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장. 시작되는 음모. 그리고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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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꼈어?"
"그래. 초월자로군. 그것도 무투계열의......."
"호호. 그리운 얼굴을 보겠는걸."
페이탈이 웃는다. 애초에 초월경에 오를만한 존재는 그리 흔하지 않고 우리가 향하던 목적지를 생각하면 그 대상은 하나뿐이다.
"쓰레기들이....... 정말 피곤하게 하는군."
마침내 가단차에 도착한 우리는 모조리 즉사한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백의 야만병사들과 그 잎에 서 있는 당당한 체구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언리미티드 소속의 그랜드마스터이자 와이번 라이더(Wyvern Rider)로 네버랜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는 연예인과 다를 바 없는 인기를 자랑하는 아크란이다.
"오랜만이군."
"흡......?!"
순간 삼 미터가 넘는 크기의 검강이 벼락같은 속도로 날아온다.
내 몸에는 내가 의식하는 것만으로 존재감 자체를 감추는 은폐결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능력이었지만......
"웃차."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쩌억!
빗겨나간 강기에 얻어맞은 바닥에 마치 거대한 야수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듯 수 미터나 되는 갈고리가 생긴다. 철두철미한 성격답게. 아니 어쩌면 단순히 마나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강기공격을 사용했음에도 가볍게 빗나간 것이다.
"피했어? 검강을?"
검강은 단순히 검기보다 강한 파괴력을 가진 기술이 아니다. 똑같이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고는 해도 기운 자체에 실리는 속도와 공간장악력 자체가 다르다. 공격성을 가진 강기는 휘둘러지는 것만으로 주변의 모든 마나를 장악하고 짓누르기 때문에 설사 떨어지는 깃털처럼 느릿느릿하다 해도 피할 수 없는데 심지어 그 속도가 벼락보다 빠른 것이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아크란. 초월자 처음 보나?"
"페이탈........"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의 이름을 서로 아는 사이라도 네버랜드 안에서는 아바타의 이름을 부른다. 마치 내가 민정의 이름을 알면서도 그녀의 아바타는 크리스티나라고 부르는 것처럼. 네버랜드의 빙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역할극을 지향하고 있으니 오랜 시간 플레이어로서 살아가다 보면 이런 건 습관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소식은 들었지만 무슨 유령도시 같네. 카달의 야만족이 용맹하기로 유명하다지만 감히 가단차를 노릴 생각을 할 정도라니. 도시를 유지할 최소한의 인원도 없어져 버린 거야?"
"대부분의 유저들이 네버랜드에 접속할 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나저나......... 초월자가 되었군요?"
"그게 놀라운 일인가? 너 같은 녀석도 오르는 게 초월지경인데."
"당신은........"
아크란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떠오른 것은 명확한 경계. 그러나 그는 이내 눈을 풀고 한숨 쉬었다.
"뭐 하러 온 겁니까? 어차피 지금 언리미티드는 당신을 쫓을 여력조차 없는데."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너는 용케 접속했네."
"인류가 멸망할 정도의 위기는 아니니까요. 기껏 만들어낸 플레이어들의 도시가 망가지게 할 수는 없죠."
대화를 나누면서도 경계를 멈추지 않지만, 그럼에도 페이탈과 제법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쫒고 쫒기는 입장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다.
'알던 사이였나? 어쩌면 동료였을지도 모르겠군. 현생이 아니라면 전생(前生)에서라도.'
둘 다 플레이어이며 그 모든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특출한 존재였으니 서로 알고 있던 사이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페이탈. 아니 현실의 마가리타는 EX랭크급 밀리언이라는 게 국가들 사이에 알려지고서도 잡히지 않았던 요주의 인물이니 어쩌면 아크란이 접근했을지도 모르지.
"유그드라실도 접속해 있나?"
"........ 그 이름을 당신이 어떻게 알죠? 아니 그 이전에 누구십니까?"
나. 그러니까 통합교황 로안 필스타인은 네버랜드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존재였지만 실제로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서 널리 얼굴이 알려진 존재는 아니다. 물론 내 모습을 찍은 스크린샷이나 동영상이 팬 사이트를 나돌아 다니니 찾으면 쉽게 찾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레전드 NPC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십거리를 좋아하지 않는 유저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로안 필스타인."
"통합교황?"
"뭐, 그런 직위도 맡고 있는 상태지."
레전드 NPC는 절대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크란이 초월지경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골드 드래곤 에레스티아와 싸운다면 일방적으로 깨질 테니까. 초월자라 해도 이제 막 초월자에 이른 그는 레전드 NPC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정도에 불과하니 레전드 NPC를 만나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목적입니까 페이탈? 저희는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어요. 그럴 여유도 없고. 게다가 예전에도 적대하는 게 아니라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몇 번이나........"
"대답......."
"음?"
고개를 돌려 페이탈을 바라보고 뭐라 주절거리는 아크란의 모습에 말한다.
"........ 안하나?"
쿠우우-------!!!!!
압도적인 존재감이 공간을 짓누른다. 마치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수면이 출렁거리듯 대기에 파문이 일고 피부가 찌릿찌릿 떨릴 정도로 주변의 모든 존재를 위압하는 것이다.
"허억......... 이게 무슨........?"
같은 초월자라지만, 이미 그와 나는 그 능력의 격이 다르다. 나는 이미 일반적인 초월자의 수준을 넘어 신위를 손에 넣었으니 사실 물질계에 존재하기는 과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 것이다. 신적인 존재들과 싸워도 크게 꿀릴 게 없는데 이제 갓 초월지경에 오른 그가 어찌 내 기세를 이겨내겠는가?
"유그드라실은 어디 있지?"
"크윽........ 무슨 말을 듣고 온 건지 모르지만 세계수는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대신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초월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어디에 있냐고 묻다니."
오대신과 오왕은 신적인 존재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만 살아간다. 물질계에 직접 내려오는 상황은 극히 제한되며 그 외의 수단으로만 영향력을 끼치는 것.
하지만 그런 사실은 당연히 나도 안다.
"접촉할 수단은 존재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마을 자체가 성립될 리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종류의 권능을 얻는 건 언리미티드가 네버랜드를 만들 때부터 계획한 거 아니던가?"
"....... NPC가 아니군요. 당신."
아크란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느껴지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네버랜드를 만들어낸 언리미티드에 깊이 관여한 그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걸 눈치 챈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NPC가 스스로 유저들의 마을을 찾아오는 일을 할 리가 없잖아?"
네버랜드는 기본적으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스스로를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을 지양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NPC들이 혼란을 느끼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다. 네버랜드 안의 생명들에게 네버랜드는 세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중요한 건 유저들이 네버랜드에 접속하는 [빙의]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빈틈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순간 지금까지 살아오던 그 모든 가치관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주변인들이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때문에 네버랜드는 그 안에 있는 NPC들의 [사고]에도 어느 정도 강제력 가하고 있다. NPC들이 유저에 관한 정보를 자기도 모르게 흘려듣게 되고 거기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는 것. 심지어 오대신이나 오왕 정도 되는 신적인 존재들조차 그 강제력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으니 NPC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이 강제력을 이겨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 군요. 기억납니다. 국인부를 뒤집어버린 괴물이 있다고 했었지요. 하지만 유품도 아니고 밀리언의 힘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강력한 유저라니."
아크란은 잠시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레전드급으로 보이는 무기였는데,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그 고민의 내용이다.
'싸울지 말지 고민하는군.'
어차피 나보다 낮은 경지의 그가 나에게 느낄 수 있는 건 막연히 [나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일 뿐 아예 급이 다르다는 것 까지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옆에는 페이탈마저 있다. 그와 그녀의 전투력이 비등하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네트워킹 가단차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한 것이다.
'안내해 주면 안내해 주는대로 좋고. 아니면 아닌대로 좋지.'
그렇다. 사실 그가 저항해도 나로서는 아쉬울 게 없다.
'사지를 잘라버리고 내가 스스로 찾으면 되니까.'
사실 이렇게나 신사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만 해도 내가 얼마나 착한지 알 수 있으리라. [캔슬된 원한을 가급적 먼저 징벌하지 말자.]라는 나만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 작품 후기 ============================흠;;? 전편 후기에서 이상한 오해들을 하시는군요. 사과박스에서 요청이 왔지만 여유가 없어서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오해의 요지가 있게 썼던가 ㅠㅠ예전부터 말해 왔지만 캔슬러 완결. 이어서 문장사 완결 이후에는 조아라는 길게 휴식입니다. 여기서 조아라. 라고 하는 건 인터넷 연재를 말함이죠. 요새는 여기저기 많아졌습니다만;신작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한동안은 종이책만 낼듯. 마음속 깊숙히 있던 음습함은 이미 거의 다 걷어내서 성불할 지경인지라 인터넷 연재의 최강 장점인 [자유]에 별다른 메리트가 없어져 버림;아아 라이트 노벨 쓰고 싶은데 다음 작 다다음작품 작품까지 계약이 밀려 있음 ㅠㅠ 한동안은 글렀군 ㅠㅠ
'사지를 잘라버리고 내가 스스로 찾으면 되니까.'
사실 이렇게나 신사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만 해도 내가 얼마나 착한지 알 수 있으리라. [캔슬된 원한을 가급적 먼저 징벌하지 말자.]라어차피 나보다 낮은 경지의 그가 나에게 느낄 수 있는 건 막연히 [나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일 뿐 아예 급이 다르다는 것 까지 느낄 수는 없다.
'사지를 잘라버리고 내가 스스로 찾으면 되니까.'
사실 이렇게나 신사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만 해도 내가 얼마나 착한지 알 수 있으리라. [캔슬된 원한을 가급적 먼저 징벌하지 말자.]라어차피 나보다 낮은 경지의 그가 나에게 느낄 수 있는 건 막연히 [나보다 강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일 뿐 아예 급이 다르다는 것 까지 느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