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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2화 (12/200)

제12화

툭.

“넌 뭐…! 끄어억!”

망자의 손아귀가 제로와 어깨가 부딪힌 유저 중 한 명의 목을 붙잡아 올리자, 라이프 드레인으로 그를 미라로 만들어 죽여 버렸다.

견습 성기사를 에워싸고 있던 매드독 소속의 유저들은 갑작스러운 제로의 난입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 넌 또 뭐 하는 찌끄레….”

“쉿.”

오크 부락을 관리하는 유저들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일까.

한 유저가 개똥폼을 잡으며 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로는 자신을 향해 뭐라 뭐라 외치는 유저를 향해 입에 손가락을 대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견습 성기사의 앞까지 걸어 나갔다.

“안녕?”

“…?”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에 견습 성기사는 물론, 모여 있던 매드독의 유저들마저 어이없다는 듯 제로를 바라봤다.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벤.”

“어떻게 내 이름을…?”

견습 성기사, 벤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제로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널 잊을 리가 없지. 암흑 기사 벤.”

“암흑 기사? 그건 또 뭔 중2병 돋는 이름이냐.”

제로의 말에 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암흑 기사 벤.

이 이름은 미래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다.

미래에 성기사로서 신성 길드의 간판이었던 벤은 역으로 신성 길드에 배신당한다.

그것을 넘어 신성 길드의 수작으로 성기사로 몸담았던 교단마저 방출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벤은 마신 쪽으로 갈아타게 된다.

그로 인한 복수심 때문일지 신성 길드원들을 무차별 PK하게 되는 벤은 그 강함을 바탕으로 무수히 많은 악명을 떨치게 된다.

‘그때 생각했었지. 만일 벤이 처음부터 마신 쪽으로 루트를 탔다면. 그리고 그에 맞춰 성장했다면 얼마나 강해졌을까…, 라고 말이야.’

과거를 떠올리며 싱긋 웃어 보이는 제로에, 벤이 다시 한번 헛웃음을 터트렸다.

뜬금없이 나타나 알려 준 적도 없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놓고는.

암흑 기사니 뭐니 하는 중2병 돋는 이름으로 부르더니, 이제는 면전에서 웃어 젖히기까지 한다.

그런 행동은 제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한편, 매드독의 유저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제로에 으득! 이를 갈며 무기를 뽑아 쥐었다.

“이 미친놈들이 쌍으로 난리네.”

“그냥 죽여 버리죠?”

“새끼들이 아주 그냥. 니들은 매드독이 우습게 보이냐?”

길드원들의 성화에 리더로 보이는 유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매드독의 마스터가 신성 길드 내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유저의 동생이라는 점이 걸렸지만….

‘먼저 시비를 턴 건 저놈이니 상관없겠지.’

만일 잔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먼저 시비를 건 쪽이 저놈이라고 하면 나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리더가 입을 열었다.

“죽여.”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드독 유저들이 달려들었다.

각종 스킬을 난발하며 달려드는 그들에 벤 또한 방패와 철퇴를 들어 올리며 응수했다.

아니 응수하려 했다.

“넌 가만히 있어. 아직 레벨도 딸리잖아.”

제로는 달려드는 유저들을 향해 똑같이 달려들려는 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런 제로를 벤은 의아해하며 바라봤고, 매드독 유저들은 미친놈 바라보듯 했다.

“여기는 시체도 많네. 썩은 몸뚱이를 일으켜라, 망자의 병사.”

까드득-! 까득.

끼기기긱!

네크로노미콘이 펼쳐지며 사마력이 퍼져나간다.

달려들던 유저들은 제로를 중심으로 갑작스레 퍼져나가는 검은 기운에 당황해 몸을 멈췄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사마력은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망자의 병사로 만들었다.

“네크로맨서!”

“히든 클래스다!”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멀쩡한 시체가 언데드로 되살아나자 놀라 외쳤다.

미래에는 흔하디흔한 직업 중 하나이지만, 지금의 로스트 월드에서 네크로맨서의 입지는 히든 클래스 그 이상이었다.

“모조리 쓸어버려.”

끼기긱!

끼긱!

끼아아악!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자의 병사들이 귀곡성을 터트리며 유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평범한 인간의 시체가 아닌, 나름 오크의 시체로 만들어진 망자의 병사들은 지금까지 제로가 일으킨 것들 중 나름 쓸 만한 강함을 자랑했다.

거기에 멈추지 않은 제로는….

“망자의 불꽃. 망자의 원한. 명계의 삭풍.”

삼종 버프 마법을 동원해 망자의 병사들을 더욱 강화시켰다.

유저들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의 육체에는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휘두르는 무기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대지를 내디디며 나아가는 양발에 감도는 삭풍은 병사들의 이동 속도를 더욱 증가시켜 줬다.

“절반은 언데드를, 절반은 네크로맨서를 처리해!”

“단순한 스켈레톤이야!”

“그래봤자 양학용 직업이야!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매드독 유저들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리더의 명령에 따라 절반은 달려드는 망자의 병사들을, 절반은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벤은 자신들을 아니, 정확히는 제로를 향해 달려드는 유저들에 칫! 하고 혀를 차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벤 또한 타 게임에서 넘어온 유저였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가 접근전에 약하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네크로맨서였다면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을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방어는 맡…!”

“그럴 필요 없어.”

제로는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벤의 뒷목을 붙잡으며 뒤로 던졌다.

아무리 벤이 견습 성기사라 하더라도 이제 막 오크 부락에 왔다면, 그 방어력은 딱히 기대할 수 없었다.

“멍청한 새끼! 죽어!”

도적으로 보이는 유저가 제로의 등 뒤로 나타나며 단검을 휘둘렀다.

제로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지는 단검에는 독으로 보이는 녹빛 액체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본 실드.”

카가각-!

제로를 향해 휘둘러진 단검은 거대한 흑골 방패에 막혔다.

허나 도적은 자신의 공격이 막혔음에도 비릿한 미소를 내비쳤다.

“병신. 앞이 비었어!”

도적의 말마따나 본 실드가 나타난 것은 제로의 뒤쪽.

제로의 앞은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뒤늦게 도착한 나머지 유저들 또한 도적과 마찬가지로 기분 나쁜 미소를 내비치며 무기를 휘둘렀다.

“강력한 일격!”

“스네이크 샷!”

가장 먼저 도착한 전사와 창술사 유저가 스킬을 사용하며 공격했다.

전사의 검엔 마나가 깃들며 그 위력이 배가 되었고.

창술사의 창은 뱀의 그것과 같은 기묘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제로의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앞이 비었다고? 글쎄?”

터덕-!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오는 반투명한 손, 망자의 손아귀가 제로를 노리며 날아오는 검과 창을 붙잡았다.

“이, 이건 또 뭐야!”

“이런 젠장!”

갑작스런 망자의 손아귀에 무기를 휘둘렀던 유저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멍청한 놈들.”

스킬 발동, 프리즌 소울.

쩌저적-!

제로가 앞의 두 유저를 가리키자, 땅 밑에서 서슬 퍼런 냉기를 품은 유령이 튀어나와 그들의 발을 얼렸다.

“다음으로는 데스 볼.”

콰앙-!

발이 얼어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저들의 안면에 데스 볼이 틀어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데스 볼의 폭발에 휘말린 유저들은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미친!”

“딜이 뭐 저따구야!”

뒤에 있던 유저들은 동료가 한 방에 죽을 줄 몰랐다는 듯, 한껏 당황함을 드러냈다.

제로는 그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냐?”

“젠장!”

제로의 말에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도적 유저가 욕설을 내뱉으며 단검을 내던졌다.

그의 손에 쥐어진 여섯 개의 단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제로의 몸에 틀어박혔다.

“화이트 스네이크의 독이 묻어 있는 단검이다! 뒈져 버려!”

‘화이트 스네이크라.’

도적의 말에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름 이름 있는 길드의 도적이라고, 150레벨 이상의 몬스터 중 하나인 화이트 스네이크의 독마저 사용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거 구한다고 나름 돈 좀 깨졌겠네. 근데 미안해서 어쩌냐?”

‘나는 독이 통하지 않는데.’

제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몸에 꽂힌 단검을 하나, 하나 뽑아냈다.

그 모습에 도적은 물론, 주변에 있던 유저들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친.”

“저게 말이 되냐?”

“아무리 네크로맨서가 히든 클래스라지만….”

그들은 제로가 독에 중독되지 않은 이유가 네크로맨서라는 직업 특성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진실은 달랐다.

‘의태의 반지에 본래의 종족이 가진 특성이 적용될 줄은 몰랐는데.’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종족 특성으로 독을 무시합니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인간의 모습은 의태의 반지에 의한 모습이다.

제로의 본래 종족은 하급 망자. 애초에 뼈로 이루어져 있는, 언데드에 가까운 제로에게 독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뭐, 나름 이득은 이득인가?”

“뭐라 지껄이는 거야!”

제로의 중얼거림에 빡친 유저 중 한 명이 달려들며 무기를 휘둘렀다.

독이 통하지 않으면 무기로 직접 죽여 버리면 된다.

그러한 생각을 한 유저가 휘두르는 대검에는 강맹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다고.”

스킬 발동, 데스 볼.

콰앙!

크아아아악-!

제로의 손짓에 따라 만들어진 데스 볼이 터지고.

그 폭발에 휘말린 기사 유저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폭발에 의한 1차적인 데미지와 함께, 폭발에 의해 스며든 죽음으로 인한 2차적인 도트 데미지에 의해 바닥을 나뒹굴던 기사 유저마저 죽어 버렸다.

주변의 유저들은 설마하니 탱킹을 담당하는 기사마저 원킬이 날 것이라곤 생각을 못 했는지, 그 자리에서 벙찐 표정으로 제로를 바라봤다.

“더 안 들어오냐?”

움찔움찔.

네크로노미콘을 펼치며 말하는 제로에 유저들이 머뭇거렸다.

그들로서는 괜히 달려들었다 죽어 데스 페널티로 경험치와 아이템을 잃기 싫었다.

그렇게 유저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느새 나머지 절반의 유저들을 학살한 망자의 병사들이 제로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다소 숫자가 줄어들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것들은 시체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소모품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뭐 해? 안 들어와?”

다시 한번 이어지는 제로의 도발에도 유저들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그들을 관리하는 리더 격의 유저마저 선뜻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에, 그 따까리들이 어찌 먼저 움직이겠는가.

제로는 유저들의 모습에 흥이 떨어졌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에휴, 멍청한 놈들. 깡이 없어요, 깡이.”

저런 놈들이 훗날 일어난 전쟁에서 인류를 배신하고 허상계 쪽에 붙는다.

물론 그 미래는 죽음일 뿐이었지만, 그 잠깐의 안위를 보장하고자 인류를 배신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짜증 나는 기억이 떠올라 버렸잖아.”

제로 또한 미래에 그런 류의 인간들 덕분에 죽을 뻔했었다.

그 사실이 떠오르기 무섭게 제로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사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모조리 죽어 버려.”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우웅-!

콰아아앙!

제로를 중심으로 거대한 죽음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 파동에 휘말린 유저들은 압도적인 데미지에 이렇다 할 단말마 한 번 내뱉지 못하고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제로는 죽어 버린 매드독 유저들이 흘린 아이템들을 회수하며 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대화 좀 할까? 암흑 기사 벤.”

“그러니깐 그 암흑 기사라는 중2병 돋는 칭호 좀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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