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제 이름은 켄달! 네크로맨서가 되고 싶습니다!”
손을 번쩍 들며 말하는 궁수 유저.
스스로를 켄달이라 소개한 그의 말에 제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울의 미궁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뭐? 네크로맨서가 되고 싶다고?
‘저놈은 내가 네크로맨서 전직관인 줄 아나.’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로는 당연히 네크로맨서가 전직관이 아니었다.
애초에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해선 시작의 도시 옆에 있는 오크 부락.
개중에서도 오크 워리어의 천막 곁에 있는 버려진 우물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불길한 사원의 불길한 제단에 가야 한다.
그 외의 방법들도 있지만, 현재의 유저들의 수준을 고려해 보자면 불길한 제단 외에 전직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저놈은 왜 불길한 제단에 가지 않… 아.’
귀찮음을 느낀 제로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불길한 사원에 관한 정보에는 네크로맨서로 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지 않다.
제로 본인 또한 네크로맨서가 아닌 죽음의 대리자라는 직업으로 전직했기에, 아카식 레코드에는 네크로맨서에 관한 정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실수했네.”
“네?”
제로의 중얼거림에 켄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켄달의 반짝이는 두 눈동자는 기대 반, 즐거움 반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를 보며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켄달은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일반 유저를 네크로맨서로 전직시켜 줄 수 있겠냐고. 이럴 때는 그냥 죽여 버….’
[그냥 받아들이지 그래?]
흠칫-!
눈앞의 켄달을 죽여 버리기로 마음먹은 찰나, 제로는 머릿속에 틀어박히는 자칭 ‘죽음’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기 무섭게 긍정적인 죽음의 대답이 들려왔다.
[당연한 거 아니야?]
[넌 하나뿐인 내 대리자야.]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널 지켜보는 편이 더 재미있거든.]
‘그러냐.’
죽음의 말에 제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는 신. 아니, 신에 근접하는 무언가다. 괜히 기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나에게 힘을 준 은인이나 다름없으니.’
[그렇지, 그렇지. 네 입장에서 난 힘을 준 은인이나 마찬가지지.]
제로는 막상 본인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살짝 오묘해짐을 느꼈다.
그나저나….
‘그나저나 받아들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슬쩍 켄달을 바라봤다.
그런 켄달은 여전히 눈을 빛내며 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 말 그대로야. 넌 내 대리자. 즉, 나를 떠받드는 ‘신자’를 받을 수 있거든.]
‘신자? 무슨 종교냐?’
[글쎄. 날 신앙하는 종교라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그건 사양하….’
마지막 죽음의 말에 제로가 단호히 거절하려다 생각을 멈추었다.
‘종교… 라.’
죽음의 말대로 다른 유저들을 신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력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 된다.
‘거창하게 종교까지 갈 필요도 없어. 애초에 종교를 만든다 해도 관리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자신의 직속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비밀 결사대를 만드는 것은 어떠할까?
또한 죽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가 된다는 것은, 평범한 네크로맨서보다 더욱 강력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미래에 일어날 전쟁에 큰 도움이 되겠어.’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켄달을 바라봤다.
켄달은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서 검은 귀화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네크로맨서가 되고 싶다고?”
“네!”
제로의 질문에 켄달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완전히 날 NPC로 보고 있네.’
제로는 켄달의 대답, 목소리, 손짓 하나하나에 자신을 완전히 전직관 NPC로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상대가 자신을 NPC로 보고 있다면 그에 응해 주면 그만이다.
어느 순간 진중해진 제로의 목소리에 켄달은 다시 한번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대답을 내뱉은 목소리에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하긴, 평범한 유저들. 아니, 날 제외한 모든 유저들에게 로스트 월드는 단순한 게임일 뿐이겠지.’
“말로만 내뱉어지는 각오로는 부족하다. 또한… 너에게선 죽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 말씀이십니까?”
제로의 말에 켄달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점에 관해선 제로 또한 사뭇 답답함을 느꼈다.
차라리 상대가 자신을 유저로 인식하고 있다면 단순하게 ‘악명을 3,000까지 올려라.’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대화 자체가 제로에게 있어서 하나의 도박이었다.
“그러하다. 너에겐 죽음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너에게 시련을 내려 주마. 죽음을 쌓아 올려라. 그리하여 다시 날 찾아오거라.”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는 살짝 긴장했다.
아무리 극한의 리얼리티를 가진 로스트 월드라 하더라도 과연 스스로의 생각대로 시스템이 움직여 줄까.
제로가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돌연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켄달에게 퀘스트-죽음을 쌓아 올려라를 부여하였습니다.]
[보상을 설정하여 주십시오.]
‘유저가 유저에게 퀘스트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제로는 속으로 놀람을 집어삼켰다.
아무리 극한의 리얼리티를 가진 로스트 월드라지만, 설마하니 유저 대 유저 간의 퀘스트가 가능하다니.
아니, 어쩌면 현재의 제로는 시스템상으로도 유저가 아닌 몬스터나 NPC로 분류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하면 넌 나의 제자가 되어, 나의 밑에서 ‘네크로맨시’를 배우게 될 것이다.”
[보상-히든 클래스로의 전직을 설정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메시지가 떠오르고 사라지기 무섭게 켄달의 눈빛이 변했다.
켄달 또한 눈앞에 제로가 설정한 그대로의 퀘스트 창이 떠오른 것이다.
“드디어….”
켄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무섭게 제로의 눈앞으로 ‘상대가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스스로를 켄달이라 소개한 그 또한 눈치챈 것이다.
자신이 받게 된 퀘스트의 보상으로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이 네크로맨서보다 더욱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한 켄달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라졌다.
켄달에게 부여된 퀘스트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것을 보아 ‘일정 수치까지 악명을 쌓아야 된다.’라는 내용은 잘 전달된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켄달이라는 유저 덕분에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제로 또한 의태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저벅. 저벅.
시작의 도시 서문 너머에 위치한 사냥터, 오크 부락의 입구에 한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은 로브를 걸치고, 흑발에 흑안을 지닌 평범하디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나 마법사요!’라고 광고하듯 말라비틀어진 나무로 만들어진 스태프를 쥐고 있었다.
그러한 검은 로브의 유저가 망설임 없이 오크 부락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두 명의 유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잠깐.”
“워워, 이분 보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유저에 검은 로브의 유저, 제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무슨 문제라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이 새꺄. 사냥터에 들어가려면 이용료를 지불해야 할 거 아니야. 저짝의 저놈들처럼 말이야.”
명백한 시비조로 말하는 두 유저에 제로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편, 그들이 가리킨 장소에는 수많은 초보 유저들이 골드를 지불하며 오크 부락에 들어가는 모습이 내비쳐졌다.
‘벌써 사냥터 통제에 들어간 건가.’
그 모습에 제로가 속으로 혀를 찼다.
사냥터 통제.
대형 길드들은 물론, 어느 정도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닌다는 길드라면 누구나 행했던 행위였다.
나름 질 좋은 사냥터나 던전 등을 독점해, 일반 유저들에게 시간당 골드를 받고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사냥터나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그것을 관리하는 길드의 몫이었다.
‘이건 안 좋은데.’
제로가 슬쩍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유저들을 훑어봤다.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로 유추해 보자면 레벨은 80 정도.
하지만….
‘미친개. 하필이면 귀찮은 길드가 독점했네.’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사냥개 형상의 마크가 거슬렸다.
저걸 사용한다는 것은 눈앞의 유저들이 매드독 소속의 길드라는 뜻이었다.
매드독은 소속되어 있는 유저들 하나하나가 쓰레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질이 낮았으며, 그중에서도 매드독의 길드마스터는 최고의 쓰레기였다.
다만 그럼에도 매드독 길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매드독의 길드 마스터가 신성 길드의 간부 중 한 명의 친동생이었던가.’
신성 길드.
성기사나 사제 따위의 직업군만 모여 있는 길드로 10강 중 하나였다.
10강은 아직 도입되지 않은 시스템인 길드 랭킹에서, 최상위 10위 이내의 길드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특히나 직업군이 직업군이라 그들은 타 길드에 사제들을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세력과 재력을 불려 나갔으며.
로스트 월드의 거의 대부분의 신성 계열 직업을 가진 유저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신성 길드라. 귀찮아지겠네.’
쯧! 혀를 찬 제로가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조용히 물러나는 제로에 길을 가로막았던 매드독 길드원 두 명이 낄낄거렸으나 상관없었다.
아니, 적어도 ‘그때’까지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퍼억-!
쿠당쾅!
제로가 막 오크 부락을 벗어나려는 순간, 어디선가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긴 제로가 돌연 씨익 웃어 보였다.
“찾았다.”
제로의 눈에 보인 것은 한 유저였다.
그는 한 손엔 철퇴를 쥐고, 다른 손에는 거대한 방패를 쥐고 있었다.
투구에 강철 갑옷까지 걸친 그에게선 성스러운 오오라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누가 봐도 그 유저의 직업이 견습 성기사라는 것을 알려 줬다.
“야, 이 새끼들아! 사냥터가 니들 거냐! 뭔 짓을 해대는 거야!”
그는 손에 쥐어진 철퇴를 망설임 없이 휘두르며 외쳤다.
한편, 그의 난동에 제로를 막아섰던 유저들까지 움직이려는데….
“잠깐만.”
“응…!”
“그냥 꺼…!”
웁웁!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잡혀 버린 두 쓰레기는 성난 눈으로 제로를 노려봤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라이프 드레인.”
쭈우우욱-!
털썩.
스킬이 발동되기 무섭게 붙잡힌 두 쓰레기들이 말라비틀어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미라가 되어 버린 쓰레기들의 시체를 집어 던진 제로는 난동을 부리는 견습 성기사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쯤이면 오크 부락으로 올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운이 좋았네.”
조용히 중얼거리며 걸어 나가는 제로는 인벤토리에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