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장(終章). 현대의 신.
-- >
-상위의 기적은 하위의 기적을 무시한다.
이건 일종의 법칙이다. 예외가 없다는 면에서는 진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유품 하나하나가 서로 달라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네버랜드처럼 그자체로 완성된 세계관은 흔치 않고 그렇기에 강렬한 힘을 가진 재앙이라 해도 어느 정도의 약점은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대피시켜!"
"제길! 저 악마놈들이!"
"쏴라! 더 쏴 어차피 살긴 글렀으니 목숨으로 녀석의 발을 막아!!"
군인들이 눈물 나는 희생정신을 발휘했지만 그럼에도 언데드들의 앞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탱크와 미사일은 물론이고 최신예 전투기들이 포함된 정예병력이었던 만큼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들 따위는 삽시간에 쓸어버릴 화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고 5미터가 넘는 덩치로 탄환을 다 받아내는 레벨 4의 어보미네이션과 반대로 너무 빨라 탄환을 맞추기도 어려운 레벨 6의 다크 비스트(Dark beast). 그리고 물리적인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레벨 8 스펙터(Specter)와 강대한 암흑마력을 사용하는 레벨 10의 데몬(Demon)은 현대병기로 무장한 군대에게조차 악몽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쿵!
"제, 젠장! 아크데몬! 아크데몬이다!"
"하나님 맙소사!"
"모두 도망쳐!"
언데드들의 수장이자 7대 재앙으로 유명한 아크데몬은 미합중국에게 사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를 제어하면서도 다른 7대 재앙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전투력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10체에 가까운 재앙을 파괴한 미합중국으로서도 공략 불가 판정이 난 존재다. 핵폭탄을 5방이나 맞았음에도 무사하고 그 외에 다른 약점도 없으니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쿠아아아!
10미터가 넘는 덩치의 아크데몬이 검은색의 기류를 뿌리기 시작한다. 녀석에게 근접한 모든 존재를 단숨에 시체로 만드는 죽음의 파동. 슬슬 미군이 무너져 내릴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좋아 슬슬 준비하자."
"후우. 긴장되네요. 그 유명한 아크 데몬이라니."
내가 만들어준 참룡검(斬龍劍)을 단단히 잡은 민정의 말에 웃는다.
"어차피 녀석은 내가 상대할 테니 주변에서 접근하는 다른 녀석들만 막아주면 되. 촬영도 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릴 테니 초대한 멋있게 싸우고."
"저기 근데 오빠. 진짜 우리는 아크데몬한테 접근조차 하면 안 돼?"
"강보람. 죽음의 파동을 무시하지 마. 아크데몬의 사기(死氣) 앞에서 알량한 방어능력 따위는 의미가 없어. 단숨에 시체로 변하고 싶어?"
"쳇....... 알았어."
아쉬워하는 보람의 모습에 한숨 쉰다. 아이고 이 말괄량이 아가씨야. 이 녀석은 내가 이미 아크데몬을 한번 잡았는데 자신 때문에 시간을 돌린 걸 알기나 할까?
"어휴. 애송이는 이래서 문제라니까. 능력도 안 되면서 나대기는 또 엄청 나대지."
한숨 쉬는 마가리타의 모습에 보람이 도끼눈을 뜬다.
"뭐? 싸우자는 거야?"
"싸우자니. 초월자라고 다 같은 초월자가 아니라는 건 지난주에 처절하게 알려줬는데 그걸 또 알고 싶어?"
"너, 너........"
점점 사나워지는 마가리타와 보람의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만. 나 화낸다?"
"호호 미안. 조심할게."
"으으...... 미안."
현재 내 옆에는 보람과 민정. 그리고 마가리타가 자리한 상태다. 사실 나를 따르는 마스터 군단은 벌써 열 명이 넘지만 초월자에 이른 건 이 셋뿐이라 이들만 데리고 왔다. 다른 적도 아니고 7대 재앙을 상대할 때 동원하기는 무리다. 우웅!
"으앗 미안. 좀 늦었지?"
"괜찮아.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니까."
그때 공간을 열고 허리까지 늘어진 반짝이는 은발에 늘씬한 몸매가 인상적인 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일행에서 유일하게 마가리타와 동등한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존재.
바로 청명이다.
사실 NPC인 청명이 현실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나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그녀가 현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오랜만에 신계에 놀러갔을 때 그녀가 한 말 때문이었다.
<신성을 건 대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세계수 유그드라실의 모든 아이템과 권한이 이전되며 유그드라실의 [영혼]마저 당신의 소유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원한다면 세계수 유그드라실의 현체(現體)를 살해하는 것조차 가능합니다!>나는 운명의 신의 자리에 도전해 언리미티드 회장에게 신성을 빼앗았을 때 들었던 이야기다. 딱히 노인네의 영혼 따위는 쓸 데도 없어 없애 버리고 그리하여 막연히 녀석이 죽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명의 신에 자리를 청명이 차지하게 되자 유그드라실을 플레이하던 회장의 그 육체에 대한 통제권이 그녀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물론 빼앗은 건 늙은데 추하기까지 한 늙은이의 몸뚱이였지만.'
하지만 일단 몸이 있는 이상 나에게 그딴 건 아무런 제약조차 안 된다.
보조스킬. 사랑은 막을 수 없다.
보조스킬. 성형(成形).
보조스킬. 개선(改善)사실 이 콤보면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던 구식 PC나 고물 자동차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조차 늘씬한 미녀로 만들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전무후무한 궁극의 성형의과. 아니, 성형술사(成形術士)인 것이다.
"청명하고 마가리타는 데몬들을 막아주고 민정하고 보람은 나머지 녀석들을 막아줘. 내가 그동안 아크 데몬 녀석을 족칠 테니."
"응!"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들의 모습을 확인한 후 결계를 풀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여인들이 현현한다.
"페이탈!"
"크리스티나!"
"설향!"
"청명!"
외침과 동시에 그녀들의 모습이 변한다. 그뿐이 아니다. 크리스티나와 청명의 등 뒤에는 환하게 빛나는 백색의 날개가. 페이탈과 설향의 등에는 빛조차 빨아들일 듯 새카만 어둠의 날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녀들에게 부여한 신검(神劍)의 대천사와 신속(神速)의 대천사. 그리고 역천(逆天)의 마왕과 투마왕(鬪魔王)의 위(位)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콰과과과광!
쩌정!
돌입과 동시에 수백 수천의 언데드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간다. 스스로도 초월자인 그녀들이 대천사와 마왕의 권능(줄 수 있는 최대치의 마나를 부여한)까지 얻었기에 이미 그 전투력은 C급의 재앙과도 맞먹는다. 이 네 명이 힘을 합친다면 과거 내가 흡수했던 불사조. 그러니까 B급의 재앙조차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다.
"하아아압!"
그리고 그녀들이 열어낸 길을 통해 앞으로 뛰쳐나간다. 목적지는 고층 건물이나 다름없는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아크데몬이다.
사실 아크데몬은 7대 재앙 중에서도 종합적인 전력이 가장 높은 편이다. 스스로도 강하면서 어지간한 재앙만큼이나 강한 부하를 만들 수 있으니 누가 봐도 사기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꽁짜는 없는 법이고 아크데몬은 그 강함만큼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녀석이 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현 지구에 그 약점을 공략할 요소가 없기 때문일 뿐 약점을 찌를 수 있다면 녀석이야말로 7대 재앙 중 가장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다.
"헬리오스! 에레보스! 아프로디테! 치우! 솔로몬! 퀴벨레! 토트!"
통합교황으로서 신들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의 힘이 나에게 중첩되기 시작한다. 무지개 색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칠색이 주위로 흩뿌리는 것이다.
사실 네버랜드는 레전드급의 유품 치고는 출력이 약한 편이다. 현실에 구현시킬 수 있는 마나량은 1억 테라가 한계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하나 어디까지나 데이터 속의 세상이지 실제로 어딘가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지는 못한 것.
그러나 네버랜드의 진짜 강점은 출력이 아니다. 유저들에게 능력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한 기능일 뿐 진짜 강점이라고 할 수 없다.
네버랜드의 진짜 강점은 만능성(萬能性).
네버랜드에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온갖 마법과 무공이 존재하고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초월적인 존재들 역시 있다. 셀수도 없이 많은 독과 약이 존재하고 억이 넘는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네버랜드의 힘이라면, 사실상 어떤 재앙이 나타나도 약점을 공략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크데몬을 약점을 정통으로 찌를 수 있는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디바인 오라 7중첩!!"
[캬아아아아악-----!!]내가 접근하는 것만으로 아크데몬의 주변으로 퍼져 나가던 죽음의 파동이 일그러진다. 주먹을 휘둘러 후려치자 아크데몬이 10미터라는 덩치가 아까울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 친다.
악마라는 설정을 가진 녀석에게 신성력은 천적 중의 천적. 신성력에 닿기만 해도 녀석이 힘이 약화될 지경인데 서로 다른 신성력을 일곱 겹이나 두른 내 공격에 얻어맞으니 실제로 내가 낼 수 있는 파괴력의 십수 배나 되는 타격을 받는다. 심지어 내 공격은 단순히 후려치는 그런 단순한 종류가 아니다.
쩌억!
신성력을 머금은 강기. 그러니까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신성강기(神聖剛氣)라 부를 수 있는 공격이 태양처럼 빛나며 아크데몬의 팔을 후려치자 녀석이 팔이 마치 쇠파이프에 얻어맞은 거울처럼 쩍하고 금간다. 갈라진 녀석의 피부에서는 검은 연기가 증기처럼 뿜어진다. 아크데몬은 분노한 듯 벼락처럼 몸을 낮추며 덤벼들었지만.
"어림없지!"
단조롭기 짝이 없는 녀석의 공격을 빗겨내며 후발선제(后發先製)의 묘리로 손목을 자르고 지나간다. 약간 날로 먹은 감이 있다지만 명색에 초월적인 무술가인 나에게 녀석의 움직임은 장난이나 다름없다. 밀리언이었던 은비가 가지고 있었으며 네버랜드를 구성하는 막대한 정보량의 근원이 되었던 세상만사(世上萬事)는 없던 정보를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라 존재하던 정보를 가져오는 힘이니 내가 익힌 무공 역시 저 먼 이계 어딘가에서 수없이 긴 세월동안 축적되어온 진짜배기들이라 할 수 있다.
부하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주제에 그 자체도 절대 약하지 않은 아크데몬이 야생짐승 같은 감각적인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신성강기는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녀석의 전신을 난도질한다.
"오오 세상에! 갓 차일드(God Child)야!"
"갓 차일드가 왔어!"
내가 순식간에 아크데몬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7대 재앙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만 이미 나는 20체나 되는 재앙을 쓰러트려왔다. 물론 그중 12개는 주워(?)먹은 거라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8개채의 재앙은 정면대결로 쓰러트렸기 때문에 이미 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신적인 존재로 보이면 그냥 갓이라고 하면 되지 갓 차일드는 또 뭐야 양키 놈들이."
"보람아. 카메라 돈다. 워낙 시끄러워서 안 들리겠지만 입 좀 조심해. 교황님 명성에 먹칠하면 언니 화낸다?"
어느새 주변을 대충 정리한 네 명의 여인이 모여든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까맣게 물들일 정도의 좀비들 역시 있었지만 어차피 아크데몬만 정리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끝내 볼까나. 어차피 온전히 흡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어마어마한 타격에 한쪽 무릎을 꿇고 기운을 추스르고 있는 아크데몬을 마주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재앙들처럼 녀석을 흡수할 수는 없다. 아크데몬이 특별히 강해서. 뭐 이런 문제가 아니라 녀석이 나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재앙들은 모두가 홀로 [오롯한 존재]이기 때문에 일단 녀석들이 나를 [적]으로 인식하면 마나를 빼앗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내가 굳이 재앙을 미소녀로 바꿔 지극한 쾌감을 안겨주는 게 아니다. 녀석들이 나에게 [호감]을 느껴야만 나에게 마나와 정수를 넘겨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자신의 천적인 신성력을 발휘한 나에게 아크데몬이 호의를 보일 일은 영원히 없다. 어차피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능력 따위는 얻고 싶지도 않으니 회복 불가의 타격을 입힌 후 폭식으로 마나나 빼앗는 게 좋겠지.
"그럼 잘 가라."
[캬아아아아----!]내 전신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에 분노를 느낀 듯 어마어마한 사기를 뿜어내는 아크데몬.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들어올렸고--번쩍-!
신성한 빛의 파도가 천지를 가른다.
============================ 작품 후기 ============================사실 재앙 상대하는 거 하나하나 다 묘사하며 길게 가면 1~2권 분량은 더 끌고 갈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이미 최강인 주인공 끌고 길게 이어가 봐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