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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29화 (29/200)

제29화

“네놈…! 그 기물을 어디서 손에 넣은 것이냐!”

“이거?”

오딘의 대신전을 침식하며 나아가는 죽음의 땅에, 센게라가 버럭 외쳤다.

제로는 센게라의 외침에 씨익 웃어 보이며 손에 쥔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보였다.

“그건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물이다!”

“지랄. 이건 나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신기야.”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센게라의 외침에 제로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네크로노미콘은 로스트 월드의 주민, npc의 시선으로 보자면 존재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하지만 유저의 입장에선 단순히 뛰어난 아이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네노오옴-!”

쾅!

센게라가 방패를 앞세우며 돌진했다.

그것은 성기사들의 기본 스킬인 홀리 대시였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허나 아니었다.

센게라가 취한 공격은….

“단순하네. 무식하리만치 방대한 양의 신성력을 방패에 집중시키고, 그대로 돌진이라니. 이건 스킬도 뭣도 아니야.”

옆으로 몸을 날려 센게라의 공격을 피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보통의 성기사였다면 홀리 대시를 사용하지, 저렇게 단순무식하면서도 낭비가 심한 공격 방식은 취하지 않는다.

즉, 저러한 공격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소문처럼 센게라에겐 공격 스킬이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놈-!”

제로의 비아냥거림에 분노의 일갈을 터트린 센게라가 궤도를 틀며 제로를 노렸다.

홀리 대시는 일직선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지만, 저것은 홀리 대시가 아니었기에 스스로가 마음대로 공격 궤도를 바꿀 수 있었다.

홀리 대시보다 신성력의 낭비가 심하지만, 어떻게 보면 홀리 대시의 상위 호환이라 볼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물론….

“그런 단순무식한 돌진을 누가 맞아 준대?”

그것도 누군가가 맞아 줘야 성립되는 공격일 뿐이다.

“본 월.”

콰르르-!

제로의 앞으로 검은 뼈로 이루어진 벽이 솟아 올랐다.

다수의 스켈레톤이 이리저리 얽혀 만들어진 그것은 어지간한 유저들의 공격 따위론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방어력을 자랑한다.

허나 상대는 ‘어지간한 유저’가 아니었다.

“그따위 어설픈 망자의 벽이 날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콰가강-!

센게라의 방패와 충돌하기 무섭게, 제로가 일으킨 본 월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제로는 너무나도 손쉽게 부서지는 본 월에 쯧! 하고 혀를 차며 손을 내뻗었다.

“다크 캐논. 본 스피어.”

콰가강-!

퍼버벅!

제로를 중심으로 검은 구체와, 거대한 검은 뼈의 창이 만들어지며 센게라를 향해 쏟아졌다.

센게라는 자신의 방패를 두드리는 다크 캐논과 본 스피어의 폭거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대지를 박차 더더욱 가속하며 제로와의 거리를 좁힐 뿐이었다.

‘대신전에 깃든 신성력의 영향인가. 데스 그라운드가 제힘을 발휘하지 않아.’

제로는 순식간에 좁혀지는 센게라와의 거리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데스 그라운드.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산자의 생명을 갉아먹고, 시체가 존재한다면 언데드로 되살리며.

제로와 같은 망자들의 힘을 극대화시켜 주는, 오직 네크로노미콘의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하나.

허나 데스 그라운드를 펼친 제로의 레벨은 아직 낮았으며, 오딘의 신성력으로 충만한 대신전 내부에서 발동한 영향인지, 센게라에게 그리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거리부터 벌리고…, 데스 웨이브.”

콰가강-!

제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죽음과 충돌한 센게라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제로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 죽음의 대리자로서 명한다. 죽음의 축복을 받아 되살아난 기사여. 나의 죽음의 대리자의 종복이여. 주인의 부름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라. 콜 데스 나이트 벤.”

쩌적-!

쩌어엉!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이 부서지며 한 기사가 튀어나왔다.

폭력과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하여 만든 듯한 갑옷을 걸치고, 등에는 최악의 마검이라 불리는 데스바인더를 매고 있는 죽음의 기사, 벤.

그가 제로의 부름에 응답하여 지금 이곳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자주 부르는 거 아니야?”

“애초에 그런 계약이었잖아?”

벤의 투덜거림에 피식 웃은 제로가 말했다.

한편, 데스 나이트 벤의 등장에 센게라의 표정은 한없이 일그러졌다.

“그 검은 데스바인더. 주신 오딘 님의 눈 아래 봉인되어 있어야 할 마검을 어찌…!”

“주신 오딘의 아래 봉인되어 있어?”

센게라의 말에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벤을 바라보자, 벤이 피식 웃었다.

“데스바인더를 오딘교가 봉인하고 있었더라고. 덕분에 오딘교와 적대도 맥스 찍었다.”

“그랬나?”

벤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로는 그저 데스바인더가 ‘어디에’ 봉인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을 뿐, ‘어떤 단체’가 그것을 봉인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것보다….

“그나저나 센게라라. 설마 저놈을 레이드 뛸 건 아니지?”

벤은 한눈에 상대가 센게라라는 것을 눈치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또한 센게라의 절대적인 방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첫 직업을 성전사로 했던 만큼, 대다수의 유저보다 더욱 확실하게 센가라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제로는 벤의 불평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반응에 벤은 ‘하아….’ 하며 깊은숨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지. 서포터는 확실하게 하라고.”

끄덕.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등에 멘 데스바인더를 뽑아 쥔 벤이 움직였다.

대지를 박차며 뛰쳐나간 벤은 순식간에 센게라의 앞에 도착했으며,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쥔 데스바인더를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후웅-!

카가가각!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휘둘러진 벤의 데스바인더가 센게라의 방패를 긁으며 듣기 싫은 괴음을 만들었다.

최악의 악조건이 겹쳐져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스 그라운드였지만. 완전히 억눌린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벤의 눈앞으로 다수의 버프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벤 또한 데스 그라운드가 주는 버프가 없었다면, 계약이고 뭐고 센게라와의 싸움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흡! 죽음의 검무!”

콰가가강!

스킬을 발동한 벤의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다.

데스바인더가 한 번,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뻥튀기되는 위력에 센게라는 차츰차츰 뒤로 물러섰다.

그 뒤를 이어.

“■■ ■ ■ ■ ■■■, 망자의 역린.”

영창을 끝낸 제로의 마법이 센게라를 향해 쏟아졌다.

데스 그라운드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망령이 허공에 뭉쳐 들며 다수의 창으로 변했다.

검은 스파크가 파지직 거리는 그것은 곧 망설임 없이 쏟아졌다.

허공에서 쏟아지는 망자의 역린의 궤적 상에는 분명 벤이 존재했음에도, 그것들은 기묘하게도 벤을 이리저리 피해 오직 센게라의 방패만을 두드렸다.

“크흠-!”

데스바인더를 앞세운 벤의 묵직한 검격과 쏟아지는 제로의 마법.

그 둘을 동시에 받아 내는 센게라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쓰레기들에게 이 정도까지 밀릴 줄이야.”

콰가강-!

쏟아지는 공격 속에 센게라가 뒤로 몸을 빼냈다.

그에 잠시 만들어진 소강상태에 제로와 벤의 시선이 센게라에게 꽂혔다.

“허나 나의 임무는 간악한 마신 알루타의 흔적을 지키는 것. 어쩔 수 없구나.”

구웅-!

센게라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를 중심으로 점차 공기가 무거워졌으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성스러운 신의 위광.”

파아앗-!

센게라가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리자, 그의 등 뒤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센게라를 중심으로 데스 그라운드를 밀어냈으며, 그저 휘광에 닿았을 뿐임에도 벤과 제로의 몸에서 짙은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미친….”

“이게 센게라의 진심?”

제로와 벤은 ‘성스러운 신의 위광’이라는 이름 모를 스킬을 발동한 센게라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해 보면….

“놈은 우리와의 전투에서 단 하나의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어.”

제로와 벤의 맹공 속에서도 센게라는 그저 방패만 들어 올렸을 뿐. 이렇다 할 성기사 특유의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정도의 방어력을 선보였던 센게라였는데, 스킬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네놈들의 공격은 나에게 닿지 않는다.”

쾅-!

속삭이듯 중얼거린 센게라가 대지를 박차며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단 세 번의 도약으로 순식간에 벤의 앞에 나타난 센게라는 망설임 없이 방패를 휘둘렀다.

“큭-!”

쩌엉!

벤 또한 다급히 데스바인더를 들어 올리며 방어했으나 소용없었다.

센게라의 방패와 충돌하는 순간,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폭발이 터져 나왔으며. 벤의 몸은 그 폭발의 위력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제로-!”

“알고 있어! 망자의 사슬-!”

촤라락-!

스쳐 지나가는 벤의 외침에 제로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발밑으로 튀어나온 수십 개의 사슬이 하나도 빠짐없이 센게라의 몸을 휘감으며 구속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흡!”

센게라가 짧은 기합성을 토해 내며 육체에 힘을 주자, 온몸을 휘감은 망자의 사슬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져 사라졌다.

“미친.”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제로가 욕설을 내뱉었다.

애초에 이번 돌발 이벤트는 암흑신교가 이길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시작의 도시의 성벽을 뚫고, 무수히 많은 유저들을 뚫어 오딘의 대신전에 도착하면 뭐 하겠는가.

저런 괴물이 검은 성배를 지키고 있는 한, 암흑신교의 패배는 이미 정해진 결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저놈을 죽일 필요는 없어.’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일 암흑신교에서 받은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센게라의 죽음이라면 단 1의 승산도 없다.

하지만 이 돌발 퀘스트의 진짜 목적은 ‘도난당한 검은 성배를 되찾는 것’.

굳이 저 괴물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벤! 잠시 시간 좀 끌어 줘!”

“1분. 그 이상은 못 해.”

“그 정도면 적당해.”

타닷-!

벤이 움직인다.

그가 발을 내딛은 자리에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의 전신에도 똑같이 검은 불꽃이 휘감았다.

데스바인더의 검신에는 죽음으로 이루어진 마력이 넘실거리며 둘러쳐졌다.

“망자의 일격!”

쩌엉-!

데스바인더와 센게라의 방패가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제로 또한 영창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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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입에서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이어질수록, 데스 그라운드를 이루는 죽음이 제로에게 빨려들 듯 흡수되었다.

그 이변을 눈치챈 센게라의 시선이 제로를 향하는 순간.

“한눈팔지 마!”

후웅-!

카가가각!

성난 외침을 토해 낸 벤의 데스바인더가 센게라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허나 센게라는 그저 방패를 비스듬이 눕히는 것으로 벤의 데스바인더를 흘리며 움직였다.

“놈!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순식간에 벤을 제친 센게라가 제로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제로는 눈앞까지 다가온 센게라의 방패에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늦었어. ■■ ■ ■■■ ■ ■ ■■■■, 멸망의 폭풍.”

콰가가가가-!

과거 잿빛 마탑의 보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거인을 집어삼켰던 마법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센게라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마법진이 새겨지고. 그 안에 갇힌 센게라를 중심으로 죽음이 휘몰아쳤다.

“네놈-!”

“거기서 열 좀 식히라고.”

제로는 멸망의 폭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센게라를 향해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것으로 센게라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검은 성배를 가지고 도망칠 수 있는 시간만 벌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제로는 봉인되어 있는 검은 성배를 회수하며 오딘의 대신전에서 몸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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