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9화 (19/200)

제19화

그아아-!

길목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구울이 튀어나오며 손을 휘둘렀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데다가 시독까지 뚝뚝 묻어나오는 열 개의 손톱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제로의 가슴을 할퀴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구울이 휘두른 열 개의 손톱이 막 제로에게 닿으려는 찰나, 제로의 뒤를 따르던 망자의 정예병 중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대신 맞았다.

카가가각-!

구울의 손톱이 뼈로 이루어진 망자의 정예병을 할퀴자, 듣기 싫은 괴음이 울려 퍼졌다.

“데스 볼.”

쾅!

그아아!

이어진 제로의 마법에 얻어맞은 구울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빡시네.”

제로는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구울과 좀비들의 시체에 인상을 찌푸렸다.

난이도 A급의 퀘스트라 어느 정도 힘들 것임은 직감하고 있었지만. 배신자의 은신처라는 던전 내부에는 제로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의 언데드가 포진해 있었다.

그러한 언데드의 숫자는….

‘일개 개인이 다룰 수 있는 숫자가 아니야.’

이 정도의 숫자를 다루려면 마스터 레벨이라 불리는, 500레벨 이상의 네크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설마 배신자가 네크로 마스터 급은 아니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는 순간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그래도 네크로 마스터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잿빛 마탑을 배신한 배신자가 그만한 경지에 올랐을 리는 없었다.

거기에 만일 배신자가 네크로 마스터라면 애초에 난이도가 A급으로 측정되지도 않았을 것이요.

상대가 네크로 마스터라면 베드로가 잿빛 마탑에 소속된 고위 네크로맨서들을 이끌고 직접 처리했을 것이다.

그아-!

제로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또 한 마리의 구울이 모습을 드러내며 제로를 덮쳤다.

허나 두 번째로 이어진 기습조차 재빠르게 이어진 망자의 병사와 망자의 정예병들의 대처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잿빛 마탑의 보물. 그것 때문인가.”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배신자가 이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잿빛 마탑에서 훔쳐 간 보물 덕분일 것이다.

“뭐, 상관없지. 난 영혼석만 있으면 그만이야.”

일순 ‘잿빛 마탑의 보물도 먹어 버릴까?’라는 생각을 품었으나 제로는 곧 그 생각을 철회했다.

보물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제로에겐 네크로노미콘이 있다.

또한 앞으로도 잿빛 마탑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제로였기에, 괜히 보물에 욕심내 잿빛 마탑과의 우호도를 깎아 먹는 행동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후딱 처리하자~.”

* * *

“저놈은 뭐냔 말이다!”

각종 시체와 자료들이 널브러진 연구실.

그 중심에서 제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네크로맨서가 버럭 외쳤다.

연구실 중앙에 자리 잡은 구슬을 통해 비쳐지는 제로는 무수히 많은 함정도, 수백의 언데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진했다.

특히나 제로가 다루는 검은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의 강함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네크로맨서, 배신자의 상식을 산산이 부셔 버렸다.

“젠장! 베드로 그 늙은이가 보낸 놈인가.”

까득.

까드득.

초조함에 손톱을 뜯어 먹던 배신자가 버럭 외쳤다.

거침없이 전진하는 제로와 연구실과의 거리는 불과 500m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맥없이 죽어 버릴 것이다.

“안돼. 그럴 순 없어. 곧 있으면, 곧 있으면 대업의 준비가 끝나 가는데!”

배신자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거인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시체 한 구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것만. 이것만 완성되면 날 무시했던 그놈들에게, 잿빛 마탑에 복수할 수 있는데….”

까드득.

배신자가 다시 한번 손톱을 물어뜯었다.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손가락을 타고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젠장! 너희들! 가서 막아! 무조건 막아!”

[명.령.을.]

[따.릅.니.다.]

결국 배신자는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뒀던 스켈레톤 나이트 다섯 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것들은 배신자가 자신의 호위를 위해 아껴 두고 있었던 것으로, 그가 지닌 네크로맨시의 정수가 담겨져 있었다.

특히나 하나하나가 전부 영혼석을 이용해 만들어졌기에, 막 연구실을 빠져나가 제로를 향해 달려가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강함은 보통의 것들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했다.

하지만 배신자는 그것들로는 제로를 막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지. 아직 불안정하지만….”

다시 거인의 사체로 시선을 옮긴 배신자가 움직였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황에서 저것을 깨운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배신자는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는 바삐 움직였다.

한편 배신자의 은신처를 돌파하고 있던 제로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스켈레톤 나이트? 아니 뭔가 좀 다른데?”

제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다섯 구의 언데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것들은 어설프긴 하지만 갑옷을 걸치고, 양손에 검과 방패를 쥐고 있다.

그 모습만 보자면 명백한 스켈레톤 나이트였지만, 풍기는 강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눈치챈 건가.”

제로는 갑작스레 등장한 다섯 구의 언데드에 낮은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배신자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가용할 수 있는 최강의 언데드를 보낸 것 같았다.

어쩌면 저것들은 자신이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사용한 버림 패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귀찮게 됐네. 데스 웨이브.”

우웅-!

콰가강!

제로의 앞으로 죽음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부채꼴 형태로 퍼져 나간 그것은 정면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며 파괴했다. 그러한 데스 웨이브에 휘말렸음에도 다섯 구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닮은’ 언데드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게 참 싫단 말이지.”

그 모습에 제로가 쯧! 혀를 찼다.

죽음의 대리자가 사용하는 스킬의 대부분은 죽음 속성이 메인이 된다.

그렇기에 상대가 언데드 같이 같은 ‘죽음’ 속성을 지닌 대상이라면 그 데미지는 급감하게 된다.

본 스피어처럼 물리 데미지가 메인이 되는 스킬 또한 있지만, 그 숫자가 적어 언데드를 상대하기에는 상당한 애로 사항이 펼쳐졌다.

“아, 귀찮아. 그냥 숫자로 밀어붙여야겠네. 쓸어버려.”

끼기긱.

끼긱.

까가가각!

결국 제로는 뒤로 물러나며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은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섯 구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쿠당탕!

달려드는 망자의 병사를 향해 스켈레톤 나이트가 검을 휘둘렀다.

묵직하게 휘둘러진 검에 얻어맞은 망자의 병사 하나가 뒤로 튕겨져 나갔지만, 그 빈자리를 다른 병사가 메꾸었다.

네크로맨서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언데드는 공포도, 고통도 느끼지 않으며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다.

또한 그 압도적인 숫자에서 만들어지는 폭력은 어지간한 강자라 할지라도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의 병사와 정예병의 다굴을 맞고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방패를 이용해 최대한 데미지를 감소시키며, 틈이 보일 때마다 검을 휘둘러 병사들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그 모습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망자의 불꽃. 망자의 원한. 명계의 삭풍.”

화륵-!

쩌저적!

휘이이잉.

제로가 삼종 버프 마법을 사용하자,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의 몸에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휘두르는 무기에 망자가 품은 냉기와 명계에 휘몰아치는 삭풍의 날카로움이 깃들었다.

그렇게 제로가 버프 마법까지 사용하고 나서야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은 눈앞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해가 막심하네.”

5분 가까이 이어진 전투가 끝나고, 남아 있는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을 확인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고작 다섯 구를 상대하면서 파괴된 망자의 병사가 10구 가까이 되었으며, 정예병 또한 3구 정도 망가졌다.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은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는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역시 좀 더 강한 언데드가 필요해.”

더욱 강한 언데드가 필요한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로 다가왔다.

“일단 가자.”

제로가 걸어 나가자 그 뒤를 살아남은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들이 뒤따랐다.

그렇게 걸어 나가는 제로 앞에는 더 이상 함정도, 이렇다 할 언데드도 등장하지 않았다.

함정은 앞에 모여 있는 것일까?

지배한 언데드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걸어 나가던 그때, 멀리서 하나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신자의 은신처로 들어오는 거대한 철문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문은 제로가 도착하기 무섭게 끼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들어오라 이거냐.”

제로는 저절로 열리는 문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데드 없는 네크로맨서는 팥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렇듯 자신을 불러들이는 듯한 행동을 하다니.

상대에게 아직 언데드가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로와 협상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뭐, 이 행동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난 널 죽일 거야.”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는 망설임 없이 철문을 지나쳐 들어갔다.

철문 너머는 하나의 연구실이었다.

사방에는 몬스터와 인간의 시체가 뒤섞여 나뒹굴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배신자의 것으로 보이는 연구 자료가 흩뿌려져 있었다.

제로는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취미 한번 고약하네.”

사방의 시체는 멀쩡한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은 하나의 몸뚱이에 팔이 여섯 개. 그것도 각기 다른 종족의 팔이 달려 있었으며.

어떤 것은 하반신에 하반신을 이어 붙여 지네처럼 만들었다.

어떤 것은 머리만 비정상적으로 거대했으며, 어떤 것은 아예 팔과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시체의 모습에 제로는 마음 한편에서 배신자에 대한 혐오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름답지 않나?”

“넌 이게 아름다워 보이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배신자의 목소리에 제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어떤 미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이런 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확실히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을 가진 NPC는 유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유저에게 있어서는 그저 게임일 뿐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잿빛의 로브를 뒤집어쓴 배신자가 서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후학이여. 내 이름….”

“네 이름 따윈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죽어. 본 스피어.”

후웅-!

콰직!

배신자의 말을 끊은 제로가 기습적으로 본 스피어를 날렸다.

갑자기 허공에 거대한 흑골의 창이 나타나 자신을 향해 쏘아지자, 배신자가 다급히 몸을 날렸다.

제로가 날린 본 스피어는 배신자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으음. 이거 말이 통하지 않는 후학이로군. 하지만….”

“하지만?”

“자네는 실수했네. 날 죽이기 위해 자네 혼자서 찾아오면 안 됐어.”

“그게 무슨 개소…!”

구웅-!

배신자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리던 제로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제로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거대한 존재감에 노출되었습니다.]

[종족 특성으로 존재감을 무시합니다.]

‘거대한… 존재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제로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