 무심히 가라앉은 눈으로 제로를 내려다봤다.

“언제까지 내려다볼 수 있나 한번 보자. 우선 가볍게, ■■ ■ ■■ ■■ ■■ ■.”

망자의 역린.

파지직-!

콰가가강!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망자들이 허공에 뭉쳐 수십 개의 창으로 변하고.

그것들이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를 향해 쏟아졌다.

창 하나하나가 능히 단단한 성벽마저 무너트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으나….

[소용없다.]

화르륵-!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를 중심으로 순백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 그것에 닿은 망자의 역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로는 그 모습에 허허! 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베이글 이새낀 도대체 뭐야? 저딴 걸 솔플로 잡았다고?”

무색의 성자.

베이글을 부르는 호칭이자, 베이글이 지닌 직업의 이름.

그것의 강함이 저것을 잡을 정도로 뛰어났던가?

제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주신 오딘과 마신 알루타의 선택을 동시에 받아 획득한 히든 클래스인 만큼 강하긴 할 것이다.

어쩌면 제로가 지닌 진. 죽음의 대리자와 비슷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마신 알루타의 선택 또한 받았다지만, 기본적으로 버프형 캐릭터일 텐데.’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제로가 딛고 있던 대지를 순백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작열하는 불꽃의 검이 훑고 지나가자, 그 단단했던 바닥이 흐물흐물 녹아 용암이 되어 버렸다.

‘잡생각은 나중에. 우선은….’

“너부터 잡는다. ■■ ■ ■■ ■■■.”

망자의 격노.

끼에에엑-!

스킬이 발동되자 사방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제로로부터 흘러나온 죽음이 네크로노미콘을 감싸며, 네크로노미콘은 곧 거대한 대검의 형상을 띠었다.

과거 헬데이븐을 상대로 꺼냈던 대검, 망자의 격노.

다만 그때보다 더욱 강해진 제로의 힘 덕분인지 망자의 격노의 외형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그때는 흑색 일통의, 다소 심플한 디자인이었다면.

지금의 망자의 격노는 마치 ‘폭력’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외형을 띠고 있었다.

“뭐, 그래도 말이야. 베이글 그 새끼가 솔플로 잡았다면 나도 잡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내가 그놈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뒷말을 속으로 삼킨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의 발에는 어느새 명계의 삭풍이… 아니, 명계의 폭풍이 깃들었으며.

제로의 오른손에 쥐어진 망자의 격노에는 망자의 염화가 깃들었다.

그 외에도 진.죽음의 대리자로 전직하면서 획득한 상위의 버프 마법들이 제로의 전신을 휘감았다.

“한번 놀아 보자고!”

데스 임팩트!

꽈앙-!

망자의 격노가 허공을 강타하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하며 투천사를 가격했다.

허나 헬데이븐 때와 마찬가지로 제로가 사용하는 데스 임팩트는 그 위력이 반감된 상태.

투천사는 데스 임팩트의 충격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홍염의 날개를 펄럭이며 제로를 향해 돌진했다.

[침입자에게 죽음을.]

후웅-!

카가가가각!

투천사가 휘두르는 순백의 검에 맞춰, 제로 또한 망자의 격노를 휘둘렀다.

순백과 칠흑의 두 검이 뒤엉키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크윽-! 힘에서 밀린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내구에 스탯을 투자했다 한들, 제로의 직업은 마법사 계열에 더욱 가까웠다.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에 힘으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마법은 내가 너보다 뛰어나거든.”

망자의 사슬.

촤르륵-!

제로의 발밑에서 잿빛의 사슬이 튀어나와 투천사의 몸을 휘감았다.

망자의 사슬에 깃든 거력은 능히 드레이크의 목뼈조차 부숴 버릴 수 있을 정도다.

허나 투천사는 그것을 순순히 허용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신의 불꽃 앞에 모든 부정한 것들은 사라지리라.]

화륵-!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의 몸이 순백의 불꽃에 휩싸이는 순간, 몸을 휘감은 망자의 사슬이 녹아 사라졌다.

“신성과 불꽃의 복합 속성. 확실히 까다롭지. 하지만.”

흔히 죽음은 음의 속성에 가까우며, 그것에 속해 있다고 한다.

허나 그것은 잘못된 사실.

음의 속성이 사실 죽음에 속해 있는 것이며. 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 빙속성이다.

“즉, 내 마법들 중에서도 너에게 상극이 있다, 이거지. ■ ■ ■■■ ■ ■■.”

사신의 시선.

번쩍-!

제로의 등 뒤로 푸른 흉안이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투천사는 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거대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렸다.

[소용없다.]

화르륵-!

얼음 동상에서 투천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닥에서 피어오른 불꽃과 함께 투천사가 얼음 동상에서 빠져나왔다.

“정말?”

제로는 사신의 시선에서 빠져나온 3쌍의 투천사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정말 소용없는 것일까?

사신의 시선은 투천사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것일까?

‘아니야.’

제로는 확신했다.

사신의 시선은 통했다.

그 증거로 투천사가 휘두르는 순백의 검은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으며, 그 이상으로 투천사의 육체 또한 사뭇 불안하게 일렁였다.

애초에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는 천족.

마족과 마찬가지로 천족은 과거 천마 대전의 영향으로 중간계에 본체를 불러들일 수 없다.

하물며 3쌍의 날개를 가진, 천족 중 중위의 강함을 지녔다면 더더욱.

즉, 제로가 상대하고 있는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는 그저 정신체일 뿐이며. 그 강함마저 본래에 비해 7할을 제한당했다.

만일 투천사가 본체를 지닌 채로 나타났다면 제아무리 제로라고 하더라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말이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다시 한번 몸을 던졌다.

동시에 제로가 딛고 있던 대지를 순백의 검이 다시 한번 훑고 지나가며 그곳을 용암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깝긴 하지만, 역천의 의복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썩어 문드러진 몸을 일으켜라.”

망자의 군단.

쿠르르-!

외차원의 창고가 열리며, 그곳에서 다수의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00구.

200구.

300구.

500구.

1,000구.

외차원의 창고에서 나타나는 망자들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천상의 탑의 최상층을 가득 메웠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듯, 외차원의 창고는 끊임없이 망자들을 토해냈다.

“시간을 끌어.”

제로의 손에 쥐어진 망자의 격노가 어느새 네크로노미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외차원의 창고에서 튀어나온 망자의 군단은 제로의 명령에 따라 투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작 평범한 망자들로는 투천사를 죽일 수 없다.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던 데스 솔저들마저 일격에 죽여 버린 3쌍의 날개를 가진 대천사를, 고작해야 병사나 정예병들 따위가 어찌 이기겠는가.

‘상관없어.’

허나 제로의 목적은 단순한 시간 끌기.

수백, 수천의 망자의 군단이 단 1초. 1초 만이라도 시간을 끌면 그것으로 제 할 일을 다했다.

[어리석은!]

[이따위 하찮은 망자들로 나의 검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응, 그렇게 생각 안 해.”

파라락-!

3쌍의 날개를 가진 투천사를 향해 한 번 더 이죽거린 제로에게서 죽음이 흘러넘쳤다.

그러한 죽음은 곧 네크로노미콘에게 집중되었으며, 동시에 제로의 입이 열리며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흘러나왔다.

■ ■■ ■■ ■ ■■.

■■ ■■■ ■■■ ■■ ■.

■■■■ ■■ ■■■■ ■■■■■.

우웅-!

영창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로를 중심으로 대기가 떨렸다.

망자의 군단을 쓸어버리고 있던 투천사 또한 무언가 위기를 느꼈는지 몸을 움직였다.

자신을 가로막는 군단을 무시하며 제로를 향해 날아간 투천사가 순백의 검을 휘둘렀다.

“끝났어. ■ ■■ ■ ■■■.”

사신의 단죄.

영창이 끝나고, 마법이 발동됐다.

투천사의 검이 제로의 목을 베어 버리려는 찰나, 제로를 중심으로 회색의 빛이 폭발하며 천상의 탑 최상층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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