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진격하라.]
해골마에 올라타 있는 검은 스켈레톤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그것의 외침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이 로우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
로우 오우거는 레벨 250으로, 보통의 오우거보다 약하다.
그렇지만 현 유저들을 기준으로는 당연 강력한 몬스터에 속했다.
아무리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이 강하다 한들. 한 마리라 해도 로우 오우거를 사냥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제로는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에 둘러싸여 죽어 가는 로우 오우거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현재 제로가 있는 장소는 작은 포식자의 숲. 등장 몬스터는 로우 오우거와 리틀 트롤뿐이었지만, 개개인의 레벨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고레벨 사냥터에 속했다.
그러한 곳을 제로는 새로이 만든 망자의 광전사가 아닌,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만으로 사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뿐만은 아니지.”
속삭이듯 중얼거린 제로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곳에는 앞서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을 진두지휘하는 한 스켈레톤이 존재했다.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과 마찬가지로 검은 뼈로 이루어진 그것은 기사처럼 갑옷을 걸치고, 투구를 뒤집어쓴 채 해골 마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망자의 장군.
제로가 망자의 장군을 만든 것은 순전히 운에 가까웠다.
그나마 빠르게 조합식을 알아낼 수 있었던 망자의 광전사와는 다르게, 명계의 듀라한은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러던 와중, 열받은 제로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재료를 사용하다 탄생한 것이 바로 망자의 장군이었다.
개인의 강함으로는 망자의 광전사보다 살짝 약하지만, 망자의 장군의 강점은 개인의 전투력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제로가 통솔해 왔던 망자의 병사와 망자의 정예병의 통솔. 그것이 망자의 장군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확실히 장군이 지휘하니 세부적인 내용도 잘 알아먹는단 말이지.”
음음!
제로는 순식간에 로우 오우거 한 마리를 순살 시켜 버리는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망자의 장군이 지휘하는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은 대부분의 스탯까지 증가했다.
앞으로 수천, 수만의 언데드를 이끌어야 하는 제로에게 있어 망자의 장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행운이었다.
다만….
“명계의 기사를 만들면 왠지 뒷전으로 밀려날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쩝.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제로는 망자의 장군을 선두로,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 그리고 몇 없는 망자의 광전사를 이끌고 작은 포식자의 숲을 휩쓸고 다녔다.
작은 포식자의 숲이 아무리 고레벨 사냥터라 하더라도 게임에 미친 한국인 특성상 사냥을 하는 유저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한 유저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언데드 대군이 작은 포식자의 숲을 독점하다시피 하자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러한 언데드 대군을 이끄는 것이 네크로맨서요, 그러한 네크로맨서가 두 눈이 피처럼 붉은 머더러라는 것을 알기 무섭게….
“이렇게 된단 말이지.”
제로가 고개를 비틀자, 1mm의 차이로 하나의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강맹한 마나가 담긴 화살이 제로를 스쳐 지나가자, 저 멀리서 한 유저의 ‘깝샷!’ 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에휴.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말이야.”
제로는 자신을 노리는 유저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로스트 월드 첫 대규모 이벤트가 열린다. 로스트 월드에서의 이벤트는 ‘거의 대부분의 이벤트’가 GM이 아닌, 유저들의 플레이에 의해 일어난다.
이번에 제로가 노리고 있는 이벤트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그 이벤트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로우 오우거와 리틀 트롤의 시체를 구해,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어 대비를 해야 했다.
그러한 것도 모른 채, 유저들은 그저 마냥 머더러라고 덤벼들기만 하니….
‘귀찮은 것도 이것만 한 것이 없다니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멋모르고 덤벼든 유저가 망자의 광전사의 대검에 썰려 죽음을 맞이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유저는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몬스터 또한 죽으면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만, 제로가 익힌 스킬 ‘시체 수집’에 의해 그 시체를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저의 시체는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수집하려 하면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점이 제로로서는 상당히 아쉬웠다.
그렇게 제로가 수많은 언데드에 둘러싸여 생각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곁에 있던 망자의 장군이 입을 열었다.
[로드,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래?”
장군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머더러 사냥!’ 이라며 열을 올리며 덤벼들던 유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제로의 언데드 대군이 숲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개인이 하나의 사냥터를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제로를 무시하고 사냥을 해도 상관없을 텐데.
“이게 다 신성검왕 때문이라니깐.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놈 때문에 신성 길드가 성명문을 내걸고, 그 덕분에 평범한 유저들 사이에서도 머더러 척살! 이라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단 말이지. 레벨도 높은 것들이 데스 페널티가 무섭지도 않나.”
제로는 죽은 유저들을 향해 쯧쯧!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사냥이나 계속하자.”
[알겠습니다, 로드.]
아직은 시체의 숫자가 부족했다.
로우 오우거와 리틀 트롤의 시체라면 상당히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 수 있을 터. 이왕 나온 김에 최대한 많이 수집해 돌아가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로는 언데드 대군을 이끌며 거침없이 작은 폭군의 숲을 휘저으며 돌아다녔다.
* * *
“헉! 헉!”
음습한 동굴.
천장에 박힌 라이트 스톤이 만들어 내는 은은한 빛이 전부인 그곳을 한 유저가 달리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달리는 유저의 품에는 검은 오오라를 내뿜는 하나의 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젠장! 언제까지 쫓아오는 거야!”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듯 달리는 유저가 버럭 외치기 무섭게, 그의 뺨을 스치며 검은 화살이 바닥에 틀어박혔다.
달리던 유저는 자신의 앞에 틀어박히는 검은 화살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그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검은 잔을 성난 눈으로 노려봤다.
운 좋게 히든 퀘스트를 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퀘스트 덕분에 파티원들은 모조리 죽어 버렸고, 자신 또한 정체 모를 적에게 뒤쫓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검은 잔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것을 시작의 도시에 있는 주신 오딘의 대신전에 전달만 하면 막대한 경험치와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다.
고작 이따위 추적자들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여기만 지나…!”
끼이익!
푹!
동굴을 빠져나온 유저가 다급히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유저의 발밑으로 다수의 검은 단검이 틀어박혔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아까 전의 검은 화살도 그렇고. 이번의 검은 단검도 그렇고.
정체 모를 적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어딘가에 박힐 때마다,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이 검게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이다.
유저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서자 그 앞으로 다수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다수가 검은 야행복을 걸치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어쌔신이었으며. 중간중간 검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흑마법사…!
“니들, 설마 흑마법사냐?”
무언가를 눈치챘다는 듯 말하는 유저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그딴 쓰레기들과 비교하지 마라.”
“그것은 암흑신의 성물.”
“네놈 같은 이방인 따위가 건드릴 물건이 아니다.”
암흑신이라고?
그 단어에 유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차라리 상대가 흑마법사. 즉, 흑색 마탑에서 나온 추적자인 편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암흑신교.
그들은 주신 오딘과 대치하는 마신 알루타를 신봉하는 자들로, 유저들 사이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집단이다.
가끔 오딘의 대신전에서 암흑신교에 대한 퀘스트를 내주기 때문이다.
“젠장. 하필이면….”
주변을 훑어보며 눈치를 보던 유저가 돌연 바닥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스킬까지 사용하며 달려 나간 유저는 순식간에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암흑신교의 추적자들을 지나쳤다.
“쫓아라. 그리고 회수해라.”
파밧-!
사제의 말에 어쌔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한편, 암흑신교를 지나쳐 달리는 유저의 표정은 필사적이었다.
반드시 이 퀘스트를 완료해야 한다.
수십 년간 게임을 해 온 플레이어로서의 감각이 지금 외치고 있었다.
이 퀘스트는 어쩌면 메인 퀘스트에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했다.
메인 퀘스트는 게임의 스토리를 꿰뚫는 핵심 중의 핵심.
그 보상도 보상이었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손으로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려 나갔을까.
끈질기게 따라붙는 어쌔신들을 따돌리며 나아간 그의 눈에 저 멀리, 시작의 도시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로 따지자면 수 킬로미터는 남았겠지만, 성벽이 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들은 뭐야!”
“돌발 퀘스트인가?”
시작의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유저들이 많아지기 마련.
그는 사방에 깔려 있는 유저들을, 자신을 뒤쫓고 있는 암흑신교를 막아내기 위한 고기 방패로 사용했다.
점차 시작의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더욱 집요하고 잔혹해지는 암흑신교의 추적.
허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헉! 헉!”
시작의 도시의 성문을 지나치기 무섭게 달리던 유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그를 미친놈처럼 봤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작의 도시에 들어온 이상, 이제 암흑신교의 추적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품은 검은 잔. 암흑신교의 성물을 꽉 움켜쥐며 오딘교의 대신전으로 향했다.
* * *
[퀘스트-암흑신교의 침공을 막아라(E)가 생성되었습니다.]
[강제 퀘스트입니다.]
[퀘스트를 받으신 모든 유저 분들은 시급히 시작의 도시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의 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킬로 내에 사냥을 하고 있던 유저들은 하나의 강제 퀘스트를 받았다.
‘암흑신교의 침공을 막아라’라는 이름의 퀘스트는 E등급의 퀘스트로, E등급은 ‘이벤트’를 뜻하였기에 유저들은 놀람, 기쁨, 즐거움 등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품으며 시작의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당연하게도 의태의 반지를 사용해 본모습을 숨긴 제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드디어 시작됐네.”
이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던 제로는 ‘설마 이것도 바뀐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이벤트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그것’은 상당한 중요도를 자랑했으며.
그 외에도 이번 이벤트는….
“네크로노미콘을 성장시키기에 최적의 이벤트지.”
제로의 손에 쥐어져 있는 네크로노미콘의 성장도는 80%에 육박했다.
조금만 더 사냥을 한다면, 네크로노미콘은 유니크에서 레전더리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렇게 제로는 돌발 이벤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치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