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그어어어어-!
콰가강!
괴성을 내지르며 휘두르는 망자의 거병의 거대한 주먹에 다수의 유저들이 튕겨져 나갔다.
단 일격에 죽어 버리는 유저들은 망자의 거병의 강함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허나 유저들 또한 손 놓고 당하고 있지 않았다.
“거인이라고 해 봤자 그 본질은 언데드!”
“저 괴물은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성벽 위에 있던 신성 계열 유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기사들의 방패가 망자의 거병의 공격을 막아 내고, 사제들의 턴 언데드가 집중된다.
성벽 안쪽은 시체가 없기에, 이대로 공격이 집중되면 망자의 거병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제로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였다.
‘아깝긴 하지만….’
“망자의 거병! 최대한 날뛰어라!”
어깨에서 뛰어내린 제로가 명령을 내렸다.
망자의 거병은 제로의 명령에 따라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타임 어택이다.’
망자의 거병이 벌어 줄 수 있는 시간은 최대로 잡아도 고작해야 10분.
제로는 10분 안에 오딘의 대신전에 봉인되어 있는 검은 성배를 탈취해야 했다.
굳이 퀘스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제로에게 있어 검은 성배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놈이 도망친다!”
“무조건 죽여!”
제로가 망자의 거병을 버리고 달려가자, 그 뒤를 유저들이 뒤쫓았다.
제로를 쫓는 유저들은 상대적으로 이동속도가 빠른 어쌔신이나 헌터 계열의 유저들이었으며, 그 뒤로 마법사들의 공격이 제로의 등을 노리며 쏟아졌다.
“칫, 죽음의 장막!”
펄럭-!
콰가강!
마법사들의 마법이 직격하기 직전, 죽음으로 이루어진 검은 장막이 제로의 몸을 뒤덮었다.
죽음의 장막은 마법사들의 폭격을 단 한 번, 막아 내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며 사라졌다.
“잡았다, 포이즌 어택.”
죽음의 장막이 사라지는 틈을 파고든 한 명의 어쌔신이 단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휘둘러지는 그의 단검에는 초록빛 액체가 뚝뚝! 하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욱-!
“잡았-!”
독이 발라진 단검이 제로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어쌔신 유저는 손에 쥔 단검을 통해 전해지는, 살을 베어 심장에 파고드는 감촉에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소용없어. 다크 캐논.”
콰앙!
“커헉-!”
안면에 직격한 다크 캐논에 어쌔신 유저가 비명을 토하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애초에 제로의 종족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의태의 반지에 의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 그 본질은 하급 망자. 이미 죽은 몸뚱어리는 심장이란 급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이상으로 독 따위도 통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유저들은 고레벨 어쌔신이 사용한 독에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는. 아니, 그 이상으로 심장에 단검이 꽂혔음에도 마법을 사용하는 제로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멍때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망자의 사슬.”
촤르륵-!
오딘의 대신전으로 달려가는 제로의 발밑으로 다수의 사슬이 튀어나왔다.
끝에 묵직한 추가 달려 있는 수십 개의 사슬들은 제로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냄과 동시에, 제로를 뒤쫓는 유저들의 발을 묶었다.
몇몇 유저들은 망자의 사슬을 뚫고 제로를 노렸으나, 이어진 제로의 마법 공격에 의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젠장-!”
결국 제로를 놓쳐 버린 유저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물러났다.
지금은 제로라는 한 명의 유저에게 집중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흑신교가 동원한 몬스터들이 시작의 도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학살자 제로를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퀘스트의 목적은 시작의 도시를 수호하는 것.
거기에….
“어차피 놈은 검은 성배를 가질 수 없어.”
한 유저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딘의 대신전에 봉인된 검은 성배의 곁에는, 현 최상위 랭커들이 달라붙어도 뚫을 수 없는 최강의 npc중 한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살자 제로가 강하긴 하지만 그 또한 일개 유저.
그를 뚫고 검은 성배를 차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유저들은 다시 성벽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시작의 도시 대로변을 따라 달려 나가는 제로는 더 이상 추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한숨 돌렸다.
“역시 그놈이 있나 보네.”
점차 속도를 줄여 나가는 제로가 중얼거렸다.
제로 또한 과거 혹은 미래에 이 돌발 퀘스트에 참가했다. 그렇기에 제로 또한 오딘의 대신전.
정확히는 암흑신교의 마수로부터 검은 성배를 지켜 내기 위해 ‘놈’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신의 방패, 센게라.”
신의 방패 센게라.
주신 오딘을 믿고 따르는 성기사 중 한 명이자, 로스트 월드 최강의 방패라 불리는 npc중 한 명이다.
정확한 레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단 한 번. 로스트 월드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 낸 이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유저들은 센게라의 레벨을 최소 800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공략 못 할 것도 없지.”
애초에 이것은 유저들을 위한 이벤트이자 퀘스트다.
센게라를 공략하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공략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센게라의 공략법을 생각하며 제로가 어느 정도 움직였을까.
어느새 제로는 오딘의 대신전 앞에 도착했다.
오딘의 대신전은 이름 그대로였다.
입구에 오딘의 신상이 놓인 그곳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순백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나 오딘의 대신전에 깃들어 있는 신성력은 상당했다.
“이건 좀 위험한데.”
제로는 대신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급 망자인 제로의 육체가 대신전에 깃든 신성력과 반발을 일으켰다.
눈앞에는 대신전의 신성력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메시지 창이 수없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역시나 대신전. 의태의 반지로도 속일 수 없다는 건가.”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는 왼손에 끼어 둔 의태의 반지를 빼 버렸다.
그에 제로는 인간에서 하급 망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의태의 반지로 힘을 깎아 먹을 필요는 없지.”
다시 한번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는 한 손으로 꽉 움켜쥔 네크로노미콘을 흘겨봤다.
[네크로노미콘]
공격력: ???~??? 내구도: 무한
등급: 레전더리(성장형)[0.62%]
특수 스킬: 사자 소생. 데스 그라운드. 데스 로어(봉인). 망자의 진혼곡(봉인) 특수 능력: 죽음의 지혜. 죽음의 가호. 영혼 수납.
특수 옵션: 지능+60 지배+60
제한: 죽음의 대리자
네크로맨시의 정수가 담겨져 있는 신물이다. 오직 죽음과 계약한 대리자만이 다룰 수 있다.
돌발 이벤트 덕분에 네크로노미콘의 성장은 이미 끝났다.
성장한 네크로노미콘의 능력은 레전더리 아이템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초라해 보였으나, 그것은 뭣도 모르고 하는 개소리였다.
네크로노미콘의 진정한 가치는 스탯의 향상 따위가 아닌, 봉인되어 있는 특수 스킬들에 있었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가히 로스트 월드의 밸런스를 붕괴시켜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개중에서 이번 성장을 통해 얻게 된 특수 스킬 중 하나인 데스 그라운드.
제로는 이것으로….
“센게라를 공략한다.”
신의 방패 센게라.
검은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쳐야만 하는 최강이자 최고의 성기사.
그를 공략할 것이다.
“그럼 가 볼까.”
꿀꺽.
나름의 긴장감을 품은 제로는 마른침을 삼키며 오딘의 대신전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 * *
저벅. 저벅. 저벅.
치이이익-!
대신전 내부로 들어간 제로의 몸에서 발생하는 검은 연기가 짙어졌다.
검은 성배가 봉인된 장소로 향하면 향할수록, 대신전 내부에 깃들어 있는 신성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제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대신전에 깃든 신성력을 뚫으며 움직인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지하에 마련된 거대한 공동이었다.
그 중앙에는 하나의 진이 그려져 있고, 그 진을 이루는 것은 다수의 성물이다.
성물로 만들어진 진의 중앙에는 새하얀 사슬로 꽁꽁 묶인 검은 성배가 존재했으며 그 앞에는….
“신의 방패… 센게라.”
“네놈은 간악한 마신 알루타의 노예가 아닌가 보구나. 검은 마탑의 쓰레기인가?”
제로의 말에 맞춰, 봉인진 앞에 앉아 있던 신의 방패 센게라가 입을 열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걸치고 있는 갑옷이 부딪히며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그나저나 네놈. 평범한 쓰레기가 아니구나. 언데드의 몸으로 이곳까지 당도하다니. 적어도 아크 리치 정도는 되어 보이는군.”
쿵-!
센게라가 등에 멘 방패를 꺼내 들었다.
저 방패야말로 센게라의 모든 것. 애초에 센게라에겐 공격 수단이 없다.
아니, 공격 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신의 방패라는 이명 그대로 그의 역할은 보호하는 것.
토끼 하나 죽이지 못할 정도로 공격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극도로 배제한 센게라는 그에 합당한 방어를 손에 쥐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에서 검은 성배를 수호하기 위한 역할로 뽑힌 것이다.
“어리석은 검은 마탑의 쓰레…!”
콰앙!
다시 한번 열리던 센게라의 입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방패 앞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과연 검은 마탑의 쓰레기라 이건가. 예의 따윈 존재하지 않는군.”
투구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쳐지는 센게라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 센게라의 눈에는 제로의 주변을 두둥실 떠다니는 다크 캐논이 엿보였다.
“우리가 사이좋게 대화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어리석은. 이것은 하나의 배려였다. 지금이라도 네놈이 도망칠 수 있게 해 주는 나의 배려. 허나 네놈은 그 배려를 스스로의 발로 걷어찼다. 이제부터는 존재하는 것은….”
‘네놈의 소멸뿐이다.’
구우웅-!
센게라의 입이 굳게 다물어지며, 그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등 뒤로 퍼져 나가는 순백의 위광이 거대한 공동을 뒤덮는 순간….
치이이익-!
제로의 몸에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작 신성력에 노출된 것만으로!’
제로가 칫! 하며 혀를 찼다.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제로의 종족은 하급 망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언데드.
센게라에게 공격이 전무하다 한들, 그저 신성력을 내뿜는 것만으로 제로의 체력은 실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레벨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단순하게 내뿜어지는 신성력 따위,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제로의 레벨로는 센게라가 단순히 내뿜는 신성력조차 상당한 위험으로 다가왔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꽈악-!
네크로노미콘을 움켜쥔 제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속전속결로 끝내자고. 데스 그라운드.”
파앗-!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의 특수 스킬, 데스 그라운드를 발동시켰다.
네크로노미콘으로부터 회색의 빛이 폭발하며 공동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제로가 딛고 있는 대지를 중심으로 죽음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공동을 가득 메운 신성력을 밀어내고, 역으로 집어삼키며 점차 영역을 넓혀 갔다.
“그 힘은…!”
센게라는 제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죽음에 놀란 목소리로 버럭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