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7화 (7/200)

제7화

[죽음 ???와 계약했습니다.]

[직업-죽음의 대리자로 전직합니다.]

[칭호-죽음의 대리인을 획득합니다.]

[죽음과의 계약으로 네크로노미콘을 획득합니다.]

[죽음과의 계약으로 종족이 인간에서 하급 망자로 전환됩니다.]

[죽음과의 계약으로 성향이 카오스로 고정됩니다.]

[죽음과의 계약으로 악명이 측정 불가로 고정됩니다.]

[죽음과의 계약으로 소속이 외차원으로 고정됩니다.]

“죽음의 대리…! 큭!”

눈앞을 어지럽히는 메시지 창을 지우던 제로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계약을 맺고, 심연에서 빠져나와 불길한 제단에서 눈을 뜨는 그 순간, 제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함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공포일지도 몰랐다.

마치 영혼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상실감이 제로의 정신을 엄습했다.

육체의 살점과 근육은 부패해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새하얀 백골은 피어오르는 죽음에 물들어 검게 변했다.

두 개의 눈알이 사라져 드러난 공허한 구명에는 검은 귀화가 피어오르며,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두개골의 이마 부분에는 마치 리치의 라이프 베슬과도 같이, 제로의 생명을 품은 붉은 보석이 만들어졌다.

“허억-! 허억-!”

모든 변화가 끝나고 나서야 제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제로는 인간이 아니었다.

하급 망자라는 이름대로. 그리고 변화한 외형과 같이 인간이 아닌 언데드 아니, 망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 모습은 언뜻 보면 언데드계 몬스터의 정상에 군림하는 리치와도 닮았다.

“기분 더럽네.”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서야 제로가 입을 열었다.

로스트 월드 특유의 극한의 리얼리티 덕분일까. 종족이 인간에서 하급 망자로 변화하는 과정은 평범한 인간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끔찍했다.

“우선은 상태창.”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품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제로

Lv: 41 성향: 카오스 명성: 0 악명: ???

직업: 죽음의 대리자

칭호: 죽음의 대리인(외 [email protected])

소속: 외차원

종족: 하급 망자

체력: 500 사마력: ???

내구: 10 지능: 10(+30) 지배: 30(+30) 행운: 5

잔여 스탯: 120

친화력

불: 0 물: 0 바람: 0 땅: 0

광기: 10 죽음: ??? 저주: 50

“음.”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확인한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악명이었다.

가뜩이나 높았던 악명이 전직을 통해 측정 불가가 되었다.

지혜와 지식으로 나뉘어 있던 스탯은 지능으로. 힘과 민첩, 체력으로 나뉘어 있던 스탯은 내구로 통합되었다.

그 외에도 친화력이나 소속 등, 상태창은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것이 변화했다.

특히 새로 획득한 칭호인 죽음의 대리인.

이것의 효과는 가히 밸런스 파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 외에도….

“이게 네크로노미콘.”

스탯을 내구와 지능에 투자한 뒤, 상태창을 지운 제로는 오른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로의 시선이 닿은 오른손에는 계약을 통해 획득한 한 권의 서책, 네크로노미콘이 쥐어져 있었다.

“감정.”

[네크로노미콘]

공격력: ???~??? 내구도: 무한

등급: 유니크(성장형)[0.00%]

특수 스킬: 사자 소생. 데스 그라운드(봉인). 데스 로어(봉인). 망자의 진혼곡(봉인) 특수 능력: 죽음의 지혜. 죽음의 가호.

특수 옵션: 지능+30 지배+30

제한: 죽음의 대리자

네크로맨시의 정수가 담겨져 있는 신물이다. 오직 죽음과 계약한 대리자만이 다룰 수 있다.

“성장… 형 아이템이라니.”

네크로노미콘을 확인한 제로가 신음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토해냈다.

아이템 등급이 유니크인 것을 넘어 성장형이다.

대다수가 봉인되어 있지만 특수 스킬이 네 개나 존재하며, 그 외에도 특수 능력이 두 가지나 존재했다.

“미쳤어.”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게임 자체로만 보면 밸런스 파괴나 다름없다.

하지만 훗날 이 게임의 능력이 현실에 적용되고. 그 힘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허상계와의 전쟁에서 쓰인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지킬 수 있어.”

가능성이 엿보였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을 가능성이. 그리고 그 엿 같은 허상괴들을. 끝으로 스스로를 왕이라 자처하는 그 개자식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이자 가능성에 불과했다.

이것을 발판 삼아 자신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자만해서는 안 돼.”

강대한 힘을 얻었다 해도 자만해서는 안 되었다.

과거에는 인간을 초월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최상위 랭커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의 힘을 너무 맹신하고, 과신했으며 허상계를 깔보았고. 헛된 자만심마저 품었다.

그것이 인류가 멸망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몸을 일으켰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함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히든 피스를 얻으러 가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수히 많은 히든 피스들.

개중에서 스스로와 상성이 맞는 히든 피스들을 획득해야 한다.

* * *

죽여!

잡아!

취익!

렙업이다!

불길한 사원의 입구이자 출구인 버려진 우물에서 빠져나온 제로의 눈앞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에도 개의치 않고, 수많은 유저들이 오크 부락 내에서 사냥에 열중이었다.

개중에는 파티를 맺어 오크 워리어 레이드를 하는 유저도 엿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오크 부락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불길한 사원에서 그리 오래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부터 유저들이 오크 부락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제로가 불길한 사원에 갈 수 있게 도와줬던 미친놈이 선발대가 아니었을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돌연 등 뒤에서 다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데드다!”

“스켈레톤인가?”

“오크 부락에 왜 언데드가 있는 거냐?”

“넌 아카식 레코드도 안 보냐. 오크 부락에 불길한 사원이라고 던전 하나 있더라. 아마 등장 몬스터가 언데드 계였을걸.”

“거기서 기어 나왔나 보네.”

고개를 돌리자 제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네 명의 유저였다.

그들은 제로를 바라보며 서로 낄낄거렸다.

‘몬스터로 인식되는 건가.’

제로는 유저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종족이 인간에서 하급 망자가 되었다.

악명은 측정 불가에 성향은 카오스.

소속마저 외차원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그곳으로 고정되었다.

어쩌면 평범한 유저들에게 몬스터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적일지도 모르겠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입안에 쓴맛이 퍼져나간다.

아니, 강해지기 위한 계획을 짜는 그 시점부터 이러한 상황이 될 것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죽음과의 계약은 계획에 없었지만 말이야.’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네 명의 유저들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전사로 보이는 유저는 한손검을 뽑아 쥐었다.

도적으로 보이는 유저는 쌍수 단검을 쥐고, 은신계 스킬을 통해 몸을 숨겼다.

마법사로 보이는 유저는 마법을 준비했으며, 성직자로 보이는 유저는 동료들에게 버프 스킬을 발동시켰다.

파티의 인원수는 적지만 나름 밸런스 잡힌 조합이라 볼 수 있었다.

“이와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 미안하지만 너희들로 시험해 봐야겠다.”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슬금슬금 움직이던 유저들은 설마하니 몬스터가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을 내비쳤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긴장감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망자의 손아귀.”

휘이잉-!

스킬을 발동하자 제로를 중심으로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반투명한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정확히 네 개.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 네 개였지, 숙련도만 높아진다면 망자의 손아귀로 만들어 내는 반투명한 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편, 제로가 마법을 발동하자 대치하고 있던 유저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는 그 계통을 가리지 않고 상위의 몬스터인 것이 기본 상식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확실히 사기네.’

망자의 손아귀에 긴장한 유저들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현재 제로가 습득한 마법의 개수는 총 다섯 가지.

그 모든 것을 네크로노미콘의 특수 능력 중 하나인 죽음의 지혜를 통해 습득했다.

즉,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한 제로는 모든 네크로맨시 스킬을 제약 없이 습득할 수 있었다.

“달려들어!”

“쫄지 마! 그래 봤자 저렙존의 몬스터야!”

성직자의 외침에 도적과 전사가 움직였다.

제로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낸 도적이 머리를 향해 두 자루 단검을 휘둘렀다.

전사는 제로의 허리를 양단하겠다는 기세로 손에 쥔 롱 소드를 휘둘렀다.

“느려.”

유저들의 공격을 지켜보던 제로가 중얼거렸다.

느려도 너무 느렸다.

‘내구 스탯 덕분인가.’

민첩까지 통합되어 있는 스탯이니, 얼추 정확할 것이다.

그나저나….

“뭐 하자는 거냐?”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주변을 배회하는 망자의 손아귀가 움직였다.

한 명에 하나씩 움직인 반투명한 손은 망설임 없이 유저들이 목을 움켜쥐었다.

“컥!”

“큭-!”

목을 붙잡힌 유저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망자의 손아귀 자체에는 이렇다 할 데미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죽음은 산 자의 생명을 빨아들이고, 내뿜는 한기는 천천히 육체를 얼려 버렸다.

특히 마법사의 경우에는 스킬을 도중에 끊어 버리기 때문에 마나 역류를 일으켜 더욱 큰 데미지를 입혔다.

“젠장!”

“뭐 하는 새끼야! 이거!”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야!”

유저들은 어떻게든 망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했으나 소용없었다.

망자의 손아귀의 악력은 오크의 목조차 가볍게 분질러 버린다.

이제 막 오크 부락에 들어온 유저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시험해 봐야지. 데스 애로우.”

우웅-!

제로의 몸에서 사마력이 흘러나오더니, 곧 네 개의 잿빛 화살이 만들어졌다.

데스 애로우.

네크로맨서의 스킬 중 하나인 본 애로우와 비슷한 스킬로, 마법사로 따지자면 기초 중의 기초인 매직 애로우라 볼 수 있었다.

“그럼 수고들 하라고.”

제로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기 무섭게 네 개의 데스 애로우가 움직였다.

그것들은 망자의 손아귀와 마찬가지로 한 명에 하나씩 나아갔으며.

곧 네 개의 데스 애로우는 네 명의 유저들의 심장을 꿰뚫고 사라졌다.

데스 애로우에 심장이 뚫린 유저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사라졌다.

[네크로노미콘이 죽음을 흡수합니다.]

[네크로노미콘의 성장률이 0.001% 상승합니다.]

“이런 방식이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크로노미콘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궁금했는데, 누가 죽음의 신물 아니랄까 봐. 상대를 죽임으로써 네크로노미콘은 성장했다.

“얼추 실험은 끝났으니….”

슬쩍 주변을 둘러본 제로가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절대다수의 유저들은 사냥에 집중하느라 제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제로는 이 기회를 살려 오크 부락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죽음의 대리자라는 직업과 네크로노미콘. 그리고 죽음의 대리인이라는 칭호를 통해 강해졌지만, 아직 이 많은 숫자의 유저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제로는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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