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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37화 (37/200)

제37화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구로 이루어진 데스 솔저였다.

데스 솔저의 모습은 인간과 매우 흡사했다. 그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것만 같이 창백한 피부에, 두 눈동자가 동공의 유무 없이 검다는 것이 인간과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었다.

그런 데스 솔저의 무장은 살벌했다.

허리춤에는 자그마한 손도끼가 두 개 매어져 있으며, 등에는 기다란 장창과 장궁을 메고 있다.

갑옷은 가볍고 날렵해 보이는 가죽 갑옷이었으며, 그 속에는 수십 개의 암기가 잠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양 손에 한 자루씩 검을 쥐고 있는 모습은 솔저, 병사라기보다는 전사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렸다.

데스 솔저의 뒤를 이어 나온 것은 어보미네이션이었다.

어보미네이션.

언데드 계의 파괴 전차라 불리며 뭇 유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언데드였다.

3m에 달하는 거대한 키에 살로 뒤덮인 육중한 몸뚱어리. 피부는 인간의 얼굴 가죽을 그대로 뜯어내 이어 붙인 듯 기괴하고 혐오스러웠으며, 거대한 손에는 거대한 갈고리가 쥐어져 있었다.

언뜻 보면 육중해 보이는 몸뚱어리 때문에 느리다고 착각하기 쉬웠지만, 어보미네이션의 몸놀림은 상당히 재빨랐다.

또한 그 명성에 걸맞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흉포함과 파괴력은 괜히 최상위 언데드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특유의 강함 덕분에 지금의 제로 또한 완전한 어보미네이션의 소환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지금 불러낸 어보미네이션의 강함은 상당히 너프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스 솔저와 함께 뿜어내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그 증거로 10구의 데스 솔저와 너프된 어보미네이션을 앞두고 있는 조각상들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모조리 부숴 버려.”

그아아아아-!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보미네이션이 거친 괴성을 내지르며 움직였다.

어보미네이션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가 떨렸다.

10구의 데스 솔저는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을 뽐내며, 어떤 것은 손도끼를. 어떤 것은 장창을. 어떤 것은 쌍검을 쥐며 조각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래 기다렸지?”

[그대, 자격을 지닌 자여.]

[과연 그분께 선택받을 만하도다.]

[그 나이, 그 강함으로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어보미네이션을 소환할 줄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 ■ ■■ ■■ ■■, 망자의 격노.”

끼에에엑-!

제로를 중심으로 귀곡성이 퍼져 나갔다.

제로에게서 흘러나온 죽음은 네크로노미콘을 감싸며 휘몰아치더니, 곧 하나의 거대한 대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사실 내 전공은 대검이거든.”

훙훙-!

제로는 한 손으로 대검, 망자의 격노가 된 네크로노미콘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검은색 일통의, 다소 심플한 외형을 한 망자의 격노는 한 번 한 번 회전할 때마다 묵직한 파공음이 퍼져 나갔다.

[그대, 자격을 지닌 자여.]

[나의 힘이 그저 인형들을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나는 위대하신 분의 신봉자.]

[또한 지금은 잊혀진 왕국의 지배자.]

[나의 힘을 똑똑히 확인하거라.]

쿠르르-!

말을 마친 헬데이븐이 스태프를 내리찍자, 제로를 중심으로 대지가 뒤흔들렸다.

그것은 마법 중 하나인 어스퀘이크. 아직 유저들은 도달하지 못한 대마도사만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 중 하나였다.

제로는 무영창으로 8서클의 대마법 중 하나인 어스퀘이크를 시전하는 헬데이븐에 쯧! 혀를 차며 움직였다.

‘이 정도도 넘어서지 못하면 차라리 가져가지 말라 이거냐.’

타다닷-!

제로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은 상당한 무게가 있어 보이는 대검을 쥐고 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움직인 제로는 순식간에 헬데이븐의 앞에 도착했다.

“우선 한 방.”

후웅-!

제로의 손에 쥐어진 대검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허나 움직임 자체는 가벼웠을지 몰라도,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지는 대검에 깃든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레이트 실드.]

[인첸트 아이언.]

제로의 공격에 맞춰 헬데이븐 또한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강철의 속성이 깃든 반투명한 구가 헬데이븐의 전신을 뒤덮으며 제로의 대검과 충돌했다.

쩌엉-!

그레이트 실드와 제로의 대검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거친 충격이 휘몰아쳤다.

허나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제로의 일격에 헬데이븐이 시전한 방어 마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고작 이정도인가, 자격을 지닌 자여.]

[개틀링 애로우.]

콰가가가강-!

그레이트 실드를 부숨으로써 드러난, 아주 작은 빈틈.

헬데이븐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헬데이븐이 스태프를 쥐지 않은 왼손을 펼치는 순간, 다종다양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애로우 계열의 마법이 쏟아졌다.

이름 그대로 개틀링 건을 보는 듯한 속도와 숫자에 제로는 다시 한번 쯧! 혀를 차며 대검을 휘둘렀다.

“데스 임팩트.”

꽈앙!

대검이 허공을 가격하는 순간, 죽음이 깃든 충격파가 만들어지며 헬데이븐의 개틀링 애로우를 집어삼켰다.

헬데이븐은 설마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을 줄 몰랐다는 듯, 한껏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한 번 더, 데스 임펙트!”

꽈앙!

또 한 번 휘둘러진 대검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헬데이븐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헬데이븐은 거대한 충격파에 뒤로 물러나며 제로를 바라봤다.

“젠장, 고작 이 정도야?”

제로는 넉백 효과밖에 발생하지 못한 데스 임팩트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애초에 데스 임팩트는 마법이 아니다. 전사계열 직업의 스킬에 더욱 가까운 기술이었다.

그것을 대검, 망자의 격노를 이용해 억지로 흉내 냈을 뿐이다.

그렇기에 데스 임팩트의 제대로 된 위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과연 자격을 지닌 자다운 강함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진지하게 해야겠군.]

쿠르르-!

헬데이븐의 전신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넘실거렸다.

다만, 헬데이븐 자체가 죽음을 신봉하는 존재. 또한 본인부터가 리치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인지 그의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마나의 색은 다소 탁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모든 것을 불태워 무로 돌려보내는 지옥의 겁화여. 지금 이곳….]

‘미친!’

헬데이븐의 영창을 들은 제로가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저 영창은….

[모든 것을 불태워 지워 버려라. 헬 파이어.]

“맞잖아!”

헬데이븐이 내뻗은 스태프를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헬 파이어에 제로가 버럭 외쳤다.

헬 파이어.

8서클의 마법이면서도 반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9서클에 필적하는 위력을 가진 마법.

한 번 붙으면 대상을 완전히 태워 버리기 전까지 절대 꺼지지 않는다는 불꽃이 제로를 노리며 쏘아졌다.

“큭! 데스 실드! 본 월! 본 실…!”

콰르르-!

제로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헬데이븐은 8서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위력은 본래의 것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헬데이븐이 처음 사용했던 마법 어스퀘이크였다.

진정한 어스퀘이크였다면 지금쯤 이 신전은 흔적도 없이 붕괴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큭!”

헬 파이어에 뒤덮인 제로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본래에 한참 못 미치는 위력이라지만, 헬 파이어는 헬 파이어. 그 압도적인 열량은 제로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내구에 어느 정도 스탯을 투자한 게 정답이었어.’

헬 파이어에 하나, 둘씩 무너져 가는 방벽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본래 제로와 같은 마법사 계열 직업군은 체력이나 힘 따위에 스탯을 분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내구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합쳐졌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제로가 내구에 스탯을 투자한 이유는 간단했다.

직업 자체의 강함도 강함이었지만, 훗날 허상계와의 전쟁을 생각해 본다면 투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스탯이었다.

정석으로 올린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전쟁에서 죽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체력의 문제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제로는 그러한 꼴이 나지 않기 위해 내구에 스탯을 투자했었는데, 설마 그것이 이처럼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호, 헬 파이어마저 견디는가.]

헬데이븐은 점차 사그라드는 헬 파이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로에 대단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칭찬은.”

제로는 헬데이븐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헬 파이어를 버텼다.

하지만 그뿐이다. 입고 있는 모든 장비들이 헬 파이어의 열량을 이기지 못하고 망가졌다.

‘뭐, 애초에 네크로노미콘을 제외하면 썩 좋은 장비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네크로노미콘이 헬 파이어 속에서도 버텨준 것에 감지덕지해야 할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헬데이븐이 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나 자격을 지닌 자여.]

[나는 모르겠구나.]

[그대의 강함이 이것이 전부라면.]

[어찌하여 위대하신 분은 내가 아니라 네놈 따위를 선택한 것이더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쾅-!

헬데이븐의 말에 버럭 외친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가 바닥을 박차는 순간,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신형이 사라졌다.

사라진 제로가 나타난 장소는 헬데이븐의 뒤.

허나 헬데이븐은 제로의 움직임을 읽었다는 듯 당황하지 않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죄악의 무게.]

쿵-!

“큭?”

제로가 낮은 신음을 토해 냈다.

헬데이븐이 사용한 죄악의 무게. 어떤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의 효과가 적용되는 순간 전신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졌다.

그것은 수천 킬로의 철 덩이들이 짓누르는 듯한 감각에 가까웠다.

[죄악의 무게.]

[그것은 대상자가 쌓아 올린 죄악에 비례해 거대한 압력을 선사하는, 내가 가진 권능과도 같은 힘이다.]

[그대, 상당한 죄악을 쌓아 올렸나 보구나.]

‘악명 수치에 반응하는 스킬이냐!’

헬데이븐의 말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상당히 안 좋았다.

제로의 악명 수치는 측정 불가. 만일 헬데이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로는 죄악의 무게라는 정체 모를 스킬의 효과가 끝나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 이만 죽…. 음.]

제로를 죽이기 위해 마법을 준비하던 헬데이븐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강함은 부족하지만 위대하신 분의 선택을 받은 자라 이건가.]

[그대를 죽인다면 나는 위대하신 분의 진노를 받아 소멸하겠구나.]

그러한 말을 내뱉은 헬데이븐이 슬쩍 허공을 훑어봤다.

[어쩔 수 없구나.]

[자격을 지닌 자여.]

[허나 자격에 어울리지 않는 강함을 지닌 자여.]

[그리고 위대하신 분의 선택을 받은 자여.]

[그대를 돌려보내겠다.]

[조금 더 힘을 길러 다시 도전하거라.]

[나는 언제나 이곳에 존재할 것이니.]

우웅-!

헬데이븐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로의 발밑으로 하나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그것은 제로를 외차원에서 본래의 로스트 월드의 대륙으로 돌려보내는 마법진이었다.

제로는 점차 완성되어 가는 마법진에 으득! 이를 갈았다.

‘자만했어.’

자만했다.

죽음의 지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다른 유저들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것에 자만했다.

‘오만했어.’

그리고 오만했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욱 강한. 마치 신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강대했던 힘을 가졌던 그때의 자신이 아니었다.

‘경솔했어.’

마지막으로, 자신은 경솔했다.

하늘 위엔 하늘이 있다고. 허상계의 왕의 강함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너무나도 경솔했다.

‘화가 나.’

화가 났다.

고작 눈앞의 뼈다귀 하나 이겨 내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화가 났다.

뭐가 진정한 죽음의 대리자란 말인가.

뭐가 네크로노미콘의 주인이란 말인가.

뭐가…. 뭐가…. 뭐가…!

“인류의 구원자란 말이냐!”

콰아아-!

버럭 외친 제로의 전신에서 막대한 양의 죽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제로가 평소에 사용하던 사마력이 아닌, 진실 되고 농밀한 죽음 그 자체였다.

그러한 죽음에 휩쓸린 마법진은 산산이 깨어졌으며, 제로를 구속하고 있던 죄악의 무게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 슨…!]

헬데이븐은 제로에게서 흘러넘치는 죽음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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