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장. 국인부와 언리미티드-- >
푸욱!
순간 뭔가 화끈한 통증이 몸을 파고들더니 그대로 척추를 끊어버린다. 불사신에 가까운 몸이었지만 척추를 끊긴 건 치명타라서 그대로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큭?!"
경악해 주먹을 휘두른다. 한순간 주변 공기가 터져나갈 정도로 맹렬히 주먹질이었지만 상대가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촤악!
그리고 이어진 검격이 사선으로 가슴을 가르며 지나간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뭐, 뭐야?"
깜짝 놀란 보람이 돌려차기를 날렸지만 내 주먹질에조차 맞지 않을 정도인 녀석인 만큼 소용없는 공격. 그녀의 주먹을 너무나 수월하게 피해 낸 사내는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우리 앞에 섰다.
"넌....... 뭐야?"
"이 경우에는....... 납치범? 뭐 그래도 동료가 될 지도 모르니 인사부터 하죠. 아크란입니다."
새까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흑도(黑刀)의 칼등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사람 좋게 웃는 녀석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청년이다. 갈색 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가진 그는 영화배우로 보일 정도로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와이번 라이더(Wyvern Rider). 아크란........"
"더불어 첫 번째죠. 아마 여러분이 세 번째랑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이겠지요."
녀석이 말하는 모습을 보며 몸 상태를 확인한다. 괴물과도 같은 육체였음에도 끊어진 척추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검기로 베었어?'
또다시 마나를 사용하는 적의 등장에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낀다.
-방심하고 있었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대답하겠다. 생체병기나 다름없는 로안의 몸을 가진 이상....... 세상에 나를 해할 상대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마가리타를 만나고 경각심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녀만큼 특별한 경우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내 능력이 모자라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전 속성 면역을 완성하면 마법사인 마가리타는 적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하지만 기사는 달라. 지금 나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다.'
내 몸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검기라고 하는 영적인 공격은 모든 면역 체계를 초월하는 공격이기 때문에 로안의 몸이라 해도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척이 전혀 없다. 은신계열 레전드 스킬을 익힌 건가? 아니면 마나를 소모하고 있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크란이 말한다.
"마스터 둘에 마스터이자 밀리언인 존재........ 뭐 어쨌든 잠시 억류하겠습니다. 페이탈 같은 존재가 또 생기면 곤란하거든요."
그의 말에 언리미티드 역시 마가리타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불어 '그런 존재가 또 생기는'것을 우려한다는 건 단지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
'하긴 시간 정지 능력을 가준 녀석을 뭔 수로 잡겠어?'
내가 당했듯 게임을 하는 도중에 잡지 않는 이상 포획이 불가능하니 국가 단체에서도 어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시간정지야말로 진짜 무서운 능력이 아닌가?
'세상 대통령 목숨은 다 지 손아귀에 있구먼?'
시간 정지하고 들어가서 대통령 목을 따 버리고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먼 곳으로 도망가면 그야말로 완전범죄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로 군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잠깐. 저 녀석이 다른 무엇도 아닌 은신 스킬을 초월자까지 올린 것도 어쩌면.........'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능력이 나를 완전하게 하는가?
초월자까지 끌어올린 감지계열 스킬. 풍부한 마나. 레전드 급 은신스킬........ 최선의 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빈틈없이 쌓아 올린 매일매일........
'아, 아니 잠깐. 그건 좀.'
순간 망설이는 내 생각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아크란이 다가온다. 은신 스킬 때문인지 모습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허깨비를 보는 듯 아무런 기척도 없다.
"열려라."
우웅-!
허공에 차원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마나 기반의 스킬. 놀랍게도 이 녀석 역시 스킬을 사용하기에 충분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잠깐. 넌 밀리언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만한 마나를 모을 수 있었지?"
내 물음에 아크란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댁도 '그런'방법으로 마나를 올렸군요. 이거야 원 밀리언 아닌 게 서러워서........ 죄송하지만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유품이군."
단정적으로 말하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쨌든 같이 가야겠습니다. 생명력이 높은 것 같은데 사지라도 잘라드려야 하나요?"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시선은 싸늘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사지를 자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이 가능할까?'
여전히 녀석을 감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게다가 스텟도 스텟이지만 [오러 스킬]로 스스로를 가속하는 게 가능한 녀석은 속도로도 나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적 칼........ 능력억제 기능이 달려 있다. 그것도 칼날 부분에만.'
칼 전체에 능력을 억제하는 성분을 담으면 사용자까지도 능력을 잃기 때문에 사용한 꼼수다. 어쨌든 저게 있으면 어떤 [이능]의 방어든 상관없이 적의 방어를 뚫어버릴 수 있다. 물론 내 가죽이나 현대병기 같이 물리적으로 튼튼한 방어를 가진 적은 무엇이든 자르는 검기로 베어버리면 된다.
촤악!
툭. 데구르......
"크윽!!"
"지훈아!!"
어떻게든 반응해 피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사지가 잘려나간다. 속도. 공격력. 심지어 배틀 센스까지 무엇 하나 나보다 낮은 게 없는 강력한 적. 보람이 발끈해 덤벼든다.
"꺼져!"
"거절합니다."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던 보람이 바닥을 구른다. 능력 억제 기능이 담긴 흑도의 칼등 부분으로 쳤기 때문에 물리 면역도 소용이 없었다.'이길 수 없다.'
신음한다. 벌레처럼 땅에 쓰러져 신음을 토할 뿐이다.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별 수 없군."
"항복하는 겁니까?"
"항복? 큭큭!"
굳이 더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다. 녀석은 나를 기억조차 못 할 것이다.
딱!
혀를 튕긴다.
"오호. 그게 조건인가요?"
"........!?"
경악한다. 미친? 시간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후후후. 죄송하지만 팔을 베어낼 때 몸에 약도 주입해 놓았지요. 순순히 끌려가 주
시면 좋겠군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어 내 목을 움켜쥔다. 내가 영영 병신이 되던 말든 상관없다는 듯 떨어져 나간 팔다리를 챙기지도 않는 상황.
나는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그들의 실험체로서. 혹은 유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서 그들에게 쓰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멀리에서부터 비명과도 같은 영언이 울려 퍼진다.
[죽어! 몽땅 타버려!! 이 개자식들아------!!!!!!]구구구구----!!
가까이. 아니, 멀리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버린 밀리언의 강력한 의지가 현세에 기적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경악한 아크란이 내 몸을 내던지고 차원의 문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그보다 모든 건물을 박살내며 폭염이 뿜어져 나간 것이 먼저였다.
쿠아아아-----!!!
뜨겁다. 어마어마한 열기다. 사람은 물론이고 건물을 구성하는 모든 성분이 증발하듯 타버리고 있었다. 게이트로 뛰어들던 아크란도. 놀라 크게 눈을 뜨고 있던 민정과 혼절해 있던 보람까지 불타 버린다.
당연하지만 모두 즉사였다.
'하, 하하하....... 등신들. 내가 일 낼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폭염과 전신이 불타버리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단지 헛웃음 지을 뿐이다.
그렇다.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하던 바로 그 상황이다. 중국에서도 벌어졌다는 참변으로 주변 모든 존재를 공격하는 [재앙]형태의 유품이 만들어 진 것이다.
'나름 상황을 통제한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그게 그렇게 확실하게 될 리가 있나?'
모든 사람이 마약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혹 무너진다 해도 마약에 중독된 녀석의 심리 상태를 완전히 제약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 녀석이 생기면 오히려 문제인데다가 국인부의 밀리언 관리는 너무나 강압적이다. 물론 드러난 밀리언은 모든 보장을 다 받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만 비밀리에 감춰진 밀리언들은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것이다.
사실 국인부가 하던 행동들을 보면 지금 이 상태는 언제고 벌어질 사건이었다.
퍽! 퍼억!
내 몸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불타 버리자 생겨난 진공상태에 후폭풍이 시작된 모양이다.
'정말 안 죽은 게 신기하군.'
물론 나는 화염에 면역이지만 면역 능력은 결과적으로 네버랜드라는 [유품]이 무차별 다수를 대상으로 부여해준 능력이기에 똑같은 [유품]의 공격이라면 당연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여전히 125의 스텟은 작용되고 있다. 물론 작용되어 봤자 폭염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전신 피부와 근육이 거의 다 타버리고 뼈만 남아있다.
'진짜 어떻게 안 죽는 거야?'
두개골이 보호하고 있는 머리는 직접적으로 불꽃에 타버리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뇌수가 끓는] 상황에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다. 아무리 스텟이 높아도 그렇지 이게 정말 인간이란 말인가?
[끼루루루룩----!!]안구가 다 타버렸기에 시력을 잃어버렸고 고막도 타 버려 청각 역시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일종의 영언(靈言)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리는 머릿속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불사조인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밀리언이 만들어낸 유품이다. 다만 중요한 건 저게 중국의 수라나찰처럼 반경 100킬로미터의 모든 생명체를 공격한다거나 슈퍼 스카이처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그야말로 끝장이라는 것. 그리 크지도 않은 대한민국에 그런 존재가 나타났다가는 그야말로 대량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애초에 현대병기가 먹히지 않는 유품을 어떤 방법으로 막는단 말인가?
시익!
숨을 쉬어 보지만 바람소리만 난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입술을 태워버린 열기가 타고 들어와 혀는 물론 목구멍까지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퍽!
그때 엄청난 충격이 머리에 가해지는 걸 느낀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다 뭔가에 충돌한 모양인데 놀랍게도 두개골에 금이 가는 걸 느낀다.
'죽는 건가?'
슬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마치 열병에 걸린 듯 멍하고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 뇌가 망가져 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프로디테의 자비가 발동합니다!><대상의 부상이 회복됩니다!>
마치 홀린 듯 스킬을 발동한다. 신성력을 집중시켜 다른 곳은 모두 포기한 채 오직 입천장과 혀만을 복구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이제는 제법 낯익은 텍스트가 보인다. 네버랜드에 처음 접속할 때 보았던 바로 그 광경. 어느새 내 앞에는 짜증날 정도로 잘 생긴 금발의 사내. 로안 필스타인이 있었다.
"헐."
손발이 덜덜 떨리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그 순간 떨어진 징계로 머리가 빙글빙글 360도나 돌았음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정도.
나는 신음했다.
"씨발."
다시 신음한다.
"씨발!"
기어코 비명을 지른다.
"씨바알----!!"
그렇다. 기어코 나는 최초의 날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 --4권 완료. 안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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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따져 보니 어느새 4권 분량이나 썼군요. 이제 쓰게 되면 5권 분량이죠. 사실 이제 비축분도 없는데다 취업 관련 문제도 있으니 4권 분량도 다 채운 겸 잠시 쉬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열심히 하긴 했잖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전편 리플이 완전 혼란의 도가니;;;;; 숫자도 무려 230개라는 사상 초유의 포풍 리플;;;;;; 거기에 응원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쿠폰들까지 ㅠㅠ
헤, 헤헤. 사실 좀 충격과 공포의 마무리이긴 했죠? 충격이 덜 하라고 작가의 말로 계속 힌트도 드리고 그랬는데 그래도 충격이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네요;; 물론 예상하긴 했는데 단지 방향만 예상했을 뿐 그 강도를 예상 못 한듯;;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내용이었는데 선삭 언급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강렬했던 듯 반응도 찬반이 나뉘고;; 결국 이대로 쉬면 정말 욕을 바가지로 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악물고 달립니다. 취업 관련으로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쓰면서 캔슬러를 같이 쓰고 있는 이 불편한 진실 ㅠㅠ 하지만 여러분 저 아시죠? 좀 돌아갈 수는 있어도 저는 언제나 여러분이 원하는 내용으로 달립니다. 지루하진 않으실 거예요!
결국 못 쉬고 ㅠㅠ 다음편은 12시 정각에 바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