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4화 (4/200)

제4화

쾅! 쾅!

스로우의 주먹과 제로의 도축용 칼이 부딪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누구 하나 물러섬이 없는 공방을 펼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제로였다.

레벨의 차이와 스탯의 차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요소 중 두 개의 차이는 제 아무리 제로라 해도 쉽사리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제로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초감각이 없었으면 밀렸을 거야.’

제로가 아니, 인간 강한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초감각이라는 능력 덕분이었다.

극한까지 끌어 올려진 감각은 스로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나마 회피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제로의 초감각을 모르는 스로우는 머리카락 한 가닥 차이로 공격을 피해 내는 제로에 불만족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숨겨둔 재주가 있다, 이거였나?”

“글쎄?”

스로우의 말에 제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상대에게 자신의 열세를 내보여선 안 된다.

유저 간의 전투에서는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쪽이 패배하게 된다.

한편 제로의 대답에 기분이 상했다는 듯 와락! 표정을 일그러트린 스로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찔.

스로우의 오른쪽 어께에 미세한 떨림이 만들어지는 순간, 주먹이 내뻗어졌다.

변화 따윈 일절 없는 정직한 공격.

허나 이미 눈치채고 있던 제로는 고개를 젖히는 것으로 스로우의 일격을 회피했다.

“흡!”

카가각-!

큰 공격 후에 생기는 빈틈을 노리며 제로가 도축용 칼을 휘둘렀으나, 스로우는 비어 있는 왼손을 이용해 막아 냈다.

‘역시 쉽지 않네.’

초감각을 지니고, 전투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로라 하더라도 스로우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제로가 전투의 천재라면, 스로우 또한 전투의 천재였다.

불합리한 움직임이 배제된, 극도로 절제된 스로우의 전투 스타일은 체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 줬다.

거기에 오직 급소만을 노리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게임이기에 가능한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싸움’을 행하는 스로우의 공격은 한 대만 허용해도 제로에게 있어 치명상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지금 스로우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아무리 레벨과 스탯의 차이가 난다 해도, 스로우 또한 아직 전직조차 하지 못한 초보자다.

만일 스로우가 무투가로 전직했다면 다양한 스킬을 활용한 폭풍과도 같은 공격에 맥도 추리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이기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이라면 나 또한 익숙하지.’

스로우에게는 없고, 제로에게만 있는 것.

그것은 경험이다.

제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번만 실수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허상괴들과의 전투를 행해 왔다.

아무리 회귀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합!”

스로우가 짧은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내뻗었다.

명치를 노리며 뻗어 오는 주먹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제로는 도축용 칼의 널찍한 칼날을 이용해 막아 냈다.

하지만.

쩌엉-!

지금까지와는 다른 굉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이 도축용 칼을 통해 제로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에 제로가 큭! 하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도 통하지 않았다고?”

다소 데미지는 입었을지언정, 멀쩡히 서 있는 제로에 스로우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허나 놀란 것은 제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발경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발경.

무투가의 기본적인 스킬 중 하나로, 상대의 내부에 충격을 흘려 넣어 방어력을 무시하는 스킬이다.

다만 제로는 스로우가 발경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허상계의 침입이 시작되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현생의 스로우는 유명 무도가의 장남이고, 스로우의 집안은 대대로 ‘하나의 무술’을 이어받아 온 집안이었다.

그렇기에 스로우는 현실에서 익힌 기술을 120% 발휘하기 위해 무투가로 전직한 케이스였다.

“칫!”

제로가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로우에게 발경 스킬이 있다는 것은, 또 어떤 스킬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속전속결로 이 싸움을 끝내야 했다.

훙! 후웅!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도축용 칼이 휘둘러졌다.

스로우는 허공을 가르며 휘둘러지는 도축용 칼에 본인 특유의 기묘한 스텝을 밟으며 회피했다.

“합!”

쩌엉!

“큭!”

다시 한번 주먹이 내뻗어진다.

조급한 마음에 어긋난 움직임은 스로우의 일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옆구리에 틀어박힌 스로우의 주먹으로 흘러 들어온 충격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죽는다!’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스로우가 초보자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제로 또한 마찬가지.

앞으로 이러한 공격을 세 번 아니, 한 번이라도 더 허용한다면 자신은 죽게 될 것이다.

제로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순간.

‘내가… 죽는다고…?’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제로의 눈앞으로 수많은 환영이 스치듯 지나갔다.

허상계의 침입으로 불타오르는 도시.

허상괴들에게 농락당하며 죽어 가는 사람들.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플레이어들.

마지막으로, 자신을 죽였던 허상괴의 왕의 잔영까지.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제로가 으득! 강하게 이를 갈았다.

“겨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난….’

“강해져야 한단 말이다!”

후웅!

쾅!

비명에 가까운 괴성과 함께 제로의 도축용 칼이 휘둘러졌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에도 스로우는 특유의 반사 신경으로 건틀렛을 이용해 막아 냈다.

하지만.

콰직!

“무슨!”

도축용 칼과 부딪히는 순간, 스로우가 착용하고 있던 목제 건틀렛이 박살 났다.

지금의 스로우보다 제로가 우위에 있는 이유.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요소 중 하나인, 바로 아이템의 차이 덕분이었다.

스로우가 착용한 건틀렛은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건틀렛으로, 6번째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 중 상위에 속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무로 만들어진 무기.

그에 반해 제로의 도축용 칼은 강철제의 무기다.

그러한 도축용 칼을 지금까지 막아낸 것만으로도 스로우가 착용한 건틀렛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난 강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질 거야.”

제로가 중얼거리며 스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쳐 지나간 기억과, 트라우마로 박혀 버린 허상괴와의 전쟁에 제로의 두 눈동자에는 ‘광기’가 감돌았다.

그렇게 스로우를 덮친 제로는….

콰직!

망설임 없이 스로우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끄아악!”

통각 시스템을 꺼 놓지 않은 것일까.

스로우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를 감싸 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입에 스로우의 살점과 피를 덕지덕지 묻힌 제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공을 펼쳤다.

도축용 칼이 한 번,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스로우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스로우의 레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

스탯을 힘과 민첩에 2:1 혹은 힘, 민첩, 내구에 1:1:1씩 투자하는 무투가의 특성상 체력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00을 넘지 않는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스로우 또한 체력이 바닥을 보일 것이다.

“미친!”

제로의 공격을 막아서기에 급급한 스로우가 버럭 외쳤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죽는 것을 좋아하는 유저는 없다.

그것은 스로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한 둘에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각오의 차이.

미래에 멸망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진심으로 로스트 월드를 하는 제로와.

미래를 알지 못하고, 그저 심심풀이로 게임을 하는 스로우.

둘이 가진 각오의 차이는 곧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어 줬다.

“죽엇-!”

푸욱!

“커헉!”

도축용 칼이 스로우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지금까지 누적된 데미지에 바닥을 기는 체력. 거기에 맞춰 심장이라는 급소에 틀어박힌 도축용 칼에 스로우의 아바타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허억. 허억.”

스로우를 죽인 제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난… 질 수 없어.”

후우-.

숨을 고른 제로는 모아 둔 마른 나뭇가지 앞으로 움직였다.

그 앞에 도착한 제로는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횃불을 꺼내 들었다.

“시작하자.”

‘미래의 인류를 구하기 위한 첫걸음을.’

그러한 중얼거림을 내뱉은 제로는 망설임 없이 횃불을 집어 던졌다.

화르륵-!

횃불의 불꽃이 닿으며, 마른 나뭇가지가 활활 타올랐다.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듯, 아름다운 선홍빛으로 물든 불꽃은 곧 덩치를 불리며 울창한 숲을 집어삼켰다.

* * *

“뭐, 뭐야!”

“갑자기 이게 뭔 일이야!”

“도, 도망쳐!”

울창한 숲에서 사냥을 하던 유저 혹은 시작의 도시로 가기 위해 숲을 가로지르던 유저들은 당황했다.

거대한 불꽃이 뜬금없이 울창한 숲을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이대로 도망치지 않는다면 숲을 집어삼킨 불꽃에 죽는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 거야!”

“젠장! 이거 버그 아니야?”

“뜬금없이 숲이 불타는 게 말이나 되냐고!”

이미 울창한 숲의 80% 이상을 집어삼킨 불꽃은 유저들이 도망갈 길조차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에 울창한 숲에 있던 유저들은 불꽃에 휩싸여 죽어 나갔다.

아니, 유저 뿐만이 아니었다. 울창한 숲에 살아가는 사슴이나 늑대 따위의 몬스터 또한 울창한 숲을 집어삼킨 불꽃에 하나둘씩 죽었다.

숲의 외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로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PK로 인해 악명이 상승합니다.]

[PK로 인해 악명이 상승합니다.]

[PK로 인해 악명이 상승합니다.]

[PK로 인해 악명이 상승합니다.]

[PK로 인해 악명이 상….]

제로의 눈앞으로 무수히 많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알림창을 지우던 제로가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번쩍였다.

[울창한 숲에 불을 질렀습니다.]

[칭호-자연 파괴자를 획득합니다.]

[무수히 많은 생명을 죽였습니다.]

[칭호-학살마를 획득합니다.]

[칭호-사이코패스를 획득합니다.]

[수많은 생명을 죽인 당신에 ???가 관심을 가집니다.]

“이건 또 뭐야?”

가장 마지막에 뜬 알림창에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 관심을 가진다니. 이것 또한 일종의 히든 피스라 할 수 있을까?

“뭐, 나중에 가면 알게 되겠지. 그보다 우선은 칭호 확인.”

[자연 파괴자]

악명+3,000.

엘프와의 적대도 상승.

정령과의 적대도 상승.

요정족과의 적대도 상승.

당신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였습니다.

엘프와 요정, 정령과의 우호도가 최악으로 고정됩니다.

일부 정령을 제외한 모든 정령들과 계약이 불가합니다.

“정령사에겐 최악인 효과네.”

울창한 숲을 불태운 것으로 획득한 칭호를 확인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자연 파괴자의 효과가 극악이었다.

굳이 정령사가 아니더라도, 레벨이 높아질수록 이종족 간의 우호도가 중요한 만큼, 엘프와의 우호도가 최악으로 고정된 것은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령과의 계약 불가의 경우는 네크로맨서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제로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외에도 학살마와 사이코패스라는 칭호 또한 일반적인 유저에겐 ‘불이익’인 효과들뿐이었다.

말 그대로 PK에 특화된 효과들.

칭호를 확인한 제로는 다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이름: 제로

Lv: 32 성향: 극악 명성: 0 악명: 52570

직업: 무직

칭호: 최초의 살인자. 숲 방화범. 자연 파괴자. 학살마. 사이코패스.

소속: 무

종족: 인간

체력: 500 마나: 500

힘: 10 체력: 10 지혜: 10 지식: 10 민첩: 10 행운: 5

잔여 스탯: 93

친화력

불: 0 물: 0 바람: 0 땅: 0

광기: 10 죽음: 30

“뭐, 정령 쪽은 애초에 계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악명 미쳤네.”

제로는 5만이 넘는 악명 수치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 개의 칭호로 얻은 악명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친화력에는 죽음과 광기가 추가되었다.

“그나저나 광기는 또 뭐야?”

왜 얻었는지 모를 광기에 헛웃음을 터트린 제로가 상태창을 지웠다.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목적지는 로스트 월드의 진정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작의 도시다.

그곳에서 제로는 네크로맨서로 전직할 것이다.

다만, 그렇게 움직이는 제로의 두 눈동자는 피보다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