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0화 (10/200)

제10화

“데스 애로우.”

제로의 손짓에 따라 만들어진 검은 화살들이 쏘아졌다.

제로의 사마력이 담긴 데스 애로우는 언데드라 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콰가강-!

제로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 또한 마찬가지로 데스 애로우를 사용해 요격하는 것으로 방어를 취했다.

“어디까지 따라 할 수 있나 볼까? 본 스피어.”

거대한 흑골의 창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제로의 본 스피어에 맞춰, 도플갱어 또한 본 스피어를 사용하며 대치했다.

흑골과 백골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사방으로 뼛조각이 흩날렸다.

“스킬의 숙련도도 똑같이 적용되는 건가.”

제로는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도플갱어의 스킬에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이 던전에 들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을 할애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끝낼게.”

말을 마친 제로가 아공간을 열며 시체를 꺼냈다.

아공간은 죽음의 대리자로 전직하면서 획득한 것으로, 기타 다른 아이템은 보관할 수 없었다.

아공간에 집어넣고 꺼낼 수 있는 것은 오롯이 시체뿐이었지만, 네크로맨서에 가까운 죽음의 대리자라는 직업 특성상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시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거든. 썩어 문드러진 그 육신을 일으켜라. 망자의 병사.”

덜그럭. 덜그럭.

끼기기긱-!

제로의 스킬이 발동하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켰다.

살점은 썩어 문드러져 떨어져 내리고, 새하얗던 뼈들은 제로의 사마력에 의해 검게 물들었다.

한 손에는 검이나 창 따위를 쥔 병사들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따라 할 수 없나 봐?”

제로가 아공간을 열어 시체를 꺼내고. 그것들을 언데드로 되살리는 모습에 당황한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는 그 특성상 상대의 외형과 아이템, 스킬 따위를 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만능이 아니었다.

도플갱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제로의 아공간과 같은 류의 그것은 그 한계 너머에 위치한 무언가였다.

결국 도플갱어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의 병사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처했다.

콰가가강-!

거대한 백골로 이루어진 본 스피어가 튀어나와 병사를 짓뭉개고.

수십 발의 데스 애로우가 쏘아져 병사들을 공격했다.

그 외에도 제로가 가지고 있던 다종다양한 공격 마법들이 펼쳐지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망자의 병사를 상대하는 도플갱어였다.

제로는 무수히 많은 마법들을 토해 내는 도플갱어에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사기는 사기네.”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지금쯤 부족한 마나에 허덕여야 했다.

하지만 죽음의 대리자라는 직업과 각종 칭호 그리고 밸런스 붕괴급의 아이템인 네크로노미콘은 제로와 제로의 모습을 따라한 도플갱어에게 마르지 않는 사마력을 쥐여 줬다.

뭐, 그래도.

“그마저도 한계는 존재하지만 말이야.”

확실히 그마저도 한계는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마법사 계열 직업군에 비해 그 한계선은 널널한 편임을 제로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음은, 피어올라라, 망자의 불꽃이여.”

화르륵-!

제로가 또 다른 스킬을 발동시켰다.

제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드는 망자의 병사들의 겉으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망자의 불꽃.

근처의 적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히며, 불꽃이 깃든 대상에게는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높여 주는 스킬이다.

특히나 망자의 불꽃이 주는 데미지는 화속성이 아닌 죽음 속성으로, 저 불꽃을 막기 위해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내성을 지녀야 했다.

평범하게 화속성의 공격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아직 멀었어. 데스 볼.”

콰가가강-!

허공에 만들어진 검은 구체는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망설임 없이 도플갱어를 향해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그것은 파이어 볼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나, 그 위력은 확실하게 파이어 볼 그 이상이었다.

도플갱어는 제로가 쏘아 대는 데스 볼에 실드 마법을 펼치며 막아섰으나, 제로의 공격은 데스 볼뿐만이 아니었다.

후웅-!

콰직!

도플갱어가 데스 볼에 시선을 빼앗긴 틈에 접근한 망자의 병사가 무기를 휘둘렀다.

망자의 불꽃이 깃든 병사들의 무기는 확실하게 적중하여, 도플갱어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실히 내 모습을 해서 그런지 딜이 잘 안 박히네.”

제로가 만족할 수준의 데미지를 입히진 못했다.

아무래도 제로의 모습을 취함으로써 도플갱어 자체가 죽음에 대한 내성이 생긴 듯 보였다.

“음. 그러면.”

후두둑-!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도플갱어를 상대하고 있던 망자의 병사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병사들을 상대하던 도플갱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제로를 바라봤으며.

제로는 그런 도플갱어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렸다.

“죽음을 거슬러 기어 올라와 나의 적을 죽여라, 망자의 정예병.”

기기기긱-!

다시 한번 열린 아공간이 시체를 토해내고.

그렇게 나타난 시체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허나 그렇게 몸을 일으키는 시체들은 지금까지의 망자의 병사와는 달랐다.

망자의 병사가 스켈레톤에 가까웠다면, 지금 몸을 일으키는 망자의 정예병들은 그 모습이 시체였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수십 개의 시체를 사용했음에도 몸을 일으킨 망자의 정예병의 숫자는 총 네 명이었다

창을 든 정예병이 둘. 검을 든 정예병이 하나. 나머지 하나는 거대한 그레이트 보우를 쥐고 있었다.

“시체하고 사마력의 소비가 심하지만, 그만큼 강함은 확실하니 뭐.”

제로는 몸을 일으킨 망자의 정예병을 훑어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제로의 명령에 맞춰 정예병들이 움직였다.

창과 검을 든 정예병들은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들며 무기를 휘둘렀으며.

그레이트 보우를 쥐고 있던 정예병은 제로의 뒤에 자리를 잡고, 마치 발리스타를 떠올리게 만드는 거대한 화살을 쏘아 댔다.

“여기에 망자의 불꽃. 망자의 원한. 명계의 삭풍까지.”

화르륵-!

치이이익-!

망자의 정예병들을 상대로 스킬이 발동했다.

도플갱어를 향해 달려드는 정예병들의 전신에 망자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그들이 쥐고 있던 무기에는 망자의 원한을 품은 냉기가 감돌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화살촉에는 명계의 삭풍이 감돌아 그 날카로움과 관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건 좀 힘들 거야.”

제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마따나 아까 망자의 병사가 줬던 데미지보다, 지금의 망자의 정예병들이 주는 데미지가 더욱 높았다.

아무리 제로의 모습을 따라 해 죽음에 대한 내성을 획득했다 해도, 도플갱어의 어설픈 변신으로는 망자의 정예병들까지 막아설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여기에 망자의 손아귀.”

키이이이익-!

지금까지 유저들을 사냥함에 있어 가장 유용했던 마법, 망자의 손아귀가 발동했다.

제로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귀곡성과 함께 만들어진 반투명한 손아귀는 허공을 부유하며 도플갱어를 압박했다.

가뜩이나 따라붙은 정예병들 덕분에 제대로 된 마법조차 사용할 수 없는 도플갱어였다.

헌데 그 뒤로 망자의 손아귀까지 따라붙으니 반격은커녕 방어를 하기에도 벅차 보였다.

“그냥 후딱후딱 죽고 템이나 뱉어.”

스킬 발동, 본 스피어.

콰직-!

끼아아악-!

거대한 흑골의 창에 어깨가 박살이 났다.

그에 도플갱어의 입이 열리며, 처음으로 비명에 가까운 괴성이 흘러나왔다.

“시끄러워.”

콰앙-!

튀어 나간 데스 볼이 도플갱어의 안면에 틀어박히며 폭발했다.

그 뒤로 망자의 원한이 깃든 정예병들의 무기가 틀어박히고.

마지막으로 명계의 삭풍이 깃들어 있는 화살이 도플갱어의 육체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악-!

아무리 제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해도, 그 본질은 생명을 가진 도플갱어다.

공격이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생명을 갉아먹는 죽음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도플갱어는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자신의 생명에 공포를 느꼈다.

“이제 편하게 해 줄게.”

스윽.

괴로워하는 도플갱어에게 제로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제로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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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입에서 명계의 언어로 이루어진 영창이 흘러나오면 흘러나올수록,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사마력의 양이 증가했다.

그렇게 1분간 이어진 영창이 끝을 맺으며.

“데스 스톰.”

현재의 제로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제로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사마력이 어느새 도플갱어를 중심으로 휘몰아쳤으며.

그 폭풍 속에는 명계의 삭풍으로 이루어진 바람의 칼날이 깃들었다.

데스 스톰에 갇힌 도플갱어는 어떻게든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했으나 소용없었다.

허공을 부유하던 망자의 손아귀는 도플갱어의 발목을 붙잡아 늘어지고. 그 입에 틀어박히는 등 도플갱어의 도주 수단을 확실하게 막아섰다.

끼아아아아악-!

데스 스톰에 갇힌 도플갱어는 결국 공포가 깃든 비명을 내지르며 갈기갈기 찢겨 죽음을 맞이했다.

제로의 모습에서 본래의 슬라임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간 도플갱어는 곧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으며.

도플갱어가 있던 자리에는 하나의 반지만이 반짝였다.

[거울의 미궁의 보스 몬스터, 도플갱어를 사냥했습니다.]

[유저 최초로 도플갱어를 사냥하였습니다.]

[도플갱어에 관한 정보를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시겠습니까?]

“기록한다.”

[아카식 레코드에 도플갱어에 대한 정보가 기록됩니다.]

“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제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도플갱어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는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했다.

“뭐, 그래도 내 목적은 이거였으니.”

아쉬움을 뒤로하며 제로는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주워 들었다.

“감정.”

[의태의 반지.]

공격력: 1~1 내구도: 무한

등급: 유니크

특수 스킬: 의태

거울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반지이다.

이 반지를 이용하면 인간의 형태로 의태할 수 있게 된다.

“의태의 반지 겟.”

제로는 의태의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

이것으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로가 거울의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찾았다!”

제로의 등 뒤로 한 유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유저의 목소리에 제로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런 제로의 두 눈에는….

“절 네크로맨서로 만들어 주세요!”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등에 한 자루 활을 메고 있는 유저가 눈을 빛내며 제로를 향해 외쳤다.

* * *

“발경-!”

퍼억!

무투가로 보이는 유저의 주먹질에 단단해 보이는 아이언 골렘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그가 있는 장소는 강철의 무덤으로, 기본적으로 망가진 스톤 골렘이 나타나며 보스 몬스터로는 아이언 골렘이 자리 잡고 있는 던전이었다.

아직 다른 유저들의 눈에 띄지 않은 던전 속에 있는 이 유저의 이름은 스로우.

과거 제로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끝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PVP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그렇기에 유저들 사이에서 무패의 권왕이라 불리는 최상위 랭커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강철의 무덤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걸로….”

스로우는 아이언 골렘이 드랍한 한 장의 종이를 쥐어 들며 중얼거렸다.

스로우가 강철의 무덤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히든 클래스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

스로우는 찢겨진 종이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현재 스로우의 목표는 단 한 명. 유일하게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줬던 유저, 제로뿐이었다.

비록 그때의 싸움이 전직도 하지 못한 초보자 때의 싸움이었다고 한들, 패배는 패배.

그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할 수 없는 스로우는 어떻게든 제로와 리매치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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