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26화 (26/200)

제26화

[암흑신교의 침공을 막아라]

한 이방인에 의해 성물을 탈취당한 암흑신교가 시작의 도시를 침공합니다.

그들은 주신 오딘의 대신전에 안치된 암흑신의 성물, 검은 성배를 되찾기 전까지 침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선 주신 오딘의 대신전을 도와 암흑신교의 침공을 막으십시오.

난이도: Event

보상: 기여도에 따라 다름

이것이 시작의 도시에 모인 유저들이 받은 퀘스트였다.

로스트 월드가 오픈한 이래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이벤트에 유저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다만, ‘다소 특이한 유저’들.

시작의 도시가 아닌, 그 옆에 자리 잡은 숲에 모인 유저들이 받은 퀘스트는 사뭇 달랐다.

[도둑맞은 암흑신교의 성물, 검은 성배를 되찾아라]

이방인에 의해 도둑맞은 검은 성배가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주신 오딘의 대신전에 봉인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암흑신교를 도와 검은 성배를 되찾으십시오.

난이도: Event

보상: 기여도에 따라 다름

이것이 제로를 포함한, ‘악명’을 쌓아 올린 유저들이 받은 퀘스트였다.

“이왕이면 막는 쪽이 좋았는데 말이지.”

제로는 자신이 받은 퀘스트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암흑신교는 검은 성배를 되찾기 위해 대량의 몬스터까지 동원했다.

그것들을 시작의 도시라는 이점을 살린 수성전을 통해 죽인다면, 네크로노미콘을 성장시킬 수 있는 대량의 죽음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가 쌓아 올린 악명이 그 발목을 붙잡아 버렸다.

“아쉽단 말이지.”

제로가 다시 한번 ‘쩝’ 입맛을 다셨다.

한편, 그런 제로의 곁에는 수백에 달하는 유저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의 두 눈동자는 하나같이 붉었다.

그들 모두가 제로와 마찬가지로 악명을 쌓아 올려, 검은 성배를 되찾는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이었다.

다만, 그런 유저들 사이에서도 제로는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미친, 학살자 제로다.’

‘포스 지렸다. 나 실물은 처음 봤어.’

‘제가 걔지? 최초의 네크로맨서이자, 단신으로 매드 독을 무너트린.’

‘맞을걸? 거기에 신성 길드에서 척살령까지 내렸잖아.’

‘용케도 로월을 안 접었네.’

‘너 같으면 접겠냐.’

숲에 모인 유저들은 슬금슬금 제로를 훑어보며 쑥덕거렸다.

그들에게 있어 제로는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최초의 네크로맨서이자 길드 매드 독을 단신으로 붕괴시켜 버린 유저.

그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유저들을 pk 해 온 제로는, 대다수의 유저들에 의해 ‘학살자’라는 이명이 붙었다.

그렇게 유저들은 유저들대로.

제로는 제로대로 발생한 돌발 이벤트에 들떠있을 때, 그들의 앞으로 다수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암흑신 알루타를 상징하는 갈라진 달이 새겨져 있었다.

“위선적인 빛이 아닌.”

“순수한 어둠을 택한 이방인들이여.”

“너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겠다.”

“우리를 도와 마신 알루타 님의 성물, 검은 성배를 되찾아 주길 바란다.”

“만일 이번 전투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다면.”

“우리 암흑신교는. 그리고 마신 알루타께서는.”

“그 공적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마신 알루타를 신봉하는 사제들이 돌아갔다.

허나 이미 퀘스트를 받아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유저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또한 게임의 일부이다.

유저들은 그저 ‘누가’, ‘어떻게’, 검은 성배를 되찾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눌 뿐이다.

개중에서 마신 알루타의 검은 성배를 되찾을 만한 유저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당연 제로였다.

그렇게 유저들이 수군거리며 곧 시작될 싸움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숲 밖에서 돌연 ‘뿌우우우-!’하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진격하라!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숲 밖에 대기하고 있던.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모를 몬스터 대군이 시작의 도시를 향해 진격했다.

“시작했다!”

“죽여 버려!”

“성배는 내 거야!”

몬스터 대군이 움직이자 유저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하하 호호 웃고 떠들었지만, 애초에 악명을 쌓았다는 시점에서 그들에게 동료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유저들보다 먼저 검은 성배를 획득하기 위해. 혹은 다른 누구보다 많이 시작의 도시에 진을 치고 있는 유저와 npc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제로는 썰물 빠지듯 사라지는 유저들에 쯧쯧 혀를 찼다.

“애초에 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벤트란 말이지.”

제로 또한 과거 혹은 미래에 이번 돌발 이벤트를 겪었다.

그렇기에 그 결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마신의 침공은 시작의 도시의 승리로 끝난다.

아직 로스트 월드는 유저보다 npc들이 더욱 강하다.

특히나 주신 오딘의 대신전에 상주하고 있는 npc들은 하나하나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암흑신교 또한 성물을 탈환하기 위해 강자들을 보냈겠지만, 대신전에 상주하는 npc와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유저들의 벽을 뚫기란 요연했다.

하지만.

“미래는 언제든지 바뀌기 마련이지.”

제로는 씨익 웃으며 움직였다.

* * *

막아!

홀리 파이어!

파이어 레인!

쇼크 웨이브!

멀티 샷!

쓰로잉 대거!

시작의 도시와 암흑신교와의 전쟁.

그것의 시작은 의외로 비등했다.

시작의 도시 측 유저들은 대형 길드를 선두로 진형을 짜, 원거리 유저들의 무차별 폭격으로 몬스터들의 숫자를 줄였다.

그 뒤를 이어 근접형 유저들이 뛰쳐나가 무기들을 휘둘렀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띈 활약을 하는 것은 당연 신성 계열 유저들. 아니, 그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 신성이었다.

사제 따위의 직업들은 그저 다른 유저에게 회복이나 버프를 걸기만 해도 기여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암흑신의 축복!

암흑신의 진노!

암흑신의 철퇴!

사제는 시작의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 대군 사이사이에 포진해 있는 암흑신교의 사제들 또한 각자 신성 마법을 사용하며 어떻게든 성문을 뚫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그렇게 서로 간의 치열한 전투가 한창인 와중. 제로는 이벤트로 인해 사라지지 않는 시체들의 틈에 섞여 미소 지었다.

“이대로 가만히만 있어도 성장할 수 있겠는데?”

제로는 손에 쥔 네크로노미콘이 사방에 퍼져 있는 죽음을 미친 듯이 흡수하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 타인이 만들어 낸 죽음을 흡수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 낸 죽음을 먹어 치우게 하는 것이 더욱 효율이 좋았다.

“어디 보자. 시체도 얼추 쌓였고, 이제 움직여 볼까.”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10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분이란 시간 동안 시작의 도시를 둘러싼 성벽 근처에 쌓인 시체의 숫자만 해도 물경 십만이 넘어갔다.

그 대부분이 몬스터임을 감안하더라도 암흑신교 측의 크나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놈들도 움직이는 것 같고 말이야.”

시체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 제로가 주변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제로가 퍼트린 정보에 의해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유저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변에 퍼져 있는 대량의 시체를 통해 언데드를 일으키며 시작의 도시를 공격했다.

평범한 좀비, 구울, 스켈레톤을 시작으로 스켈레톤 나이트. 그레이트 좀비. 포이즌 구울 따위의 상위 언데드까지.

시작의 도시 측 유저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언데드에 당황했으나, 곧 신성 계열 직업군을 앞세워 방어했다.

“어디 보자…, 썩어 문드러진 몸을 일으켜라, 망자의 병사.”

쿠르르-!

제로를 중심으로 사마력이 퍼져 나가며, 주변의 시체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곧 살점과 근육 따위가 빠르게 부패해 사라지고, 검은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으로 변해 몸을 일으켰다.

“모조리 죽여 버려.”

그아아아-!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몸을 일으킨 망자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제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망자의 병사들의 숫자는 물경 일천.

주변의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일으킨 언데드의 숫자가 고작 수십인 것을 감안하자면,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역시 학살자 제로.”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었어.”

제로가 일으킨 망자의 병사를 본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감탄과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애초에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그들이었기에, 제로가 다루는 망자의 병사. 검은 스켈레톤이 특별한 언데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제로는 무언가 특별한 네크로맨서로 전직했을 것임을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로는 그런 유저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망자의 병사들을 일으켜 진격시켰다.

“검은 스켈레톤!”

“그놈이다!”

“학살자가 떴습니다!”

성벽 위에서 버프와 회복 마법을 사용하고 있던 신성 길드의 유저들이 외쳤다.

그들은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검은 스켈레톤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학살자 제로가 떴다는 것을 눈치챘다.

“위치를 특정해라!”

촤라락-!

제로가 떴다는 말에 한 유저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의 검에서 순백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오러가 뿜어질 때마다 다수의 망자의 병사들의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한편, 그 기사의 외침에 주변을 훑어보던 유저 중 한 명이 제로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전방 300m 앞! 놈이 검은 스켈레톤 나이트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신성력이 담긴 화살을 쏘아 대던 유저의 말에 기사가 음! 하는 울림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들은 나에게 버프와 힐을 집중하도록! 놈은 내가 죽인다!”

쿵-!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기사가 외치며 달려 나갔다.

그는 왼손으로 쥔 거대한 방패를 앞세우며….

“성스러운 돌진.”

콰가가가가-!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대량의 신성력을 내뿜으며,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는 기사는 불도저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나 언데드 따위를 짓뭉개며 나아갔다.

다소의 상처 따윈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찌어찌 상처를 입는다 하더라도…

“힐!”

“그레이트 힐!”

“힐링 웨이브!”

성벽 위에 포진한 사제들의 회복 마법에 곧바로 체력을 보충하는 기사였다.

제로 또한 한줄기 순백의 선이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신성 길드.”

“찾았다, 이 쓰레기 새끼.”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300m나 이어진 몬스터와 언데드의 벽을 뚫고 나타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죽여 주마. 홀리 크로스!”

“칫, 본 월.”

콰가강-!

제로의 앞에 검은 뼈로 이루어진 벽이 치솟으며, 기사가 쏘아 낸 십자가를 막아 냈다.

허나 상대는 사제들의 도움이 있었다 한들 몬스터와 언데드의 대군을 뚫고 제로의 앞까지 도착한 강자.

제로가 만들어 낸 뼈의 벽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폭발하며 무너져 내렸다.

“이럴 필요까진 없지 않냐?”

“지랄.”

후웅-!

제로의 말에 욕설로 답한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그는 분명 오딘의 성기사임이 분명했음에도, 그가 휘두르는 검은 방어에 특화된 성기사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 번, 한 번 휘둘러지는 검 속에 담겨진 공격력은 마치 공격에 특화된 광전사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너, 이름이 뭐냐?”

“나의 이름은 홀리몰리.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의 죽음을 희롱하는 자여. 그대를 신의 이름 아래 단죄하겠다!”

홀리몰리.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제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신성 길드의 사냥개, 홀리몰리. 하필 네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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