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장. 재앙을 먹어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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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의 가장 궁극적인 [기능]은 이능자의 생성으로 일반적인 인간을 강화시켜 능력자로 만드는 것.
네버랜드는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동양인이건 서양인 가리지 않고,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이능을 선사하는데, 그 기준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능력이다. 천신과 마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두 밀리언으로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능력을 부여하는 게 편할 텐데도 굳이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은, 스킬 시스템이 단순히 그들의 취향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다.
"어쩌면 지구 말고 다른 별이나 차원에는 오러스킬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을지 몰라."
나는 느닷없는 마가리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예전에 언리미티드의 기밀자료를 강탈한 적이 있거든.
그 내용에 따르면 네버랜드를 만든 두 밀리언의 능력은 각각 정보취득과 구현이었어."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는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나 역시 머리가 나쁘지 않아 그녀의 말이 뜻하는 바를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즉, 무공이나 마법을 성립시키기 위한 설정을....... 녀석들이 만든 게 아니라 어디에선가 가져왔다?"
"바로 그거지. 애초에 아무리 네버랜드가 아티펙트급 유품이라 해도 이 성능은 상식 이상이야. 그렇게나 거대하고 광활한 가상의 세계는 만들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접속할 수 있게 한 것만 해도 대단한데 무작위로 능력자를 찍어낼 수 있다니....... 심지어 너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까지 현실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건 비상식 적인 일이지."
그건 나 역시 늘 생각하던 일이다. 아티펙트 유품이 세계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 중에서 네버랜드는 특출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높은 등급의 밀리언이 둘이나 들어갔다 하더라도 이건 상식 이상인 것이다.
"즉. 그들이 게임에서 가르치는 이능이 실제적인 공부(工夫)라는 거군. 하긴 그냥 게임 플레이용이라기에는 그 깊이가 너무 깊기는 했지만."
멈춰 있는 두 밀리언을 양 어깨에 메고 정지된 시간 속을 걷는다. 그리 서두르지 않았지만 천국의 주사위에 도착하는 건 금방. 나는 수십 그루의 나무를 부수고 땅에 박혀 있는 천국의 주사위에 접근하며 말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던져줄 테니 날아가는 궤적이 위성에 찍히지 않게 손 본 후 숨겨놔. 그 다음에 복귀하고."
"넌?"
그녀의 반문에 양 어깨에 짐처럼 얹어진 두 여인을 흔들었다.
"이 녀석들 심문 하고 복귀할게."
"뭐라고? 하여간........"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 챈 마가리타가 못 말린다는 듯 눈을 흘겼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질투의 기색을 보이지는 않는다. 마음대로 하라는 표정이다.
'상당히 쿨하군.'
물론 감정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유분방한 삶에서 획득한 가치관에 어긋나는 감정을 스스로 추스른다면 호루스의 눈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 내심을 읽어낼 수가 없으니까.
키잉!
그때 시간 정지가 풀린다. 이미 마가리타가 주변에 은폐결계를 설치하여 우리들의 모습을 가린 상태였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파앙-!!!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도록 강하게 천국의 주사위를 던진 직후 다시 시간을 정지한다. 마가리타는 주사위가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몇 발자국 걸더니 몸을 돌려 손을 흔들었다.
"그럼 즐겜!"
"즐겜은 무슨."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지한 시간 속에 들어올 수 없는 두 여인은 완전히 멈춰 있는 상태다. 다만 그렇다고 딱딱하게 굳거나 한 건 아니어서 시간정지를 건 우리들이 건드리면 이리저리 쑥쑥 움직인다.
"어디가 좋을까....... 그래 저기가 좋겠군."
나는 지나오면서 눈여겨보았던 호텔들 중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녀석을 골라 그 안으로 진입했다. 고급호텔인 만큼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어차피 정지된 시간 속에서는 소용없는 일. 나는 적당한 고급 객실을 찾아 두 여인을 침대에 던진 후 문에 감시 주문과 정신제압 주문을 걸어 두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사용하는 심문(.......)은 타인이 끼어들면 곤란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위치 추적기는 제거했고. 미리 챙겨온 억제기도 채워 놓았고. 대충 준비는 끝났군."
키잉!
그리고 그때 즈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미리 이야기 해 놓은 시간이 지나자 마가리타가 시간정지를 풀어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정지가 풀리자 기겁하며 몸을 튕겨낸 두 여인이 후다닥 벽에 붙었다. 마가리타의 시간정지에 걸리면 느끼는. 그 특유의 [현실이 뒤틀리는]감각을 느꼈을 것이니 혼란에 빠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네놈! 내 동료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이고 나한테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여긴 어디야? 게다가 마법도 발동이 안....... 제길! 대체 언제 억제기를."
일단 억제기를 장착한 이상 마법도 이능도 쓸 수 없던 만큼 두 여인은 모두 발만 동동 굴릴 뿐 그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한다. 애초에 나처럼 막돼먹은(?)스텟을 가지지 못한 이상 억제기를 차게 되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직!
파짓!
마치 구식 브라운관 TV의 화면에 노이즈가 끼듯 시야 전체가 일렁이며 하얀색 균열이 생기더니 두 여인의 모습이 변한다. 그녀들은 일종의 유품이라고 할 수 있는 팔찌에서 마나를 공급받고 있었는데 그걸 빼앗아 마가리타가 가져가 버렸기에 현현이 풀리고 만 것이다.
"오 다행이다. 뜻밖에도 캐릭터보다 본판이 나은데?"
"닥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생각에 잠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캐릭터가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겠군. 내가 특이한 경우지.'
처음에 주사위가 잘 굴러서 높은 매력 수치가 나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유저들이 매력 스텟은 그저그런 수준이다. 애초에 [매력기반]의 스킬을 연마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근력이나 체력 같은 스텟을 성장 시키려면 뛰고 달리고 싸우는 게 기본이다. 지능 지혜 마법적성 같은 스텟들을 성장 시키려면 공부하고 책 읽고 마법을 연마하는 게 기본이겠지. 이 스텟들은 모두 [전투]에 관련되어 힘없으면 살 수 없는 네버랜드에서 유저들이 반드시 파고드는 스텟인 것이다.
그러나 매력 스텟은. 그리고 매력기반 스킬은 반드시 필요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매력기반의 스킬이라면 흔히 왕족이나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스킬이나 장군들이 가지는 [지휘]스킬. 상인들이 가지는 [거래]스킬과 여성들이 가지는 [유혹]스킬 등이 있다. 성행위는 특수 스킬로 유혹계열의 궁극이라 할 수 있겠지.
전투계열 스텟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싸우고 학습하고 투쟁하고 연마해야 한다면, 매력 스텟은 사람을 상대하고 그들의 호감을 사거나 사랑을 받을수록 성장한다. 귀족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군인. 혹은 창기들이나 수련하는 스텟인 것이다.
그러나 네버랜드라는 게임의 시스템은 너무나도 가혹해 태평한 시대에 살고 있던 현대인들로서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하는 판에 기껏 레벨을 올려 얻은 스킬 포인트를 매력에 투자할 정박아가 어디 있겠는가? 괜히 매력수치를 높여 봐야 귀족 눈에 띄어 강간이나 당할 뿐인데.
비연은 현현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포니테일로 올려 묶은 머리칼을 가진 동양인이었다. 외형이나 골격을 보아 일본인인 모양. 더해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던 여성의 연령 역시 20대 중반까지 내려갔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와 갈색이 섞인 흑발에 더해 탄탄해 보이는 골격을 보니 아마 브라질리언(Brazilian)인 모양이다.
'현실의 몸보다 캐릭터의 나이가 많다....... 올드 플레이어로군.'
생명력을 비롯해 몇 가지 스텟이 심하게 낮지 않은 이상 네버랜드의 빙의 시스템은 대부분의 초심자를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빙의 시킨다. 즉 20대를 넘어 30대 초반이라는 캐릭터의 나이는 그녀가 네버랜드를 제법 오래 플레이 했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현실에서야 1년이지만 게임에서는 10년이니 오래 플레이하면 할수록 캐릭터 나이가 많아진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상대는 아니었기에 태연히 접근한다. 순간 그들 중 비연이 기습적으로 창문을 향해 뛰었지만, 억제기를 장착한 이상 그녀는 쾌속의 전사가 아니라 그냥 소녀일 뿐이었다.
따악!
"꺅!?"
가볍게 이마에 군밤을 때리자 귀여운 비명과 함께 주저앉는다. 군밤이라고는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인 내 주먹질이 그냥 주먹질이겠는가? 그녀는 그 한방의 공격에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함께 할까 순서대로 할까?"
"네, 네 녀석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런 일을 하면 내 동료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제법 박력 있게 소리치지만 무게가 없는 상황. 나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대체 왜 그런 말투를 쓰는 거야? 역할극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굳어 버렸어?"
그리 보기 드문 경우는 아니다. 네버랜드의 시간 비율은 현실보다 무려 12배나 빠르니 플레이를 많이 하다 보면 현실과 네버랜드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튀어나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그게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그 모든 행동이 의식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 그리고 그 느낌에 나는 깨달았다.
"너, 그게 조건이구나?"
"웃?"
내말에 일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확신한다. 즉 그녀는 말투에 관한 조건. 그러니까 [고풍스러운 말투를 사용한다.]등의 조건으로 가속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말해줄 것 같아?"
또 한명의 밀리언으로서 마법사로 마스터에 이른 소녀가 으르렁거리며 거부한다.
"뭐 대답하거나 말거나."
키잉!!
호루스의 눈이 발동한다. 본디 마안이라는 것은 정신력을 단련한 이들에게 사용하기 어렵고 상대방이 멀쩡히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는 성공률이 급격하게 떨어지지만 호루스의 눈을 초월자까지 단련한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호오. 그렇군........ 제법이야."
두 소녀에게서 이런저런 정보를 읽어낸다. 물론 그녀들은 언리미티드의 수뇌부가 아니었기에 알고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지만,그렇다 하더라도 대략적인 정보와 아지트 위치 정보는 문제없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는 동대륙. 하나는 서대륙인가....... 얼씨구? 내가 로안이라는 정보는 이미 확보했군. 심지어 뭔가 제제를 가할 계획도 있는 모양이네."
그러나 그런 정보를 알았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운 건 지훈의 정체를 들키는 것이지 로안의 정체를 들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내가 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네버랜드에는 정말 0.00001%의 가능성조차도 없다. 네버랜드 속의 난 이미 신적인.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그냥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이어서.......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잊어라. 그리고 너희 둘은 나에게 사랑에 빠져 오로지 날 위해 움직이는 거야."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녀들을 잡아온 진짜 목적이다. 물론 마스터에 오를 정도의 정신력과 밀리언이라는 특성을 가진 그녀는 정신간섭에 시시각각 저항해 언젠가 깨트릴 위험이 있지만, 호루스의 눈을 사용한 후 침대 위에서 지극한 쾌락을 선사한다면, 내가 선사한 쾌감과 사랑의 암시가 하나가 되어 그녀를 완전히 눌러 버리는 것.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그 모든 예상을 벗어난 종류였다.
"사악한 놈!
살인자! 내가 왜 네놈 따위에게 사랑에 빠진단 말이냐!!"
".........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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