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장. 국인부와 언리미티드-- >
철컥.
"지훈아!"
"오빠! 괜찮아?"
놀랍게도 내 옆에는 같은 자세로 민정과 보람이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마스터가 되어 인간 이상의 힘을 얻은 그녀들이 왜 이렇게 쉽게 잡혔단 말인가?
'아! 네버랜드에 접속한 상태에서 잡혔구나!'
그렇다. 우리에게 힘을 준 네버랜드지만, 거기에 접속할 때 우리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된다. 물론 그 정도야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민정과 보람의 본가인 집에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어떻게 된 거야? 여기가 공격당한 거야?"
"아냐!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지. 하지만....... 세상에 할아버지가 설마........"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상황이 대충 그려진다. 황당하게도 나라에서도 함부로 하기 힘들어야 할 신영그룹이 우리를 팔아먹어 버린 것이다!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빠가 이 상황을 용납할 리가 없는데."
"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야. 어쩌면......."
그녀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신성력을 일으켰지만 이내 실패한다. 다시 보니 억제기는 밀리언으로서의 능력은 물론 마스터로서의 능력까지 봉인하고 있었다.
"마스터의 능력까지 억제한단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 과학은 유품의 제대로 된 발동 원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밀리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밀리언이 능력을 발동할 때 퍼지는 전자파를 감지하기 때문일 뿐 그 이상의 이론은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이상해. 유품은 분명 아닌데.'
억제기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고 그게 다 유품이라는 건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국인부에서는 내가 아는 것 보다 밀리언에 대해 많은 걸 조사했다는 뜻이리라.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야?"
"모르겠어. 어디로 이동된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있는 곳은 철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원룸 정도의 방이었다. 방 천장 모서리 부분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손잡이 없는 기계식 문이 보인다.
[모두 일어났군.]
그때 한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 듣는 목소리다.
"정말 매너가 없군.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를 이렇게 다뤄도 되나?"
[어쩔 수 없지. 너희가 너무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도 피해가 엄청나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고문이라도 가하고 싶을 정도지.]
"하지만 겁이 나서 그러지 못하고 있단 말이지?"
피식 하고 웃으며 말하자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에 살의가 깃드는 게 느껴진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 친구로군. 지금 너희들은 내 명령 하나에 죽을 수도 있어.]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고 있네. 고작 사람 하나 죽이려고 이 고생을 하나? 게다가 자고 있는 걸 납치한 주제에 죽인다고 협박하다니 질이 떨어지는군. 도대체 누가 우릴 납치하려는 건가 했는데 역시 싸구려 폭력 단체였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피커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저기 오빠. 너무 자극하는 거 아니야?"
"자극해야 목적이 나오거든. 게다가 녀석들은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없어."
무엇보다 녀석들이 밀리언에 대해 알고,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해 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녀석들은 절대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내가 왜 결정타를 먹일 기회에도 마가리타를 죽이지 못했던가? 바로 그녀가 주변을 파괴하는. 그러니까 수라나찰 같은 종류의 유품을 설정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심지어 녀석의 능력은 시간 관련이야. 만약 녀석의 유품이 발동했을 때 내 타임슬립까지 막히면 곤란하다.'
당연하지만 지금 국인부가 밀리언을 납치하려 들 수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밀리언이 스스로에 대해 모른다.]는 확신 때문이다. [조건]을 모르는 밀리언은 당연히 자신의 능력을 쓸 수 없으며 능력을 써보지도 못한 밀리언이 유품을 만들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하긴 그래서 정보를 그렇게나 통제하는 거겠지.'
똑같은 밀리언이라도 정보의 유무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밀리언들이 단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 국가는 그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티펙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밀리언을 억압하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국가가 무너질 각오를 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유품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알려 줘야 한다는 거잖아? 뭘 믿고 이렇게 강압적이지?'
그건 이 녀석들이 처음 습격할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이다. 솔직히 밀리언을 대하는데 난데없이 쳐들어와서 납치해 가는 미친 짓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애초에 밀리언은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유품을 만들게 해야지 이따위로 다뤄서 원망을 사게 되면 뒷감당을 하기가 너무나 힘든 것.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면담'을 실시하기에 앞서 경고를 하나 해 주지. 너희들이 차고 있는 팔찌와 목걸이에는 초소형 폭탄이 장치되어 있다. 더불어 아까 같은 행동을 다시 하면 거기에서 전기 충격이 가해질 것이다.]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 할 경고지만 나는 물론이고 보람과 민정마저
'뭐 어쩔?'
하는 표정이다. 지금 수많은 전장을 넘어 온 마스터들에게 전기충격으로 협박을 하고 있
다는 말인가?
"지훈아. 어째 이놈들 마스터에 대해 모르는 것 같지 않아?"
"억제기가 있는 걸 보면 아예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대충 알긴 하는데 경험한 적이 없는 모양이군."
다시 말해 이 녀석들은 언리미티드가 아니라 국인부 녀석들이라는 소리다. 언리미티드에게 마스터의 강함을 들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들.
"일단 따라가 보자. 느낌이 이상하면....... 깽판을 놓는 수밖에."
보람의 몸 안에 침투했던 능력 무효 독을 해독했을 때처럼 [스텟 자체]로 해독한다면 능력무효도 먹히지 않는다. 다만 다른 유저들은 변신 시간에 한계가 있는데다 스텟만으로 독을 해독하기도 쉽지 않아 같은 일을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게다가 일단 현현하면 이따위 수갑은 끊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벽이 열린다.
기잉!
열린 벽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가 들어선다. 그의 뒤에는 총기로 무장한 병사 몇이 도열해 있다.
"데리고 와."
그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옆에 붙었고 굳이 반항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우리는 그들을 따라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전체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연구실이었는데 여기저기 있는 침대에 불안한 표정의 남녀들이 누워 있는 게 보인다.
'상황으로 봐서는 다른 밀리언들인데........ 뭔가 이상하잖아?'
초월자에 이르러 마나 감지 능력을 얻은 후 주변의 기척을 읽을 수 있게 된 나다. 때문에 난 주변에 있는 마스터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밀리언으로 보이는 녀석들에게서는 아무런 힘도 느낄 수 없다.
"대기해라."
"흐음 저기요......."
보람이 입을 열자 병사 중 하나가 눈을 부라린다.
"조용. 질문에 답할 때 말고는 잡담을 금한다."
"어따 대고 명령인지......."
보람은 궁시렁 거렸지만 굳이 티격태격 하고 싶지 않은 듯 침묵을 지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능력이 봉인된 상태인 만큼 조심스러운 태도. 나는 조용히 서서 다른 밀리언들을 지켜보았다. 다들 난데없이 납치 되 온 것인지 불안한 표정들.
'밀리언들이라........'
마가리타는 말했다. 언리미티드에서 헬리오스와 에레보스와 협의하는데 성공해 게임 속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밀리언들이 발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마스터급에 다다르는 밀리언이 다수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리언은 실력과 별개의 능력을 가져 전투에 유리할 수도 있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마나탈진을 일으킬 수 있기에 폭발적으로 마나를 늘리는 게 가능하다.'하지만 마가리타 녀석은 이상했어. 1000테라라니? 어떻게 그런 마나량이 가능할 수 있지?'
1000테라. 네버랜드 안으로 치면 1000억 테라. 그건 문자 그대로 상식을 초월하는 마나량이다. 이 나조차도 고작 5억 테라의 마나를 모았을 뿐인데 1000억 테라라니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심지어 나 역시 마나탈진을 일으킬 수 있는데 어떻게?'
물론 이론상 마나탈진을 계속 반복하면 무한히 마나가 늘어난다. 내가 네버랜드를 처음 플레이한 것은 서비스가 시작된 지 1년이 넘어서였으니 먼저 마나를 늘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000억 테라라니??
'이상해. 나는 충분히 마나를 소모 해 왔는데 뭐가 문제란 말이야? 정령계도 가고 환계도 가고 별 수를 다 썼는데! 마나 회복력 때문에 금세 회복이 되어서........ 회복 되어서?'
순간 치명적인 문제를 깨닫는다.'그런........ 그렇구나. 난 회복력이 너무 빨라. 회복력이 이렇게 빠르지 않으면 시간이 될 때마다 마나 탈진을 일으킬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령계를 가야하고 환계에 가야 했다. 물질계에서는 3000%가 넘는 집마력 상승 버프 때문에 마나를 소모시키기가 불가능했던 것.
게다가 마가리타의 시간정지는 사용부터가 더 편하다. 시간을 뒤로 돌린 [후에]마나가 소모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돌렸다가 다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나와 다르게 일단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마나가 소모되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신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스킬들을 다 없애버릴 수도 없는데!!'
============================ 작품 후기 ============================ 왜 없어?