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276화 (276/283)

< --종장(終章). 현대의 신.

-- >

"아마 안 그럴걸."

따악!

그리고 시간이 돌아간다.

"별 귀찮은 일이 다 있군."

시간을 많이 돌리지는 않는다. 물론 좀 더 돌려서 뭔가 음모를 꾸미던 미미르의 밀리언에 대해 조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물론 그냥 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애초에 나한테 능력억제를 걸어봐야 네버랜드 안에 있는 나에게는 미치지 못하니까 순수 유품의 힘으로는 소용이 없지."

네버랜드는 EX랭크의 밀리언 둘이 모여 만든 레전드급에 가까운. 아니, 어쩌면 그냥 레전드급일지도 모를 정도로 강력한 아티펙트이기 때문에 동급의 유품이 아니면 외부에서 강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발화능력으로 천신과 마신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으로 네버랜드에 접속해 캐릭터를 키웠기 때문이지 발화능력 자체가 네버랜드를 넘어서서는 아니니까.

능력억제로 내 현실을 제제 한다 해도 내가 시간을 돌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짜로 나를 외통수로 몰아넣으려면 네버랜드 안에서 로안 필스타인을 완전히 제압하는 동시에 현실의 나 역시 제압해야한다. 심지어 내 타임캔슬이 발동하는 데에는 1초도 필요하지 않으니 그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런데 그런 게 가능한가?'

농담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말 나 스스로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인다. 심지어 단 한번이라도 실수하면 시간이 돌아가 이미 모든 걸 아는 내가 모든 상황에 카운터를 칠 수 있으니 이게 무슨 미친 난이도란 말인가?

"........ 야. 너 또 혼자 돌렸지? 같이 좀 가지니까."

혼자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내 옆에 있던 페이탈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자신의 옆에 있는 내가 계속 같이 있던 내가 아니라 더 미래로 갔다가 돌아온 나라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다.

"미안. 하지만 적에게 당해서 어쩔 수 없었어."

"뭐? 네가 당한다는 게 말이 돼?"

황당하다는 그녀의 반응에 으쓱인다. 당연한 반론이었지만 실제로 당한 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상대가 미미르였어. 더불어 재앙을 둘이나 끌고 왔더군."

"아니 잠깐 미미르는 자아가 없는 유품이잔....... 설마?"

"그래 맞아."

역시나 똑똑한 녀석이라서 척하면 척. 페이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어라 이거 꽤 심각한 거 아냐? 미미르는 전지(全知)의 유품이야. 거기에 다른 재앙을 조종할 수 있는 힘까지 있다면."

"괜찮아."

그녀의 말을 가볍게 자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괜찮다.

"천신과 마신이 그렇듯 녀석 역시 미미르의 일부일 뿐이야. 그런데 만약 미미르가 힘을 잃는다면?"

"아....... 그렇군. 미미르 우리가 가지고 있구나."

그렇다. 그거야말로 미미르의 치명적인 약점. 그러나 동시에 나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네버랜드도 챙겨야겠군."

"네버랜드의 서버(Server) 말이구나? 그게 파괴되면 네버랜드가 사라져서 네버랜드 기반의 능력이 다 사라져 버릴 테니까."

페이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닌 게 아니라 레전드 스킬이란 레전드 스킬은 싹 챙기고 권능과 절대권능을 잔뜩 가진 나는 네버랜드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재앙들이 핵폭탄을 맞아도 기스 하나 안 나는 것처럼 네버랜드의 서버 역시 파괴하기가 몹시 힘든 물건이겠지만 건들기만 해도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재앙과 다르게 저항이라는 걸 하지 않으니 위험하다.

"더 알아가야 할 정보는 없어?"

"없어. 아아 솔직히 말하자면 만들던 마법 물품을 가져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뭐 별 수 없지. [캔슬]에서 버틸 수 있는 건 정보뿐이니까."

시간을 뒤로 돌리면 남는 것은 기억 뿐 그 외에는 모든 것이 과거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 대상은 내 몸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만약 10년 정도 돌리게 된다면 정신은 지금 그대로일지 몰라도 몸은 초등학생이 되는 것이다.

"뭐, 수식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 됐어."

"그럼 간다."

따악!

망설임 없이 손가락이 튕기자 타이밍을 보고 있던 페이탈이 자신의 왼손이 자신의 두 눈을 가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키이이잉------------!!!

순간 세상이 멈춘다. 그녀와 나 사이에서 균열이 생겼다.

[시간]과 [시간]이 충돌한다. 타임캔슬의 능력에 따라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며 주변 배경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되감긴다.

"으으으. 역시 이 기분 너무 이상해. 약간 멀미까지 와."

우는 소리를 하는 페이탈. 아니, 마가리타의 모습에 놀란다. 기본적으로 엄살이라는 걸 부리니 않는 그녀이니 꽤 강력한 부담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는 타임스톱에서 별 느낌이 안 들던데."

"본인의 능력 뭐 이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어휴 하여간 신경 줄이 무슨 무쇠로 만들어진 건가."

잠시 투덜거리던 그녀는 이내 주변을 둘러본다. 도착한 곳은 나와 그녀가 함께 만든 지하도시다.

"그나저나 얼마나 돌린 거야?"

"재앙들이 날뛰기 조금 전이야."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하자 마가리타가 옆으로 따라붙어 묻는다.

"에? 사람들을 구할 생각은 없는 거야? 나는 조금 더 돌려서 사람들을 구할 줄 알았는데."

천진난만한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멈춰서 그녀를 노려본다.

"너, 지금 날 시험하는 거야?"

"....... 흠. 미안.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었어."

바로 사과한다. 스스로도 상황을 알면서 한 질문이기 때문.

애초에 웃기는 이야기다. 구한다니. 대체 [누구]를 말인가? 재앙이 미쳐 날뛰면서 생겨난 사상자는 천 명 만 명 단위가 아니다. 재앙이 날뛰기 시작하고 50여일의 시간동안 죽은 인간의 숫자는 무려 5억. 약간 과장 보태면 인류의 7%가 사멸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재앙이 날뛰기 시작할 걸 예측하고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킨다면 그들이 과연 고마워할까? 오히려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모함을 당하거나 음모론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게다가 잠시 후에 벌어질 [재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을 수백 수천 명이나 지하도시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몹시 힘든 일.

물론 주변에 있는 한 줌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종류의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렇게나 순수한 성격의 인간이었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느니 차라리 재앙이 벌어진 이후에 사람들을 구해오는 게 낫지. 어차피 그것만 해도 지하도시가 꽉 차고도 남을 정도인데다 감사한 마음에 함부로 날뛰지 않을 테니.'

어차피 식량을 포함한 어려가지 환경 상 지하도시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수천이 한계다. 아니 그들이 그냥 숨만 쉬며 곱게 있어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수백 명도 힘들지 모르지.

"여기 있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긴 나는 창고에 잘 보관해 두었던 커다란 물통을 찾아 들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샘 미미르. 1000리터가 가뿐히 넘는 양이라 사람이 들고 다닐 만 한 크기가 아니었지만 건물 한 채도 우습게 들 수 있는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나저나 그건 어쩔 생각이야? 그거 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유품이기 때문에 증발시키는 것도 변질시키는 것도 불가능해. 타격을 주는 거야 간단하겠지만 파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걸?"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지하도시에서도 공사가 덜 된 미개발 지역으로 이동한다. 정령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 지하도시는 기본적으로 지상에서 가까운 장소부터 개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미개발 지역은 최하층 지역으로 적당히 파여진 땅만이 자리하고 있다.

"노이아스."

대지의 상급 정령을 부른다. 불사조를 흡수하기 전인 지금은 최상급 정령도 정령왕도 부를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이아스 왔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해요!]갈색의 머리칼과 피부를 가진 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찔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있어 남자라면 누구라도 멈칫할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어차피 늘 보는 수준이라 태연히 명령한다.

"수직으로 땅을 파줘. 네 능력이 닿는 대로."

[네 주인님!]대답과 동시에 바위끼리 긁히는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땅에 구멍이 뚫린다. 언뜻 보면 싱크홀(Sink hole)이라도 뚫리듯 빠른 반응이지만 사실은 단단한 암벽지대를 파고 있는 중이다.

"마가리타."

"응. 뭐 추가적인 지시사항이라도?"

"전에 했던 대로 아버지를 이리로 모셔와 줘.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보람하고 민정의 동태도 살펴주고."

"오케이. 아 그리고 지금 바로 내려가 주지 않을래? 땅은 그리 깊게 파지 않아도 되니까."

"음?"

아직 재앙이 벌어지고 불사조가 나에게 깃들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땅을 파기 시작한 건 더욱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이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초고온의 폭염이. 그것도 그냥 폭염도 아니고 영적인 힘을 담은 폭염이 뿜어져 나오니 지하도시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깊게 들어가지 말라니?

"하여튼 해줘."

"........ 뭐 좋아."

딱히 그녀가 나에게 피해갈 짓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노이아스가 파 놓은 구덩이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 잠깐 사이에 300미터나 파 놓은 상태였다.

"돌아가."

[앗! 이 정도로 괜찮나요?]

"수고했어."

[네 주인님!]주변 대지에 녹아드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미미르가 든 물통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속성력으로 암벽을 움직여 물이 새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웅덩이를 만든다.

화륵!

그때 뭔가 거대하고 후끈한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들더니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시간이 되었다는 뜻. 그리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자유! 사명에도 제약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더 이상 너희의 사명을 가로막을 것은 없다! 너희는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니!][부숴라! 파괴하라! 그것이야말로 너희들의 존재 목적이 아니던가!]들린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은 광기 가득한 목소리. 나는 가부좌를 취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화악---!

몸에서 불꽃이 일어난다. 암석들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맹렬한 폭염.

"젠장......... 역시 뜨거워!!"

용암에서 헤엄쳐도 멀쩡해야 할 몸이지만 불타는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 이미 한번 겪은 고통이기는 하지만 익숙해지기에는 너무나 뜨겁다. 인두로 지지는 고문이 대충 이런 고문이리라.

화아악---!

전신이 타버릴 듯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런 고통 속에서 나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미미르를 바라보았다. 바위조차 녹일 정도의 폭염에서 저 정도의 수분이 증발하지 않고 버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역시나 유품인 미미르는 끄떡하지 않는 상황.

"허억....... 허억........"

불타는 몸을 이끌고 미미르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머금는다.

꿀꺽.

그 물은 시원하다. 또한 향긋하고 감미롭다. 한 모금 머금었을 뿐임에도 입에서 단 내가 날 것만 같다. 염화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죄인들에게 떨어진 감로수가 이런 맛일까?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앙! 시원하다!!"

[이, 이, 이게 무슨 짓....... 크윽 뜨거워!?]웬 잡것이 나타나서 옆에서 떠들었지만 이 갈증 해소의 쾌감을 참을 수는 없다!

============================ 작품 후기 ============================아 빨리 완결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정이 자꾸 생기네 으악;;;;;

화아악---!

전신이 타버릴 듯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런 고통 속에서 나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미미르를 바라보았다. 바위조차 녹일 정도의 폭염에서 저 정도의 수분이 증발하지 않고 버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역시나 유품인 미미르는 끄떡하지 않는 상황.

"허억....... 허억........"

불타는 몸을 이끌고 미미르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머금는다.

꿀꺽.

그 물은 시원하다. 또한 향긋하고 감미롭다. 한 모금 머금었을 뿐임에도 입에서 단 내가 날 것만 같다. 염화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죄인들에게 떨어진 감로수가 이런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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