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장. 재앙을 먹어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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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수단이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던 생각이 결론을 맺는다.
"그야 눈빛이지."
'그야 눈빛이지.'
결론이 나왔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개를 돌려 세리아를 바라본다.
<천지음양진경(天地陰陽眞境)과 동조(同調)의 눈을 융합진화 시킵니다!><로안의 시선을 획득하셨습니다!>호루스의 눈과 음양신선경의 스킬을 합치는 과정은 간단하다. 한두 번 해 온 일이 아닌데다가 이미 색공에 대한 내 경지는 그야말로 극의(極意)에 이르러 있던 것.
다만 스킬의 이름은 의외였다.
'호오. 지금까지는 적당한 이름이 붙었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내 이름이 생겼군.'
스킬 창을 켜보니 보조스킬도 권능도 아닌 일반적인 오러스킬에 가까운데 내 이름이 붙어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필요한 기술이......... 세리아. 남는 오우거 있으면 하나 줄래?"
"네 교황님."
차분한 요청과 대답이었지만 제 3자가 들었다면 황망해 했을 것이다. 남는 오우거라는 건 내가 생각해도 특이한 문장이었으니까.
'몬스터 수집이라니 특이한 취향이란 말이지. 뭐 나로서는 마침 편하지만.'
정령왕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유명한 엘더 엘프 페시리나의 딸이자 최상급 정령 소환사인 그녀는 황당하게도 특이한 몬스터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혹은 희귀한 몬스터들을 잡아 키우는 것이다.
"테이밍(Taming)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희 엘프들은 깊은 숲에 살고 숲에는 몬스터가 많으니 몬스터 테이머를 양성하는 것도 필요한일이거든요."
기본적으로 매력과 친화력이 높고 상당한 수준의 마력을 타고나는 엘프들은 매력 기반 스킬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몬스터 테이머가 꽤 많다. 특히 숲에 거주하는 몬스터들이라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친해지는 방식과 특유의 테이밍 능력을 병합해 자신들의 마을을 지키게 한다고 한다.
위잉!
교황청의 매 층마다 설치된 공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거주 구역으로 이동한다. 퀴벨레 교단의 추기경인 세리아는 허락받은 공간만 해도 꽤 크다. 약간 오버를 붙이자면 작은 마을만한 공간이 다 그녀의 방인 것. 일반적인 탑이라면 개인에게 이런 공간을 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무려 3킬로미터의 지름에 10킬로미터의 높이를 가진 교황청은 어지간한 도시 수십 개는 넣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어 이 정도 낭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금 당장 놀고 있는 공간이 상당할 지경이니까.
"아, 가급적 가장 통제 안 되는 녀석으로 부탁해. 죽어도 괜찮은 녀석으로."
"죽여도 괜찮을 정도의 녀석이면 데리고 있지 않겠지만........ 통제 안 되는 녀석이라면 있어요."
그녀에게 배정한 영역은 상당히 넓었지만 나도 그녀도 걸음이 빨라서 목적지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걷는데 왠지 모르게 세리아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왜 그래?"
"네? 아하하........ 그, 데, 데이트 하는 것 같아서 좀 설레네요. 위대한 존재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라던데."
"그래?"
피식 웃으며 옆에서 걷던 그녀의 허리를 안아든다. 강하게 끌어당기고, 입술과 입술이 마주친다.
"흡......."
깜짝 놀란 듯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러나 이내 적응하고 늘씬한 두 팔을 뻗어 안겨온다. 혀와 혀가 농염하게 얽히고 마치 빨아들이듯 호흡이 교환되었다.
'제법 능숙해졌군.'
도도하기로 유명한 엘프. 그리고 그중에서도 왕족이나 다름없는 그녀였지만 내 앞에 서면 언제나 안기길 바라는 수줍은 여인일 뿐이다. 나는 존재 그 자체가 매혹 덩어리라서 내 근처에 있으면서 성적인 충동을 느끼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물론 내가 특별히 신경 쓰면 되긴 하지만.'
매력이라는 개념이 꼭 성적인. 혹은 남녀관계 위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 스킬이나 지휘 스킬 등이 성립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미 매혹의 극에 달해 타인이 나를 보고 느낄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높은 매력으로 상대방이 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위압할 수도. 존경심을. 우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 게이들이 꼬여서 상황이 지저분해 졌을 것이다.
"여기서 할까?"
"저, 정말요?"
반색하는 그녀를 보며 웃는다.
"물론 뻥이지."
"우우 너무해요오........."
기다란 귀를 축 늘어트리며 실망을 표하는 그녀는 한 종족을 아우르는 종교의 추기경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엽다. 평소의 나라면 당장 자빠트려(?)버렸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상황이 급하다.
'현실에서는 불에 타고 있는데 너무 여유 부리기도 그렇지.'
어느새 복장이 흐트러진 그녀를 부축한 후 이동한다. 도착한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우리가 있는 쪽이다.
"쿠어어어어---!"
바람의 최하급 정령이 깃들어 있던 결계를 지나가자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포효가 들린다. 우리 안쪽에 사지가 포박된 거대한 오우거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고 난리 치기 시작한 것이다.
"오호 보통 개체가 아니군."
"보통 개체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죠. 이 녀석은 마나를 깨우친. 흔히 오우거 용사라고 불리는 개체에요. 거의 국가만 한 규모의 숲을 장악하던 지배자였죠. 언어를 사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능도 꽤 높고 그래서인지 자존심도 상당한 녀석이에요."
히어로 몬스터. 그러니까 과거의 레나에 맞먹을 정도로 강력한 녀석이라는 말이지만 숲에서 한층 더 기민해지는 엘프 부대와 최상급 정령 소환사인 세리아까지는 이겨낼 수 없었다는 말.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히어로급인 녀석을 생포까지 할 수 있다는 건 그녀가 아주 강력한 능력자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크어...... 크루룩."
"어라? 왜 얌전해지지?"
세리아는 고함을 지르던 오우거 용사가 나를 보고 잠잠해지자 의아해 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억지로 잡혀온 만큼 평소에도 꽤 시끄러운 모양이었는데 나는 집히는 바가 있어 물었다.
"이 녀석. 혹시 암컷이야?"
"아 네........ 엑 설마?"
"바로 그 설마지."
고작(?) 99스텟의 매력조차 (종을 초월하는 매력. 오오라가 느껴진다.)라는 설명이 붙어있었을 정도이니 200스텟을 완성한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종족. 성별에 상관없이 나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와. 교황님 몬스터 테이머 하면 엄청나시겠네요."
"음? 지금도 난 몬스터 테이머 아닌가?"
"네?"
내 말에 세리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주변에 길들인 몬스터가 있는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는데 답은 간단하다.
"삼룡이들이 있잖아?"
"헉......."
상상도 못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는 세리아였지만 사실 인간들은 드래곤을 몬스터로 취급한다. 다만 자연재해에 가까운 궁극의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엘프들처럼 위대한 존재~ 라고 생각하며 숭배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시간 끌 거 없지."
나는 포효를 멈추고 머뭇거리고 있는 오우거를 바라보며 마나를 발현했다. 그리고 레전드 스킬. 천변의 아름다움에 달려 있는 보조스킬을 사용했다.
<사랑은 막을 수 없다. 가 발동하였습니다!><오우거 용사가 '강맹한 정신'을 발동합니다!><어림없습니다! 사랑은 막을 수 없다. 스킬이 적용합니다!>일반적으로 성장스킬이 중심이 되는 능력이고 성장스킬이 보조에 가까운 능력이듯 천변의 아름다움은 색공이 아니라 외모를 가꾸는 주안술(駐顔術)에 가까운 힘이다. 그중 보조스킬 천변(千變)의 경우는 스스로의 외모는 물론이고 체형까지 완벽히 바꾸는 능력이고 보조스킬 성형(成形)은 타인의 육체를 조작하고 개선(改善)은 겉모습뿐이 아니라 체질 그 자체를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경-고정이 가능하다.
뿌득. 뿌드득.
사용되는 마나는 솜털(?)만한 수준이다. 그러니까........ 대충 3000만 테라 정도? 다만 난 보조스킬에 90% 마나 감소 버프를 받고 있으니 사실상 3억 테라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많이도 처먹는군. 현실에서는 꿈도 못 꾸겠어.'
로안의 몸이라면 숨 한번 쉬는 것만으로 회복될 정도지만 현실에서는 엄두조차 못 낼 마나량이다. 물론 레전드 스킬은 정신력으로도 발동이 가능하지만 그것도 정도지 몇 억의 마나량이 들어가는 스킬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발동시킨다? 몇 백 몇 천 테라 치의 기술만 써도 아찔한데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맙소사........ 세상에......."
변하는 오우거 용사의 모에 신음하는 세리아를 보며 피식하고 웃는다. 하긴 생각해 보면 마나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인가? 농담이 아니라 지금 난 저 거대하던 오우거 용사의 육체를 완전히 변형시켜, 그러면서도 육체적인 성능은 다운시키지 않고 새로이 구성하고 있으니 거기에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를 막는 능력이다.
'기가 찰 능력이지.'
세상에 사랑을 가로막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육체적인 문제도 상당하다. 종족이 다르거나 성별이 다르거나 마음은 맞는데 외모를 극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
레전드급 보조스킬. 사랑은 막을 수 없다는 그 모든 장애를 뛰어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상대방의 육체를. [사랑받기에 적합한]쪽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만약 이 기술을 맞은 상대가 남자라면 여자가 될 것이다.
만약 이 기술을 맞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동인지에 흔히 나오는 TS빔이나 모에선 뭐 그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누구라도.
"히유우우..... 크룩?"
귀여운 미소녀로 바꿔 버리는 능력인 것이다.
더러운 먼치킨이 작가마저 방황하게 했지만 이겨냈습니다 ㅇㅅㅇ 유쾌하고 상쾌하게 고난이 있어도 짓밟으며 갑니다! 제가 초심을 잃었던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 작품 후기 ============================오랜 방황 끝에.......... 좋아! 가는 거야! 어차피 먼치킨으로 갈때 유쾌하게 가기로 마음 먹었으면서 거기에 먹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