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장. 새로운 컨셉은 나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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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들이 보호막을 풀고 나온 건 그로부터 3시간 후. 그것도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알리시아와 세이린이 접촉한 이후였다.
'뭐. 그러고 보니 저 결계도 단순히 몸만 보호하는 건 아니었군. 드레인 마법도 막을 수 있는 종류였던 모양이야.'
물론 그렇다 해도 완벽하게 막는 게 아니기 때문에 3시간이면 거의 빈사상태였다지만 사상자가 나올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드래곤들이 바보가 아닌데 그리 쉽게 당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건 무슨 상황이지?"
정신을 차린 잔월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나 꿀릴 거 없는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내 새 부하지. 인사해 에리카."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 에리카 블랙워치라고 합니다."
치마 양 끝을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예를 표하는 에리카의 복장은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었던 예전과 달리 나폴나폴한 재질에 프릴이 달려 있는. 검은색과 백색이 섞인...... 메이드복이다.
"이게 뭐야? 왜 서큐버스가 저러고 있는 거지?"
"방금 뭐 들었어? 내 부하가 될 거라고."
"정말....... 멍청하군. 고위마족인 서큐버스가 인간의 부하가 될 리 있다고 생각하나?"
차갑게 말하며 그레이트 소드를 들어올린다. 당장이라도 에리카를 쳐 죽이고 싶은 표정.
그러나 에리카는 당황하지 않고 웃었다.
"저희 서큐버스 일족은 한번 주인을 모시면 영원히 배신하지 않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설마 그걸 모르지는 않으시겠죠?"
"헛소리 하지 마. 서큐버스가 주인으로 모시는 존재는 기본이 마왕급이라는 걸 모를 줄 알아? 아 그래. 그렇게 충성을 맹세하시면 그놈한테 각인이라도 해달라고 하지 그래? 그걸 하면 영원한 노예가 된다던데."
나는 기막히다는 듯 그녀를 비웃는 잔월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상의를 걷어 올렸다.
"혹시 각인이라면 이거 말하는 건가?"
"......."
"어? 왜?"
"인간한테 복종의 각인을 박았어?"
내 왼쪽 가슴에는 악마의 오른쪽 날개를 상징화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문장이 에리카의 손등에 새겨있다.'종속의 인장이면 된다고 했는데 왜 굳이 박나 했는데....... 확실히 남들이 알만한 게
있으면 좋군. 종속의 인장이 드러나서 좋을 것도 없으니.'복종의 각인은 마족들이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박는 물건이라고 한다. 다만 이 문장을 만들어내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충성을 받드는 마족은 물론 바치는 마족까지 고위급 마족이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 하위 마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복종의 각인은 강제나 억지로 박을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강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단 복종의 각인을 박게 되면 영원히 그 대상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그 대상이 자신의 부하가 죽기를 원하면 바로 그 순간 사망할 정도로 악독한 물건인데 그 각인을 박은 에리카는 여유 있게 웃고 있다.
"물론 저는 기쁘게 주인님의 노예가 되었지요."
"말도 안 돼. 이 자식이 마왕이야?"
"아쉽게도 인간이시더군요. 다만 마왕급의 마력을 가진 강력한 인간이죠. 게다가 어떤 점에서는 마왕보다 강력하시고요."
에리카의 말에 잔월이 눈살을 찌푸린다.
"마왕보다 강력하다? 어떤 점이?"
"호호. 아가씨같이 순진한 사람은 모르는 어른들의 재능이랍니다."
"뭐, 뭐라고?"
에리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것인지 살기를 드러내며 분노한다. 그러나 뒤에서 듣고 있던 에레스티아의 가디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그쪽으로는 완전 마왕급이지."
"마왕이 뭐야. 마신급이지 마신급."
"마신이라고 해 봤자 로안만 할까?"
수군거리는 마스터들의 모습에 잔월이 기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인간 자식이 마왕만큼 대단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진심이야?"
아무래도 일선에서 싸우는 만큼 마왕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절실히 느껴 본
적 있는 모양이다. 드래코니안들은 오래 산다고 하니 어쩌면 만나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마찬가지로 오래 사는 라미아 일족의 알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흠. 마왕을 직접 본 나로서 말하자면........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마왕도 로안의 상대는 아니지."
"그 방면이라는 게 뭔데? 설마 정령술인가? 하지만 마왕도 암흑의 정령을 다루잖아? 게다가 감정계열 정령에 대해서라면 정령왕급도 다루니 저 녀석이 아무리 대단해 봐야......."
슬슬
'저 녀석이 날 봐준 건가?'
라고 생각까지 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타인과 계약한 최상급 정령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게 만든다는 건 정령왕 계약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니 오해하기 충분한 일.
그러나 나는 고개를 흔들어 그녀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미안하지만 나 별로 안세. 정령도 상급 밖에 못 부르는데?"
"그럼 대체 뭐야? 뭐가 마왕보다 대단한데?"
"잠자리."
내 대답에 잔월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뭐, 뭐라고?"
"잠자리 말이야. 몰라?"
"자, 잠자리? 아. 하늘을 나는 벌래 말하는 거지? 그, 소환수 중에서 잠자리가......."
멘탈이 붕괴되어 현실도피를 시작한다. 그러나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닌 듯 성큼 다가서자 깜짝 놀라 물러선다.
"헤에. 잘 모르겠어? 생각보다 순진한데. 다시 말해줄게. 굳이 복종의 각인이 아니더라도 나랑 한 여자는 날 배신할 수 없어."
"그건....... 왜지?"
자존심 때문인지 눈을 돌리지도 못하는 그녀를 향해 바짝 다가서며 그 귓가에 속삭인다.
"너무 좋으니까."
"개소리를.......!"
쩡!
그레이트 소드를 휘둘렀지만 거의 공간이동하듯 내 옆으로 이동한 에리카의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검을 붙잡아 버린다. 당연하지만 1:1로는 그녀가 에리카를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 그녀는 가디언들 전체가 덤벼도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강자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태연한 태도로 그레이트 소드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잔월의 귓가에 다시 속삭일 수 있었다.
"왜 못 믿겠어? 그럼 얼마나 즐거운지 실험해 볼까?"
"히익!?"
귀를 깨물며 속삭이자 텍스트가 떠오른다.
<침대 위의 폭군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실패하였습니다!><흥분도와 욕구가 각각 10포인트씩 상승하였습니다!>따악! 따악! 따악!
시간을 돌린다.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에게 성행위를 허락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실패하였습니다.><실패하였습니다.><실패하였습니다.><실패하였습니다.><실패하였........>그러나 뜻밖에도 무려 50번의 타임슬립을 했음에도 성공이 뜨지 않았다. 내 운 수치를 생각했을 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호. 이런 경우도 있구나.'
생각해 보면 침대 위의 폭군은 상대방의 결정에 방향성을 바꾸는 것이지 아예 심성 자체를 조절하는 게 아니다. 즉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걸.......]이라는 생각을 [해볼까?]로 바꿀 수는 있지만 [절대 안 해!]라고 생각하는 대상의 마음까지 뒤집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0.001%를 10%로 만들 수는 있지만 0%는 어찌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와 저거 봐. 완전히 농락하네. 나름 체면 차리던 잔월 녀석이 저런 소리를 내다니."
"나쁜 남자를 넘어서서 나쁜 놈이야 나쁜 놈."
"맞아. 여자가 이렇게 많으면서 더 늘리려 하다니 너무해. 심지어 보고 있는데."
"하긴 뭐 그런 걸 알면서도 좋아하는 거긴 한데......."
수군거리는 가디언들의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돌린다.
"오호 나쁜 놈....... 좋아. 너희 오늘 다 두 발로 걸어 못 갈 줄 알아."
"엑? 자, 잠깐만. 설마 여기서?"
"설마라니. 밖에서 처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살 부리긴."
"기, 기다려! 나쁜 놈이라는 말은 레나만 했어!"
"앗 카넬 너 나를 팔다...... 으앙♡! 아, 안 돼. 진짜? 진짜로 여기서....... 흐으응♡♡!"
"아으 결국 나까지....... 히이잉♡"
"으아 용서해...... 히잉♡ 제, 제길 좋아. 좋아아아--♡♡!!"
도망치려 하는 가디언들을 몽땅 잡아다가 능욕하기 시작한다. 이미 초월지경에 들어선 나에게 상대가 다수라는 건 아무런 페널티도 되지 않았고 이내 에리카까지 합세함으로써 결계 안에서는 후끈한 열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한다.
"이해 불가."
그리고 그 모습을 은발의 소녀는 표정 변화 없이 바라보았고.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대체........"
잔월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작품 후기 ============================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아니, 앙돼잖아??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아니, 앙돼잖아??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