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246화 (246/283)

< --24장. 재앙을 먹어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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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체 무슨........ 우왁? 바지가?"

완전히 가 버린 보람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애초에 처녀인 그녀가 이만한 쾌락의 파도를 순간적으로 연속해서 맞았으니 어찌 버틸 수 있겠는가?

"흐아...... 흐아아......"

보람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애액의 웅덩이 위에서 헤롱헤롱 거리고 있다. 잠시 당황하고 있던 민정이 그녀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우더니 화장실에 있던 수건들로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역시나 이렇게 되는군."

나는 보람과 악수했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보람의 몸 위에 퍼져 있던 독은 이미 내 몸에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억제기와 많은 부분 동일한 효과를 가진 독이었기에 약물면역이나 만독불침 같은 능력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잠깐. 지훈아? 그 독......."

"아아. 내가 방금 쓴 능력은 해독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나 병. 그리고 독 등을 내 몸에 옮겨오는 종류거든. 정식으로 사용한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아니, 대체 왜? 그렇게 하면 오히려 네가........."

창백해지는 민정의 표정을 보고 웃는다. 설마 내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걱정할 필요 없어. 설마 대책 없이 일을 벌였을까."

오른손을 보자 독이 비교적 빠르게 퍼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애초에 지훈 상태에서의 생명력은 고작 15밖에 되지 않는 상황. 근력이나 체력은 제법 높지만, 온갖 사고의 후유증으로 내구가 형편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독에 저항하는 능력은 약했다. 만약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로안 필스타인."

지직!

구식 브라운관 TV의 화면에 노이즈가 끼듯 시야 전체가 일렁였다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바꾼다. 키가 더 커지고 머리가 반짝이는 금발로 변하며 오밀조밀 근육이 들어찬 완벽한 육신으로 화하는 것이다.

일단 현현을 마치자 내 몸에 퍼지고 있던 독이 엄청난 속도로 회복된다. 과거 고작 125포인트의 생명력과 재생력으로도 독을 해독했었으니 200스텟을 완성한 지금은 가렵지도 않은 수준인 것이다.

"........ 교황님?"

그때 보람을 눕혀 놓은 민정이 내 모습을 보고 민정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캐릭터. 크리스티나와 내 캐릭터인 로안은 이런저런 일로 종종 보는 관계였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내 정체를 말해 준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통합 교황이 유저일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 크리스티나. 많이 놀랐나?"

여유 있게 웃으며 쓰러져 있던 보람의 이마를 잡고 주문을 발동한다. 주문의 이름은 어웨이크닝(Awakening). 정신 못 차리고 헤롱헤롱 거리던 보람이 단박에 깨어나 눈을 뜬다.

"왁? 이게 뭐야. 마법?"

"게다가 현현이........ 안 풀리다니."

현현은 네버랜드 안에서 1억 테라의 마나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다만 그건 문자 그대로 [입문]수준이라 10여초도 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

언리미티드에서 보내온 양산 마스터들이 상당한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밀리언이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막대한 마나를 소모할 수 있는 밀리언들은 일반적인 유저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거대한 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물론 스텟 제한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마나에는 한계가 있지만--

'어라? 그러고 보니 양산 녀석들은 스텟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마나가 일정 선을 넘지 못하면 스텟이 늘어나지 않듯 스텟이 일정 선을 넘지 못하면 마나량 역시 늘지 않는다. 즉 1억 테라가 넘는 마나를 얻으려면 적어도 12개의 스텟 중 하나는 99포인트가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스텟 포인트를 1씩 얻을 수 있으니 이론상 100레벨을 찍으면 누구든 99스텟을 만들 수 있겠지만........ 경험치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나야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경험치 공급원(?)을 무수히 가지고 있어 상관없지만 보통의 유저들은 상황이 다르다.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를 얻는 건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이나 네버랜드나 다를 게 없지만 현실의 게임은 마우스 클릭 몇 번 하는 것만으로 경험치를 얻는다면 네버랜드의 몬스터들을 잡는 건 정말 극한의 노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것이다.

일반인을 살해하면 1의 경험치를 얻고 극도로 훈련된 인간 전사를 쓰러트리면 10의 경험치를 얻는다. 일반적인 오크를 잡으면 5의 경험치를 주고 오크 전사는 20의 경험치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100레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는 총 1천만 EXP이다.

'에레스티아를 제압했을 때 얻었던 경험치가 350만 EXP이었던가.'

다시 말해 내 입장에서 1천만의 경험치는 에레스티아를 세 번 기절시키면 얻는 양이라는 뜻이지만 보통의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일반인을 살해해서 얻는 경험치가 1테라이니 일반적인 사람만 쓰러트려 경험치를 얻으려 한다면 무려 1천만 명.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5분의 1이나 되는 인구를 몰살시켜야 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물론 특별히 강한 인간이나 인간보다 강한 몬스터를 잡으면 숫자가 훨씬 줄게 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숫자인 것이다.

"저기 오빠 정체가 뭐야? 운영자야? 캐릭터도 되게 잘 생겼네."

"캐릭터 잘 생긴 거랑 운영자는 상관없지. 이미 너랑 똑같은 유저라고 말 했었잖아?"

보람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자 이번에는 멍하니 있던 민정이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 교황님 정도 되는 강자가 유저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설마 처음부터 제가 유저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건가요?"

"처음 안 건 나한테 검술로 패했을 때부터."

"아, [간보기] 말씀이시군요."

네버랜드의 대련 시스템은 NPC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스킬 경험치를 주지만 유저와 싸웠을 때는 스킬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부로 져 줄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시스템의 틈을 이용해 상대가 유저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행위를 흔히 [간을 본다]고 표현한다.

"뭐야 언니? 왜 존댓말을 쓰는 거야? 아는 사이?"

"아, 이거 로안님의 모습으로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예전에 말했었지? 그 통합교황."

민정의 말에 보람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명을 지른다.

"으에엑?! 그 통합교이라면........"

예전에는 내 이름조차 몰랐던 보람이 이번에는 제법 이런 저런 정보를 주워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통합교황으로서 전 대륙에 위명을 떨치고 막대한 전투력은 물론이고 셀 수 없이 많은 권능으로 신들에게조차 인정받았으니 머나먼 동대륙에서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하렘 운영한다는 변태 교황 아냐!?"

"........."

멈칫한다. 으어어억. 물론 현실과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런 점 때문에 예전. 그러니까 오직 아프로디테의 교황직 만을 맡았을 시절에는 로안의 정체를 적극 숨기려고 했었지.

딱!

그런데 민정이 보람의 머리에 딱밤을 먹인다.

"이, 이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안님은 위대한 검사이자 대마법사에 정령왕 소환자이기도 하다고! 여자들이 많이 모여든 건 그 매력과 능력에 반해서지 변태라서가 아냐!"

당연하지만 민정의 아바타. 크리스티나는 통합 교단에서도 상당히 두각을 드러낸 존재였기에. 더불어 아무래도 내가 특별히 신경 쓸 수밖에 없던 만큼 상당히 많은 관계를 가져온 상태다. 덕분에 지금 그녀의 마나는.

'5억이 넘지. 스텟도 상당하고......... 생각해 보니 보람이 민정의 상대가 안 되잖아?'

기본적으로 보람과 민정은 양산 마스터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천재들이다. 밀리언이 아니면서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어마어마한 재능과 집념의 소유자들이니까.

그리고 그런 재능을 가진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재능과 능력이 비슷한 편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억력과 분석력을 가진 민정과 괴물 같은 배틀 센스를 가졌다는 보람은 서로 다른 방면에서 극한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아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때려? 언니 설마?"

"서, 설마라니. 뭐가? 하하하하."

어색해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다 알겠다는 듯 보람의 눈이 여우 눈으로 변한다.

"오호라 언니. 요새 안색이 너무 좋다 했더니........."

"저기 떠드는 건 좋은데 안 축축해?"

"축축? 그게 무슨 말........ 우엣!?"

잠시 의아해 하던 보람이 자신의 바지를 보고 기겁한다. 축축한 바지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더니, 심지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까지 한다.

"뭐야 이거 오줌은 아닌데. 설마 이거........ '그거'야?"

당혹스러워 하는 보람의 물음에 민정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한 거 아냐. 그, 로안님은 성행위 초월자이기도 하니까. 네 독을 해독시킨 게 그쪽 계열 능력이라면........"

"와! 뭐 이런.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이상했던 기분이. 아, 안돼. 이건 치욕이야. 손만 잡고 가버린다는 게 말이나 돼!?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난 그쪽도 천재일 거라고! 절륜해서 어느 남자건 다 보내 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만 잡고 가버렸어?!"

뭔가 다른 핀트에서 분해 하는 모습에 헛웃음을 짓는다. 아니 저건 처녀들 보다는 일반적으로 총각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환상인데 말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막연히 자신이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환상. 나도 사실 가지고 있었는데 첫 경험을 레나에게 발리며(?)시작하는 바람에 산산이 깨지게 되었다.

"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정보나 교환하자. 보니까 너희는 상황을 크게 모르고 쫒기는 모양인데."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때였다.

"어라? 벌써 왔군."

내 감각에 멀리서 접근하는 존재들이 잡힌다. 당연하지만 그건 보람과 민정을 쫓는 특수요원들. 심지어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밀리언도 하나 끼어 있었다.

"왜 그러시죠? 뭔가...... 이런."

"........ 쳇. 그렇게 철저히 조심했는데도 들켰단 말이야?"

내가 건물 밖을 포위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민정과 보람 역시 그것을 느낀 듯 혀를 찬다.

"으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썼는데 벌써 추격당하다니. 보람아. 그거 젖은 채로 나가도 괜찮겠어?"

"뭐 이 정도는 괜찮아. 좀 축축하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수건으로 좀 닦았더니 그나마 낫네."

그렇게 말하며 옷을 고쳐 입더니 창문을 연다. 2층 높이였지만 능력자인 그녀들은 문제없이 뛰어내릴 수 있으니 신속하게 빠져나가려는 것. 그러나 나는 손을 들어 그녀들을 제지했다.

"잠깐.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뭐 하다니. 당연히 본가(本家)로 가야지. 오빠한테 말했나 안 했나 기억 안 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신영그룹의 회장이야.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언리미티드의 정체가 뭐라도 우습게보지는 못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피한다는 거야?"

기막혀 하며 웃는다.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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