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신성 길드의 길드 마스터 신성입니다.]
작성자- 신성
추천: 9999+ 비추천: 354
거두절미하고 짧게 말하겠습니다.
이틀 전, 한 머더러 집단이 저희 신성 길드의 길드원들을 PK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저희 신성 길드에 막 가입하신 분들을 노려 PK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그때의 기억으로 로스트 월드를 접는 상황까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신성 길드는 이를 명백히 의도적인 신성 길드에 대한 테러 행위로 간주하여 그들에게 척살령을 내렸습니다.
만에 하나 그들과 친분을 쌓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 즉시 그들을 손절하시기를 바라며, 바랍니다. 저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현상금을 걸고자 합니다.
만일 이들을 발견하고, 저희 신성 길드에 그들에 관한 위치를 제보해 주신다면 500만 골드를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댓글-9999+]
[로월짱짱맨] 추천: 211 비추: 22
-미친;; 대가리에 총 맞은 거 아님? 어떤 미친 새끼가 신성 길드를 테러함? 그것도 이제 막 가입했다면 초보 유저들일 텐데ㄷㄷ 정의구현 가나요?
ㄴ추천냠냠- 응 아니야
ㄴ페로로페로- ㅈㄹㄴㄴ
ㄴ오딘가슴짱- 자 드가자~
[로월정보통] 추천: 322 비추: 62
-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성을 건드린다고? 아무리 머더러라지만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님?
ㄴ핥핱- 저 새끼들 악명 씻어도 파티 사냥은 종 친 거 아님?
ㄴ머리에총맞음-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성 길드면 거의 탑티어 급 길드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같으면 그냥 캐삭하고 다시 키운다
ㄴ어질어질하다-어질어질하네
ㄴ닉값충-윗분 닉값 하시네
아침 10시.
로스트 월드 공식 사이트는 신성 길드에서 내건 성명문에 활활 불타올랐다.
길드 마스터가 직접 올린 글에는 총 여섯 명의 유저들을 캡처한 스크린 샷이 첨부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은 대다수의 유저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 줬다.
신성 길드는 한창 세를 불려 나가는, 길드 랭킹이 도입되기만 하면 최상위권 길드임이 확정된 곳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유저들은 어떤 미친놈이 신성 길드를 건드려? 그 새끼들은 로생 끝났다! 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또한….
“하, 골 때리네.”
로스트 월드에 접속해 한창 사냥에 열중이던 제로 또한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신성 길드의 성명문을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인데 하필이면 가장 귀찮은 일에 걸려들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신성검왕. 어째 닉네임이 익숙하다 했더니 그 얍삽한 새끼였네.”
퍼억-!
본 스피어를 날려 하이 오크를 죽여 버린 제로가 중얼거렸다.
신성검왕.
왜 처음 만났을 때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과거. 아니 다가올 미래.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가장 최전방에서 싸웠던 세력 혹은 길드 중에는 당연 10강이라 불렸던 신성 길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내부 분열이라 알려져 있지만, 제로와 같은 최상위 유저들은 신성 길드가 왜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신성 길드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인 간부진들의 대거 이탈.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허상계로 진영을 옮겨 버리는 인류에 대한 배신까지 저질렀다.
그 덕분에 가장 중요한 전력이라 할 수 있던 사제들이 대다수 죽어 버려 이는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그때 간부진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신성 길드를 배신했던 인간쓰레기가 바로….
“신성검왕. 네놈이었지.”
으득-!
신성검왕의 얼굴을 떠올린 제로가 강하게 이를 갈았다.
“그나저나 참 어이가 없네. 뭐? 초보 유저만 골라 PK했다고? 구라도 참 정도껏 쳐야지. 아니, 그것보다 이딴 구라에 속아 넘어가는 신성은 또 뭐야?”
확실히 전쟁 도중, 처음 만났던 신성은 그런 이미지였다.
누구의 말도 의심하지 않는 순수 그 자체.
그렇기에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말 그대로 죽이고, 죽어 나가는 그런 전쟁을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던 사람.
아니….
“그랬기에 자애의 성자라 불렸겠지.”
후웅-!
퍼억!
달려드는 하이 오크를 본 스피어를 이용해 죽여 버린 제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남을 의심하지 않는 그 순수함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거겠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신성검왕은 그 특유의 세치 혀를 놀리며 어떻게든 자신과 켄달과 그의 친구들을 악역으로 몰아넣었을 것이고.
같은 길드의 간부진이 하는 말을 믿은 신성 길드는 이런 쓰잘데기없는 성명문을 내건 것이겠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로는 다시 한번 비웃음을 흘렸다.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네.”
취익-!
퍼억!
달려드는 하이 오크가 망자의 정예병의 검에 베여 쓰러졌다.
제로는 자신의 발밑에서 아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하이 오크를 보다/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제로가 있는 장소는 평균 220레벨 이상의 유저들의 사냥터 중 하나인 하이 오크의 대부락이었다.
상당히 고난이도로 알려진 사냥터 중 하나였음에도 하이 오크들은 제로가 소환한 망자의 병사들과 망자의 정예병들에 의해 학살당하는 중이다.
아무리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의 강함에 한계가 명확하다 해도, 제로의 스킬 레벨과 스탯에 비례해 강해지는 특성상.
하이 오크 정도는 충분히 썰어 버릴 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제로는 그렇게 죽어 나가는 하이 오크의 시체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학살당하는 하이 오크를 바라보는 제로의 두 눈동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 심성은 전쟁과 어울리지 않아. 최대한 빨리 그의 뒤를 이을 유저를 찾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의 정신상태 자체를 버리든가 해야겠네.’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어디론가를 향해 움직였다.
* * *
“그럼 시작해 볼까.”
하이 오크 대부락에서 자취를 감춘 제로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1회성 던전 중 하나인 배신자의 은신처였다.
아니, 이제는 제로가 ‘던전 마스터’로 있는 망자의 연구실이란 이름을 하게 된 던전이었다.
1회성 던전.
타 게임에는 없었던 시스템 중 하나로, 로스트 월드만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이다.
1회성이란 이름 그대로 한 번 클리어하면 그대로 기능이 정지되는 특성상, 관련된 히든 피스가 발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허나 1회성 던전과 관련된 히든 피스는 별거 없었다.
이미 클리어된 1회성 던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상주하고 있으면 히든 피스가 발동.
상주하고 있는 1회성 던전의 주인이 되는 던전 마스터라는 특수 직업을 획득할 수 있는 게 다였다.
다만, 이것도 평범한 유저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으며, 오직 제로와 같은 ‘악명’을 쌓은 유저. 혹은 제로나 벤처럼 인간에서 다른 종족이 된 유저에게만 해당됐다.
던전 마스터는 말 그대로 던전을 관리하는 직업으로, 중앙의 던전 코어를 지키며 던전에 들어온 유저들을 털어먹는 직업이었다.
미래에도 몇몇 던전 마스터들이 있었다. 개중 가장 유명한 던전은 절대 클리어 할 수 없다 여겨진, 뱀파이어 유저가 던전 마스터로 자리 잡고 있는 피의 거성이었다.
물론 지금은 제로의 또 다른 이름인 로월정보통에 의해서, 그리고 아카식 레코드에 남긴 기록을 통해 로월을 즐기는 모든 유저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렇게 제로가 자리 잡은 망자의 연구실은 말 그대로 연구실이었다.
새로운 언데드를 만들기 위한 장소이자 더욱 강한 언데드를 연구하기 위한 장소.
“으음. 일단 시체는 하이 오크로 충분하겠지?”
수많은 배양관과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는 연구실 중앙에서 제로는 아공간을 열었다.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짙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내자 어둠을 품은 아공간은 망설임 없이 수백 구의 하이 오크의 시체를 토해 냈다.
다만, 기계처럼 움직이는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의 특성상 하나같이 성한 시체가 없었다.
“이게 문제네. 차라리 벤한테 부탁할 걸 그랬나.”
하찮은 불평을 늘어놓은 제로가 움직였다.
이곳저곳 널브러진 하이 오크의 시체를 테트리스 맞추든 맞추자, 어느새 제로의 앞에 ‘부위가 맞춰진’ 하이 오크의 시체 10구가 만들어졌다.
“으음. 일단 만들어야 할 건….”
현재 제로가 만들려고 하는 언데드는 망자의 광전사.
말 그대로 광전사로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중된 언데드였다.
그 강함도 망자의 정예병들보다 강해 이론상 최소 280레벨 이상에 다다르는 강함을 지녔다.
물론 제로는 망자의 광전사만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잿빛 마탑을 통해 획득한 ‘죄인이 된 기사의 시체’와 ‘영혼석’을 통해 명계의 목 없는 기사, 듀라한 또한 만들 생각이었다.
명계의 듀라한은 평범한 네크로맨서들이 다루는 것 이상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영혼석까지 사용하게 되면 이론상….
“최소 350레벨 이상의 강함을 발휘하겠지.”
350레벨이면 현존하는 랭킹 1위보다 높은 레벨이다.
그만한 언데드를 다수 보유한다면 아직 획득하지 못한 히든 피스들. 그리고….
“조만간 열릴 이벤트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겠지.”
음음!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
제로는 눈앞에 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흥흥~’ 낮은 콧노래를 불렀다.
* * *
시작의 도시에 자리 잡은 길드 하우스.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회의실에는 신성 길드의 마스터, 신성을 포함해 대다수의 간부진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도 못 찾았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유저들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보들이 거짓이라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도둑 길드에 대한 의뢰는 어떻습니까?”
“그, 그것이….”
신성 길드의 마스터, 신성의 질문에 앞에 서 있던 유저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답답한 모습에 신성. 아니, 그의 곁에 있던 간부들 중 하나인 신성검왕이 버럭 소리쳤다.
“도둑 길드에서 뭐라 대답했다는 거냐!”
“그, 그것이! 저희가 의뢰한 머더러에 대한 정보는 자기들도 감당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면서 의뢰를 반려하고 있습니다.”
“끄응.”
유저의 대답에 신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도둑 길드.
흔히 어쌔신 길드라고도 불리며 돈만 쥐어 준다면 제국 황제의 목이라도 가져다준다는 악명 높은 길드가 어째서 일개 머더러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일까.
혹….
“다른 길드에서 의도적으로 행한 일은 아닐까요?”
신성의 물음에 모여 있던 대다수의 간부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현존하는 길드들 중, 신성 급의 길드는 몇 존재한다지만 도둑 길드의 덩치와 영향력은 신성 길드를 압도했다. 그런데 신성과 같은 급의 길드가 두려워 머더러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간부들의 반응에 신성이 하아…, 깊은숨을 토해 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세요. 저희 신성을 건드린 것도 건드린 것이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초보 유저분들만 노려 PK했습니다. 전 절대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성의 말에 보고를 올리던 유저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신성은 그런 유저의 뒷모습을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모든 사달의 원흉인 신성검왕은….
‘그 개자식들만큼은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백인의 무덤에서 제로에게 받았던 굴욕을 상기하며 분노를 곱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