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8화 (8/200)

제8화

로스트 월드가 오픈한 지 단 한 달.

그 한 달 동안 로스트 월드는 전 세계에 크나큰 충격과 변화를 안겨줬다.

로스트 월드는 한 달 만에 동시 접속자 수 3,000만 명을 돌파했으며, 게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외에도 방송사들은 로스트 월드 전용 채널을 만들었으며, 너튜버들 또한 로스트 월드를 메인 콘텐츠로 삼았다.

고작해야 오픈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로스트 월드의 랭커들은 현실에서 연예인급의 부와 명성을 얻었으며.

타 게임의 랭커나 대형 길드들 또한 통째로 로스트 월드로 갈아탔다.

더 이상 사람들은 로스트 월드를 ‘고작 게임’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는 사람들에게 있어 제2의 세상이 되었다.

* * *

현 로스트 월드에서 고레벨 사냥터로 통하는 맹수의 숲.

가장 약한 몬스터조차 레벨 100을 가볍게 넘기는 그곳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파티가 사냥을 하고 있었다.

“몰아붙여.”

우어어어-!

가장 뒤에서, 꺼림칙함을 유발하는 검은 책을 쥐고 있는 유저, 제로의 명령에 나머지 네 명이 움직였다.

오른손에는 롱 소드를, 왼손에는 방패를 쥐고 있는 기사와 거대한 대검을 쥔 전사는 앞으로 달려들어 핏빛 늑대들의 어그로를 끌었으며, 그 뒤로 궁수가 활을 당기며 화살을 쏘았다.

단검을 장비한 도적은 숲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연계를 선보이는 네 명의 유저들은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핏빛 늑대들을 손쉽게 사냥했다.

“좋아, 움직이자.”

우어어.

마지막 핏빛 늑대가 죽자,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제로가 입을 열었다.

죽은 핏빛 늑대가 드랍한 아이템들을 회수한 제로는 뒤에서 명령만 내렸음에도.

나머지 네 명의 유저들은 그의 명령에 불편이나 불만의 기색 하나 없이 순순히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제로를 포함한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맹수의 숲에서 사냥에 열중일 때, 세 명의 유저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제로 파티를 뒤쫓는 세 명은 검은 마스크를 둘렀다.

“괜찮을까?”

“괜찮아.”

누군가의 질문에, 누군가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나름 밸런스 잡힌 파티긴 하지만, 여기는 맹수의 숲이야. 시시각각 나타나는 고레벨 몬스터들 틈에 섞이면 충분히 ‘사냥’ 할 수 있어.”

끄덕.

동료의 말에 나머지 두 유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파티를 뒤쫓는 세 명의 유저는 현실에서도 친구 사이로, 전직한 이후부터 PK와 사냥을 통해 레벨업을 한 케이스였다.

한 명은 궁수, 두 명은 어쌔신으로 전직해 PK를 일삼아 온 그들의 두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편 그들이 뒤쫓는 제로를 중심으로 한 파티는 다시 나타난 몬스터 사냥에 열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명이 조용히 활을 꺼내 쥐었다.

“화살을 쏘는 그때가 신호야.”

끄덕.

활잡이의 말에 나머지 두 명이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은신계 스킬까지 발동하며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동렙의 유저라 하더라도 쉽사리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셋. 둘. 하나. 지금!’

“파워 샷!”

퉁-!

퍼억!

활잡이의 손을 떠난 화살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가장 뒤에 서 있는 유저, 제로의 심장을 꿰뚫었다.

파티로 이루어진 유저들을 PK하기에 가장 먼저 하는 정석적인 행동이 고위력의 마법사 혹은 파티의 리더부터 죽이는 것이다.

그들은 제로가 마법사인지 혹은 리더인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마법서로 보이는 책을 쥐고 있는 점.

그리고 가장 뒤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제로를 리더 겸 마법사로 판단했다.

한편 확실히 죽이겠다는 일념에 스킬까지 사용해 위력이 배가 된 화살은 제로의 가슴에서 튀어나와 앞의 나무에 틀어박혔다.

화살에 몸이 뚫린 제로가 풀썩, 쓰러지는 순간.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머지 두 유저가 움직였다.

“궁수하고 도적부터 노려!”

“알고 있어!”

상대적으로 방어력과 체력이 높고, 이동 속도가 느린 기사나 전사를 먼저 노릴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들이 로스트 월드에서 PK를 해 오며 그리고 다른 게임에서도 PK를 통해 실력을 쌓아 오며 깨달은 일종의 팁과 같았다.

그렇게 재빠르게 움직인 그들은 망설임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우당탕-!

두 명의 유저가 휘두르는 네 개의 단검이 반짝인다고 여겨지기 무섭게, 궁수와 도적은 목이 베였다.

머리를 잃어버린 몸뚱이가 바닥을 나뒹굴 때.

두 유저는 순식간에 기사와 전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무리다-!”

“포이즌 어택!”

푸욱!

순식간에 전사와 기사의 뒤에 도착한 그들이 다시 한번 단검을 휘둘렀다.

백어택과 함께 중독 상태를 유발하는 포이즌 어택. 거기에 정확히 심장이라는, 급소 시스템을 이용하여 딜을 증폭시킨 그들의 공격에 기사와 전사마저 쓰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뭔가 이상해.”

쓰러진 유저들에게서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가장 먼저 단검을 휘둘렀던 어쌔신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에 한참을 죽어 버린 유저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를 깨달았다.

“잠깐! 이놈들 시체가 사라지지 않…! 커헉!”

다급히 외치던 유저가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롱 소드의 검신이 그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젠… 장! 도망…!”

촤악-!

힘겹게 내뱉은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휘둘러진 대검에 어쌔신 유저의 목이 달아났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머지 두 동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한편, 그들이 놀라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죽었다 여겨진 유저. 꺼림칙한 검은 책, 네크로노미콘을 쥐고 있던 제로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설마 내가 역으로 PK를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제로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게임이 오픈한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대다수의 유저들은 PK에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것도 고레벨 사냥터라 유저 수도 적은 맹수의 숲에서 PK를 당할 줄이야.

이건 명백한….

“내 실수네.”

제로의 실수였다.

아무리 유저 수가 적은 고레벨 사냥터라 해도.

그리고 아무리 대다수의 유저들이 PK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의 경우마저 생각해 움직여야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어.”

슬쩍 시선을 돌린 제로가 중얼거렸다.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패배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개중에서 크나큰 요인 몇 가지 중 하나는 당연하게도 ‘배신자’들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또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허상괴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그놈들 덕분에 나름 비등했던 전쟁의 양산이 허상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 미치겠네.”

“너…. 정체가 뭐야.”

제로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 살아남은 어쌔신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심장이 뚫리고도 살아 있는 것일까?

뭔가의 스킬? 직업 특성? 그것도 아니면 무언가 특별한 아이템 덕분인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극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로스트 월드 특성상 심장이 뚫리고도 살아 있을 순 없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제로를 향하는 어쌔신의 두 눈동자와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묻어나왔다.

제로는 그런 어쌔신을, 그리고 등 뒤에서 똑같이 놀라고 있는 궁수를 슬쩍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 왜일까?”

스륵.

그 말과 함께 제로가 후드를 뒤로 젖혔다.

젖혀진 후드 너머로 드러난 것은 전신이 검은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였다.

두개골의 정중앙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검은 해골.

제로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하나둘씩 몸을 일으킨 나머지 네 명 또한 로브를 벗어 재꼈다.

드러난 것은 새하얀 백골로 이루어진 스켈레톤들뿐이었다.

“언… 데드.”

제로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사냥하려 했던 파티가 사실은 몬스터. 그것도 언데드였다는 것에 어쌔신과 궁수의 놀람은 배로 증폭되었다.

“왜 몬스터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야!”

“이런 미친 게임을 봤나!”

몬스터가 몬스터를 사냥한다?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스트 월드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저 아직까지 유저들이 목격하지 못했을 뿐, 미래의 로스트 월드에선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이동해 한 사냥터의 생태계가 뒤바뀐 일까지 있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냐?”

까딱.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비틀거리며 일어난 네 스켈레톤이 움직였다.

검과 방패를 쥔 스켈레톤은 제로의 곁에 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것에는 혹시 모를 궁수의 저격을 막아 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나머지 대검과 활. 단검을 쥔 언데드는 아직까지도 얼이 빠져 있는 어쌔신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큭-!”

어쌔신의 무서운 점은 인식 밖에서의 공격. 즉, 기습이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어쌔신은 그 강함이 30%는 줄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미친놈은 달랐지만 말이야.’

허둥거리며 언데드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어쌔신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미래에는 어쌔신이면서도 정면승부를 고집하는 미친놈이 한 명 있다.

히든 클래스도 아닌, 어쌔신이라는 노멀 클래스를 지녔음에도 그러한 짓거리를 한 그놈은 비록 랭커에는 들지 못했지만, 수많은 유저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유저가 됐다.

“그나저나 슬슬 랭커들과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죽음의 대리자는 확실히 강력한 직업이었다.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따로 스킬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으며, 만들어 내는 언데드 하나하나도 강력했다.

그 외에도 각종 저주와 공격 마법 등을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네크로맨서의 상위호환이다.

하지만.

“허상계와의 전쟁에선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애초에 제로가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제로는 ‘압도적인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닌, 허상계에서 넘어올 ‘다수의 병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허상괴의 왕과 같은 괴물을 같은 괴물인 최상위 랭커들이 상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 시점에서 미래에 랭커가 될 유저들과의 접점은 필수나 다름없었다.

저벅. 저벅.

“응?”

제로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전사와 궁수, 도적으로 이루어진 언데드들이 다가왔다.

그것들의 접근에 슬쩍 주변을 훑어보자, 어느새 자신을 노렸던 머더러들. 멀리서 화살을 쏘아 댔던 궁수와 회피에만 전념했던 어쌔신은 시체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돌아가.”

딱-!

저것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기사와 전사, 궁수와 도적으로 이루어진 언데드들이 무너지며 사라졌다.

“그 전에 우선은.”

제로가 후드를 뒤집어쓰며 움직였다.

한 달 동안 나름 레벨도 올렸다.

유저들에게 몬스터로 인식되는 특성상, 제대로 된 사냥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또한….

“계획을 위해서라면 그 아이템은 반드시 필요해.”

조용히 중얼거리며 움직이는 제로는 어느 순간 맹수의 숲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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