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5화 (5/200)

제5화

로스트 월드의 홈페이지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6번째 마을에서 시작의 도시로 향하는 길목, 울창한 숲이 불타오른 사건 때문이었다.

누구는 버그가 아닐까 추측했으며, 누군가는 어떤 미친놈이 일으킨 방화라고 떠들었다.

허나 그 누구도 울창한 숲이 불타오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로스트 월드 측에 항의를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버그가 아닙니다. 이 또한 게임의 일부입니다.’라는 매크로식 답변밖에 없었다.

결국 유저들은 이것을 로스트 월드 측에서 준비한 일종의 이벤트라 생각했다.

그 누구도 일개 유저가 방화를 일으켜 이러한 사단이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시작의 도시로 향하는 울창한 숲은 타 게임으로 치자면 사냥터의 개념에 가까웠다.

일개 유저가 사냥터를 불태운다?

지금까지의 가상 현실 게임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울창한 숲이 불타오른 사건은 곧 수많은 유저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 * *

“저기가 시작의 도시.”

불타오른 숲의 잔해를 빠져나온 제로가 중얼거렸다.

드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

제로가 시작했던 6번째 마을이 일종의 튜토리얼을 위한 장소라면, 눈앞의 시작의 도시는 말 그대로 로스트 월드의 시작을 의미한다.

시작의 도시는 유일하게 선성향과 악성향. 심지어 머더러 마저 왕래할 수 있는 도시로, 저렙부터 고렙까지. 수많은 유저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였다.

시작의 도시 입구에는 총 열 개의 마을에서 찾아온 수많은 유저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저걸 다 죽이면….”

‘악명이 얼마일까.’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 제로가 움직였다.

이제 막 오픈했기에 시작의 도시에는 초보자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pk를 할 수는 없었다.

레벨로만 따지자면 제로를 뛰어넘을 유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 또한 아직 전직을 하지 못했으며, 시작의 도시에는 다른 도시나 마을보다 강력한 경비병 NPC가 상주하고 있었다.

또한 초보자라 하더라도 그 숫자를 생각한다면 역으로 당하는 것은 제로가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제로는 깔끔히 포기하며 바삐 움직였다.

우선은.

“전직부터 하자.”

네크로맨서로 전직부터 해야 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제로는 시작의 도시가 아닌, 근처의 사냥터 중 하나인 오크의 부락으로 향했다.

전사나 궁수, 도적이나 상인 따위의 노멀 클래스로의 전직은 시작의 도시 북쪽에 모여 있는 길드에서 할 수 있지만, 네크로맨서는 달랐다.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오크의 부락 어딘가에 존재하는 숨겨진 던전에서 전직할 수 있었다.

나름 히든 클래스라고 전직 방법 또한 일반적인 직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뭐, 그래도.

‘미래에는 개나 소나 전직 방법을 알고 있지만 말이야.’

그러한 생각과 함께 들어선 오크의 부락 외곽에는 몇몇 유저들이 벌써부터 사냥을 하고 있었다.

오크의 부락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인, 떠돌이 스몰 오크의 레벨이 25 이상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였다.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제로는 한창 오크들을 사냥하는 유저들을 스쳐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몇몇 유저들은 처음 시작하는 장비 그대로 오크 부락에 들어온 제로에 눈길을 줬으나, 곧 관심을 껐다.

다른 유저에게 관심을 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레벨업이 더욱 중요한 그들이었다.

한편 그렇게 오크 부락 내부로 향할수록 제로의 표정은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지금부터는….”

‘긴장해야 해.’

스스로에게 되뇌듯 중얼거린 제로는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해선 오크 부락의 보스 몬스터인 오크 워리어가 서식하는 천막 근처의 버려진 우물에 들어가야 한다.

보스 몬스터인 오크 워리어 또한 문제였지만, 그 외에도 오크 부락 내부에 돌아다니는 오크들 또한 위험했다.

제로의 레벨이 30을 넘었다 하더라도, 일절 스탯을 투자하지 않았기에 한 마리를 상대해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제로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몸을 숙이며 움직였다.

* * *

취익?

길을 걷고 있던 오크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킁! 킁킁.

오크는 코를 벌렁거리며 천막의 구석으로 향했다.

근처 어디에서 고기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코를 벌렁거리며 움직이던 오크가 천막의 그림자에 들어가는 순간, 오크의 눈앞에 구워진 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취-!

고기를 발견한 오크가 기쁨을 숨기지 않고 더욱 깊숙이 들어왔다.

다른 동료들과 나눠 먹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오크가 무방비의 상태가 되는 순간.

“지금!”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제로가 튀어나왔다.

제로의 손에는 끝이 날카롭게 깎여진 나무 조각이 쥐어져 있었는데.

제로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오크의 눈알에 꽂아 넣었다.

로스트 월드는 타 게임과 같이 무식하게 레벨이 높아진다 해서 무적이 아니었다.

극한의 리얼리티는 레벨 1의 유저가, 레벨 100의 유저 또한 죽일 수 있는 시스템을 지원했다.

그것이 바로 급소 시스템으로, 아무리 레벨이 높다 하더라도 뇌나 심장을 노린다면 저렙의 유저도 고렙의 유저를 죽일 수 있었다.

다만, 그러한 행위는 극도의 운이 따라 줘야 가능했기에 미래에도 몇몇 유저들을 빼면 잊혀진 시스템 중 하나였다.

제로는 그러한 시스템의 맹점을 살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하나씩 다가오는 오크들을 사냥하며 부락 내부를 거닐었다.

취이…!

나뭇가지가 눈알을 거칠게 파고들며, 곧 뇌를 꿰뚫었다.

뇌가 뚫려 버린 오크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후욱. 후욱.”

‘지금까지 몇 마리를 죽인 거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제로가 중얼거렸다.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상황이다.

악명 수치마저 5만을 훌쩍 넘긴 제로였기에,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데스 페널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제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끌어 올린 긴장감은 곧 극도의 피로감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300m.’

자리를 옮긴 제로가 중얼거렸다.

저 멀리 보이는 버려진 우물까지의 거리는 단 300m. 하지만 제로에게 있어 그 거리감은 3km 이상으로 다가왔다.

사냥터 특성상 깊숙이 들어갈수록. 보스에게 가까울수록 몬스터들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로스트 월드 또한 비슷했다.

그렇기에 버려진 우물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로에게 적용되는 피로감과 긴장감은 배의 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너무 성급했던 건가.’

몸을 숨긴 제로가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곧바로 오크 부락으로 찾아온 게 실수였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시작의 도시에서 전사로 전직을 하고 찾아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히든 클래스는 몇몇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클래스 체인지가 가능하다.

즉, 본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든 히든 클래스로 직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네크로맨서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지, 아니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제로가 머리를 털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직하지 않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히든 피스 때문이잖아.’

유저 최초로 네크로맨서의 전직.

그리고 초보자에서 바로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면 주어지는 히든 피스.

그것을 위해 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특히나.

‘이 정도마저 통과하지 못하면 미래에 인류를, 지구를 지킬 수 없어.’

고작 이 정도로 물러선다면 허상괴와의 전쟁은 이길 수 없었다.

제로는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위축되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지금처럼 한 마리의 오크를 암살하는 방식으로 얼마나 나아갔을까.

어느새 제로와 버려진 우물과의 거리는 채 100m가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

하지만.

“젠장.”

그림자에 몸을 숨긴 제로가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버려진 우물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힘들어질 것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한데.’

앞을 바라보며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버려진 우물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늘어난 오크들의 숫자는 둘째치더라도, 버려진 우물 근처를 돌아다니는 수습 오크 워리어들이 거슬렸다.

수습이기는 해도 나름 오크 워리어라고, 그들은 기본적인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나 부하들과 함께 움직이는 특성상, 지금처럼 한 마리씩 유인하며 암살하는 방식조차 통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는 없는데.’

제로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돌아다니는 오크들을 바라봤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차라리 불을 질러 버려?

‘아니야.’

불을 지른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제로가 고개를 털었다.

애초에 이곳은 숲이 아니었다.

특히나 부락 내부에 자리 잡은 천막이라고 해 봤자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 불을 지른다 해서 성과를 이룰 순 없었다.

그저 오크들의 경계심을 더욱 올려 주는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어떤 미친놈이 시선이라도 끌어 줬으…!’

취이이익!

실없는 생각에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오크 부락 입구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주변을 거닐고 있던 오크들은 물론, 제로의 시선마저 부락 입구로 향했다.

그러한 오크 부락 입구에는….

“합!”

퍼억!

취이이익!

무투가로 보이는 한 유저가 오크 부락 입구에서 홀로 사냥을 벌이고 있었다.

‘럭키!’

어떤 미친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크들의 시선을 끌어 줬다.

그 사실에 제로가 기뻐하며 움직였다.

오크 워리어가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점차 가까워지는 미친놈을 생각하면 수습 오크 워리어 정도는 충분히 움직일 것이다.

제로는 그 틈을 노려 버려진 우물 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제로의 목적은 오크 워리어의 사냥이 아닌, 네크로맨서로의 전직이었다.

다만,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선….

“은밀.”

속삭이듯 중얼거리기 무섭게 제로의 몸이 흐릿해졌다.

스킬, 은밀의 발동이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스킬을 획득하기 위해선 전직을 하거나, 지혜의 서적이라는 스킬 북을 사용하거나. 혹은 특정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개중에서 제로가 사용한 은밀 스킬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오크를 한 마리씩 유인하며 사냥함으로써 획득한 것이었다.

다만 지금의 마나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저 미친놈이 시선을 끌어 주면 이야기가 다르지.’

버려진 우물까지의 거리는 이제 70m.

이 정도 거리라면 은밀 스킬이 지속되는 동안,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지금!”

수습 오크 워리어가 부하를 이끌고 미친놈을 향하는 순간, 제로가 바닥을 박차며 뛰쳐나갔다.

더 이상 상황을 지켜볼 필요는 없어졌다.

아직 남아 있는 몇몇 오크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겠지만, 버려진 우물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달리는 제로가 버려진 우물에 근접한 순간….

“인간!”

콰앙!

버려진 우물 곁에 있던 천막에서 오크 워리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우물을 향하는 제로의 기척을 느끼며 다급히 뛰쳐나왔으나,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뛰쳐나온 오크 워리어가 흉흉하게 빛나는 배틀 엑스를 휘둘렀다.

“흡!”

제로가 몸을 비트는 순간, 오크 워리어가 휘두른 배틀 엑스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인간-!”

“어, 수고하고.”

성난 외침을 토해내는 오크 워리어를 향해 손을 흔든 제로는 버려진 우물 속으로 떨어지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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