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23화 (23/200)

제23화

“본 스피어.”

퍼억-!

거대한 흑골의 창에 머리를 꿰뚫린 제로의 도플갱어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제로는 도플갱어가 죽은 자리를 뒤적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드랍률 봐라.”

의태의 반지는 오직 도플갱어만이 드랍하는 아이템이다.

그것을 한 번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 잠시 휩싸이기는 했으나,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아니….

“한 번에 먹은 게 말이 안 되긴 했어.”

미래에도 의태의 반지를 가지고 있던 유저가 몇 없던 것을, 아니 애초에 그 존재 자체를 알고 있는 유저 자체가 별로 없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한 번에 먹은 것 자체가 버그나 다름없었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과 함께 서 있을 때.

돌연 등 뒤의 철문이 구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며 다섯 명의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장궁을 맨 궁수, 한 손에 오브를 쥔 마법사. 등에 거대한 방패를 멘 전사.

허리춤에 채찍을 찬 여인과 마지막으로 검은 야행복을 걸친 어쌔신까지.

개중 거대한 장궁을 맨 궁수, 켄달은 도플갱어가 있던 자리에 서 있는 제로를 발견하기 무섭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저건 컨셉에 먹힌 거야, 뭐야.’

제로는 자신을 향해 외치며 달려오는 켄달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전직 컨셉 자체가 스승과 제자이며, 자신을 통해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다지만.

저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켄달의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인 듯, 켄달을 향하는 그들의 표정은 ‘저 미친놈. 또 저러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승님! 스승님이 주신 임무를 완료하고 돌아왔습니…!”

“본 월.”

꾸엑-!

제로를 향해 달려들던 켄달이 바로 앞에 솟아오른 뼈의 벽과 충돌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진정하거라.”

“넵!”

제로의 말 한마디에 켄달이 벌떡 일어났다.

나머지 네 명의 유저들은 그런 켄달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곁에 모여들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이더냐?”

“제 친구들입니다! 모두 스승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흐음.”

켄달의 말에 제로의 공허한 두 눈구멍에 검은 귀화가 일렁였다.

네 명의 유저들은 묘한 압박감을 발휘하는 제로에, 이곳이 로스트 월드라는 이름의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백인의 무덤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랬는데…, 확실히 피 냄새가 진동을 하네.’

제로는 하나같이 붉은 눈을 한 그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칭호 최초의 살인자는 같은 머더러를 알아볼 수 있는 효과 또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타 게임과 같이 편리한 기능은 아니었다. 그저 ‘피 냄새가 짙다, 옅다’ 정도로만 알려 줄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짙은 피 냄새를 풍긴다면. 그리고 그들의 두 눈동자가 피보다 더욱 붉게 물들어 있다면.

‘수치로만 따져도 최소 6,000이상의 악명을 쌓았겠지.’

제로가 켄달에게 줬던 퀘스트, ‘죽음을 쌓아 올려라’의 완료 조건은 악명 수치를 최소 5,000이상 획득하는 것이었으니.

‘이 정도면 나름 통과점은 되겠지.’

음음!

생각을 정리한 제로는 진중한 분위기를 만들며 켄달을. 그리고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과거와는 달리 농밀한 죽음이 느껴지는구나. 네놈뿐만이 아니라 네놈이 친구라 부른 저들 또한.”

“그렇습니다. 제 친구들 또한 스승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죽음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거 상당히 오글거리네.’

켄달의 대답에 제로가 속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컨셉을 잡지 않는 건데.

켄달의 친구라는 네 명의 유저들 또한 이 오글거리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였다.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자.’

“좋다. 그럼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지.”

우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로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졌다.

이것은 켄달을 포함한 다섯 명의 유저들이 도착하기 전, 제로가 만든 것으로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저들의 전직은 죽음과의 계약으로 완료되는 것이었고, 죽음을 부르는 데에는 별다른 조건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멋이 살아나지 않기에, 제로는 약간의 ‘시각적인 이펙트’를 위해 일부러 마법진을 준비했다.

켄달 외 네 명의 유저들은 제로의 발밑에 새겨지는 마법진과, 그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사마력에 꿀꺽!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켰다.

‘죽음?’

[왜?]

‘부탁할게.’

제로의 말에 죽음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눈앞의 다섯 유저와 계약하겠다는 죽음의 의지는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한편, 마법진의 중앙에선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그 중앙의 공간이 갈라지며 짙은 심연을 품은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과거 벤이 죽음의 기사로 전직할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 이것은?”

“당황하지 말거라.”

당혹감 넘치는 켄달의 목소리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쯤 저들은 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아마 공포나 혼란 따위에 걸렸다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겠지.’

“지금부터 너희들은 죽음과 계약을 맺어,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죽음과 계약을 맺는다면 너희들은 죽음이 가진 지식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꿀꺽-!

고요한 적막 속에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허나 누구 하나 그것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눈동자, 죽음. 그리고 죽음이 제안하는 계약에 온 신경을 집중시킬 뿐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저들과 죽음과의 계약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악명 5,000이상의 조건도 제로가 달았을 뿐, 애초에 죽음과 계약을 맺기 위한 조건은 따로 없었다.

그 증거로 저들이 거대한 눈동자, 죽음을 응시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오오-!”

기쁨에 괴성을 내지르는 켄달을 시작으로 다섯 유저의 몸 곳곳에 계약의 증거가 새겨졌다.

[켄달 님이 죽음의 추적자로 전직합니다.]

[방패킹킹맨 님이 죽음의 수호자로 전직합니다.]

[데스메이지 님이 죽음의 탐구자로 전직합니다.]

[암살원툴 님이 죽음의 그림자로 전직합니다.]

[흑장미 님이 죽음의 조련사로 전직합니다.]

“전직했다!”

“처음엔 개소리로 생각했었는데, 네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오는구나!”

“내가 뭐랬냐! 나만 믿고 따라오면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전직을 끝마치기 무섭게 다섯 명의 유저들이 희희낙락 대화를 나누었다.

제로는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그나저나….

‘하나같이 닉네임이….’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닉네임을 너무 성의 없게 지은 거 아닌가?

제로는 그러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백인의 무덤에서 만났던 신성검왕도 그렇고.

미래를 알고 있는 제로로서는 유저들이 조금만, 조금만 더 로스트 월드에 진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하긴, 그래 봤자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상, 게임에 과몰입하는 게 더 이상하지.’

제로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켄달이 꾸벅 제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별거 아니다. 앞으로 나의 제자로서 더욱 많은 죽음을 쌓아 올리고, 세계에 더욱 많은 죽음을 퍼트리거라.”

[퀘스트-세계에 죽음을 퍼트려라를 부여하였습니다.]

[보상을 설정하여 주십시오.]

“만일 너희들만의 힘으로 내가 만족할 만한 정도로 죽음을 퍼트린다면,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아티팩트의 정보를 알려 주도록 하마.”

아티팩트!

제로의 입에서 나온 ‘아티팩트’라는 단어 하나에 켄달을 포함한 다섯 유저 모두가 두 눈을 빛냈다.

NPC가 아티팩트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그 아이템의 등급이 최소 에픽 이상일 때였다.

로스트 월드가 오픈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풀린 아이템의 최고 등급은 유니크 등급이었다.

그마저도 극소수의 유저만이 가지고 있으며, 에픽 등급만 되도 현금 수천만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니, 게임을 즐기면서,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가진 유저의 입장에선 군침을 흘릴 만한 보상이었다.

“그럼 가거라. 가서 세계에 더욱 많은 죽음을 뿌리거라.”

“알겠습니다!”

켄달이 대표로 대답하며, 그들은 후다닥 거울의 미궁을 빠져나갔다.

그들로서는 최대한 빨리 퀘스트를 클리어해 아티팩트의 정보를 획득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다섯 유저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제로는 깊은숨을 토해 냈다.

“연기도 지치네.”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는 망설임 없이 로그아웃을 했다.

쓸데없이 컨셉을 잡는 바람에 졸지에도 없는 중2병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다.

그 정신적 피로감이 예상 이상으로 커, 지금의 제로는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 *

“으음.”

캡슐에서 나온 제로 아니, 강한은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은 고층 건물의 불빛이 만들어 내는 야경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지금의 지구와는 다른, 로스트 월드 특유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늦은 밤 서울의 야경 또한 어디 하나 빠질 곳 없을 정도로 아름답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는 강한의 표정에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불만과 불안, 분노 따위의 다종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드러나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한참 동안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던 강한이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잘해 왔다.

나름 벤이라는 비장의 카드도 준비했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다섯 명의 유저들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 길드를 만들라 명하고, 그 길드의 세력이 커지게 도와준다면 훗날의 전쟁에 대한 좋은 방파제가 되어 줄 것이다.

강한은 이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 본인의 성장 또한 빼놓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해.”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허상계의 침공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기껏 해 봐야 2년 하고 반년 언저리.

“좀 더 속도를 올려야겠어.”

지금부터는 로월정보통이란 이름을 통해 더욱 많이, 로스트 월드에 관한 정보를 뿌릴 생각이다.

초보자 때 따라 하기 좋은 꿀팁들이나 중레벨 유저들이 갈 만한 각 직업에 어울리는 사냥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냥터나 누군가가 꼭꼭 숨기고 있을, 공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히든 피스나 퀘스트 따위 등등까지.

그와 동시에…

“앞으로 변화될 미래에 대한 변수도 고려해야 해.”

강한은 앞으로 흘러갈 미래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 한 치의 다름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만 해도 ‘벤’이라는 이름의 유저의 미래를 제 손으로 비틀어 버리지 않았나.

과거에는 없었던 죽음의 대리자라는 직업이 등장했으며, 그 외에도 제자라는 명목하에 죽음과 계약해 과거에는 존재 자체도 몰랐던 직업으로 전직한 유저가 다섯 명이나 나타났다.

또한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과거 강한이 전직했던 엘레멘탈 워리어로 전직한 유저 또한 나타났다.

고작해야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많은 미래가 변해 버렸다.

아니, 앞으로는 그 정도의 변화는 새 발의 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감안해야지.”

생각을 정리한 제로는 쉴 틈이 없다는 듯, 다시 로스트 월드 속으로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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