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우웨에에엑-!”
헬데이븐을 죽인 제로가 무릎을 꿇으며,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본래라면 이길 수 없었던. 아니, 죽일 수 없었던.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강대한 힘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분 더럽네.”
공허했다.
손짓 하나로 수백만의 산자들의 생명을 거두어들이고, 억의 망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만 같던 힘이 사라진 지금.
제로가 느끼는 것은 공허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도 네가 마련해 둔 안배인거냐?”
[그건 아니야. 솔직히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제로의 외침에도 죽음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로는 죽음의 침묵에 쯧! 하며 혀를 찼다.
방금 전, 헬데이븐을 압도했던 힘은 오롯이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그 힘은 제로가 느끼기에도 명백한….
‘밸런스 붕괴급의 힘이었어.’
어쩌면 버그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은 출시 이후, 단 하나의 버그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세간에서 ‘가장 완벽한 게임’, ‘신이 개입한 게임’이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그것은 이제 다가올 미래. 혹은 제로가 한 번 경험했던 과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는 말은 방금 전에 다뤘던 힘은 버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개입한 것도 아니었다.
죽음이 뭐가 아쉬워서 일개 유저에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복잡하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것처럼 극심한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제로는 몸을 일으켰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어리를 이끌며 걸어 나갔다.
[어딜 가는 거야?]
[조금은 쉬는 게 어때?]
“쉴 시간 따윈 없어.”
죽음의 말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아직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전직 때 봤던 환영. 아니, 그것이 정말 환영일까? 어찌되었든 지금의 제로는 움직여야 했다.
무엇이 되었든, 미래에 허상계가 침입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 적어도….
‘헬데이븐. 놈을 압도했던 힘을 이 손에 거머쥐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하며 움직인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공동의 끝이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입구와는 정 반대에 위치한 장소에 자리 잡은 하나의 나무 문이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헬데이븐이, 본인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려 했던 그곳이었다.
“여기에 있는 거지?”
[뭐가?]
“죽음의 옷자락.”
제로의 물음에 죽음이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 침묵에 제로는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침묵은 긍정이란 말이 있다.
제로는 자신의 질문에 죽음이 침묵하는 것도,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침묵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죽음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제로는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토록 농밀한 죽음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여기가 아닐 리가 있나.’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손을 내뻗었다.
눈앞에 자리 잡은 나무 문.
다 썩어 문드러져 검게 물들어 있는 그것은 제로의 손이 닿기 무섭게 일체의 소음 없이 열렸다.
저벅. 저벅. 저벅.
나무 문 너머로 망설임 없이 들어간 제로를 반기는 것은 끝없는 어둠이었다.
일체의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밀실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어야 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제로의 두 눈에는 밀실의 내부가 훤히 보였다.
“이게 죽음의 옷자락.”
밀실의 중앙에 도착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바닥에는 명계의 언어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위에는 농밀한 죽음을 내뿜는 로브가 두둥실 떠다녔다.
파직-!
“큭!”
제로가 손을 뻗자, 그것을 막아서겠다는 듯 검은 스파크가 튀겼다.
제로는 검은 스파크가 닿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게임인 이상, 아무리 통각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해도 고통은 제한된다. 허나 스파크에 닿기 무섭게 느껴진 고통은 시스템으로 제한된 고통이 아니었다.
마치….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과 똑같아.’
더욱 정확히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손을 집어넣은 것만 같은 작열통이었다.
그럼에도 제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죽음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이 정도의 고통. 허상계의 괴물들을 상대하면서 질리도록 느껴 봤다.
파지직-!
제로가 죽음의 옷자락을 움켜쥐자 더욱 강렬한 스파크가 튀기고, 더욱 강렬한 고통이 제로의 전신을 엄습했다.
“이런 고통도 오랜만에 느껴 보네.”
마법진에서 죽음의 옷자락을 꺼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스스로가 신음을 내뱉을 정도로 강렬했던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마 허상계의 왕과의 싸움 이후 처음일 것이다.
“확인.”
명령어를 입력하기 무섭게, 제로의 눈앞에 죽음의 옷자락에 관한 정보가 담겨진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죽음의 옷자락]
외차원에 존재하는 죽음 그 자체의 편린으로 이루어진 옷자락입니다.
“이게 끝이야?”
죽음의 옷자락을 확인한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이 알려 주는 정보는 아이템에 관한 정보가 아니었다.
아니, 로스트 월드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이런 식으로 정보를 알려 주는 아이템이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은….
“죽음의 옷자락. 이거 설마 ‘재료형 아이템’이냐?”
제로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아이템의 종류는 총 세 가지다.
하나는 ‘아이템’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장비형 아이템.
하나는 물약이나 특수한 버프 효과를 지닌 음식 같은 버프형 아이템.
하나는 장인 계 직업군들이 무언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형 아이템.
그중에서 죽음의 옷자락은 재료형 아이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건 아니야.]
죽음은 단 두 마디로 제로의 의문을 일축했다.
[그건 나의 편린으로 만들어진 옷자락이자 나의 신기 중 하나.]
[허나 그건 이 세계의 시스템에 속한 것이 아니야. 그러니 제대로 된 정보가 출력될 리가 없지.]
“그 말은, 죽음의 옷자락은 외차원에 속한 물… 아니, 신기라서 이런 거란 말이야?”
[뭐,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죽음이 뒷말을 흐렸다.
그런 죽음의 말을 제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투성이었지.’
그중에서 가장 큰 의문은 외차원이라는 공간이었다.
외차원이란 장소는 나름 랭커였던 만큼, 로스트 월드의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있는 제로조차 처음 들어봤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로는 줄곧 품어 왔던 의심과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확신은 더욱 오래전 느꼈을 지도 몰랐다. 그저 자신이 인정하기 싫었을….
‘아니,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려나.’
“죽음. 이것 하나만 알려 줘.”
[뭘.]
“이 세계. 내가. 그리고 수많은 유저들이 로스트 월드라 부르는 이 세계는 단순한 게임이 맞아?”
제로는 다소 담담하게 내뱉었으나, 그 속에 깃든 불안까지는 전부 감추지 못했다.
그런 제로의 질문에 죽음은 그저 침묵했다.
“알려 줘.”
제로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제는 알아야겠다.
로스트 월드가 정말 단순한 게임인지, 아닌지.
자신이 단순한 npc, 몬스터라 여기며 망설임 없이 거두었던 생명들이 정녕 0과1로 이루어진 데이터 쪼가리인지, 아니면.
‘나와 같은 하나의 생명인지.’
…
제로의 질문에 죽음은 침묵했다.
그 침묵에도 제로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죽음이 입을 열 때까지.
그러한 제로의 태도는 마치 죽음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열의 아니, 광기마저 엿보였다.
[후, 알았어.]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죽음이었다.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개중에 네가 원하는 진실은 당연 알려 줄 수 없지. 하지만.]
“하지만?”
[단 한 가지, 알려줄 수 있는 건 있어.]
“그게 뭐지?”
[네가.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이 로스트 월드라 부르는 이곳은 게임이 맞아. 지금은.]
죽음의 말에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피어오른 귀화가 일렁였다.
로스트 월드는 게임이 맞다.
비록 뒤의 ‘지금은’이라는 단어가 거슬렸지만, 제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니,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이 ‘강해지겠다.’와 ‘지구를 구하겠다.’라는 각오로 죽여 왔던 수많은 npc와 몬스터들이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에 말이다.
“고마워, 죽음.”
제로의 감사 인사에도 죽음은 다시 침묵했다.
제로는 그것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 * *
“장비를 더 구하긴 해야겠네.”
???를 빠져나온 제로가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제로에게 있는 아이템이라고는 손에 쥐어진 네크로노미콘과 전신을 뒤덮은 죽음의 옷자락뿐이었다.
그 외에는 검은 뼈로 이루어진 해골일 뿐이다.
만일 제로의 아바타가 인간형이었다면 변태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나저나 죽음의 옷자락이라. 확실히 신기라 부를 만하네.”
제로는 자신의 몸을 뒤덮은 죽음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죽음의 옷자락은 상당히 특이한 아이템이었다.
매만지는 감촉은 ‘천’이라기보다는, 형태를 갖춘 액체를 만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외형은 일렁이는 어둠과도 같았으며, 그저 단순히 로브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진짜 로브는 아니었다.
다만, 그러한 죽음의 옷자락이 보유한 효과는 상당히 뛰어났다.
비록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죽음의 옷자락을 장착하기 무섭게 자신의 지배력과 사마력이 크게 늘어난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어느 정도 육체 능력 또한 향상했다.
지금의 제로라면 이제 막 3차 전직을 끝낸 전사 계열 직업군들과 비벼 볼 만 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제로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자 죽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로는 그런 죽음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제대로 된 옷부터 구해야지.”
물론 평범한 장비 따위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제로가 노리는 것은 역천의 의복이다.
벤에게 알려 줬던 데스바인더처럼 숨겨진 던전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특히나 그것은 제로와 같은 마법 계 직업군이나 신앙계 직업군에겐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옵션들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그걸 가지고 있었던 놈이 아마….’
무색의 성자, 베이글.
놈은 특이하게도 주신 오딘과 마신 알루타의 선택을 동시에 받은 성자였다.
어째서 그가 성자로 선택받았는지는 의문이었다.
이미 주신 오딘에겐 자애의 성자라 불리는 신성이 있었으며, 마신 알루타에게도 파괴의 성녀라 불리는 유저가 존재했다.
다만, 베이글은 두 신의 선택을 받은 만큼 양쪽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반된 두 신의 신성력을 합쳐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킬을 만들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그 또한 섭외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제로는 역천의 의복이 잠들어 있는 던전을 향해 움직이며 생각했다.
무색의 성자, 베이글.
그를 섭외한다면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1%는 올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