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34화 (34/200)

제34화

[제로와 암흑신교와의 관계]

작성자-로월정보통

추천; 9999+ 비추천: 9999+

안녕! 형들!

오늘은 학살자라 불리는 제로와 암흑신교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해볼까 해!

내가 저번에 암흑신교와 제로의 관계가 좋은 편은 아닐 거라고 말했었지?

오늘은 그 증거를 가져와 봤어!

[스크린 샷]

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도 제로는 학살자라는 호칭에 걸맞게 아주 성대하게 pk를 했더라고? pk가 일어난 장소는 이단 광신도의 소굴인데, 우연히 나도 거기에 있어서 목격할 수 있었거든.

시작은 제로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신성 길드와의 충돌이었지만, 둘의 충돌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려는 찰나 암흑신교가 나타나더라고. 암흑신교의 추격자들은 총 37명이었는데, 그 구성은 암흑사제와 암흑성기사로 이루어져 있었어.

중요한 것은 암흑신교의 추적자들 개개인의 레벨이 족히 300이상으로 보였다는 거야.

솔직히 300이 뉘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현 최상위 랭커들이 겨우 300레벨을 넘긴 것을 생각해 보면 제로가 살아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거든?

근데 제로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는 거야! 그것도 암흑신교와 신성 길드, 양측의 합공을 받으면서!

솔직히 그 모습을 보면 이젠 경외심마저 느껴지더라.

시스템상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암흑신교와 오딘교. 뭐, 따지고 보면 신성 길드도 오딘교에 속하니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어찌 됐든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두 진영이 일개 유저 한 명을 노렸는데도 죽이지 못했다니.

제로의 레벨은 300이상인 걸까? 아니면 제로라는 유저 자체가 특출나게 뛰어난 걸까.

어쨌든 오늘의 정보는 여기까지야! 아, 혹시 몰라 말하는데 이거 구라 아니다?

그 증거로 스샷 하나 올리고 나는 이만 사라질게! 뿅!

[스크린샷]

* * *

“큰일 날 뻔했네.”

공간이 갈라지며 나타난 데스 게이트에서 몸을 빼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pk를 시작하면 신성 길드에서 개입할 것임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암흑신교 측에서도 자신을 죽이러 나타날 줄은 몰랐다.

뭐, 그래도….

“전직 조건은 충족했으니.”

제로는 손에 쥐어진 망자의 보옥을 내려다봤다.

죽음이 쌓이기 전의 망자의 보옥은 그저 투명한 검은 보석에 불과했다.

하지만 pk를 통해 죽음을 흡수한 망자의 보옥은 그 속에 잿빛의 기류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제로가 죽음을 흡수한 망자의 보옥을 쥐고, 망자의 연구실로 되돌아오자.

거대한 붉은 흉안의 형태로 존재하는 죽음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고생은.”

죽음의 말에 제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할까?]

끄덕.

죽음의 질문에 제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성배를 마법진 위에 올려서 물을 담고, 그 안에 망자의 보옥을 넣어.]

탁.

쪼르륵.

제로는 죽음의 말에 따라 인벤토리에서 검은 성배를 꺼내 마법진 위에 놓고.

검은 성배에 넘쳐흐를 것 같이 가득 물을 담으며 그 위에 망자의 보옥을 올려놨다.

검은 성배를 채운 물은 성수도, 혹은 특별한 무엇도 아닌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물이었지만, 망자의 보옥을 올려놓자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제로는 검은 성배 안에서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버린 물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다음은?”

[우선 의태의 반지부터 빼지?]

죽음의 말에 제로가 망설임 없이 의태의 반지를 빼 버렸다.

의태의 반지가 빠지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던 제로는 순식간에 이마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검은 뼈로 이루어진 리치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음은 간단해. 죽음의 성배에 담긴 물을 마시면 끝! 어때? 간단하지?]

“죽음의 성배?”

죽음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이름이 검은 성배라고 했던가? 어쨌든 알루타라는 잡놈이 사용하던 성물은 이제 내 성물이 되었어. 마신이라는 놈이 성물도 참 조잡하게 만들었더라. 뭐, 애초에 ‘거짓된 신’이 만든 것임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거짓된 신이라.’

제로는 죽음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끔씩 마주하는 죽음.

그것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죽음은 마치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에 속한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 그래도.

‘난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면 그만이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제로는 마법진 위에 놓인 검은 성배. 아니, 이제는 죽음의 성배가 된 그것을 확인했다.

[죽음의 성배]

등급: ???

분류: 성물

외차원의 존재, 죽음의 힘이 깃든 성배이다.

평범한 존재가 이 잔에 담긴 물을 마신다면 죽음에 집어삼켜져 소멸을 맞이하나, ‘특별한 존재’가 그 물을 마신다면 강대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으음.”

설명만 보면 검은 성배에서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특별한 존재가 마신다면 강대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이 문구를 보면 죽음의 성배는 단순히 ‘전직’을 위한 도구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안 마실 거야?]

“마셔야지.”

죽음의 재촉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로는 망설임 없이 죽음의 성배에 담긴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뼈로 이루어진 몸뚱이임에도, 죽음의 성배에 담긴 물은 제로의 입에 흘러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분해되어 뼈로 이루어진 몸뚱어리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렇게 죽음의 성배에 담긴 물을 모두 마신 제로가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에 의아해하려는 순간….

“큭!”

돌연 제로는 머리를 감싸 쥐며 털썩 쓰러졌다.

전신이 뜨거웠다. 아니, 싸늘했다.

너무나도 싸늘하고, 너무나도 차가워 도리어 뜨겁게 느껴졌다.

제로는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함에 있어 통각 설정을 하지 않았다.

통각 설정을 통해 통증을 줄인다면, 그만큼 몸이 둔해져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트 월드는 게임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의 통각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성배에 담긴 물을 마신 제로가 현재 느끼고 있는 고통은 그러한 통각 제어가 되지 않은. 마치 현실의 고통 그대로의 날것을 느끼는 듯한 고통이었다.

“이게 무…!”

극한의 추위에 도리어 뜨거움을 느끼게 만들어 버리는. 그와 함께 동반된 고통에 몸부림치는 제로가 죽음을 바라봤다.

죽음. 거대한 붉은 흉안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로를 역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죽음을 다루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너부터가 ‘한 번’ 죽음을 경험할 필요가 있어.]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가 죽음을 다스린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아?]

“그게 무슨 개소…! 크아아악!”

죽음의 말에 반박하려던 제로의 입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절규일지도 몰랐다.

게임 속 아바타가 아닌, 캡슐 속에 있을 현실의 육체가 죽어 간다.

1초, 1초가 흐를 때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메말라 갔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뛰는 심장의 고동은 점차 느려져만 간다.

육체를 뒤덮은 피부. 그 속에 자리 잡은 근육과 살점 따위가 순식간에 부패해 사라진다.

제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견뎌.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기도 해.]

[과연 네가 내 힘을 다룰 자격이 있는지.]

[산 자의 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루며 지배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시험이야.]

[그러니…, 강해지고 싶으면 버텨. 이빨을 으스러져라 악물고, 살이 찢어져라 주먹을 쥐어.]

[이걸 버티면 넌 한층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어.]

제로는 점차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말에 으득! 강하게 이를 갈았다.

그래, 버텨 주마.

어떻게 해서든 버텨 주마. 이것이 강해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면, 당당히 통과해 주마.

“날… 얕보지… 마…!”

제로는 점차 멀어져만 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제로의 입이 띄엄띄엄 열리며 악과 깡으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붉은 흉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제로가 느낀, 게임이면서도 현실의 육체가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느낌.

그것은 그저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캡슐에 누워 있는, 현실에서의 제로의 육체는 죽어 가고 있었다.

아니, 죽었다.

현실의 제로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검은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이마에는 제로의 생명이 응축된 붉은 보석이 만들어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검은 뼈로 이루어진 제로의 육신에 몰려든 죽음은 곧 다시 한번 살점과 근육, 피부 따위를 만들어 내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허상.

마치 로스트 월드 속 제로가 아이템 의태의 반지를 통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듯이.

현실의 제로 또한 ‘죽음’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극심한 고통과 충격에 정신을 잃은 제로는….

* * *

‘여긴?’

정신을 잃었던 제로가 눈을 뜬 장소는 전쟁터였다.

그곳에는 로스트 월드 속 장비를 걸치고, 로스트 월드에서 존재하던 스킬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이 싸우고 있는 존재는 현실의 동물이 돌연변이라도 일으킨 듯, 기괴하게 변해 버린 괴물들이었다.

제로는 괴물과 인간.

양 진영의 죽고 죽이는 전쟁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저것은….

‘미래. 혹은 과거에 있었던 허상계와의 전쟁.’

로스트 월드 속 장비를 걸치고, 로스트 월드 속 스킬들을 사용하며 괴물들을 학살하는 사람들은 플레이어라 불렸다.

그런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괴물들은 허상계에서 넘어온 허상괴라 불렸다.

어째서? 왜?

플레이어와 허상괴. 지구와 허상계. 그 둘의 죽고 죽이는 전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일까?

어째서 자신은 제3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내가 보이는 것일까.’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장의 최선두. 가장 앞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허상괴와 사투를 벌이는 플레이어들.

한 명, 한 명의 강함이 이미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를 초월해 초월자의 영역에 올랐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힘을 발휘하는 플레이어들.

제로는 그러한 플레이어들 사이에 껴서, 같이 초월적인 강함을 발휘하며 허상괴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은 그저 자신의 기억이 만들어 낸 허상일까. 아니면 자신의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전쟁이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은 무엇일까.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고.

다시 한번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며,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플레이 한 기억은 무엇이란 말일까.

그저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멸망. 그 현실로 들이닥친 상황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 낸 거짓된 기억인 것일까.

아니면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망상인 것일까.

그렇게 제로가 혼란한 눈으로 얼마나 전장을 내려다봤을까.

돌연 불꽃과 바람. 물과 대지. 네 개의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허상괴들을 학살해 나가는 ‘또 하나의 자신’와 눈이 마주쳤다.

정.신.차.려.

너.만.이.유.일.한.희.망.이.야.

‘뭐?’

제로가 반문했다.

또 하나의 내가 입을 움직이며 뭐라 말한다.

저것은 분명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인식한 제로가 어떻게든 또 하나의 자신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큭-!’

정신. 아니,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무언가.

마치 영혼 그 자체가 충격을 받았다는 듯. 제로의 모든 것이 뒤흔들리는 순간….

[상급 망자가 된 것을 축하해.]

어느새 제로는 로스트 월드 속 자신만의 공간, 망자의 연구실에서 눈을 떴다.

그런 제로를 향해 갈라진 공간 속에 자리 잡은, 붉은 흉안의 형태를 한 죽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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