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넌…?”
신성검왕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곳에는 거대한 장궁을 든 유저 한 명이 서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장궁을 든 유저의 두 눈동자가 머더러의 그것을 보듯 매우 붉다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 켄달!”
장궁을 쥔 유저, 켄달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버럭 외쳤다.
그런 켄달의 뜬금없는 행동에 신성검왕은 물론, 주변에 있던 유저들마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너희들, 신성 길드지? 앞에서는 힘없는 유저를 대변하고, 위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이렇게 호박씨를 까?”
“네놈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켄달의 말에 신성검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성검왕의 말에 켄달은 고개를 내저으며 ‘노노!’ 라고 외쳤다.
“상관이 없긴 왜 없어. 네놈들이 다굴 치고 있는 그분은 나와 ‘동문’이거든.”
“동문?”
켄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신성검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켄달과 신성검왕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로는 ‘왜 여기에 켄달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과, ‘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동시에 품었다.
“아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내뱉….”
“야이, 개새끼야!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뒤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꺼져!”
신성검왕의 말을 끊으며 젠젠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복수가 코앞인 상황에서 웬 멍청한 놈의 개입에 그것이 틀어진 것에 분노를 품었다.
그러한 성난 외침에 켄달은 물론, 신성검왕의 시선마저 젠젠을 향해 돌아갔다.
흠칫-!
켄달의 머더러 특유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
자신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선 것에 언짢음을 품은 신성검왕의 분노어린 눈동자.
두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젠젠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넌 가만히 있어라.”
“으응, 미안해. 형.”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신성검왕의 말에 젠젠이 몸을 웅크렸다.
신성검왕은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감히 젠젠 따위가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니었다.
“저 멍청한 놈 때문에 잠시 흐름이 끊겼는데. 뭐, 내가 할 말도 똑같다. 괜히 끼어들었다 죽지 말고 그냥 꺼져라. 머더러라면 특히나 데스 페널티에 예민할 텐데? 이건 마지막 경고다.”
“그럴 순 없다니깐?”
신성검왕의 경고에도 켄달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멍청한 놈. 혼자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신성검왕이 손을 들어 올리자, 제로를 경계하고 있던 신성 길드의 유저들 중 몇이 몸을 돌렸다.
그들은 제각기 무기와 방패를 들어 올리며, 명령만 떨어진다면 언제든지 켄달을 향해 돌진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켄달은 자신을 노려보는 신성 길드의 유저들에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설마 내가 혼자 나대는 걸로 보였냐?”
켄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로 몇몇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유저는 총 네 명.
한 명은 강철 갑옷을 두르고, 투구를 뒤집어쓴 유저로, 그의 등에는 자신의 덩치만 한 거대한 방패가 메여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복면으로 몸을 가리고, 검은 야행복을 걸친 유저였다. 그의 양손에 쥐어져 있는 단검은 생물의 뼈를 갉아 만든 듯한 기묘함이 서려 있었으며, 그러한 단검의 날에는 독으로 보이는 보랏빛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머지 두 유저는 검은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 검은 오오라를 내뿜는 오브를 쥔 마법사와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수십 개의 스파이크가 박혀 있는 채찍을 찬 유저였다.
뒤늦게 나타난 네 명의 유저들 또한 켄달과 마찬가지로 머더러 특유의 피처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네 명의 유저가 추가되었다 해도 그들의 숫자는 켄달까지 합해 다섯 명.
그에 반해 신성 길드의 유저들의 숫자는 30을 훌쩍 넘겼다.
제 3자가 봐도 ‘싸움’이 성립될 수 없는 숫자의 차이였지만.
켄달을 포함한 다섯 명의 유저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만연했다.
“어떡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저놈들도 죽여 버려!”
한 유저의 질문에 젠젠이 버럭 외쳤다.
허나 곧이어 쏟아진 수많은 시선에 젠젠은 다시 한번 몸을 웅크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쩔 수 없지. 쓸어버려.”
우아아아-!
신성검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유저들이 움직였다.
모여 있는 신성 길드 유저들 중 절반이 떨어져 나가 켄달과 그의 동료들을 향해 달려들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신성검왕과 함께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자! 이것들아!”
켄달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성기사 유저에게 활을 날리며 외쳤다.
켄달의 외침에 그의 곁에 있던 나머지 네 명의 유저들 또한 각자 무기를 뽑아 쥐며 날뛰기 시작했다.
거대한 방패를 쥔 유저는, 성기사 그 이상의 압도적인 방어력을 발휘하며 신성 길드 유저들의 맹공을 방어했다.
그 뒤를 어쌔신 유저가 은밀히 움직여 하나둘씩 죽여 나갔으며.
마법사 유저의 마법 폭격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한 공격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유저들을 폭력 그 자체로 보이는 마무리를 한 건 채찍을 쥔 유저였다.
제로를 향해 달려드는 신성검왕은 그 모습을 보며 칫! 하고 혀를 찼다.
‘최대한 빨리 죽이고 저놈들도 죽인다.’
그러한 생각을 품은 신성검왕이 바닥을 박차며, 더욱 가속해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부터 죽어라.”
후웅-!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도착한 신성검왕이 검을 휘둘렀다.
충만한 신성력이 담겨, 순백의 오오라를 내뿜는 신성검왕의 검이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제로의 목을 노렸다.
“본 실드!”
콰가강-!
신성검왕의 공격에 맞춰 제로 또한 마법을 사용했다.
제로의 앞으로 거대한 흑골의 방패가 모습을 드러내며 신성검왕의 검과 충돌했다.
그 둘의 충돌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자, 사방으로 죽음과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고 새하얀 파편이 흩날렸다.
“누가 쉽게 죽어 준데?”
“이놈이-!”
싱긋 웃어 보이며 말하는 제로를 보는 신성검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제로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의 위력이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홀리 크로스!”
훙훙!
신성검왕의 검이 휘두르자 다시 한번 십자가 모양의 참격이 튀어나왔다.
신성검왕이 사용한 홀리 크로스는 궤적 상의 모든 것을 자르며 나아갔지만….
“그따위 거! 본 스피어!”
쩌엉-!
제로가 사용한 본 스피어가 홀리 크로스의 참격 중 세로와 가로가 교차하는 정중앙에 틀어박혔다.
그 둘의 충돌로 신성검왕의 홀리 크로스는 아까 전, 켄달에게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다만, 그 위력만큼은 엄청났는지 제로가 사용한 거대한 흑골의 창, 본 스피어마저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칫.”
자신의 홀리 크로스를 너무나도 손쉽게 막아 내는 제로에 신성검왕이 혀를 찼다.
슬쩍 확인해 본 바로는, 켄달 쪽으로 달려 나간 부하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벌써 절반 가까이가 죽어 나갔으며, 나머지 절반조차 방어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
결국 신성검왕은 전력을 다해 제로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신성검왕은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숨겨둔 패를 꺼내며 제로를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순식간에 틀어박힌 귓말에 움찔! 몸을 멈췄다.
움직임을 멈춘 신성검왕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성검왕이 움직임을 멈추자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르던 신성 길드의 유저들 또한 공격을 멈추었다.
제로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달려들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성검왕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를 끝낸 신성검왕이 홱! 하며 제로를 바라봤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돌아간다.”
그 말을 끝으로 신성검왕은 살아남은 유저들을 이끌고 멀어졌다.
신성검왕의 뒤에 딱 달라붙어 있는 젠젠은 그러한 신성검왕의 판단에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신성검왕을 필두로 한 신성 길드의 유저들이 물러나자, 켄달과 함께 제로를 도와 신성 길드와 싸웠던 네 명의 유저들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끄덕끄덕.
언제 들어도 쾌활함 넘치는 켄달의 목소리에 제로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그나저나 설마 신성 길드에 쫓기던 분이 저와 동문일 줄은 몰랐습니다.”
“동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로의 질문에 켄달이 씨익 웃어 보였다.
“검은 스켈레톤. 그걸 다룬다는 것은 당신 또한 ‘그분’의 제자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뭐, 전 아직 전직을 하진 못했지만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한 퀘스트 조건을 만족했으니…. 같은 제자로서 동문이 아니면 누가 동문이겠습니까. 하하!”
그 말에 제로는 어째서 켄달이 자신을 도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검은 스켈레톤, 망자의 병사는 자신밖에 사용할 수 없는 특수한 언데드였다.
그러한 것을 사용했으니, 켄달이 자신을 리치 아니, 제로가 연기했던 ‘리치’의 제자라는 착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확실히 스승님께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그나저나 이분들은?”
쾌활한 웃음을 터트리는 켄달을 뒤로 하며, 제로는 나머지 네 명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하나같이 머더러 특유의 붉은 눈을 하고 있는 이들은 켄달의 동료인 걸까.
그러한 제로의 의문을 눈치챈 것인지 켄달이 입을 열었다.
“아, 이놈들은 제 현실 친구들입니다. 얘네들도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고 싶다고 하도 사정사정해서 그분께 부탁드려 볼까 하거든요. 하하! 그분께서 과연 이놈들을 받아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흐음.’
켄달의 말에 제로가 속으로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확실히 현실의 친구가 아니면, 같은 머더러이자 동료라 하더라도 선뜻 신성 길드와 척을 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길드 랭킹이 업데이트되지 않았지만, 현시점에서의 신성 길드는 충분히 대길드라 불릴 만큼 강대했다.
물론, 미래의 신성 길드와 비교해 보자면 지금의 신성 길드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지만, 일천 명이 넘는 유저들에게 쫓길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설 유저가 몇이나 될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확정지을 순 없지만, 그 숫자는 극소수임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나저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면 세력을 키워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제자’라는 명목으로 유저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만드는 것은 어떠할까?
그렇게 제자로 받아들인 유저들이 다시 길드를 만들고. 그 길드의 덩치와 영향력이 커지면 미래의 전쟁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곁으로 다가온 켄달이 제로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스승… 아니, 그분이 어디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다시 그분을 만나는 것인데 도통 어디 있는지 알아야 말이죠.”
“안 그래도 그분께서 당신을 만나면 전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
제로의 말에 켄달의 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히든 클래스를 코앞에 두고 전직을 못 하는 상황에서, 전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으니 그 기쁨은 상당했다.
“나는 언제나 거울 속에 존재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거울 속에 존재한다라….”
제로의 말을 잠시 곱씹은 켄달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만나 뵙도록 하지요.”
그러한 말을 남긴 켄달은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움직였다.
제로는 멀어져만 가는 켄달과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울의 미궁을 다시 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