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어때?”
“이거 밸런스 붕괴 아니야?”
벤의 짤막한 소감에 제로가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사자 소생을 받아 종족이 바뀐 벤은 각종 추가 스탯을 획득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벤의 강함은 인간이었을 때보다 2배에서 3배 가까이 증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이야.”
아직 벤을 위한 선물은 남아 있었다.
그러한 제로의 말에 벤의 시선이 제로를 향했다.
공허한 두 눈구멍에서 일렁이는 잿빛 귀화에는 기대감과 설렘, 흥분 따위의 감정이 엿보였다.
‘물론 그 전에.’
제로가 벤을 바라보기 무섭게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사자 벤에게 노예의 낙인을 새기겠습니까?]
“새긴다.”
[사자 벤에게 노예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제로로부터 흘러나온 사마력이 벤의 몸에 깃들며, 그의 두개골 안쪽에 하나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노예의 낙인.
이것은 사자로 소생시킨 대상을 굴복시키는 것으로, 노예의 낙인이 새겨진 사자는 제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만일 제로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명령에 불복종 혹은 제로를 배신하려는 행위를 한다면 그 즉시 끔찍한 고통이 사자에게 적용된다.
다만, 유저의 경우에는 고통 대신, 작게는 스탯의 하락이나 크게는 캐릭터의 삭제 따위의 페널티가 부여된다.
‘난 머저리가 아니거든.’
노예의 낙인이 새겨지자 당황하는 벤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상대에게 진실을 알리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훗날 그 대상이 제로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짱 꽝이었다.
노예의 낙인은 그러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
“자, 잠깐! 이건 뭐야? 노예의 낙인이라니?”
“별거 아니야. 그냥 사소한 페널티라 생각해. 그보다…. 죽음? 듣고 있지?”
[물론이지.]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죽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뇌리를 파고들며 울리는 죽음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란 감정이 듬뿍 묻어나 있었다.
“그를 너의 기사로 받아줄 수 있겠어?”
[벤… 이라 했던가? 그에게 그만한 가치는 있어?]
“물론이지.”
죽음의 물음에 제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제로의 확고한 목소리에 죽음은 침묵했다.
‘고민하고 있는 건가.’
미래를 알고 있는 제로의 경우, 벤의 강함과 재능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경우, 현재의 벤밖에 보지 못했으니 고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허나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
파직-!
죽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허공이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 너머에는 짙은 심연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러한 심연으로부터 거대한 눈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눈알과 시선이 마주친 벤이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아마 지금쯤 벤의 눈앞에는 상태 이상 공포나, 혼란 따위에 빠졌다는 메시지 창이 떠오를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죽음’이 하는 말에 따라 행동해.”
제로의 말에 당혹감을 수습한 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벤이 죽음의 말에 행동하기를 몇 분이 흘렀을까.
돌연 갈라진 공간에서 농밀한 죽음이 흘러나와 벤의 몸에 깃들었으며. 그와 동시에 벤은 ‘죽음의 기사’라는 직업으로 전직을 끝마쳤다.
“뭐라 말해야 할지.”
전직을 끝마친 벤이 제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벤은 어느새 제로를 향한 의심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대신 믿음을 채웠다.
벤 또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제로에게 받은 것은 게임을 떠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선뜻 그러한 것을 베푼다는 것은, 즉 제로가 해 준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기를 가 봐.”
제로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종이를 건넸다.
벤에게 건넨 종이에는 데스 바인더 라는 이름을 가진 마검이 잠들어 있는 장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마검 데스 바인더.
거대한 양손 대검의 형태를 한 그것은 베어 낸 대상의 생명을 갉아먹는 능력을 지녔다.
또한 마검을 통해 죽인 대상은 일정 시간 동안 언데드로 되살아나 훌륭한 부하가 되어 준다.
제로가 처음 벤을 실제로 만났던 것은 허상계와의 전쟁 도중이었다.
그때 제로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왜 벤은 하필이면 메이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일까? 물론 그의 강함은 확실했지만, 만일 사용하는 무기가 메이스가 아니라 대검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기에 제로는 벤에게 마검 데스바인더에 대한 정보를 넘긴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잘 성장만 한다면, 벤의 강함은 최상위 랭커들, 수억의 유저들 중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지닌 괴물들과 엇비슷한 강함을 지니게 된다.
“그럼 나중에 또 만나자고.”
그 말을 끝으로 제로는 벤을 뒤로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내가 사용할 히든 피스를 획득해야겠지.’
* * *
쾅!
“젠장! 그 개새끼는 아직도 못 찾았냐?”
가슴에 사냥개가 새겨진 붉은 갑옷을 입은 유저, 매드독의 길드 마스터 젠젠이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외쳤다.
그의 히스테릭한 외침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찾고는 있는데 보이지 않더라고. 이미 뜬 거 같기도 한데?”
“하, 미치겠네.”
동료 아니, 친구로 보이는 유저의 말에 젠젠이 깊은숨을 토해 냈다.
현재 매드독은 필사적으로 한 유저를 찾고 있었다.
“애초에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네크로맨서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찾기에는 좀 빡세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러니깐. 애초에 그 뭐냐, 로월정보통? 그 새끼 때문에 네크로맨서도 확 늘어났잖아.”
몇몇 유저들이 수군거렸다.
매드독이 찾고 있는 유저는 제로로, 그들이 제로를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름 시작의 도시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자신들을 겁도 없이 건드렸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나름의 악명을 통해 성장한 매드독인 만큼, 다른 길드나 유저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로를 찾아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
한편 그러한 간부진의 작태에 젠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이번 사건으로 다른 길드로부터 무시 아닌 무시를 받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매드독의 악명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진흙탕을 나뒹구는 수준까지 갈 것이다.
“하, 이런 식으로 형에게 연락하는 건 싫은데.”
고민에 고민을 하던 젠젠이 중얼거렸다.
이대로 매드독의 힘만으로는 제로를 찾을 순 없다는 것을 젠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디론가 귓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 * *
“엣취!”
길을 걷던 제로가 재채기를 내뱉었다.
“어디서 누가 뒷담이라도 까나?”
실없는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걸어가던 제로의 눈앞에 하나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강철 산을 깎아 만들어진 그것의 이름은 강철 도시 베이른. 다른 말로는 장인의 도시 혹은 대장장이의 도시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멀리도 있네.”
시작의 도시를 떠나 베이른에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버렸다.
하지만 베이른에 잠들어 있는 히든 피스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딱히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거기에.
“나름 몬스터들의 시체도 수집했으니 딱히 손해는 아닌가.”
음음!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로는 망설임 없이 강철 도시 베이른에 입성했다.
베이른은 도시를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 양옆으로 각종 대장간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은 확실히 강철 도시, 장인의 도시, 대장장이의 도시라는 이명이 잘 어울렸다.
허나 제로는 그러한 대장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묵묵히 대로를 거닐었다.
“애초에 마법사인 내가 대장장이를 찾아가서 뭐 한다고.”
속삭이듯 중얼거린 제로는 어느새 들어선 남문과는 반대되는 북문으로 빠져나가, 베이른이 자리 잡은 거대한 강철의 산을 타고 올라갔다.
강철의 산.
정식 명칭은 딱히 없다. 그저 강철 도시 베이른이 자리 잡고 있기에 유저들은 강철의 산이라고 부를 뿐이다.
등장하는 몬스터도 고작 80에서 120레벨 사이의 몬스터들이었다.
다만, 그렇게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소재가 초급부터 중급의 대장장이들이 애용하는 재료들이었기에 나름의 수요는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제로의 목표물은 강철의 산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제로의 목표물은….
“도작했다.”
산을 타고 올라가던 제로가 도착한 장소는 입구가 동굴의 형태를 한 던전이었다.
던전의 이름은 강철의 무덤으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망가진 스톤 골렘과 보스 몬스터인 아이언 골렘이다.
스로우가 먼저 발견한 덕분인지 강철의 무덤 입구에는 수많은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이럴 거 같더라.”
제로는 입구에서 북적이는 유저들에 쯧! 하며 혀를 찼다.
간간히 아카식 레코드를 확인하는 제로였기에, 스로우가 강철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모여 있을 줄은 제로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초창기라 그런가. 강철의 무덤은 딱히 영양가 있는 던전이 아닌데 말이야.”
제로는 귀찮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걸어 나갔다.
한편, 던전 입구에서 파티원을 구하고 있던 유저들은 제로의 등장에 두 눈을 빛냈다.
검은 로브를 걸치고, 네크로노미콘을 들고 있는 제로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한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골렘은 물리 방어력은 무식하리만치 높지만, 미스릴 골렘이나 쥬얼 골렘이 아닌 이상 마법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렇기에 강철의 무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당연 마법사로, 파티원을 구하는 유저들은 마법사를 영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법사로 보이는 제로가 등장했으니, 그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저, 저기 마법사님! 저희랑 같이 사냥 하시죠! 드랍템은 4:6으로 분배해 드립니다!”
“저리 꺼져! 마법사님! 저희 파티랑 함께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분배는 5:5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마법사님!”
“저희…!”
제로는 순식간에 모여든 유저들에 이상을 찌푸렸다.
망자의 병사와 정예병이 있는 제로에게 파티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허나 그들도 나름 필사적인지라 단순히 무시하고 지나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어쩔 수 없지.’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이대로 유저들에게 파묻혀 있을 바에야 그냥….
“모조리 죽여 버리면 되겠지.”
모조리 죽여 버리고 강철의 무덤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네크로노미콘이 성장하려면 PK는 필수였으며, 애초에 강철의 무덤 또한 히든 피스만 먹으면 볼 일이 없었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제로의 몸에서 사마력이 방출되자 모여 있던 유저들이 흠칫!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죽어.”
스킬 발동, 데스 애로우-다연발.
푸부부부북-!
제로를 중심으로 수십 발의 데스 애로우가 쏘아졌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동렙의 탱커조차 즉사시킬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는 데스 애로우다.
고작해야 강철의 무덤에서 사냥하는 유저들이 제로가 쏘아 대는 데스 애로우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제로는 자신을 가로막는 유저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며 강철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