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40화 (40/200)

제40화

“여기가 천상의 탑.”

제로는 눈앞에 자리 잡은 거대한 탑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역천의 의복이 잠들어 있는 던전으로 가기 위해선 두 개의 아이템이 필요했다.

하나는 주신 오딘의 신력이 깃들어 있다는 신성의 조각.

하나는 마신 알루타의 신력이 깃들어 있다는 암흑의 조각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신성의 조각과 암흑의 조각은 1회성 아이템이 아니었다.

개중에서 제로가 도착한 천상의 탑은 신성의 조각이 잠들어 있는 장소였다.

다만, 이미 무색의 성자 베이글이 다녀갔는지 천상의 탑에 관한 정보는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천상의 탑 입구에 아무도 없는 것은, 그곳의 적정 레벨만 무려 300이요 제대로 된 사냥. 아니, 탑을 돌파하기 위해선 최소 350 이상의 레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현 랭킹 1위의 레벨이 323인 것을 생각해 보면, 현존하는 그 어떤 유저도 천상의 탑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 랭킹 1위가 무색의 성자 베이글이 아님에도 천상의 탑이 클리어됐다는 것은….

“하여간 괴물이라니깐.”

베이글의 강함이 이미 랭킹 1위를 뛰어넘었다는 뜻이 된다.

다만, 그러한 천상의 탑을, 이제 막 260레벨을 넘긴 채로 도전하려는 제로가 말하기에는 살짝 어폐가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천상의 탑에 나오는 몬스터들의 종류가….”

천상의 번견. 신성의 파수꾼. 성염의 기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상의 탑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신성 속성의 몬스터들이었다.

즉, 제로 같은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 계열의 직업군들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는 던전이었지만, 제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직을 마친 제로가 소환하는 망자들의 강함은 크게 증가했으며, 그것들의 각종 내성 또한 대폭 상승했기에 어지간한 신성력으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럼 가 볼까.”

준비를 끝마친 제로는 망설임 없이 천상의 탑 내부로 들어갔다.

* * *

“망자의 군단.”

네크로노미콘의 책이 펼쳐지며, 멈춘 페이지에서 짙은 죽음이 흘러 나왔다.

그러한 죽음은 제로가 미리 꺼내 둔 시체에 깃들었으며, 죽음이 깃든 시체에선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 광전사. 그리고 새로이 만들어진 망자의 궁병이 몸을 일으켰다.

망자의 궁병.

말 그대로 활을 사용하는 언데드로, 죽음의 옷자락을 구했던 공간에서 얻은 망자의 궁기병의 레시피를 토대로 만들어진 언데드 중 하나였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망자들의 숫자만 해도 물경 300.

아직 망자의 숫자나, 망자의 종류를 따지자면 군단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잖아 있다.

다만 그것은 오직 제로의 생각일 뿐이다.

300이 넘는 망자의 군단을 상대하기 위해선 3차 전직을 끝마친 유저들이 최소 10명 이상 있어야 가능했다.

제로가 일으키는 언데드의 강함은 어중간한 네크로맨서들이 일으키는 언데드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모조리 쓸어버려.”

제로가 손을 까딱이며 말하자, 몸을 일으킨 망자의 군단이 우르르 움직였다.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은 철제 방패와 철검을 쥐며 달려 나갔으며.

망자의 광전사들은 특유의 광기를 내뿜으며 움직였다.

하늘에는 언제 쏴 재꼈는지 망자의 궁병들의 뼈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컹컹!

크르르-!

적의를 띄며 달려드는 망자의 군단에 맞춰 천상의 번견들 또한 움직였다.

지옥에 헬 하운드가 있다면, 천상에는 천상의 번견이 있다.

다만 그 둘의 차이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둘 모두 전신이 불타오르며, 입에는 초고온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엄니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라곤 둘의 속성뿐이었다. 헬 하운드가 마속성이라면 천상의 번견은 신성 속성일 뿐이다.

그아아-!

한편 달려 나간 망자의 군단은 천상의 번견에 접근하기 무섭게 제각기 무기를 휘둘렀다.

어떤 것은 롱소드를. 어떤 것은 단검을. 어떤 것은 브로드 소드를. 어떤 것은 대검을.

각양각색의 검들은 하나같이 진득한 죽음이 묻어나 있었으며, 천상의 번견은 바닥을 박차 오르는 것으로 군단의 공격을 피했다.

“멍청하긴.”

제로는 회피의 수단으로 점프를 선택한 천상의 번견의 멍청함에 쯧쯧 혀를 찼다.

나름 군단의 머리를 밟아 움직이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지금의 군단에는 궁병들이 섞여 있었다.

저처럼 점프를 통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로 뛰어오른 천상의 번견들의 몸뚱어리에 궁병들이 쏜 화살들이 틀어박혔다.

궁병의 화살들 또한 진득한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컹컹-!

크아앙!

천상의 번견들이 고통 섞인 울음을 토해 냈다.

번견들의 몸뚱어리는 화살이 틀어박힌 부위를 기점으로 점차 썩어 문드러졌다.

아무리 신성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망자의 군단에 깃든 죽음을 저항할 순 없었다.

크앙-!

콰지직!

콰득!

다만 천상의 번견이라고 해서 넋 놓고 죽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궁병의 화살에 깃든 죽음이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번견들은 그 특유의 흉포함을 드러내며 군단을 유린했다.

총 12층으로 이루어진 탑 중, 고작 1층에 등장하는 몬스터라고는 해도 확실히 천상의 탑에 등장하는 몬스터다운 강함이었다.

다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은….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소모품에 불과하거든.”

전직을 통해 획득한 스킬 중 하나인 외차원의 창고. 일종의 아공간과 같은 그것은 오직 시체만 소지할 수 있지만, 그러한 외차원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시체의 숫자는 제로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천상의 탑을 돌파하기 위해 제로가 거쳐 간 사냥터만 수십 곳이요, 사냥한 몬스터들의 숫자만 수만 마리가 넘었다.

고작해야 1층에 등장하는. 그마저도 30마리에 불과한 천상의 번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얌전히 죽어라.”

데스 불릿.

투두두두-!

크허헝!

제로의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수백 발의 탄환들이 남은 천상의 번견들에게 쏟아졌다.

그것으로 끝이다.

레벨 300을 훌쩍 뛰어넘는 30마리의 몬스터들은 망자의 군단과 제로의 마법에 죽음을 맞이했다.

“시체다 시체.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시체예요~.”

제로는 눈앞에 놓여진 30구의 시체. 한때 천상의 번견이라는 이름으로, 신성과 불꽃의 속성이 혼합된 엄니와 발톱으로 망자의 군단을 유린하던 그것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비록 레시피가 없어 복구할 순 없겠지만….

“깃들어라. 그리고 일어나라.”

대리자의 명령.

짧은 영창과 함께 발동된 스킬에, 눈앞에 놓인 30구의 시체에 죽음이 깃들었다.

그와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천상의 번견들이 비적비적 몸을 일으켰다.

“확인.”

[망자의 번견.]

천상의 번견의 시체에 죽음을 부여해 만들어진 망자.

한때 성스러운 불꽃으로 이루어진 엄니와 발톱을 지녔던 그것은 이제 죽음이 깃든 귀화로 이루어진 엄니와 불꽃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레시피까진 안 알려 주네.”

제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대리자의 명령이라는 스킬은 평범한 네크로맨서들의 라이진 데드와 비슷했다.

차이점이라고는 대리자의 망령이 일으키는 시체는 생전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이징 데드는 최대 구울급의 언데드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 외에도 라이징 데드는 천상의 번견과 같이 신성 속성의 시체는 일으킬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 있지만, 대리자의 명령은 딱히 그러한 제약이 없었다.

“일단 이정도로 만족할까. 시체는 많고, 시간은… 없지만.”

실없는 농담을 내뱉은 제로는 망자의 번견이 합류한 군단을 이끌며 계단을 올랐다.

* * *

[하찮은 망자들 따위가 성스러운 탑에 발을 들이다니!]

[그 죄! 일만 번의 죽음으로도 속죄할 수 없음이니!]

[심판의 불꽃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거라!]

화르륵-!

천상의 탑 8층에 등장하는 몬스터, 성염의 기사.

그것이 검을 휘두르자 그 궤적에 따라 성스러운 불꽃이 파도와도 같이 넘실거리며 망자의 군단을 덮쳤다.

8층까지 올라온 망자의 군단의 숫자는 1층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났다.

그 외에도 탑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진 망자들 또한 다수 있었다.

그럼에도….

“확실히 신성 속성 몬스터는 까다롭단 말이지. 거기에 복합적으로 화속성까지 겸비하고 있는 저런 놈들은 특히나 말이야.”

성염의 기사가 만들어 내는 불꽃에 녹아내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8층에는 등장하는 몬스터는 단 하나, 성염의 기사뿐이었다.

그마저도 보스 클래스가 아님에도 검이 한 번, 한 번 휘둘러 질 때마다 군단을 이루는 망자가 우수수 소멸했다.

“단순한 망자들로는 여기까지인가.”

제로가 한 발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버프를 걸어 줘도 상성은 상성이었나 보다.

“이거 참. 내가 네크로맨서인지, 아니면 마법사인지 가끔가다 헷갈린단 말이지.”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렸다.

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마력을 먹어 치운 네크로노미콘이 펼쳐졌다.

파라라랏-!

사마력을 먹어 치우는 네크로노미콘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넘겨지다 우뚝 멈췄다.

“깊은 심연에서 기어 올라와라.”

데스 솔저.

우우웅-!

대기가 떨렸다.

동시에 제로의 등 뒤로 거대한 균열이 그어지며, 균열이 품은 심연 속에서 다수의 병사들이 걸어 나왔다.

병사라는 이름보다는 전사. 혹은 용병이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릴 것만 같은 모습을 한 데스 솔저 10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헬데이븐이 조종하던 석상을 상대하기 위해 소환했던 데스 솔저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데스 솔저의 등장에 미쳐 날뛰던 성염의 기사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너도 느껴지지?”

제로는 데스 솔저를 바라보며 긴장감을 표출하는 성염의 기사에 비릿한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데스 솔저는 어보미네이션을 제외한다면, 현재 제로가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 중 최강이다.

개개인의 힘은 최상위 랭커들을 뛰어 넘었으며, 그 강함을 레벨로 환산한다면 최소 340 이상은 될 것이다.

“긴말하지 않아. 가서 죽여. 아니, 부숴 버려.”

예스, 마이 마스터!

제로의 명령에 대답한 10구의 데스 솔저들이 움직였다.

그것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무기를 쥐며 성염의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염의 기사 또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데스 솔저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응수했다.

[망자들이여!]

[거짓된 영생에 취해 타락한 어리석은 존재들이여!]

[신성한 불꽃 앞에 그 모습을 감출지어다!]

화르륵-!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불꽃에 3구의 데스 솔저들이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검에선 죽음이 깃든 방사형의 파동이 퍼져 나갔으며, 그것은 성염의 기사가 만들어 낸 불꽃의 파도와 충돌하며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거짓된 신의 인형이여.]

[진실된 죽음 앞에 무너져라.]

콰지지직-!

성염의 기사 몸에 일곱 구의 데스 솔저들이 휘두른 무기가 틀어박혔다.

일곱 개의 무기가 틀어박힌 성염의 기사는 ‘끄아아아악!’ 하는 비명을 내질렀으며, 곧 틀어박힌 무기를 통해 흘러 들어온 죽음에 그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확실히 사기라니깐.”

제로는 자신의 군단을 유린했던 성염의 기사를 단숨에 처리하는 데스 솔저에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숫자의 차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성염의 기사 또한 강력한 몬스터였음을 생각해 보자면 데스 솔저는 상당히 강했다.

“뭐, 그렇기에 10구라는 제한이 붙었겠지.”

제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데스 솔저는 강한 만큼 소환 가능한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조금 더 레벨 업을 한다면 제한 숫자가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제로는 고작 10구를 소환하는 게 전부였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일단 올라갈까.”

대리자의 명령을 통해 일으킨 성염의 기사.

아니, 정식 명칭 ‘죽음에 집어삼켜진 기사’를 대동한 제로는 9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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