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9화 (9/200)

제9화

“아름답네.”

은빛 달이 떠오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지구와 다르게,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로스트 월드의 밤하늘은 절경 그 자체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넋을 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제로가 움직였다.

지금은 이런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재 제로가 있는 장소는 그림자 들판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이름만 보면 일종의 사냥터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림자 들판에는 그 어떤 몬스터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저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었다.

“그 덕분에 과거에도 발견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었지.”

속삭이듯 중얼거린 제로가 인벤토리에서 물통을 꺼내 쥐었다.

물병 안에는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제로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그림자 들판에 쏟아부었다.

물통 속에서 찰랑이는 물이 꿀렁이며 그림자 들판에 쏟아지고.

그렇게 들판 위에 고인 물웅덩이에 밤하늘을 수놓는 은빛 달의 달빛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물웅덩이가 달빛을 흠뻑 머금은 그때, 지진이라도 난 양 그림자 들판이 요동쳤다.

흔들림이 한계에 달한다고 생각되는 순간,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그림자 들판이 갈라지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의 미궁.”

제로는 새로이 나타난 계단을 망설임 없이 걸어 내려갔다.

* * *

[숨겨진 던전, 거울의 미궁을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일주일간 거울의 미궁에서 획득하는 경험치가 50% 증가합니다.]

[일주일간 거울의 미궁에서의 드랍률이 50% 증가합니다.]

[거울의 미궁을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시겠습니까?]

“기록한다.”

[거울의 미궁에 관한 정보가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었습니다.]

[명성이 200 상승합니다.]

[최초의 기록자의 효과로 명성이 100 추가 상승합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제로는 눈앞에 펼쳐진 미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울의 미궁은 이름 그대로 미로로 이루어진 던전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던전임에도 등장하는 몬스터가 단 한 마리라는 것.

그마저도 미궁의 끝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제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어서 그게 좀 불만이란 말이지.”

불평불만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내뱉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거울의 미궁은 미궁이라는 말 그대로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길목 곳곳에는 다종다양한 함정들까지 설치되어 있어, 과거 거울의 미궁은 수많은 유저들을 집어삼킨 마궁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난 공략법을 알고 있지.”

제로는 공략법을 알고 있었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누군가가 올린 거울의 미궁의 공략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략법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거울의 미궁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화륵-!

공허한 눈구멍에 피어오른 검은 귀화가 일렁임과 동시에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썩어 문드러진 그 육신을 일으켜라. 망자의 병사들이여.”

덜컥덜컥.

끼이이이익-!

제로를 중심으로 귀곡성이 울려 퍼지고.

그의 앞으로 대지가 들썩이더니 언데드가 몸을 일으켰다.

수십 마리의 언데드들은 귀기로 이루어진 갑옷을 걸치고, 양손에는 거대한 방패가 쥐어져 있었다.

“가라.”

제로가 앞을 가리키며 말하자, 언데드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공략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거울의 미궁에 깔린 함정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돌파하려면 최소 200레벨 이상이어야 한다.

복잡한 미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곳에 설치된 강력한 함정들은 지금의 제로의 발걸음을 막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제로는 언데드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덜그럭. 덜그럭.

딸깍-!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 나가던 언데드 중 한 명의 발이 움푹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장치가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콰아아-!

미궁의 바닥에 마법진이 새겨짐과 동시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아름다운 선홍빛으로 물든 불기둥에 집어삼켜진 언데드는 반항 한 번 못 하고 한 줌의 재로 변해 사라졌다.

“살벌하네.”

언데드를 집어삼키는 불기둥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제로 또한 과거에 거울의 미궁을 돌파하며 함정들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의 제로는 레벨과 아이템. 거기에 엘레멘탈 워리어라는 직업을 지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움직여.”

한편 앞으로 걸어 나가던 언데드들의 움직임이 멈추자, 제로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제로의 명령이 다시 한번 떨어지자, 멈춰 있던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애초에 저것들은 리치나 데스 나이트같이 이성을 지닌 언데드가 아니다.

동료애도 없으며,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전부 사라진다 하더라도 제로의 사마력이 충분한 이상,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거울의 미궁에 깔린 함정들을 돌파하기 위한 인형으로는 최적이었다.

그렇게 제로는 부족한 언데드들을 보충하며, 함정을 피해 거울의 미궁 내부를 거닐었다.

* * *

후웅-!

콰직!

거대한 철구가 휘둘러지며 세 마리의 언데드를 박살 냈다.

푸부부북-!

양 벽이 열리며, 수십 개의 화살이 쏟아져 걸어가던 언데드를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쩌억-!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단두대가 걸어 나가는 언데드들을 이등분으로 쪼개 버렸다.

화르륵-!

쩌저정-!

치이이익-!

불꽃과 얼음, 독으로 이루어진 함정이 발동하며 언데드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네.”

마지막 함정. 불꽃과 얼음, 독의 콜라보로 이루어진 그것을 지나치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거울의 미궁을 돌파하기 위해 소모한 언데드의 숫자만 물경 백을 넘어섰다.

“아슬아슬했어.”

제로가 아슬아슬하게 남은 사마력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미궁이 조금만 더 넓었어도.

함정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위험했을 것이다.

“그래도 돌파했다는 게 중요하지.”

음음!

고개를 끄덕인 제로가 시선을 돌렸다.

움직인 제로의 두 눈에 하나의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다 할 문양도, 음각도 없는 단순한 철문.

다만 검게 번들거리는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단단하고,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옛날에는 이걸 힘으로 열었는데.”

‘그때는 내가 미쳤었지.’

잠시 과거를 떠올린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과거의 자신은 왜 이걸 힘으로 열려 했었을까.

이 문을 여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한데 말이야.”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를 연 제로의 손에는 일곱 개의 작은 보석이 쥐어져 있었다.

일곱 개의 작은 보석은 제로가 미궁을 돌파하며 획득한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일곱 개의 색을 품은 이것은 바로 눈앞의 거대한 철문을 여는 열쇠.

딸깍. 딸깍.

제로는 일곱 개의 보석을 망설임 없이 철문의 홈에 끼워 넣었다.

마지막 보라색 보석이 홈에 끼워지는 순간.

구그그그긍-!

거대한 철문이 무거운 소리와 함께 열렸다.

철문 너머의 장소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이었다.

천장에는 종유석들로 빼곡한 공동의 중심에는 거대한 거울이 놓여 있었는데, 그 거울이야말로 거울의 미궁 그 자체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제로가 목적으로 하는 거울의 미궁의 보스 몬스터이기도 했다.

“이놈은 좀 그런데.”

제로는 거울 앞으로 걸어 나가며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거울의 미궁의 보스 몬스터는 도플갱어다.

상대의 외형과 스킬, 아이템 따위의 강함을 모조리 복사해 덤벼드는 도플갱어는 유저들 사이에서 상대하기 싫은 몬스터 TOP10에 들어간다.

분명 자신과 똑같은 강함일 터인데, 로스트 월드를 이루는 시스템의 보정을 받은 도플갱어는 자신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로가 거울의 앞에 멈춰 서는 순간, 거울의 표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두 번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도플갱어가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왕이면 좀 보기 좋게 만들 순 없는 것일까.

제로가 그러한 불평을 쏟아 내고 있을 때, 꿈틀거리는 거울의 표면으로 한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체를 이루는 뼈는 심연을 품은 듯한 흑골이다.

이마에는 붉은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으며, 그것은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오른손에 꺼림칙함을 유발하는 검은 책까지 쥐고 있는 그것은 제로 그 자체였다.

[그어어어.]

모습을 드러낸 제로 아니, 도플갱어의 입이 열리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외형을 똑같이 따라 했더라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상위종이라면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지녔겠지만, 거울의 미궁에서 나오는 도플갱어는 그 정도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다.

뭐, 어떻게 보면….

“200레벨 정도의 유저들이 들르는 던전이니 이게 당연…!”

콰직-!

말을 하던 제로가 뒤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내리꽂혔다.

“문답무용이다 이거냐? 뭐, 나도 시간이 없으니 싫지는 않다만.”

기습에 가까운 선공을 취하는 도플갱어에 제로가 피식 웃음을 내비치며 네크로노미콘을 펼쳤다.

“그럼 놀아 볼까?”

구우웅-!

말을 마친 제로의 전신에서 막대한 양의 사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분명 여기가 맞는데.”

거울의 미궁으로 향하는 입구가 닫힌 그림자 들판.

그 위에 한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등에 거대한 활을 메고 있는 유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놓쳐 버린 건가?”

한참 동안 주변을 살펴보던 그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궁수로 보이는 그가 아무것도 없는 그림자 들판까지 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레벨을 올리기 위해 맹수의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목격했던 것이다.

100레벨을 넘긴 유저들마저 손쉽게 죽여 버리는 언데드를 다루는 흑골의 리치, 제로의 모습을.

제로의 명령 하에 유저들을 죽이는 언데드들의 모습을 본 그는 확신했다. 아니, 오해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는 제로를 언데드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리치이자, 네크로맨서로 전직시켜 주는 ‘전직관’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즉시 그는 사냥을 접고, 제로의 뒤를 쫓았다.

그는 제로를 만나 반드시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숨겨진 직업.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은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제로는 이미 거울의 미궁에 들어가 버린 뒤였다.

아카식 레코드에 거울의 미궁에 관한 정보가 올라오는 시간은 일주일 뒤다. 그러니 그가 제로를 찾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젠장. 히든 클래스가 코앞이었는데.”

그는 쯧! 혀를 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허탈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응?”

그는 바닥이 축축하다는 것에 의아한 눈을 했다.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바닥이 축축하다?

“뭔가 있어!”

그는 축축한 바닥이 일종의 힌트라는 생각을 품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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