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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6화 (16/200)

제16화

시끌시끌.

와글와글.

“벌써 온 거냐.”

제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언 골렘 하나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버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벤을 꺼냈어야 했어.’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슬쩍 벤을 바라봤다.

벤은 마검 데스 바인더를 휘두르며 아이언 골렘을 압박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1~2분만 지난다면 확실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저놈들이 난입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후-, 깊은숨을 내쉬며 움직였다.

아직 이곳에 획득하지 못한 히든 피스가 남아 있었다.

저놈들을 내버려 둔 채 처리할 순 없으니, 차라리 몰려오는 유저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히든 피스를 회수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제로가 망설임 없이 보스 룸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멀리서 다수의 유저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유저들의 숫자는 얼핏 잡아도 최소 백 명 이상이었다.

한편, 뭉쳐있는 유저들 앞에는 사냥개가 새겨진 붉은 갑옷을 입은 유저, 매드독의 길드 마스터 젠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놈이야?”

“응.”

젠젠의 질문에 뒤에 있던 유저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젠젠이 씨익 웃어 보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네놈이냐. 오크 부락에서 우리 길드원들을 죽인 네크로맨서가.”

“그렇다면?”

“하, 꼴에 히든 클래스를 가졌다고 허세 부리기는. 아무리 네놈이 네크로맨서라 해도 날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든 유저들을 이길 순…!”

카가각-!

말을 하던 젠젠이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갑옷과 마찬가지로 붉은 검신을 지닌 젠젠의 검은 날아오는 흑골의 창과 충돌하며 튕겨져 나갔다.

“크으….”

젠젠은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며 낮은 신음을 토해 냈다.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한들, 젠젠은 200레벨이 넘어가는 전사였다.

거의 대부분의 스탯을 힘에 투자했음에도 상대의 공격 한 번에 검이 튕겨져 나가다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현실이었다.

“네놈.”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시간 없으니깐 후딱후딱 들어와.”

낮은 울림을 토해 내는 젠젠을 향해 제로가 손을 까딱이며 도발했다.

그에 젠젠의 얼굴이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저 새끼 죽여 버려!”

우아아아-!

젠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드독 길드원들이 달려들었다.

군데군데 일반 유저들도 섞여 있는 그들의 기세는 노도와도 같았으며, 일반적인 유저라면 그 기세만으로도 전투 의지를 상실할 정도였다.

하지만.

“멍청한 놈들.”

제로는 아공간에 비축해 둔 시체를 유저들을 향해 던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시체의 숫자는 총 네 구.

달려들던 유저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시체에 멈칫하는 순간….

“이거나 처먹어. 콥스 익스플로전.”

콰아앙-!

허공을 부유하던 시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살점들은 강철도 뚫어 버리는 위력을 품었으며, 폭발에 의해 피어오른 연기에는 지독한 맹독이 뒤섞여 있었다.

살점과 맹독의 연기에 휘말린 유저들은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사라졌다.

“미친…!”

단 한 방에 수십의 유저들이 전멸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유저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시체가 폭발하며 뿜어진 맹독의 연기에 중독되어 빈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매드독 길드의 간부진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로의 강함은 자신들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그 강함만 놓고 보자면, 확실히 일개 개인이 하나의 길드에 시비를 걸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멍청한 놈들. 어차피 놈은 네크로맨서야! 마법사라고! 아직 언데드도 꺼내지 않았다고! 틈을 주지 말고 밀어붙여!”

뒤에서 성난 젠젠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의 외침에 몇몇 유저들이 무기를 뽑아 쥐며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젠젠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네크로맨서 또한 마법사로 분류되며, 마법사 계열의 직업군은 접근전에 취약했다.

근처에 붙기만 한다면 네크로맨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아아아아-!

죽어!

으라챠-!

순식간에 따라붙은 유저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검과 창. 메이스와 도끼 등등.

다종다양한 무기들이 제로의 목숨을 노리며 허공을 가로질렀으며, 그 사이사이를 뒤에 있던 궁수들의 화살과, 마법사들의 마법이 메꾸었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폭풍과도 같은 공격에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본 실드.”

콰가강-!

쾅!

카가가가각-!

제로의 앞으로 거대한 뼈의 방패가 나타나며 유저들의 공격을 튕겨 냈다.

“아직 멀었어. 데스 포그.”

후웅-!

제로를 중심으로 잿빛의 안개가 뿜어 나와 유저들을 뒤덮었다.

“이걸로 끝.”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제로의 목소리에, 젠젠을 포함해 남아 있는 매드독의 간부 여섯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로가 사용한 데스 포그는 그 겉모습만 보자면 기초 마법 중 하나인 포그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데스 포그의 무서운 점은 연기 자체가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기에 닿은 부분을 통해 죽음이 침식해 상대를 죽여 버린다는 것이었다.

허나 가장 무서운 점은….

그르륵.

그아아-!

데스 포그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했던 유저들이 기괴한 괴성과 함께 비척비척 움직였다.

“언데드!”

그 모습을 본 간부 한 명이 놀란 외침을 토해 냈다.

데스 포그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죽은 대상을 언데드로 되살린다는 것이었다.

대신 망자의 병사나 정예병과는 다르게 제로가 컨트롤 할 수 없으며, 그 강함 또한 한없이 약하지만 1대 다수의 상황. 혹은 잡몹들을 처리할 때는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다.

“얕보지 마.”

“그래 봤자 좀비! 고작 이 정도로 우리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매드독의 간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확실히 하나의 길드의 간부라는 것을 증명하듯, 좀비가 되어 버린 유저들을 손쉽게 처리했다.

“뭐, 나름 쓸 만하네. 하지만 그뿐이야.”

빠직-!

제로의 말에 간부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소리하지…!”

퍼억!

한 명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그가 막 검을 뽑아 쥐며 제로를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흑골의 창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머리를 잃어버린 몸뚱이는 바닥을 나뒹굴었으며, 단 일격에 죽어 버린 동료의 모습에 나머지 유저들은 멈칫했다.

“말… 도 안돼.”

“일격이라고?”

저벅.

주춤주춤.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들을 향해 제로가 한 발 내딛자.

간부들이 몸을 떨며 주춤거렸다.

아무리 게임이라 해도, 죽음을 경험하고 싶은 유저는 없었다.

그것도 강해지기 위해 무통각 설정을 하지 않은 유저라면 더더욱.

한편 젠젠은 나름 친구이자 동료이며, 매드독의 간부인 그들이 한심한 모습을 내보이자 쯧! 하고 혀를 차며 걸어 나왔다.

“내가 상대해 주마.”

화륵-!

말을 마친 젠젠이 쥐고 있던 검신에 불꽃이 감돌았다.

아니, 불꽃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걸어 나온 젠젠의 몸에선 다종다양한 속성이 깃든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제로가 놀랍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엘레멘탈 워리어?”

“너… 내 직업을 어떻게 안거지?”

제로의 중얼거림을 들은 젠젠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레멘탈 워리어.

그것은 히든 클래스로, 자연을 대표하는 네 가지의 속성. 불꽃과 물, 바람과 대지의 속성을 사용할 수 있는 전사이다.

다만 히든 클래스인 만큼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유저는 전직한 본인밖에 없다시피 하는 직업이었는데.

젠젠은 그러한 것을 알고 있는 제로를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뭐, 모를 리가 없지.”

제로는 의심 어린 젠젠의 시선에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딱히 진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그저 회귀 전 사용했던 엘레멘탈 워리어가 벌써 나왔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그 외에는….

“왜 하필 너 같은 쓰레기가 엘레멘탈 워리어로 전직했는지 그게 살짝 불만이네.”

“네놈-!”

제로의 입에서 흘러나온 ‘쓰레기’라는 말에 젠젠이 성난 외침과 함께 달려들었다.

양발에 깃든 바람을 통해 이동 속도가 대폭 상승한 젠젠은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죽어!”

후웅-!

화르륵!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작열이 깃든 젠젠의 검이 제로의 목을 베어 넘겼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막 젠젠의 검이 제로의 목을 베려는 찰나.

“영체화.”

후웅-!

제로의 육체가 반투명하게 변했고, 젠젠의 검은 그러한 제로의 몸을 허망하게 통과했다.

“무슨-!”

분명 베었는데 손맛이 없다.

상대 또한 데미지를 입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그 사실에 젠젠이 당황하는 찰나 제로가 손을 펼쳤다.

“데스 캐논.”

콰앙-!

펼쳐진 제로의 손 앞으로 뭉친 죽음이 거대한 탄환이 되어 쏘아졌다.

제로가 쏜 데스 캐논은 젠젠의 가슴을 강타하며 폭발했고, 그 폭발력에 젠젠은 수십 미터를 날아간 뒤 바닥에 처박혔다.

“크으-!”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듯,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젠젠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토해졌다.

제로는 그러한 젠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엘레멘탈 워리어가 튼튼하긴 해. 속성 저항력도 괜찮고.”

제로는 젠젠 본인보다 더욱 엘레멘탈 워리어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로는 나날이 스스로의 힘에 대해 연구했으며, 그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젠젠은 제로를 이길 수 없었다.

“차라리 네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1%의 가능성이라도 있었겠지만 말이야. 데스 캐논.”

콰앙!

다시 한번 쏘아진 데스 캐논이 젠젠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젠젠은 안면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폭발을 중심으로 흘러들어와 육체를 갉아먹는 죽음에 풀썩 쓰러졌다.

“너 이 새끼…, 내가 반드시 죽인다.”

죽기 직전까지도 젠젠은 제로를 향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뭐, 마음대로. 그럼 나머지 떨거지들의 처리….”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젠젠을 뒤로하며 등을 돌린 제로가 입을 다물었다.

남아 있던 다섯 명의 유저들은 어느새 죽어 있었으며, 사라지는 그들의 시체 사이에는 언제 나왔는지 모를 벤이 마검 데스 바인더를 쥔 채 서 있었다.

“이 떨거지들은 뭐야?”

“글쎄. 내 사생팬?”

제로의 대답에 벤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다 처리 했어? 드랍템은?”

“별거 없더군.”

제로의 물음에 벤이 툭 하며 하나의 아이템을 던졌다.

제로의 발밑에 떨어진 그것은 방패로, 레어 등급의 ‘강철의 의지가 깃든 방패’였다.

“꽝이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제로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애초부터 제로가 원했던 것은 아이언 골렘의 드랍템이 아니었다.

“뭐, 그럼 메인 디시를 먹으러 가 볼까.”

말을 마친 제로는 망설임 없이 보스 룸으로 다시 들어갔다.

* * *

[잘하고 있군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

그 중심에는 로스트 월드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으며. 그 앞에는 순백의 구체가 두둥실 떠다니며 로스트 월드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순백의 구체가 눈여겨보는 것은 강철의 무덤에서 학살 아닌 학살을 자행해 온 제로였다.

[그렇게. 그렇게 더더욱 성장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최대한 성장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그대들이 지구를 지켜 나가야 한답니다. 그러니.]

[최대한 강해지세요.]

순백의 구체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제로 외에도, 로스트 월드 곳곳에 퍼져 있는 무수히 많은 유저들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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