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쿠당탕-!
“크윽!”
제로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다급히 들어오느라 제대로 된 낙법을 취할 수 없었다.
그나마 버려진 우물의 깊이가 얕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다간 죽음을 피하지 못할 뻔했다.
한편 버려진 우물의 지하에 도착하기 무섭게 제로의 눈앞에 다수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숨겨진 던전, 불길한 사원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일주일간 불길한 사원에서 획득하는 경험치가 50% 증가합니다.]
[일주일간 불길한 사원에서의 드랍률이 50% 증가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시겠습니까?]
“기록한다.”
[아카식 레코드에 불길한 사원에 관한 정보가 기록됩니다.]
[최초로 아카식 레코드에 정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명성이 200 상승합니다.]
[칭호-최초의 기록자를 획득합니다.]
아카식 레코드.
타 게임으로 치자면 일종의 명예의 전당과도 같은 시스템이었다.
숨겨진 던전의 최초 획득. A급 이상의 퀘스트 클리어 등의 굵직굵직한 것들을 이룩할 때마다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하면 소정의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자신이 획득한 비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을 피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한 명의 강자가 아쉬운 마당에, 그딴 걸 신경 쓰겠냐.”
허상계와의 전쟁을 대비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강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제로는 최대한 밝힐 수 있는 비밀들은 모조리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해, 최대한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과거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움직일 예정이었다.
게임 속에서의 비밀을 꽁꽁 숨긴다 해도, 훗날 인류가 멸망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불길한 사원.”
제로가 주변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불길한 사원은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언데드형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기도 했다.
사원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그 내부는 동굴에 가까웠으며, 그 끝에는 하나의 제단이 자리 잡고 있는 형태였다.
“분명, 불길한 사원의 끝에 자리 잡은 제단에서 피를 흘리는 것으로 전직이 가능했었지?”
네크로맨서로의 전직 방법은 타 직업에 비해 한없이 간단했다.
그저 불길한 사원의 끝에 자리 잡은 불길한 제단에 전직을 원하는 유저가 피를 몇 방울 흘리면 끝.
다만,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해선 삼천 이상의 악명 수치가 필요하다.
악명 수치가 미달이라면 불길한 제단은 그 어떤 반응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럼 움직여 볼까.”
제로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도축용 칼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아직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됐다.
불길한 사원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부패한 좀비와 풍화된 스켈레톤 따위의 최하급 언데드가 등장한다.
개채마다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것들의 평균 레벨은 17~23. 다만 단 하나의 스탯도 사용하지 않은 제로에게 있어, 오크와는 달리 급소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언데드 쪽이 더욱 위험했다.
덜그럭. 덜그럭.
각오를 다지며 움직이기 무섭게 멀리서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화된 스켈레톤인가.”
제로는 동굴의 벽면에 설치된 횃불을 통해 만들어진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기기 무섭게 횃불 아래로 세 마리의 풍화된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이리저리 부식되고 망가진 뼛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마찬가지로 풍화될 대로 풍화된 뼈 몽둥이를 쥐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도축용 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제로는 확신을 가졌다.
도축용 칼은 6번째 마을, 통칭 시작의 마을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획득한 무기지만, 나름 히든 피스로 획득한 무기다.
전사를 목표로 한다면 최소 30레벨까지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도축용 칼의 성능이었다.
그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즉시 NPC가 회수하기에 대다수의 유저들이 그 성능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한편, 느릿하게 걸어 다니는 풍화된 스켈레톤이 코앞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짧은 기합성과 함께 제로가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도축용 칼을 휘둘렀다.
후웅-!
카가가각!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한 도축용 칼이 풍화된 스켈레톤의 목을 긁으며 지나갔다.
그로 인해 듣기 싫은 괴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짐과 동시에 풍화된 스켈레톤의 목뼈가 박살 나며 머리통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기긱.
기기긱.
갑작스런 제로의 등장에 나머지 두 마리가 동시에 움직였다.
풍화된 스켈레톤은 동료의 죽음 따윈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로를 향해 손에 쥐고 있는 뼈 몽둥이를 휘둘렀다.
“너희들은 동료애도 없냐?”
제로는 각기 몸통과 다리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뼈 몽둥이에 몸을 뒤로 빼냈다.
휘둘러진 뼈 몽둥이는 허공을 가로질렀으며, 뒤로 물러난 제로는 큰 행동 뒤에 생겨난 빈틈을 노리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고작 이 정도에 애먹었으면 시작도 안 했어.”
후웅-!
콰직! 콰지직!
재차 휘둘러진 도축용 칼에 얻어맞은 두 마리의 풍화된 스켈레톤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 버렸다.
“그래도 빡세긴 하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풍화된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제로가 중얼거렸다.
불길한 제단까지 얼마나 많은 언데드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조리 죽여 버리면 그만이지.”
적어도 상대가 언데드라면.
그것도 움직임이 느리고 굼뜬 최하급 언데드라면 지금의 제로를 막아설 순 없었다.
* * *
“마지막 한 마리!”
퍼억-!
도축용 칼에 얻어맞은 부패한 좀비의 머리통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머리를 잃어버린 좀비의 몸뚱이가 바닥에 나뒹구는 것으로, 제로는 불길한 사원의 끝에 위치한 불길한 제단에 도착했다.
제로가 지나친, 제단까지 향하는 길목에는 수많은 부패한 좀비와 풍화된 스켈레톤의 시체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으며.
그 많은 언데드를 죽여 온 도축용 칼은, 그 내구도가 한계에 달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버텨 줘서 다행이네.”
제로가 도축용 칼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운 없게 만난 스로우를 시작으로, 오크들을 암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불길한 제단까지 가기 위해 사용해 온 도축용 칼은, 그 역할을 완벽하게 완수했다 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피를 몇 방울 흘리면 된다 이거지.”
불길한 제단 정중앙에 멈춰 선 제로가 도축용 칼을 휘둘렀다.
스칵-!
짧은 절삭음과 함께 제로의 손가락에 한 줄기 상처가 새겨졌다.
뚝. 뚝. 뚝.
상처를 통해 흘러내린 붉은 핏방울이 불길한 제단에 떨어지고.
그에 불길한 제단은 검은 마법진이 새겨지는 것으로 화답했다.
불길한 제단을 이루는 수많은 두개골의 눈구멍에는 붉은 귀화가 피어오르고.
제단에 새겨지는 마법진에선 스치는 것만으로 오싹함을 자아내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길한 제단이 발동합니다.]
[당신의 피에는 인간인지 의심될 정도의 악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악의에 ???가 반응합니다.]
[???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초… 대?”
제로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을 했다.
기억에 의하면, 네크로맨서로의 전직은 제단이 발동하고 검은 연기가 육체에 빨려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이처럼 이름도 알 수 없는 존재가 반응을 하니 마니 한다거나.
그러한 존재가 초대를 하니 마니 하는 정보는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5만 이상의 악명이 또 다른 히든 피스를 발동시킨 건가?”
제로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현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숲을 불태웠을 때….”
그때 분명 ???가 관심을 가진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그때의 메시지가 지칭하는 존재와, 지금의 메시지가 지칭하는 존재는 동일한 존재일까.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일까.
아니, 지금에 있어서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네크로맨서보다 상위의 직업이겠지.”
제로에게 있어서 신경 쓸 것은, 과연 이 초대에 응하는 것으로 네크로맨서보다 더욱 좋은 히든 클래스를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었다.
그렇게 제로가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또 다른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가 빨리 결정하라 재촉합니다.]
[당신은 ???의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초대에 응하지 않을 시, 당신은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게 됩니다.]
“초대에 응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공간은 없다.
제로는 자신이 획득한 5만 이상의 악명에 희망을 걸었다.
적어도 이 정도 수치의 악명으로 반응하는 히든 클래스라면, 평범한 네크로맨서보다 더욱 좋은 직업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기 무섭게 주변에 퍼져 있던 검은 연기가 움직였다.
검은 연기는 불길한 제단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으며. 검은 연기를 흡수한 불길한 제단의 바닥은 곧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입의 형태로 갈라졌다.
갑작스레 생겨난 입은 제로를 집어삼키며 사라졌다.
“여긴…?”
제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끝없는 어둠뿐이다.
상하좌우조차 판별할 수 없는.
자신이 서 있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허공에 떠 있는 것인지조차 인식할 수 없는 공간.
그러한 공간이 주는 공포심에 제로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허상계와의 전투로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나들고. 결국 그 끝에는 허상괴의 왕과의 전투로 목숨까지 잃지 않았던가.
시간을 역행했지만. 그리고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지만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음에도 제로는 밀려오는 공포에 몸뚱이를 미세하게 떨었다.
“여긴 어디…!”
[안녕?]
제로가 다시 한번 중얼거리는 순간, 공간이 울리며 머릿속에 한 줄기 음성이 틀어박혔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이기도 했고, 중년의 패기 넘치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것은 노년의 진중한 목소리이기도 했으며, 미녀의 아름다운 미성이기도 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인사에 제로가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억지로 목구멍을 틀어막은 듯,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제로가 다시 당황하는 그때였다.
[너, 상당히 재미있더라고.]
[본인의 이득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죽이는 그 모습. 매우 인상 깊었어.]
[상대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말이야.]
‘넌 누구지?’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글쎄. 난 누구일까.]
[난 신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다만 인간들은 날 이렇게 부르더라고.]
[‘죽음’이라고 말이야.]
상대의 대답에 제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상대는 생각을 읽는다.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 가능하겠지. 그보다…. 죽음이 왜 날 초대한 거지?’
[너는 이 세계에서 단시간에 가장 많은 죽음을 만들어 냈어.]
[그리고 내 눈이 정확하다면 앞으로도 그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만들어 내겠지.]
[그런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게.]
[너, 내 대리인이 되지 않을래?]
‘대리인?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제로의 생각이 끝을 맺기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가 뇌리 속에 틀어박혔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그러면…, 네가 그토록 갈망하는 힘을 줄게.]
[어때? 나름 괜찮은 거래 아니야?]
상대의 말에 제로가 침묵하며, 머리를 굴렸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오는 존재가 과연 게임에 속한 존재이기는 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이 세계는 정말로 게임인 것일까.
아니, 아니다.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의 제로에게 필요한 것은….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그러니 나에게 줘. 모든 것을 초월한 압도적인 강함을.’
[잘 생각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로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