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7화 (17/200)

제17화

로스트 월드 남쪽.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들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들판의 중앙에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신전이 세워져 있었는데, 신전의 내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생명력으로 충만했다.

신전의 중앙.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여신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그곳에 한 유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순백의 갑옷을 걸쳤으며, 등에는 거대한 방패를, 허리춤에는 충만한 생명력을 품은 한 자루 검을 차고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의 수호자로서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파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를 중심으로 순백의 빛기둥이 떨어졌다.

[생명의 수호자로 전직하셨습니다.]

빛기둥이 사라지며 유저의 눈앞에 히든 클래스, 생명의 수호자로 전직했다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강제 퀘스트-‘생명을 갉아먹는 죽음을 저지하라’가 부여됩니다.]

전직을 하기 무섭게 추가된 강제 퀘스트임에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 * *

“없어! 없어! 없어! 없어! 없다고!”

강철의 무덤 끝에 위치한 보스 룸.

그곳을 뒤지고 있던 제로가 버럭 외쳤다.

강철의 무덤에서 획득할 수 있는 히든 피스의 조건을 아무리 달성해도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제로는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으나,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보스 룸을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봐도 히든 피스의 ‘히’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제로는 결국 깊은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뭘 찾고 있는 거야?”

제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벤의 질문에 제로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시피야.”

“레시… 피?”

제로의 대답에 벤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레시피라면 대장장이나 연금술사. 혹은 요리사 따위의 직업에 필요한 아이템 아니었던가?

그러한 벤의 생각을 읽은 제로가 말을 덧붙였다.

“일반적인 레시피라면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찾지 않겠지. 내가 찾고 있는 레시피는 ‘골렘 제작 레시피’야. 그것을 평범히 사용한다면 단순히 골렘을 제작할 수 있게 해 줄 뿐이지만,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육체를 ‘골렘’으로 개조할 수 있게 해 주거든.”

“호-!”

이어진 제로의 말에 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단순히 골렘을 만들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였는데, 그것을 넘어 육체를 골렘으로 개조할 수 있게 되다니.

마치 자신이 제로의 도움을 받아 ‘사자’로 종족이 변화된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확실히 네가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만하네.”

“문제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벤의 말에 제로가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

벌써 강철의 무덤 보스 룸에서 할애한 시간만 1시간 가까이 되었다.

이 정도로 뒤져봤음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벌써 그 레시피를 누군가가 획득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제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기억에 의하면, 골렘 제작 레시피가 발견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로스트 월드가 오픈하고 반년 뒤. 골렘 제작 레시피를 발견한 유저가 수십 기의 골렘으로 이루어진 군단을 이끌고 한 소규모 길드와 치른 전쟁을 통해 밝혀지게 된다.

소규모 길드라 하더라도, 길드원의 숫자가 기백이 넘는 길드를 단신으로 쳐들어가서 아무런 상처 없이 승리했다는 것만 봐도 골렘의 강함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유저는 당연하게도 100위권 이내의 랭킹에 당당히 입성하며 골렘 마스터라 불리게 되었다.

“벌써부터 미래가 변하기 시작하는 건가.”

결국 골렘 제작 레시피를 찾는 것을 포기한 제로가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그러한 제로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벤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어디긴. 다른 히든 피스를 찾으러 가야지. 다른 유저들이 먼저 발견하기 전에 말이야. 그 전에.”

“그 전에?”

“우선 더 강한 언데드부터 만들어야지.”

그러한 말을 끝으로, 제로와 벤은 강철의 무덤에서 사라졌다.

* * *

끼이익.

시작의 도시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탑.

마법사로 전직할 수 있는 장소인 푸른 마탑에 한 유저가 들어섰다.

그는 검은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는 말라비틀어진 고목 나무로 만들어진 스태프를 쥐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새하얀 붕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로스트 월드가 게임이라는 특성상, 다양한 복장을 한 유저들이 많았지만 스스로 두 눈을 가린 유저는 없었기에, 그를 지나치는 유저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한편 두 눈을 가린 괴짜, 제로는 망설임 없이 푸른 마탑 1층에 자리 잡은 상점으로 걸어갔다.

“푸른 마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로가 도착하기 무섭게 푸른 로브를 쓴 마법사가 나타났다.

다소 귀찮음 가득한 표정과 눈동자는 그가 NPC가 아닌, 유저라는 것을 알려 줬다.

‘알바 좋지.’

자신을 응대하는 유저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법사라는 직업 특성상 파티가 아니면 사냥하기 힘들뿐더러, 레벨이 올라갈수록 막대한 돈이 필요해 이렇듯 푸른 마탑에서 알바를 하며 비용을 충당하는 유저들이 더러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로가 가만히 서 있자, 알바생이 귀찮음 가득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되물었다.

“광전사의 혈액 1L. 블러드 쥬얼 10개. 스켈레톤의 뼛가루 300g. 트롤의 피 300ml. 오크의….”

제로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귀찮음 가득했던 알바생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상점이라는 특성상, 수익을 내면 낼수록 본인에게 떨어지는 보상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렇기에 알바생의 입장에선 제로와 같이 상당한 금액의 재료들을 주문하는 손님을 쌍수 들고 반기게 되는 법이었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제로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알바생이 후다닥 사라졌다.

알바생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끽해 봐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알바생은 제로가 주문한 재료들을 모조리 챙겨 가지고 나타났다.

“총 합해서 132만 골드 되겠습니다.”

제로의 앞으로 재료들을 내려놓은 알바생이 입을 열었다.

132만 골드.

현재 로스트 월드의 골드 시세가 1:1이라는 것을 감안하자면, 132만 골드는 현실에서 132만 원이 된다.

그것은 상당한 거액이었으나 제로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132만 골드를 꺼내 건넸다.

제로의 인벤토리에는 지금까지의 PK로 입수한 유저들의 장비를 처분해 상당한 골드가 잠들어 있었다.

132만 골드는 푼돈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한다면 기꺼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그 외에도 돈이 필요하다면 현실에서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는 재료를 챙겨 푸른 마탑을 나섰다.

제로가 다음으로 찾은 장소는 흔히 슬럼가라 불리는 시작의 도시의 뒷골목이었다.

뒷골목이라고는 했으나 이곳에는 도둑 길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둑 혹은 어쌔신으로의 전직을 희망하는 유저들로 북적이고 있어 뒷골목이라는 이름이 다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 뒷골목에 입성한 제로는 푸른 마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가린 특이한 패션으로 수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으며 움직였는데.

그런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도둑 길드가 아니었다.

도둑 길드가 자리 잡은 장소보다 더욱 깊숙한 장소.

북적이던 유저들도 차츰 줄어들어, 말 그대로 ‘슬럼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곳에 자리 잡은 한 주점이었다.

딸랑-.

문을 열자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주점 내부에 앉아있던 NPC들의 시선이 제로에게 집중되었다.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과 분위기는 그들이 평범한 NPC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줬으나, 제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카운터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검은 나비의 꽃가루 한잔.”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주점에는 그러한 음료가 없습니다.”

말을 하는 바텐더를 향해 제로의 시선이 옮겨졌다.

바텐더의 옷차림은 슬럼가에 위치한 주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아니, 옷차림뿐만이 아니라 그가 닦고 있는 컵부터 등 뒤에 진열된 물건 등등까지.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깔끔했다.

마치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것처럼.

그에 제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럼 거짓된 죽음의 입맞춤.”

탁.

제로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바텐더가 닦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홀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척’하고 있던 남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하나같이 흉흉한 눈빛으로 제로를 바라보는 그들은 언제 어느 때라도 품속의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것도 없어?”

“손님. 죄송하지만 이만 퇴장해 주시겠습니까?”

바텐더의 경고에 제로가 흐음….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분명 기억에 의하면 거짓된 죽음의 입맞춤이 네크로맨서 길드로 들어갈 수 있는 암호문이었다.

‘무언가 오차가 있는 건가. 아니면 과거에는 다른 암호문을 사용했던 걸까.’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과거의 제로는 엘레멘탈 워리어였다. 네크로맨서와 일절 연관이 없는 직업이었기에, 그저 건너 들어 알게 된 암호문을 내뱉었던 것뿐이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덩어리가 걸어 나오며 제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이, 샌님. 꺼지라는 소리 안 들려?”

한껏 일그러트린 표정에선 ‘지금 당장 나가지 않는다면 죽여 버리겠어’라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에 제로는 탁!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정도로 강하게 어깨에 놓인 덩어리의 손을 쳐 냈다.

“어디에 더러운 손을 올리는 거냐.”

빠직-!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덩어리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그럼에도 제로는 당당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곳이 네크로맨서 길드가 맞다면 네크로맨서인 내가 쫄 필요가 없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덩어리들 정도면 10초만에 몰살시킬 자신이 있다.

그렇게 제로가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덩어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이 개새끼가 진…!”

퍼억!

쿠당탕!

주먹이 제로에게 닿기 직전, 바닥에서 반투명한 주먹이 튀어나와 덩어리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에 그는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망자의 손아귀? 아니, 뭔가 달라. 네크로맨서의 원한의 손인가.’

망자의 손아귀는 직업이 죽음의 대리자만이 익힐 수 있는 스킬이다.

그렇다면 덩어리를 날려 버린 것은 네크로맨서의 기본 스킬 중 하나인 원한의 손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렇게 덩어리를 날려 버린 원한의 손이 사라지고, 바닥이 열리며 한 네크로맨서가 걸어 올라왔다.

“미안하게 되었네, 동지여. 그러니 저 아이들에 대한 분노를 거두어 주지 않겠나?”

늙수그레한 목소리에 제로는 나타난 네크로맨서의 나이를 얼추 가늠할 수 있었다.

한편, 덩어리들은 갑작스러운 네크로맨서의 등장에 1차적으로 당황했으며.

그가 제로를 향해 ‘동지’라고 부르는 것에 2차적으로 당황했다.

“이번 한 번뿐입니다, 선배님.”

딱-!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천장에서 덩어리들을 노리고 있던 데스 애로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덩어리들은 늙은 네크로맨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죽었을 것이란 사실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고맙네, 동지여. 그나저나 자네는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구먼. 지금은 잊혀진 암구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하니 말일세.”

‘그 개새끼를 진짜.’

늙은 네크로맨서의 말에, 제로는 과거 아니, 미래에 이 암구어를 퍼트린 유저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네크로맨서의 숫자가 적다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암구어를 사실이라는 양 퍼트리다니.

“뭐, 자네 또한 사정이 있을 터. 이 이상 깊게 물어보지는 않겠네. 일단 들어가서 대화를 나눔세.”

그러한 말을 끝으로 늙은 네크로맨서는 지하를 향해 걸어갔으며.

제로 또한 그의 뒤를 따라 지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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