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신성 길드의 사냥개, 홀리몰리.
그는 과거 혹은 미래에도 랭커가 아니었다.
아니, 정정한다.
그는 스스로 랭커로 ‘등록’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랭커 등록을 했다면, 최소 100위권 이내의 상위 랭커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직업은 이단 심문관.
이단 심문관은 암흑신교 혹은 제로와 같은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와 연관되면 폭발적으로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필 만나도 저 새끼를 만나냐.’
홀리몰리가 휘두르는 검을 피하며 제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현시점에서 가장 만나기 엿 같은 놈을 만나 버렸다.
‘그때 저 새끼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로의 기억상, 과거 혹은 미래에 있었던 돌발 이벤트 때 홀리몰리는 없었다.
미래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때 단순히 홀리몰리의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
어찌 되었든….
‘현 상황이 최악이란 건 변하지 않…!’
“다크 캐논!”
쾅!
생각에 잠겨 있던 제로가 다급히 외쳤다.
앞으로 펼쳐진 제로의 손바닥에서 거대한 검은 구체, 다크 캐논이 튀어나오며 홀리몰리의 검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하지만 홀리몰리는 다크 캐논의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흙먼지를 뚫고 나오며, 아무런 데미지도 없다는 듯 맹공을 펼쳐 나갔다.
“신의 은총이 깃든 나의 육체는 그 어떤 부정도 침투할 수 없다!”
“컨셉충 새끼가! 그냥 힐링이 집중된 것뿐이잖아, 시체 폭발.”
쾅!
콰강!
콰가가강!
홀리몰리 주변에 있는 시체들이 폭발했다.
시체가 넘쳐나는 전쟁터에서의 네크로맨서의 강함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로스트 월드가 아닌, 어떤 게임에서도 상식으로 통용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홀리몰리는 그 상식을 뒤엎어 버렸다.
아니, 시작의 도시의 성벽 위에 있는 신성 길드의 길드원들의 도움으로 그 상식을 뒤엎어 버렸다.
“너무한 거 아니냐?”
“신의 이름으로 네놈을 단죄하리라.”
‘허.’
홀리몰리의 대답에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애초에 홀리몰리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선과 의를 표방하는 길드라 한들, 그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더러운 일도 해야 한다.
홀리몰리는 신성 길드의 사냥개로서, 음지에서 그런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에게 타협이란 없었으며, 신성 길드의 적은 곧 그의 적. 그는 적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진다.
때에 따라선 비겁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렇기에 홀리몰리는 신성 길드의 사냥개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컨셉에 잡아먹힌 홀리몰리는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유저 중 하나였다.
‘이놈을 어떻게 처리한다.’
제로는 아슬아슬한 범위 내에서 홀리몰리의 공격을 피하며 주변을 훑어봤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주변 따윈 돌아보지 않는 공격 덕분에 주변의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홀리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제로는 홀리몰리의 공격에 꽤나 낭패를 봤을 것이다.
‘몬스터들로는 부족해.’
하지만 아무리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다 한들, 사제들의 지원으로 무한정 회복하는 홀리몰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이것은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로스트 월드의 첫 번째 이벤트. 시작의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는 몬스터의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유저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저 새끼들은 내가 뒤지기만을 바라나.”
제로는 몇몇 유저들이 자신과 홀리몰리를 의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허나 그들은 제로에게 일절 도움 하나 주지 않았다.
그들은 제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홀리몰리에게 죽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거리부터 벌린다.”
다크 캐논.
시체 폭발.
포이즌 포그.
다크 스파이크.
콰가가강-!
제로로부터 다종다양한 마법들이 튀어나왔다.
수십 발의 다크 캐논이 홀리몰리의 방패를 강타하고, 독으로 이루어진 안개가 주변을 뒤덮는다.
땅에서는 죽음으로 물든 가시가 튀어나와 홀리몰리의 갑옷을 두드리고, 사방에 너부러진 시체들이 폭발했다.
그 외에도 쏟아지는 다양한 마법은, 제아무리 홀리몰리라 하더라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홀리몰리와 거리를 벌린 제로는 망설임 없이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여기서 꺼내기에는 조금 아깝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망자의 병사, 망자의 정예병 캔슬.”
후두둑.
스킬을 캔슬하자, 성벽을 기어 올라가는 망자의 병사. 이미 올라가 유저들과 전투를 벌이는 정예병 등등의 육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것들을 상대하고 있던 유저들은 순간 의문을 내비쳤지만, 곧 몰려오는 또 다른 적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
■■ ■ ■■■ ■ ■■ ■.
제로의 입에서 명계의 언어로 된 영창이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짙은 죽음이 제로의 주변을 휘감으며 사방의 모든 것을 배척했다.
그것은 제로를 죽이기 위해 휘두른 홀리몰리의 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홀리몰리는 제로를 휘감은 잿빛의 연기에 자신의 검이 튕겨져 나가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따위 것! 힘으로 찍어 눌러 주마! 단죄의 불꽃!”
화륵-!
스킬을 발동하기 무섭게 홀리몰리의 검에 순백의 불꽃이 휘감겼다.
악명을 가진 유저. 혹은 악 성향의 몬스터나 npc등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는 단죄의 불꽃이 홀리몰리가 쥔 검의 검신을 타고 타올랐다.
“죽어라! 단죄의 일격!”
단죄의 불꽃에 이은 단죄의 일격.
홀리몰리가 가진 연계기 중 하나로, 지금까지 만난 적들을 일격에 죽여 버린 연계기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막아선 유저가 없던 일격이었기에, 홀리몰리는 이번에도 제로의 목을 베어 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후웅-!
카가가각!
허공에 순백의 궤적을 남기며 휘둘러진 홀리몰리의 검이 다시 한번 튕겨졌다.
홀리몰리는 검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졌다.
허나 찢어진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홀리몰리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단죄의 일격이 먹히지 않았…!”
쾅-!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홀리몰리가 다급히 몸을 날렸다.
홀리몰리가 서 있던 자리에는 잿빛의 안개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주먹이 내리꽂혀 있었다.
“몸을 일으켜라, 망자의 거병.”
쿠르르-!
잿빛의 안개 속에서 제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대지가 진동하며 거대한 무언가가 전장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10m가 넘는 키를 가진 거인이었다.
허나 그것은 평범한 거인이 아니었다. 온갖 시체가 짜깁기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유발하는 외형을 가진 그것은 시체의 거인이었다.
“여기서 꺼낼 놈이 아닌데 말이지.”
제로는 망자의 거병의 어깨에 올라타며 중얼거렸다.
망자의 거병은 제로가 망자의 연구실에서 만든 언데드 중 최대의 수확 중 하나였다.
제작에 사용된 시체의 숫자만 물경 200구. 거기에 투입된 재료비만 하더라도 기백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비싼 몸이 망자의 거병이다.
“물론 돈값을 하는 놈이지만 말이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망자의 거병은 양산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제작에 필요한 재료와 돈 때문에?
아니면 시체의 공급 때문에?
아니다.
망자의 거병은 시스템상으로 최대 3구밖에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강력함 때문에 그러한 제약이 걸렸다고 제로는 생각했다.
“망자의 거병. 쓸어버려.”
구어어어어-!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의 거병이 입을 쩍!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망자의 거병에 붙어 있는 패시브 스킬, 시체 거인의 위압. 그것이 발동하자 주변의 모든 유저들. 그리고 몬스터들이 움직임이 멈칫했다.
애초에 제로는 몬스터도, 유저들도. 그리고 암흑신교도 ‘동료’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체 거인의 위압은 전장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디버프를 안겨 줬다.
쿵-! 쿵-! 쿵-!
괴성을 내지른 망자의 거병이 움직인다.
그것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짓밟힌 몬스터와 유저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주먹이라도 한 번 휘두르면 모든 것을 날려 버리고, 발을 한 번 걷어차면 대지가 뒤엎어진다.
망자의 거병의 강함은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을 한참 벗어났다.
망자의 거병을 막으려면 유저들이 힘을 합쳐 레이드라도 뛰어야 할 것이다.
한편 망자의 거병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제로는….
“이대로도 강력하지만, 좀 더 강해져야지.”
중얼거린 제로가 슬쩍 밑을 바라보자, 망자의 거병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홀리몰리가 엿보였다.
“어디 보자. 망자의 불꽃. 망자의 원한. 명계의 삭풍.”
화르륵!
쩌적!
후우웅-!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에게 사용됐던 삼종 버프 마법이 망자의 거병에게 시전됐다.
망자의 거병 전신이 불꽃으로 타오르고. 그 위로 망자의 원한이 품은 냉기로 만들어진 갑옷이 걸쳐졌다.
망자의 거명 양발에는 명계의 삭풍이 휘감아 거병 특유의 느린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올려 줬다.
“저 거인을 막아라!”
버프까지 받은 망자의 거병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자, 시작의 도시에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 처절한, 진심이 담긴 그것은 유저가 아닌 npc 특유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한편 그러한 외침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유저들의 공격이 망자의 거병에게 집중되었다.
콰가강-!
다종다양한 마법과 화살, 신성 마법 등등까지.
최소 수백의 유저들의 공격이 집중되자 버프로 강화된 망자의 거병이 점차 뒤로 밀려났다.
패시브 스킬, 시체 포식을 통해 주변의 시체를 흡수함으로써 자가 회복을 하고 있는 망자의 거병이었지만, 이대로 공격이 지속되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부서진다.
“그건 안 되지. 죽음의 장막.”
펄럭-!
10m가 넘는 거구를 가진 망자의 거병이 죽음으로 이루어진 장막에 감춰진다.
동시에….
“내 몸이 버텨 줄지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지. 쉐도우 점핑.”
망자의 거병의 그림자가 꾸물럭거리더니, 곧 넓게 퍼졌다.
그 위에 서 있던 망자의 거병은 하나의 늪과도 같이 변해 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자의 거병이 사라지기 무섭게 죽음의 장막이 걷히고.
한창 공격을 퍼붓던 유저들은 사라져 버린 망자의 거병에 당혹감을 내비쳤다.
개중에는….
“제로-! 어디로 도망친 거냐!”
망자의 거병에 의한 데미지를 회복한 홀리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저들은 거대한 시체 거인이. 그리고 제로가 사라진 이유가 도망쳤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쉐도우 점핑을 통해 사라진 망자의 거병과 제로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그아아아아-!
“끄아아악!”
“이런 미친!”
“형이 왜 거기서 튀어나와?”
시작의 도시를 둘러싼 성벽 안쪽의 그림자.
그것이 점차 거대해지며 사라졌던 망자의 거병이 포효와 함께 튀어나왔다.
유저들은 도시 안에 나타난 망자의 거병에 당황했다.
“쿨럭-! 어찌어찌 성공했네.”
망자의 거병 어깨에 타고 있던 제로는 한 움큼 검은 피를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쉐도우 점핑은 말 그대로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스킬이다.
다만, 이동하는 대상의 크기와 질량에 따라 소요되는 사마력의 양이 달라지는데, 제로는 다소의 내상을 입긴 했으나 망자의 거병을 성벽 안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는…
“학살의 시간이다,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