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166화 (166/283)

< --16장. 국인부와 언리미티드-- >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 냉장고만 한 크기의 기계가 [삑삑~!]하고 운다.

"응 뭐야? 저기 저 두 여자는 아니잖아?"

아니잖아? 라는 것은 당연히 밀리언이 아니라는 의미.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군인이 말한다.

"전에 말했던 마스터라고 합니다. 소령님."

"아 그 유품에서 힘을 받았다던....... 그런가. 좋은 실험대상이군. 일단 촬영부터 시작해."

"아, 그리고 저기 저 녀석은 밀리언이면서 마스터라고 하더군요."

"밀리언이면서 마스터라........ 등급은?"

"EX급입니다."

"호오?"

소령이라고 불린 가운의 사내가 눈을 빛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EX급 밀리언은 전 세계를 다 뒤집어엎어도 다섯이 안 나올 정도로 희귀한 존재다.

"지하자원 하나 없는 대한 대한민국이라 그런지 인적자원 하나는 대단하군. 이 작은 나라에 벌써 두 번째 EX급 밀리언이라니."

그렇게 말하는 동안 민정과 보람이 묘한 기계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는데 결과가 대충 나온 모양이다.

"뭐야? 이건 그냥 인간인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흐음 억제기를 차서 그런가?"

몇 명의 과학자가 수군대는 사이 소령이라 불린 사내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각성은 했나?"

"아닙니다. 조건도 모르지요."

"쯧. 쉬운 조건이면 좋겠는데....... 일단 데려와. 특성부터 살펴야겠군."

"알겠습니다."

소령의 말에 소총을 든 병사들 중 몇이 내 몸을 이끈다. 저항하지 않으면서 슬쩍 뒤를 돌아본다. 당장 보람과 민정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야 밖으로 벗어나는 건 불안한 일이다.

"잠깐만요."

"응?"

난데없는 내 말에 소령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충분히 겁먹을 상황임에도 내가 너무 태연하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일행과 같이 다녀도 되겠습니까? 눈에서 떼 놓고 다니면 불안한데."

"뭐? 하하하! 맹랑한 녀석이구나. 지금 네가 요구를 할 분위기라고 생각하나?"

"네."

"......."

태연한 내 대답에 소령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그는 물론 병사들. 심지어 불안한 표정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던 밀리언들까지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저한테 함부로 할 수 없으신 모양이군요. 오히려 막 대하는 인상을 줘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이러다 상황이 잘 풀리면 갑자기 잘 해줘서 마음을 풀기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하나 말씀 드리죠. 전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절대 되돌리지 않아요."

녀석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고 있었지만 밀리언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아는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아무리 밀리언을 찾아내는 수단이 있다 해도 국가의 운명이 바뀔 정도로 큰 가치를 지닌 EX급 밀리언을 이렇게 다른 녀석들하고 한꺼번에 다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모든 게 의심하게 되었다. 강압적인.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은 일절 주지 않는 태도. 겁에 질렸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고분고분한 밀리언들. 그리고 어딘가 어색한 군인들의 태도........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은 나에게 [넌 많고 많은 실험체 중 하나일 뿐]이니 [살려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라는 인식을 주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 이대로 기다리면, 어쩌면 저 배우 중 하나가 죽는 시늉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나를 납치한 녀석들에게 오히려 목을 매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네놈....... 뭘 알고 있지?"

"글쎄요. 당신들이 단체로 나를 속이려고 하고 있다는 거? 나랑 비슷한 입장인 척 하려는 저 녀석들이 배우라는 거?"

"......."

소령의 얼굴이 굳는다. 낭패라는 표정이다. 물론 대놓고 표정에 드러난 건 아니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함께 가겠습니다. 상관없죠?"

"....... 잠깐 기다려라."

마침내 항복 신호를 보낸다. 몸을 돌려 사라지는 것은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통괄하는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생각보다 잘 풀릴 수도 있다는 말이지."

위급한 상황임에도 시종일관 태연한 스스로에게 놀라울 지경이다. 비장의 수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색공이 초월지경에 오른 그 순간부터 세상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연 약 10분 후 소령 녀석이 똥 씹은 표정으로 내려왔다.

"함께 내려간다."

"그러죠."

".......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일을 꾸민 건 단지 너를 충직한 부하로 만들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선을 넘는다면 용서는 없다."

"그러든지."

"........."

순순한(?) 태도로 그를 따라간다. 보람과 민정 역시 쮸뻣쮸뻣 하며 그 뒤를 따랐다.

삑삑삑! 기잉! 철컹!

지하로 내려가다 두터운 강철 문을 만나자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물론 알아서 열렸다고 아무나 침입할 수 있는 문은 아니다. 문의 두께만 해도 상당한 물건이 자동문일 리가 없지 않은가?

약간의 경사를 가진 복도를 걷는 동안 같은 방식의 강철문을 두 개나 더 지나쳤다. 침

입하기도. 탈출하기도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다.

"뭐야 여기....... 뭐 이런 데가 있지?"

"괜찮은 거야 오빠?"

긴장한 표정으로 내 등 뒤로 달라붙는 민정과 보람을 향해 작게 속삭인다.

"너무 겁먹지 마. 죽이려고 부른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불안해하는 그녀들을 달래며 도착한 곳은 꽤나 넓은 크기에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소령 녀석은 자주 온 곳인지 망설이지 않고 가장 깊숙한 방으로 이동했다.

위이잉-!

들어선 곳에는 지름이 4미터에 가까운 커다란 유리관이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연구실의 분위기였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저, 저게 뭐야?"

"연...... 못?"

물론 그냥 연못을 보고 우리가 놀랄 리는 없다. 우리가 놀란 건 그 연못 위로 마치 홀로그램처럼 온갖 영상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그리고 그 모든 영상들 중 가장 위에 위치한 영상을 보고 숨을 죽인다. 거기에는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에 중국까지 상당부분 표시하고 있는 거대한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표시된 몇 개의 빛 덩어리들.......

"....... 이거군. 이걸로 밀리언들의 위치를 찾았어."

"지식의 샘. 미미르라고 하지. 하지만 보아하니 네 녀석 아는 게 정말 많군. 사령관님의 판단이 옳았어."

"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의아해 하는데 소령 녀석이 소리친다.

"제 3급 권한자로서 명한다. 미미르! 여기 있는 인간 김지훈에 대한 정보를 표시하라!"

우웅-!

소령의 외침에 유리관 안쪽에 위치해 있던 샘에서 약간의 물방울이 허공으로 떠올라 내 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윙-!

착각일까? 내 몸 주위를 돌던 물방울들이 점점 사라진다고 느낀다. 그냥 흩어지는 걸 수도 있었지만 내 감각은 그게 소멸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 그리고 그때 내 몸 위로 새로운 영상이 떠오른다.

[김지훈 / 로안 필스타인]레전드 급 밀리언. 타임 캔슬러조건 : 동작(난이도 E).

목적 : 국인부와 언리미티드의 동향 파악.

위치 : 감지 완료. 표시 중.

소유마나 : 10테라.

나이...... 재산...... 성향...... 놀랍게도 거기에는 내가 비밀로 지켜오던 온갖 정보가 다 들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건에 대한 실마리까지 있을 줄이야? 반면 소령 녀석은 다른 걸로 놀라고 있다.

"....... 그럴 리가? 레전드 급? 분명히 EX급이었는데?"

"레전드급이라......."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탐욕이 어리는 것이 보인다. EX급만 해도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의 유품........ 그러니까 [아티펙트]라고 불리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윗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등급에서는 과연 어떤 유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탐욕이 바라는 것은 나의 죽음이다. 밀리언인 나를 [인간]이

아닌 [유품 제조기]로 본다면 그건 곧 내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볼 만큼 봤군."

"응?"

난데없는 내 말에 의아해 하는 소령. 그러나 더 이상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히 선을 넘은 상태.

모조리 부숴버려야 한다.

"로안 필스타인."

============================ 작품 후기 ============================ 억제기가 막을 수 있는 것은 능력 뿐입니다. 즉 자체적인 스텟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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