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장. 재앙을 먹어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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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야지."
감각권을 넓힌다. 내 감각은 이미 인간 레이더나 다를 게 없어서 가만히 앉아서도 1킬로미터 이내는 문제없이 살필 수 있는 수준. 신안을 사용할 수 있다면 1킬로미터가 아니라 수천 킬로미터 안의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살필 수 있겠지만 신안은 -300만 테라의 디버프로 유지되는 힘이라서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30만 테라도 까마득한데 어찌 300만 테라의 여유 마나량을 가질 수 있겠는가?
'숫자는 많지 않군. 마스터 하나에 일반 요원들이 스물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더 멀리에서 준비할 이유가 없으니.'
예전과 다르게 찾아온 건 언리미티드뿐이다. 애초에 국인부가 찾는 건 밀리언뿐이고 정보 수집형 유품 미미르를 강탈해 온 이상 그들이 날 추적할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
나는 보람이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은 후 영기를 분출했다. 어차피 잡어들은 필요 없던 만큼 [인식]한 것은 마스터를 포함해 그 주변의 몇 명뿐이다.
"왓? 마력이......... 뭐 하려는 거야?"
"교황님. 설마 이건."
"그래 맞아."
오른손을 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 배경이 급변한다.
키잉-!
과거에 가지고 있던 공간 생성형 보조스킬. 그러니까 <색황의 처소>는 스킬 변경을 하며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수의 레전드급 고유스킬을 익히면서 개인 공간은 오히려 더 많이 생겼다. 무한의 저장고도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품저장용이고 신성력 스킬을 초월자까지 끌어올리면 생성되는 보조스킬 들 중에는 반드시 [신전 생성]능력이 존재했던 것이다.
"열려라. 마그나 마테르(Magna Mater)."
주변 공간이 잠시 일그러지나 싶더니 삽시간에 배경이 변한다. 문자 그대로 아차 하는 순간, 나는 물론이고 보람과 민정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에 들어와 버리는 것이다.
"뭐, 뭐야 이거. 공간 이동?"
"아니야 이건 신전 생성. 그러니까 아공간 창조 능력이야. 하지만 이걸 현실에서 불러내다니........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분명히 상당한 마나가 필요로 할 텐데."
로안을 알고 있던 민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걸 불러오는 건 나로서도 아슬아슬한 일이다. 사실 [신전 생성]은 무려 50만 테라의 마나를 소모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권능이 아니라 보조스킬이라 다행이지.'
신혈각성에 들어 있는 [보조스킬들의 마나 소모량 90%감소]덕에 소모되는 마나는 5만 테라에 불과하지만 5만 테라만 해도 사실상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마나가 한방에 날아가는 셈이다.
'물론 레전드 스킬이라 정신력으로도 발동이 가능하다지만 그럴 수는 없지.'
정신력. 이라고 하니 막연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예상 외로 일반인들도 상상하기 쉬운 개념이다. 이 능력들을 사용하려면 근력 운동을 하며 전해지는 고통을 견디거나 고도의 지적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종류의 정신력을 필요하니까.
'다만 소모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회복이 느리니........'
정신력으로 스킬을 쓸 수 있으니 막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능을 사용해 소모되는 정신력은 생각보다 막대하고 회복 역시 그리 쉽게 되지 않으니까. 정신력을 너무 많이 써 버리면 마치 슬럼프에 빠진 작가처럼 아무 일도 하기 싫고 능력을 발휘하기도 힘든 상태에 빠지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신력을 멀리하고 마나를 쓰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마나는 거의 다 써도..........'
"다찼당~♡"
"예?"
뜬금없는 헛소리에 의문을 표하는 민정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는다.
"역시 개그는 두 번 치면 안 웃겨. 그치?"
"??"
민정이 내 헛소리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하거나 말거나 보람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기적에 놀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와 이거 봐! 엄청 넓어. 게다가 여기 음식들도 있다!"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을 가진 마그나 마테르(Magna Mater)는 지름이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신전이다. 거대한 나무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5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앙에는 키벨레의 신상이 자리하고 있다.
'유지 마나만 없어도 신전들을 아지트로 삼을 텐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전생성을 발현했을 때는 물론이고 신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나가 들어간다. 정신력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그걸로 이삼일 이상 유지시키면 정신적인 고통과 무기력증이 몰려들기 때문에 아공간들을 아지트로 삼지 못하고 지하를 파내려간 것이다.
"오 여기 봐. 식당도 있는데? 침실도 있다!"
"........ 죄송해요 교황님. 말괄량이 녀석이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보람의 모습에 민정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부끄러운 듯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기에 손을 내저었다.
"뭐 괜찮아. 조금 어지러워진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민정아?"
"네?"
내 부름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의 모습에 헛웃음을 짓는다.
"언제까지 존댓말을 쓸 거야? 여기는 네버랜드가 아니라 지구야. 너는 크리스티나 몬테로가 아니라 강민정이고."
크리스티나는 로안을 사모한다.
그것은 진실이며 더불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강함을 숭상하고 극한으로 단련하기를 즐기는 크리스티나는 그런 성향 때문에 강자를 존경하며 그 궁극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나. 로안이었으니까.
크리스티나는 유저임에도 로안을 사모했으며 그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인간이 프로그램에 불과한 NPC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진다는 게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네버랜드의 NPC들은 일반적인 NPC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인 것이다.
가상현실 게임. 그러니까 네버랜드가 생기기 전에도 생명도 사고도 할 수 없는 만화나 소설의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에 다른 사람과 싸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왔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만지고. 대화 하는 일이 가능하며 직접 사고하고 움직이는 NPC를 어찌 실제 인물이 아니라며 무시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에레스티아를 비롯한 삼룡이와 많은 여성들을 절대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상대해 왔었으니 NPC를 사랑하는 상황이 절대 희귀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시지지만........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말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무, 물론 교황님이 인간이라서 서운하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전 교황님이 유저라는 사실이........!"
"뭐야!? 여기 어디야?"
"미친! 환각인가?"
약간 기습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민정의 모습에 연예 경험이 절대 적지 않은 나조차 당황하는 그 순간, 마그나 마테르에 새로운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 중 한 명은 투박한 얼굴에 자신의 키만 한 그레이트 소드를 들고 있는 사내였고 나머지 인원은 양복을 입은 요원들이다.
"어, 저 녀석들 뭐야?"
어느새 우리에게 다가온 보람의 의문에 대답한다.
"너희 쫓아온 인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놈들만 뽑았어."
그들은 언리미티드에서 나온 이들로 그들 중 하나는 특수 요원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였고 또 하나는 아까부터 감지하고 있던 밀리언.
당연한 말이지만 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남자잖아........."
"뭐,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지금 이거 네가 한 짓이냐?"
안타깝다는 내 심리를 읽은 것인지 발끈하며 검을 들어올린다. 그런데 저런 대형무기를 길거리에서 들고 다니면 눈에 띄지 않나? 무슨 깡으로 들고 다니는 거야?
"칼슨. 여기 뭔가 이상하다. 무전도 안 터지고 있어."
"그렇다면....... 아공간인가? 하지만 이런 스킬을 현실에서 쓰려면 마나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저 녀석 인상착의가......."
민정이 깨달았던 사실을 그대로. 더해서 내 정체까지 깨달은 둘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다. 당연하지만 다섯이나 되는 마스터를 단박에 제압하고 그들 중 셋을 살해한 나는 특급 위험인물로 지정되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불타라!!"
"이런. 또 불이야? 정말이지 흔하디흔하군."
밀리언의 능력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지만 그렇다고 겹치는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나 불. 물. 바람. 땅 같은 속성 계통 능력이나 염동력이나 텔레파시 같은 초능 계통의 능력은 자주 겹치는 편이니까. 다만 이런 능력을 가진 밀리언은 대체로 등급이 낮아 유품을 만들어도 그리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잠깐 모두 스톱."
"......... 웃?!"
"마안술!!"
싸울 가치조차 없는 적이었던 만큼 눈빛만으로 제압한다. 애초에 저 사내놈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현현에 성공한 것 같은데 파지법 부터가 엉망이다. 절대 소드 마스터에 걸맞은 실력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 결국 대련 시스템이군. 소드 마스터를 밀리언의 능력으로 쓰러트린 주제에 스킬 경험치를 받는 거야. 네버랜드의 시스템이 초능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하늘도서관의 메리가 네버랜드에는 불법적인 데이터 변환을 감지해 징벌하는 NPC가 있다고 했었는데 그게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모양이다. 능력은 안 되는데 대련 시스템의 이득을 보는 존재가 생기는 상황을 막아왔던 것.
그리고 마가리타가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네버랜드를 서비스하고 있는 언리미티드는 네버랜드를 만들어낸 두 밀리언. 그러니까 천신과 마신에게 접촉해 거래를 성공함으로서 네버랜드 안에서 밀리언으로서의 능력을 쓰는 걸 승인받았다고 했다.
"거기 남자 놈. 100레벨은 어떻게 찍은 거야? 그 실력으로 고레벨 몬스터를 잡기는 요원한데......... 역시 그 발화 능력을 썼나?"
"아닙...... 니다. 경험치라면 언리미티드에서 지급받았지요."
"뭐?"
뜻밖의 말이다. 아니 경험치를 타인에게 지급받아 레벨을 올렸단 말이야? 황당해 하는데 옆에 서 있던 민정이 설명한다.
"아, 교황님은 가단차나 괴악 지역에 가 본적이 없으셔서 모르시겠군요. 언리미티드가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의 운영자들에 비해 권한이 매우 적다고는 해도 네버랜드를 운영하는 만큼 몇 가지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 가장 큰 건 역시 캐시샵(cash shop)이고요."
"그러고 보니 캐시샵에서는 경험치를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었지."
나는 그게 그냥 시스템인 줄 알았는데 그걸 받아서 가져가는 녀석들이 있다는 뜻. 마안에 묶여 있는 사내가 설명을 이어나간다.
"언리미티드의 수장. 유그드라실(Yggdrasil)님은 경험치를 소모해 추가계정을 비롯해 각종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대권능 등가교환(等價交換)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리미티드가 유지될 수 있는 근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유그드라실?"
그의 말에 멈칫한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거 세계수잖아?"
============================ 작품 후기 ============================헉헉 늦었네요. 하루 그냥 미룰까 하다가 간신히 채워서 올립니다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