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장. 예상 외로 고난이 없다. -- >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사내를 폐공장 한 편에 던져 놓는다. 딱히 묶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 끌고 오면서 여기저기 가볍게 건드려 주었기에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큭? 커억........ 뭐, 뭐야. 너희 누구야? 여긴 어디지?"
혼란에 빠져 눈동자가 팽팽 돌고 있다. 평범하게 장관실에서 이런저런 보고서들을 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현실이 뒤틀리고 본 적도 없는 장소에 쓰러져 있으니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왜 이렇게 쉬워.
이거 가짜 아냐? 예전에는 접근도 못했었는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가리타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정지라도 마나 부족으로 마치 단거리 공간이동을 하듯 움직여야 했던 과거와 국가 인재 개발부보다 훨씬 먼 곳에서부터 걸어 들어가 그를 끌고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시간을 정지할 수 있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리야 긴 시간을 들여서 침투하는 셈이지만 상대에게 그 시간은 0초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간 정지가 사기긴 사기야. 이건 뭐 대비가 불가능하잖아?"
"어차피 불사신에 가까워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너 같은 녀석이 아니라면 말이지."
"더불어 몸에 장비하는 형태의 유품을 지닌 녀석에게도 안 통하겠지. 국가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한 유품을 그따위로 사용하는 놈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중년 사내의 모습을 살핀다. 처음에는 혼란에 빠져있던 그였지만 과연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것인지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표정을 정리하고 우리를.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중 마가리타를 쏘아본다.
"그 얼굴 기억나는군. 미국을 비롯해 온갖 국가에 특급 범죄자로 수배되어 있었지."
"미국에도 갔었어?"
고개를 돌린 내 질문에 마가리타가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 그럼 우크라이나에서 뜬금없이 바로 한국에 왔을까봐?"
"하긴."
그녀가 쫒기기 시작한 것은 자국에서부터였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네버랜드가 시작한지 고작 1년 반도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할 때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온갖 국가에 수배가 되었다는 건 그녀가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국인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밀리언은 몇 명이지?"
"흥. 역시 미미르를 탈취한 건 너희들이었군. 미미르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보물이야! 그런 걸 개인이 멋대로........"
"아, 역시 시간이 아깝다."
"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녀석이 의문을 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을 발한다.
사실 현현이 가능해진 이후부터 쭉 해오던 생각이 있다. 과연 네버랜드에 존재하는 스킬들 중 현실에 등장하면 가장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은 무엇일까?
육체를 강화하는 오러스킬?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마법?
답은 정신제어다.
키잉!
마력이 눈에 집중되고 호루스의 눈이 발동하자 으르렁거리던 국인부 장관의 단숨에 흐려지고 그의 기억이 내게 전달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정신제어가 가지는 힘은 너무나 막대하다. 애초에 순수 마법사인 마가리타가 왜 테이밍 계열 스킬을 익혔겠는가? [정치]스킬이나 [지휘]스킬과 마찬가지로 [매력]기반인 정신제어 스킬은 마법과는 전혀 별계의 테크트리를 타야하기 때문에 마가리타의 천재성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시간정지 마저도 의미가 없는데도 구태여 수련해 숙련자까지 올려야 했을 정도로 현실에서 정신제어가 가지는 힘은 크다.
"와 그거 진짜 부럽다. 내 테이밍으로 기억 읽는 건 꿈도 못 꾸는데. 기껏해야 물어서 답하게 하는 정도가 한계니 힘들어서 원."
"경지가 낮아서 그런 거 아냐? 아니 그보다 몇 랭크야?"
"A랭크."
마가리타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충격의 말을 토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충격적이었다.
"세, 세상에 A랭크라는 것도 있어? 난 EX아니면 레전드라고 생각했는데!"
"........"
얄밉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마가리타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호루스의 눈을 해제한다. 국인부 장관이 털썩. 하고 쓰러진다. 가볍게 기억을 조작했으니 그가 우리 앞길에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뭐 어쨌든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가져다 놓자."
꽤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우리가 녀석을 잡아온 지 고작 1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다 장관실을 감시하는 시스템 역시 없었으니 조용히 데려다 놓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라.
"간다."
따악!
마가리타가 눈을 가리는 순간 손가락을 튕기자 시간과 시간이 충돌한다. 먼저 발동한 그녀의 시간에 내 시간이 녹아들고, 이내 우리는 정지된 시간에 들어섰다.
"가져다 놓고 또 위치를 옮기자. 이 공장으로 또 잔뜩 몰려올 테니까."
"마나는 괜찮아?"
"슬슬......... 조심해야 하긴 할 것 같아. 국인부에 들어가느라고 능력도 너무 많이 써서."
온갖 버프를 중첩해 받고 있는 내 집마력은 너무나 높아 시간을 정지한 상태를 유지해도 조금씩 차오르지만 마력 또한 근력과 비슷한 성향이 있어서 피로가 쌓이면 쌓일수록 회복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물론 시간 정지를 유지하는 정도의 피로는 나에게 있어 보통 사람이 걸어 다니는 정도의 힘 밖에 들지 않지만 그냥 걸어 다니는 것도 10시간이 넘어가면 진이 빠지는 법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알고 있는 유품의 정보는 어때?"
"연구소장하고 크게 다를 바 없어. 유품의 개수는 4개. 밀리언의 수는 11명. 다만 그중 어느 것도 국인부에 없다는 건 의외네."
"공식적으로 인정한 밀리언의 경우는 국인부에서도 제대로 보호하는 편이니까. 게다가 유품 두 개 역시 공개적으로 만들어 져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신경 써 오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유품이 있다. 하긴 제대로 된 유품이 없었다면 어찌 국인부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공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유품은 정확히 2개다. 그중 하나는 허공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섬. [하늘누리]고 또 하나는 헤븐즈 게이트의 다운그레이드 판이라 할 수 있는 [올레길]이다.
다만 하늘누리도 올레길도 그리 강력하거나 높은 등급의 유품은 아니다. 하늘누리의 성능은 오직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뿐이며 올레길은 사람 사이즈의 대상을 100여 킬로미터 이동시켜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
'물론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으면 전략병기도 되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유품이 그러하듯 하늘누리도 올레길도 자신의 철학과 사명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하늘누리는 내키는 대로 우리나라 영토와 영해 위를 날아다니고 올레길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아무래도 밀리언 녀석이 노래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을 지속적으로 이어주는 [골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유품 등급으로 치면 각각 AA급. 그리고 S급에 불과하지만 이것들만 해도 각각 관광명소와 기적에 가까운 교통수단으로 그 이름을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 잠깐 유품들에 대해서 조금. 그러고 보니 시간정지를 걸면 유품들은 어떻게 돼?"
"당연히 정지하지. 다만........ 그 정지된 상태에서 건들 수가 없어. 덕분에 훔쳐올 수도 없고."
"건드려도 안 움직이는 쪽이야?"
"건드는 순간 시간 정지가 풀려.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잡힐 뻔했던 적도 있지."
그것만 아니면 유품을 죄다 훔쳐올 텐데! 라며 아쉬워하는 마가리타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물론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했다. 비록 가상의 세계였더라도....... 그녀들은 모두 개성 넘치고 매력이 가득하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들.
그러나 타임 슬립퍼인 나는 그 누구와도 진심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간절히 나를 사랑하는 여인이라 하더라도 일단 과거로 돌아가 버리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은 내가 슬쩍 뒤로 한 발짝 걷는 것만으로 간단히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 인가.'
그렇다. 결국 마가리타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오직 그녀만이, 나와 함께 과거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마치 페르소나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플레그를 세웠는데 난데없이 아이기스가 튀어나와 엔딩을 차지하듯 강제적인 히로인 포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