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8화 (18/200)

제18화

“읍.”

계단을 내려가던 제로가 입을 틀어막았다.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쾨쾨한 악취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지독한 악취로 인한 제로의 반응에 늙은 네크로맨서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도 네크로맨서라면 익숙해져야 할 거야.”

늙은 네크로맨서의 말에 제로는 왜 유저들 사이에서 네크로맨서가 인기 없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한 조건이나, 전직 후의 NPC들의 반응 때문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극도의 리얼리티 때문에 생기는 시체 썩는 냄새. 이것 때문에 유저들이 네크로맨서를 기피했었지.’

레벨이 오르고, 전직을 통해 특정한 스킬을 획득하면 언데드에서 뿜어 나오는 악취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성장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그때까지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면서까지 네크로맨서를 키우는 유저는 몇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도착한 지하에는….

“네크로맨서 길드, 잿빛 마탑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잿빛 마탑.

흑마법사들의 검은 마탑과, 일반 마법사들의 푸른 마탑을 포함해 3대 마탑이라 불리는 장소 중 하나이다.

잿빛 마탑은 이름과는 다르게 탑의 형태가 아니었지만, 네크로맨서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만 시체를 다루는 직업 특성상 타인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꽁꽁 숨겨진 그것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현재 불길한 사원에서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유저들 중 잿빛 마탑에 대해 알고 있는 유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제로 또한 미래의 지식이 아니었다면, 잿빛 마탑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늙은 네크로맨서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나가던 제로는 의외의 진실을 목격했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그래.”

멀리서 걸어오던 젊은 네크로맨서 한 명이 늙은 네크로맨서를 ‘마스터’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늙은 네크로맨서는 그런 젊은 네크로맨서의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고.

잿빛 마탑에서 ‘마스터’라 불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잿빛 마탑의 마탑주,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

“껄! 날 알고 있었나? 아니, 지금은 잊혀진 암구어를 사용할 정도니 날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지.”

제로의 중얼거림에 늙은 네크로맨서,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베드로를 따라 어느 정도 이동했을까.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베드로의 연구실이었다.

어째서 자신을 본인의 연구실에 데려온 것일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기 무섭게 베드로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 상당히 재미있는 물건을 지니고 있더군.”

‘재미있는… 물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설마 네크로노미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말이 안 된다.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소유하고 것은 맞지만, 그것은 현재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다.

아무리 베드로가 네크로 마스터라지만, ‘다른 공간’이라는 개념에 속하는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네크로노미콘의 존재를 깨닫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저 확신에 차 있는 눈빛은.’

제로는 확신에 차 있는 베드로의 눈빛에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죽음과 계약해 그의 대리자가 되지 않는다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네크로노미콘이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들에게 있어 네크로노미콘은 신물 중의 신물. 그 조건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탐내지 않을 존재는 없을 것이다.

“흠. 어디 한 번 볼까.”

딱-!

말을 마친 베드로가 스태프를 내리찍었다.

그에 제로의 사마력과는 다른, 평범한 네크로맨서 특유의 사기가 흘러나오며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와 동시에….

“이게 무슨-!”

제로가 당혹이 가득 담긴 신음을 터트렸다.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던 네크로노미콘이 주변을 가득 메운 사기에 반응하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호오. 이것이 진정한 네크로노미콘이로구만.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지만, 확실히 예사 물건이 아니로군.”

베드로는 스스로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와 제로의 앞에 두둥실 떠다니는 네크로노미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허나, 그런 베드로의 목소리와 네크로노미콘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단 한 점의 ‘욕심’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쩐지 보통의 네크로맨서와는 다르다 했는데. 자네, ‘그분’과 계약을 맺었던 게로구먼.”

“그분? 설마 죽음을 말하시는 겁니까?”

“죽음이라. 그분이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하셨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제로의 말에 베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베드로의 반응에 제로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죽음.

도대체 그는 누구이기에 네크로 마스터 베드로마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건 상관없다.

죽음이 무엇이든 자신은 강해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

‘허상계의 침공에 지구와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로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찰나, 베드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런. 쓸데없는 호기심에 자네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먼. 그래, 자네는 무엇 때문에 잿빛 마탑까지 찾아온 겐가?”

“아, 그게 영혼석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영혼석?”

“예.”

제로의 대답에 베드로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것은 마치 ‘왜 하필 영혼석을?’이라고 되묻는 듯 보였다.

“확실히 잿빛 마탑이 아니라면 영혼석을 구하긴 힘들지. 하지만 왜 하필 영혼석인가?”

“더욱 강한 언데드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말인가?”

“예.”

제로의 단호한 대답에 베드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영혼석을 이용해 언데드를 만든다.

이것은 네크로맨서들에게 있어 기피되는 방법이었다.

확실히 영혼석을 이용해 만들어진 언데드는 보통의 언데드보다 통상 1.5배 이상의 강함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혼석을 이용해 만든 언데드는 술자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어. 특히나 강력한 영혼이 깃든 영혼석을 이용할수록 그 확률이 높아지며, 도리어 술자 자신이 언데드에 살해당할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로라고 그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선, 제로에게 영혼석이란 반드시 필요한 재료 중 하나였다.

“으음…, 어려운 부탁을 하는구먼.”

베드로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또한 제로가 죽음과 계약을 맺었기에,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를 훨신 웃도는 지배력을 지녔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 때문에 베드로는 망설였다.

그렇게 베드로는 제로의 어려운 부탁에 두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간의 생각 끝에 눈을 뜬 베드로가 입을 열었다.

“좋네. 자네는 그분과 계약을 맺은 특별한 존재이니 내 힘 한번 써 보지. 하지만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네.”

“조건…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무리 자네가 그분과 계약을 맺었다지만, 영혼석을 다루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것이니 나는 알아야 겠어. 자네가 과연 영혼석을 다룰 자격이 되는지를.”

“음.”

베드로의 말에 제로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영혼석을 구매하러 왔을 뿐인데, 졸지에 계획에도 없던 퀘스트를 하게 생겼다.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시간을 잡아먹을수록 미래에 치러질 전쟁에서 패배할 확률은 올라간다.

그런 생각에 제로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확실히 베드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하다네.”

베드로의 말이 이어질수록, 제로의 미간이 점차 찌푸려졌다.

* * *

“여기가 맞나?”

시작의 도시에서 상당히 떨어진 사냥터 중 하나, 백인의 무덤.

사방에는 파헤쳐진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철문이 존재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매드 좀비와 스켈레톤 나이트, 아처. 메이지. 그리고 간간히 스펙터가 등장하며 사냥터 권장 레벨은 200 정도 된다.

백인의 무덤에 도착한 제로는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잿빛 마탑을 배신한 네크로맨서를 척살하라.]

당신은 영혼석을 다룰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백인의 무덤에는 같은 네크로맨서 동료를 죽이고, 잿빛 마탑의 보물 중 하나를 훔쳐 달아난 네크로맨서가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를 처리하여 배신당해 죽은 동료들의 한을 달래고, 배신자가 훔쳐 달아난 보물을 회수하여, 그대가 영혼석을 다룰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난이도: A

보상: 전사의 영혼석x3. 기사의 영혼석x3. 궁수의 영혼석x3. 어쌔신의 영혼석x3.

실패 페널티: 베드로와의 친밀도 하락. 잿빛 마탑의 기여도 –100.

“보상은 좋단 말이지.”

베드로에게 받은 퀘스트를 확인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전사와 기사, 궁수와 어쌔신의 영혼석이 각기 3개씩이다.

평범한 영혼석을 1~2개 정도 구하기만 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제로에게 있어, 이러한 보상은 상정 외의 행운이었다.

다만, 보상이 구하기 힘든 영혼석. 그것도 직업을 가진 영혼석 12개이기 때문일까….

“난이도 A는 좀 빡시겠는데.”

퀘스트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배신자는 잿빛 마탑의 보물을 훔쳤다.

종류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대 마탑 중 하나인 잿빛 마탑의 보물이다.

그 효과나 위력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후딱 처리하고 영혼석이나 받으러 가자.”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움직였다.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철문에 도착한 제로가 인벤토리에서 잿빛 보석을 꺼내 홈에 끼우자, 거대한 철문이 끼이익!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럼 가 볼까.”

제로는 열린 철문 너머로 펼쳐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은 상당히 많고, 상당히 깊은 곳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드문드문 벽에 붙어 있는 라이트 스톤에 희미한 불빛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5분 가까이 내려가고 나서야 제로는 또 다른 입구, 낡아빠진 나무 문을 마주할 수 있었다.

“흠.”

끼이익-.

철문과 마찬가지로 나무 문 또한 듣기 싫은 괴음과 함께 열렸다.

그렇게 열린 문 너머로 한 발 내딛기 무섭게….

[던전-배신자의 은신처를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배신자의 은신처는 퀘스트용 1회성 던전입니다.]

“1회성 던전이라. 좋은데?”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씨익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1회성 던전을 찾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1회성 던전들은 지금의 제로가 도전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눈앞에 떡하니 1회성 던전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현재의 제로에게 적당한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제로는 연이어 이어진 행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후딱 처리하고, 언데드나 만들자.”

인벤토리에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쥔 제로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제로의 등 뒤로는 언제 만든 것인지 모를 수십의 망자의 병사와 망자의 정예병들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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