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3화 (3/200)

제3화

잘 좀 막아 봐!

아, 그럼 네가 탱커 하던가!

여기 딜이 부족해!

5명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늑대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잡하기는 하지만, 각자 나름의 무기를 들고 사냥하고 있었는데.

서로 돌아가며 늑대의 어그로를 분산하고, 그 틈에 딜을 넣는 방식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피지컬이 상당하네.’

그들의 사냥 모습을 지켜보던 제로가 중얼거렸다.

만일 저 방식을 평범한 유저들이 했다면, 어그로 관리에 실패해 전멸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저 정도로 능숙하게 늑대를 사냥한다면, PK를 하기 위해 덮쳤을 때 역으로 자신이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충분해.’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도축용 칼을 꽉 움켜쥐었다.

제로 또한 과거 100위권 이내의 랭커로 활동했다.

또한 허상계의 괴물들이 침입했을 때,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도 남았었다.

직업도 직업이었지만, 제로가 랭커가 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이유 중 하나는 타고난 재능 때문이었다.

전투에 대한 재능.

싸움에 대한 재능.

그것이 없었다면 아무리 사기적인 직업을 가졌다 한들 랭커도, 인류 최후의 생존자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조심스레 움직였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움직이는 제로는 어느새 사냥에 열중인 파티와 근접했다.

앞으로 3걸음.

눈앞의 수풀만 치우면 바로 파티와 조우한다.

다섯 명의 유저들은 눈앞의 늑대에 집중하느라 제로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3, 2, 1. 지금!’

파앗-!

막 탱커 역할의 유저가 늑대의 공격을 막아설 때, 제로가 움직였다.

수풀을 헤치고 튀어나온 제로는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탱커의 목에 도축용 칼을 휘둘렀다.

“크악!”

도축용 칼날이 목을 훑고 지나가자, 탱커가 비명을 내질렀다.

곧이어 탱커는 늑대가 휘두른 앞발에 얻어맞아 죽어 버렸다.

사냥에 열중이던 유저들은 갑작스런 제로의 기습에 당황했다.

앞으로는 다수의 늑대.

뒤로는 서버가 오픈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PK를 하는 제로가 있었다.

그들에겐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한편 제로는….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 업!]

[PK로 인해 악명이 100 상승합니다.]

[최초의 PK로 칭호-최초의 살인자를 획득합니다.]

수많은 상태창이 떠오르며 제로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개중에서 제로는 최초의 살인자라는 칭호에 눈을 빛냈다.

‘이게 그건가? 랭킹 12위의 랭커, 잭 더 리퍼가 가지고 있던 칭호.’

최초의 살인자.

그 효과는 말 그대로 PK에 특화되어 있었다.

PK를 통해 획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증가하며, 악명이 높으면 높을수록 능력치가 상승한다.

그 외의 다양한 효과가 존재해, 말 그대로 PK를 업으로 삼는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칭호였다.

앞으로 네크로맨서로 전직해 수많은 PK를 해야 하는 제로의 입장에선 상당한 이득이었다.

“이 개자식이!”

“너 뭐 하는 새끼야!”

한편 갑작스러운 제로의 기습에 얼이 빠져 있던 유저들이 하나둘씩 소리쳤다.

제로는 머더러의 특징 중 하나인 붉게 물들어 가는 눈동자로 그들을 응시했다.

오싹-!

제로와 눈이 닿은 유저들이 부르르 몸을 떨며 물러났다.

제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들의 앞에는 ‘상태 이상 공포’에 빠졌다는 알림창이 떴을 것이다.

다만 공포에 빠진 것은 유저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냥하고 있던 늑대 또한 제로의 몸에서 풍기는 짙은 피 냄새에 꼬리를 말며 낑낑거렸다.

‘확실히 효과가 좋아.’

제로는 유저와 몬스터들의 반응에 만족하며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저들이 공포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미안.”

제로는 짤막한 사과와 함께 도축용 칼을 휘둘렀다.

한 번 피 맛을 본 도축용 칼의 칼날은 망설임 없이 유저들의 몸을 베어 넘겼다.

이렇다 할 방어구도 없고. 아직 초보자에 불과한 그들은 도축용 칼이 주는 극심한 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너, 이 새끼. 니 얼굴 기억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유저가 이를 갈며 외쳤다.

그에 제로는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마음대로.”

촤악-!

도축용 칼이 목을 훑고 지나가며, 마지막 유저를 죽였다.

[악명이 상승하였습니다.]

[칭호-최초의 살인자의 효과로 악명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상태창.”

눈앞을 어지럽히는 알림창을 지우며, 제로가 상태창을 켰다.

[상태창]

이름: 제로

Lv: 5 성향: 중립악 명성: 0 악명: 270

직업: 무직

칭호: 최초의 살인자

소속: 무

종족: 인간

체력: 500 마나: 500

힘: 10 체력: 10 지혜: 10 지식: 10 민첩: 10 행운: 5

잔여 스탯: 12

친화력

불: 0 물: 0 바람: 0 땅: 0

“부족해.”

상태창을 확인한 제로가 중얼거렸다.

PK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악명은 50.

최초의 살인자 효과로 10%를 추가로 더 획득해 한 명당 55의 악명을 획득할 수 있지만,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해선 턱없이 부족했다.

“역시 6번째 마을에서 전직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제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려면 최소 3,000 이상의 악명이 필요했다.

회귀 전에, 왜 6번째 마을에서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유저가 몇 없었는지.

그리고 그마저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 전직할 수 있었는지 제로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제로는 숲을 이루는 나무를 훑어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 * *

“이 정도면 되겠지?”

제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앞으로 제로가 할 행동은 단순했다.

방화.

제로는 6번째 마을 옆에 자리 잡은 울창한 숲을 사정없이 불태울 것이다.

기세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겁화는 한창 사냥에 열중하는 유저들. 그리고 시작의 도시로 향하는 유저를 집어삼킬 것이다.

그로 인해 제로는 숲을 불태운 행위에, PK 페널티까지 합산해 막대한 양의 악명 수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최초의 살인자 칭호의 효과까지 더해진다면…. 네크로맨서로 전직하기 위한 악명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

“다음은.”

인벤토리를 뒤적이기도 잠시.

어느새 제로의 손에 횃불이 쥐어졌다.

“하, 이걸 구하기 위해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얼마나 했는지.”

제로는 손에 쥐어진 횃불을 바라보며 흐르지도 않은 눈물을 훔쳤다.

6번째 마을은 초보자 마을에 불과하다. 타 게임으로 치자면 튜토리얼 존이라 할 수 있기에,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제한되어 있었다.

즉, 숲을 불태우기 위해 불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제로가 불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제로는 불을 ‘훔친다’라는 행위를 통해 입수한 것이다.

초보자 마을이라 해도, 그 마을에 상주하는 NPC는 존재한다.

제로는 그러한 NPC가 살아가는 집에서 불꽃을 훔쳤다.

이것은 극한의 리얼리티가 적용된 로스트 월드였기에 가능한 행위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리 올려놓은 악명 수치 탓에 실패할 뻔했었다.

그렇게 제로가 힘들게 구한 횃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응?”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제로의 시선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현재 제로가 있는 장소는 울창한 숲의 구석이다.

울창한 숲이 시작의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라지만, 이 장소는 유저의 발길이 닫지 않는 장소였다.

그의 돌아간 시선에 잡힌 것은….

“어라?”

한 명의 유저였다.

양손에 목제 건틀렛을 끼고 있는 유저는 뜬금없는 장소에, 뜬금없이 나타난 제로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너도 길 잃었어?”

그가 신기하다는 듯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길치면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거지?’

제로는 갑작스러운 유저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죽여야 하나?’

유저가 있으면 울창한 숲을 불태운다는 계획을 실행할 수 없다.

생각이 제대로 된 유저라면 당연하게도 막아설 것이니까.

한편 튀어나온 유저는 제로의 손에 쥐어진 횃불과 뒤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처럼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닌 거 같은데.”

다소 의심스럽다는 듯 입을 여는 유저의 말에 제로가 한발 물러섰다.

“딱히 아무것도.”

쓸데없는 싸움으로 시간을 잡아먹을 순 없다.

지금은 1분 1초라도 아까웠다.

그렇게 제로가 물러나려는 순간, 유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너, 눈이 붉은색이네?”

‘칫.’

뒤늦게 확인했다는 듯 말하는 유저에 제로가 혀를 찼다.

로스트 월드에서 붉은 눈은 악명을 쌓았다는 증거.

그것도 PK를 했다는 증거였다.

“내가 어지간해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말이야. 머더러는 이야기가 다르지.”

쾅! 쾅!

그가 두 주먹을 맞부딪히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스로우. 내가 직접 널 갱생시켜 주마.”

‘스… 로우?’

스스로를 스로우라 칭한 남자에 제로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스로우.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회귀 전의 로스트 월드의 전체 랭킹 27위. PVP 랭킹 1위의 무투가.

특유의 정의심과 불의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유저들 사이에선 정의의 집행관이라 불리는 PK의 전문가였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 여기서 스로우를 만나냐.’

제로가 중얼거렸다.

상대가 스로우라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제로 또한 너튜브를 통해 그리고 허상괴와의 전쟁을 통해 그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PK는 하지 말라구!”

타닷-!

말을 마친 스로우가 움직였다.

마치 복싱을 하듯 스텝을 밟으며 튀어나온 스로우는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합!”

짧고 굵은 기합성과 함께 내뻗어지는 스로우의 주먹.

아무리 목제 건틀렛이라지만 일격을 허용하면 위험했다.

그에 제로는 다급히 인벤토리에서 도축용 칼을 뽑아 쥐며 스로우의 공격을 막아섰다.

쾅!

도축용 칼날의 면과 스로우의 주먹이 부딪히자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제로는 도축용 칼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충격을 느끼며 쯧! 혀를 찼다.

‘위험한데.’

스로우의 레벨이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로보다는 높았다.

또한 스로우는 처음부터 무투가를 노리고 있었기에 힘과 민첩, 내구에 스탯을 투자했을 것이다.

스탯에서마저도 제로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로스트 월드 또한 MMORPG류의 게임이었기에 레벨과 스탯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폭풍과도 같이 휘몰아치는 스로우의 공격을 막아서며, 제로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죽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건 안 된다.

이대로 죽게 된다면 기껏 올려놓은 악명 수치가 초기화될 것이며, 머더러이기에 데스 페널티 또한 일반 유저들보다 강하게 받게 될 것이다.

1분 1초가 아쉬운 제로에게 있어서 죽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행위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제로가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잡았다.

회귀 전의 제로를 랭커로 만들어 준 두 번째 이유.

허상괴와의 전쟁에서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것.

“최대한 빠르게 끝내자.”

제로의 말과, 달라진 분위기에 스로우의 눈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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