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누가 그렇게 묻더라고.
고작 게임일 뿐인데 왜 그렇게 목숨 걸고 과몰입하냐고.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날 미친놈처럼 보더라.
그런데 어떡해? 나만이 미래를 알고 있는데.
* * *
시산혈해라는 말이 있다.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흐르는 피가 바다와도 같다는 말이다.
그 말이 지금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하, 하하….”
시산혈해의 한복판에 서 있는 청년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서울이, 한국이, 나아가 지구가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작은 가상 현실 게임 로스트 월드의 서비스 종료였다.
00시 00분.
로스트 월드의 서비스 종료와 함께 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게임 속 능력을 각성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열리고, 스스로를 허상계의 왕이라 칭하는 괴물이 부하를 이끌고 지구를 침략했다.
그렇게 허상계가 침략을 시작하고 단 일 년.
일 년 만에 전 인류의 99%가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게임 속 능력을 각성했다 한들, 허상괴는 강하고, 많았다.
열린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괴물을 막기에는 각성자의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미 나 빼고 전부 죽었으려나.’
청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움직였다.
그런 청년의 눈에 비친 것은 하늘을 뒤덮은 괴물, 허상괴.
그리고 그런 허상괴들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왕의 겉모습은 인간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 인간이 전신에 푸른색 비늘을 지니고 있으며, 두 눈동자는 동공의 유무 없이 새까맣고.
열 개의 손톱은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예기를 흩뿌리겠는가.
[대적자여.]
허상괴의 왕이 입을 열었다.
웅웅-! 떨리는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왕의 패기가 담겨 있었다.
[그대가 마지막이다, 대적자여.]
“하! 역시, 모두 죽어 버린 건가.”
왕의 말에 청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그 말을 듣게 되니,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졸지에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버렸다.
[이만 포기해라, 대적자여. 이곳은 우리의 새로운 거처가 될 것이다.]
“염병 떨지 말라 그래.”
왕의 말에 청년이 가운뎃손가락을들어 올렸다.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인류의 재건은 불가능하다.
청년 자체가 자웅동체가 아닌 이상, 후손을 남길 수 없으니 인류의 멸망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놈들에게 넘겨줄 거라 생각했냐?”
쿠웅-!
말을 하는 청년의 몸에서 허상괴의 왕과 비견되는 존재감이 흘러나왔다.
“나는 강 한.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네놈들을 막아서겠다.”
쿠구구구-!
스스로를 인류 최후의 생존자라 칭한 강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지가 요동쳤다.
지진이라도 난 양 요동치는 대지가 들썩이더니, 곧 강한을 중심으로 다양한 속성이 휘몰아쳤다.
강한의 육체를 뒤덮은 굳건한 대지는 갑옷이 되었다.
그의 오른손에 모인 선홍빛 불꽃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한 자루 검으로 변했고.
비어 있는 왼손에는 절대영도와도 같은 극한의 냉기가 모여 방패가 만들어졌다.
양발에는 바람이 모여 신발을 이루었다.
다양한 속성으로 만들어지는 최강의 무구.
그것은 강한의 직업, 엘레멘탈 워리어가 지닌 최후의 스킬이었다.
강한은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불태워 지구를 침입한 허상괴를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
[흐음.]
허상괴의 왕은 변해 버린 강한의 모습에 낮은 울림을 토해 냈다.
인간의 몸으로 저토록 다종다양한 속성을 다룰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존재해 온 허상괴의 왕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대적자여. 그대의 강함을 인정한다. 고로 본인이 직접 그대의 상대를 해 주도록 하지.]
쿠구구구구-.
허상괴의 왕이 움직였다.
그것이 한 발 내디디기 무섭게, 육체가 부풀어 오르며 거대하게 변했다.
엉덩이에는 예의 푸른 비늘로 뒤덮인 꼬리가 돋아났다.
열 개의 손톱은 더욱 단단하고, 더욱 날카로워졌다.
등에는 한 쌍의 박쥐의 날개와도 같은 것이 펄럭였으며. 머리에는 검은 뇌전이 감도는 세 개의 뿔이 돋아났다.
그 외에도 전신에 새하얀 뼈가 돋아나 뭉쳐, 하나의 갑옷이 되었다.
이 모습이야말로 왕이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후우-.]
쿠웅!
왕이 가볍게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만들어졌다.
왕이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는 순간, 이미 주변을 가득 메운 허상괴들은 모두 도망친 지 오래였다.
그저 단 한 명.
인류 최후의 생존자, 강한만이 강대한 힘을 흩뿌리는 왕의 앞에 서 있었다.
[대적자여. 그대의 강함을 인정하노라.]
“최후의 최후까지 발악해 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왕의 양손이 휘둘러지는 순간 튀어나온 수백 개의 날카로운 참격이 강한의 몸을 할퀴었다.
그에 굴하지 않고 달려 나간 강한은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왕의 몸에 박아 넣었다.
생명을 불태우며 움직이는 강한.
눈앞의 인간을 인정함으로써 진심을 다하는 허상괴의 왕.
그 둘의 싸움은 삼 일 밤낮 동안 이어졌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강한의 패색이 짙어졌다.
허상괴의 왕은 상처를 입고,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다른 허상괴들을 포식함으로써 부족함을 메꾸었다.
그에 비해 강한은 떨어진 체력을 회복할 수단도, 망가져 가는 무구를 수리할 여력도 없었다.
“하, 더럽게 강하네.”
강한이 중얼거렸다.
대지를 뒤엎고, 하늘을 무너트리는 싸움은 강한의 패배였다.
목숨을 대가로 만들어 낸 무구들은 하나같이 박살이 나 버렸다.
하반신은 뭉개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육체마저 스킬의 반작용으로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대적자여. 그대는 강했다.]
죽어 가는… 아니, 소멸해 가는 강한을 바라보며 말하는 왕 또한 멀쩡하지는 않았다.
육체의 1/3이 망가졌으며 등에 펄럭이는 한 쌍의 날개는 이리저리 꺾여 있었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웠던 열 개의 손톱은 모조리 박살 났으며.
그의 전신에는 베이고, 얼려지고, 불타오른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그대가 존재했음을 기억하겠노라.]
쿠웅-!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왕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강한은 시야를 가득 메우는 왕의 주먹에 두 눈을 감았다.
‘허무하네.’
강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능력을 각성하고, 허상괴의 괴물들이 나타났을 땐 별다른 생각 없이 전투에 임했다.
아니, 그저 힘을 가졌기에 그 힘을 사용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괴물들에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볼수록 강한은 생각했다.
이 땅을, 이 지구를 괴물들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그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악착같이 싸워 온 것이 아니던가.
‘만일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그 무엇보다 강해지리라.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저 개같은 괴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자신은 꺾이지 않았다.
강한이 그 뜻을 관철하기 위해 부릅뜬 두 눈으로 떨어지는 왕의 주먹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조건-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라를 충족하였습니다.]
[크로노스의 회중시계가 발동합니다.]
[시간을 역행합니다.]
파앗-!
강한의 가슴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왕의 주먹이 우뚝 멈추었다.
아니, 강한을 중심으로 세계 그 자체가 멈추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강한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칠 때….
우웅-!
기묘한 소리와 함께 강한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놀란 강한이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일그러지는 공간은 강한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하반신이 없는 강한은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게 일그러진 공간에 집어삼켜진 강한이 떨어진 장소는 심해와도 같은 어둠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강한이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나 아무리 둘러봐도 강한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육체의 감각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끝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감각뿐이었다.
‘이대로… 사라지는 거냐.’
강한은 점차 멀어져만 가는 의식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들 듯, 강한의 의식은 점차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강한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려는 순간….
“으아아악-!”
돌연 강한이 비명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눈을 뜬 강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 여긴…?”
눈을 뜬 강한이 있는 장소는 하나의 방이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의 정중앙에는 강한이 누워 있었던 침대 외에도 다양한 가구와, 가상 현실 게임 로스트 월드 전용의 캡슐이 존재했다.
강한은 그러한 방 내부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꿈… 이었던 건가?”
이곳은 강한의 방.
정확히 말하자면, 허상계가 지구를 침략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일까?
허상계가 침략하고. 지구가 멸망했으며.
자신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싸웠던 그 모든 것이 한낱 꿈에 불과했던 것일까?
하지만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나, 뇌리 깊숙이 남은 허상괴들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럼에도.
“모든 게 꿈이었다고?”
강한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툭.
“응?”
손끝에 무언가가 부딪쳤다.
그에 강한의 시선이 옮겨지는 순간….
“어째서 이게…?”
강한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강한의 손가락에 닿은 것은 하나의 회중시계였다.
시간의 흐름에 다소 부식되기는 했으나, 은은한 빛을 띠는 그것을 강한은 잘 알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회중시계.”
강한이 회중시계를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크로노스의 회중시계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줬다.
그러한 생각을 품은 강한은 그 즉시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그런 강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구석에 처박혀 있는 핸드폰이었다.
강한은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2021년 7월 1일. 오전 11시 27분.
핸드폰의 화면에 떠오른 오늘의 날짜와 시간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무섭게 강한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꿈이 아니었어.”
꿈이 아니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허상계의 괴물들이 들이닥친 것도.
그놈들에 의해 전 인류가 목숨을 잃은 것도.
자신이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허상계의 괴물들을 이끌고 지구에 쳐들어온 왕과 싸웠던 것도.
그리고….
“내가 한 번 죽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
“하, 하하. 아하하하하.”
진실을 깨달은 강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시간을 거슬러 회귀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
“아니.”
생각을 이어가던 강한이 머리를 털었다.
왜 이런 것이 가능했는지는 손에 쥐어진 회중시계가 알려 주고 있었다.
가상 현실 게임 로스트 월드의 던전, 잊혀진 시간의 주인의 신전에서 획득했던 크로노스의 회중시계.
등급 불명, 옵션 불명. 설명 불명.
모든 것이 불명이었던 이 아이템에 의해 자신은 시간을 역행해 되돌아왔다.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
가상 현실 게임 로스트 월드의 오픈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